무력시위 (1)
하악― 하악―
입안에서 계속해서 튀어나오는 달뜬 숨.
무모한 도주를 시도했던 좀비 아포칼립스 첫날에 이어 꽤 오랜만에 숨을 헐떡였다.
“……닫아요.”
“옙!”
마저 호흡을 정리하며 옥상 바닥에 주저앉는 와중에 들리는 철문 닫히는 소리.
난 빠르게 뛰어와 철문을 닫는 고장훈과 바닥에 널브러진 좀비 시체들을 번갈아 응시했다.
마음가짐의 변화는 꽤나 많은 것들을 바꾸게 한다.
그동안 철저히 안전을 위주로 생존자를 수색하던 방향에서 오직 포인트만을 모으기 위한 연속적인 좀비 사냥으로 하루 일과가 바뀐 것이 대표적인 예시였다.
[힘 : 14 -> 15]
[잔여 포인트 : 5 -> 0]
덕분에 5포인트나 갈취해가는 10대의 힘 스탯도 어느덧 중반을 넘겼다.
띠링―!
[힘 : 15] [민첩 : 10] [지능 : 1] [왕권 : 2]
처음과는 개벽할 수준으로 뒤바뀐 스탯 포인트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 든든한 스탯 중 유일하게 처음에 멈춰있는 스탯이 눈에 띄었다.
[지능 : 1]
앞으로도 굳이 올릴 생각은 없는 스탯이었다.
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널브러진 좀비 시체 중 한 마리의 다리를 붙잡았다.
가볍게 스윙하듯 휘두르는 팔에 부드럽게 좀비들의 시쳇더미로 날아가는 좀비 시체.
근력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신체 활동.
특히나 좀비를 죽이는 데 있어 힘 스탯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힘 스탯이 높아질수록 좀비들을 처리할 때 더 수월해지는 것을 절실히 느끼는 지금.
내가 힘 스탯을 포기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게다가 민첩.
내게 총기나 원거리 무기가 없는 이상 좀비들을 죽이기 위해선 근접전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그 근접전 중에 선제공격의 기회를 잡는 것도 선택이 아닌 필수겠지.
싸움은 언제나 자고로 선빵필승.
그 선빵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 민첩 스탯 또한 포기할 이유가 없는 스탯이었다.
이렇듯, 이미 육체계 스탯이라 통칭할 수 있는 힘과 민첩에 투자한 이상―
지능이라는 딱 봐도 정신계 스탯으로 보이는 스탯까지 투자할 여유는 없었다.
선택과 집중.
이른바 ‘잡캐’가 되기 전에 육체계 스탯에 올인하기로 이미 결정을 내린 바였다.
‘왕권’이라는, 스킬을 시전하는데 필요한 일종의 ‘마나’가 지능이 아니라 따로 존재하는 스탯이라는 걸 알아낸 지금은 더더욱.
“……그래서 뭐래요?”
툭―!
좀비 시체를 시체 더미에 던지며 내던지는 건조한 물음.
지칭하는 단어가 없는 뜬금없는 물음이었지만, 질문을 받는 사람은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뭔 투표를 한다고 난리랍니다. 식량을 구하러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사람들이랑 위험한데 구조대를 더 기다리자는 사람들로 나뉘었다네요.”
“귀엽네요.”
이런 순간에도 투표를 하다니.
과연 민주주의에서 태어나고 자란 민주시민들다웠다.
“그래서 투표 결과는 어떻게 됐는데요?”
“아직은 구조대를 기다리자는 쪽이 더 많긴 한데 잘 모르겠다네요. 학생회가 내일 또 투표를 하겠다고 말했답니다.”
툭―!
마지막 시체를 시체 더미에 던지곤 가볍게 손을 털었다.
철문에 등을 딱 기대고 버티고 있는 고장훈을 바라보며 잔웃음을 흘렸다.
그만하면 됐으니 가까이 오라는 손짓에 서둘러 내게 달려오는 고장훈.
“학생회는 투표 결과가 별로 마음에 안 드나 보네요?”
“아무래도 음식이 너무 없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애초에 중도에 뭐 먹을 거라곤 지하에 매점밖에 더 있나요.”
하긴, 애초에 도서관이랑 음식은 아주 거리가 먼 단어들이다.
그곳에 식량이 있을 거라고 백 퍼센트 확신할 수 있는 곳은 중앙도서관 지하 매점밖에 없겠지.
“동아리 후배라 했죠?”
지금 우리에게 꿀 같은 정보를 가져다주는 존재를 재확인하자 고개를 끄덕이는 고장훈.
“네. 체스 동아리 후배입니다. 그 새끼가 하이퀸즈 골수 빠돌이라서―”
“뭐 티 나게 노골적으로 꼬치꼬치 물어보고 있는 건 아니죠?”
“에이~”
잡담을 끊고 확실히 물어보는 내게 고장훈이 장난스런 미소를 흘린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 새끼 저랑 아주~ 비슷한 성격이라서.”
고장훈이 오른손으로 오리주둥이를 만들더니 자기 입 앞에서 요란하게 흔들어댔다.
“나불대길 좋아하는 성격이다, 이 말이죠, 헤헤―”
그럼 뭐, 걱정 안 해도 되겠네.
난 고개를 끄덕이곤 옥상 뒤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항상 인문대 정문 앞에 넘치는 좀비들을 관찰하던 것과는 정반대의 위치.
인문대 뒤편 조금 멀리, 큼지막하게 보이는 도서관을 천천히 올려다보았다.
누가 보아도 ‘우리 여기에 돈 좀 썼어요.’라고 동네방네 자랑할만한 현대적인 디자인.
다르게 말하면 실용적이라기보단, 건축미에 공을 들인 것 같은 6층 건물을 주시했다.
“여기 있습니다.”
서둘러 나를 따라온 고장훈이 검은 쌍안경을 건네온다.
과방 수색 중에 자기네 철학과 과방에서 부리나케 챙겨온 것으로 이런 순간에 매우 유용했다.
쌍안경 렌즈 너머로 더 큼지막하게 비춰오는 도서관의 전경.
그중 도서관 주변을 개미처럼 얼쩡거리는 좀비들과 유난히 모든 블라인드가 다 처져있는 2층을 주시했다.
“2층에 모여 있다고 했죠?”
“네, 인문 자료실에 모여 있다고 했습니다.”
……중도 2층.
저곳을 어떻게 들어가야 안전하고 빠르게 들어갔다고 소문이 날까…….
또 차량을 탈취해서 자폭 쇼를 하거나, 단순하게 중앙돌파를 할 생각은 없었다.
지금 저 도서관 2층에 있는 놈들은 말 그대로 고슴도치들이다.
외부에서 무언가 진입을 시도하면, 그게 인간이든, 좀비든 당장 온몸을 말아 가시부터 세울 테지.
난 쌍안경을 틀어 도서관 오른쪽, 흡연구역을 주시했다.
그곳에 지금 우리가 있는 인문대 옥상보다 조금 더럽게 널브러진 좀비 시체들.
어딘가에서 버린 듯한 좀비 시체들을 따라 아주 조금 쌍안경을 위로 당기면―
“……2층.”
좀비 시체를 내던진 것으로 예상되는 2층 창문이 들어선다.
비스듬히 열려있는 2층 창문과 흡연 구역 구석에 버려져 있는 사다리 하나.
챠르르르륵―!
딱 봐도 나무를 조경하다가 버려진 것으로 보이는 사다리를 보자마자 귓가에 전정기 소리가 맴돈다.
이제는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그 미친 아저씨도 조경하다말고 나를 가로막았었지.
난 쌍안경에서 눈을 떼고 인문대에서부터 도서관까지의 거리를 찬찬히 훑었다.
지금껏 열심히 만들었던 비상 탈출용 밧줄로 인문대 뒤편으로 내려선다.
그리고 오르막길 겸 산책로인 작은 숲길을 돌파하여―
사범대 옆에 위치한 도서관 흡연 구역에 도착.
저기 버려진 사다리를 통해 열려있는 2층 창문으로 진입해서 2층 생존자들과 조우한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릴수록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허술한 계획.
하지만 이것 이상으로 빠르고 은밀하게 도서관 2층으로 진입할 계획은 생각나지 않았다.
여기서 스탯을 얼마 정도 벌고 가야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을까.
그렇게 여유 부릴 만큼 시간이 충분해 보이지도 않았다.
고장훈의 말대로라면 식량 수색을 위한 투표를 거듭하고 있는 상황―
게다가 나름 주도권을 쥐고 있는 학생회가 식량 수색에 찬성하고 있는 낌새였다.
곧 식량 수색에 나설 거고, 그럼 언제 저 생존자 무리가 붕괴될지 모른다.
수색 중 한 놈만 물려도 전염은 순식간일 테니까.
“……저어― 세계 씨.”
고민을 차분히 이어가던 도중 들리는 작은 목소리.
고개를 돌려 고장훈과 눈을 맞추자 어색한 웃음을 흘리는 고장훈이 입을 열었다.
“굳이 도서관에 가시려는 이유도 그으― 능력과 관련된 일인가요?”
“…….”
조심스런 물음에 아무런 대답 없이 고장훈의 눈을 주시했다.
세차게 떨리면서도 힘겹게 눈을 피하지 않는 고장훈.
그 모습이 대답을 꼭 들어야겠다는 무언의 다짐 같았다.
하긴, 고장훈과의 시간도 짧다면 짧지만―
그 짧은 시간 안에 꽤나 많은 일들이 있었다.
특히나 상태창에 관한 내 테스트를 가장 가까이서 함께한 일종의 조수 역할이었으니―
당연히 내가 보통 인간과는 조금 다르다는 걸 직감했겠지.
어차피 스탯을 찍으면 찍을수록 주머니 안의 송곳처럼 알아서 깨닫게 될 일.
굳이 숨길 생각은 없었기에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 긍정에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입술을 꽉 깨무는 고장훈.
“……어렵네요.”
꽤나 밝은 톤을 유지하던 고장훈에게는 상당히 낯선 낮은 음색.
내 옆에서 함께 도서관을 주시하던 고장훈이 쓴웃음을 내지었다.
“점점 더 시간이 지날수록 제가 짐이 될 확률이 높아지겠네요.”
웨에에엥―!
옥상 구석에서 작은 언덕처럼 쌓인 좀비 시체들과 지상에 산적한 좀비 무리.
그들을 지나 조금 먼 거리의 도서관을 응시하던 고장훈이 중얼거리듯 속삭였다.
“제가 생각해도 저를 데리고 가는 게 그렇게 효율적이진 않을 것 같네요.”
내가 고장훈을 나름 똘똘하고 어디서든 객사할 새끼는 아니라고 판단했듯이―
고장훈 또한 나란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 자기 나름의 판단을 한 것 같았다.
특히나 고장훈은 내 비위를 맞춰야 하니 더 주의 깊게 생각했겠지.
허나 나는 그런 것보다 다른 의미에서 조금 놀랐다.
그렇게나 눈치 빠르고 똘똘해 보이던 고장훈이 약한 소리를 내뱉고 있다는 것이 더 놀라웠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은 대학생.
어딘가 특별해 보이는 녀석들도 전부 다 완전히 영글어지지 못한 미숙한 녀석들이었다.
그 사실을 다시금 주지하니 언제부터인진 모르겠지만, 내 입가에 자그마한 미소가 맴돌았다.
오히려 나에겐 너무나도 좋은 요소였다.
“누가 그러는데?”
“……예?”
멍청한 반문을 흘리는 고장훈을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갑작스런 내 어깨동무에 깜짝 놀라 몸을 바짝 얼리는 고장훈.
여자도 아닌 남자에게 가벼운 스킨쉽을 하고있는 내 기분도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도 재밌었다.
재밌다 말고는 다르게 표현할 말을 찾기 힘든 독특한 기분.
고장훈의 머리 위에 자리하고 있다는 전능한 기분을 절실히 느끼며 미소 지었다.
“너를 데리고 다니는 게 나한테는 효율적이야, 고자야.”
“…….”
놈의 달달 떨리는 동공에 미소 짓고 있는 내 얼굴이 투영된다.
난 더 부드럽게 웃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딱 지금처럼만 살고 싶잖아?”
좀비에 대한 걱정 없이, 사람답게 싸고, 먹고, 잠자고―
이 좆같은 현실에서 그나마 인간답게.
“안 그래?”
부드러운 물음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고장훈.
난 놈의 어깨를 툭― 툭― 치며 말을 이었다.
“그럼 지금처럼만 해.”
지금처럼만.
“알겠어?”
“……옙.”
확실히 알아들었다는 듯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고장훈.
띠링―!
놈의 얼굴 위로 새로운 메시지가 갱신된다.
[고장훈의 복종 요인에 긍정적 요인이 갱신됩니다.]
[요인 : 리더에 대한 ‘강한’ 신뢰, 폭력에 대한 ‘강한’ 두려움.]
[고장훈이 당신에게 ‘강하게’ ‘복종’합니다.]
[왕권 : 2 -> 4]
경험자에 대한 약한 신뢰에서 리더에 대한 강한 신뢰로 바뀐 메시지 창.
이젠 내게 더 강하게 복종하는 고장훈과 늘어난 왕권.
짧은 몇 마디 대화로 이루어낸 성과였다.
점점 더 숙달되고 자연스러워지는 것이 확연히 느껴진다.
누군가를 지배하는 것, 군림하는 것―
고장훈을―
그리고―
난 중앙도서관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는 고장훈의 어깨를 툭― 두드렸다.
다시 옥상 철문으로 걸으며 인벤토리에 넣었던 쇠 파이프를 다시 꺼냈다.
“문 열어.”
“……옙!”
서둘러 나를 추월해 옥상 철문으로 달려가는 고장훈을 바라보며 쇠 파이프를 까닥― 흔들었다.
며칠이 지났다고 벌써부터 시체 썩은내가 옥상 일대에 진동한다.
시체를 태워버리거나, 해결해야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내일.
내일 무슨 일이 있어도 도서관에 진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