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폭군-12화 (12/120)

무력시위 (3)

차량 경보음에 이어 또다시 도서관 구역에 울리는 소음.

“올라가서 창문 지키고 있어.”

“예, 옙!”

고함을 쳐도 저 포효보단 작을 것이기에, 고장훈에게 눈빛이 아닌 말로 다음 계획을 주지시키곤 다시 한번 뜀박질을 개시했다.

“끼에에에엑―!”

새로운 먹잇감에 있는 대로 흥분하며 소리치는 좀비 새끼.

아마 곧, 저 기쁨에 경쟁심을 느낄 동료 새끼들이 아주 많이 내게로 달려올 것이다.

퍼어억―!

달려오던 좀비 새끼가 무너지는 동시에, 놈이 가리고 있던 시야에서 득달같이 달려오는 좀비들이 포착됐다.

난 서둘러 검은 핏물을 뚝― 뚝― 흘리는 쇠 파이프를 회수하고 사다리를 향해 전력으로 뛰었다.

“이, 이 새끼 뭐야―! 너 누구야―!”

“저기, 진정, 진정을 좀 하시고―”

“으아, 으아아아아―!”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와중에 창문을 타고 흘러나오는 음성.

위나 아래나 아주 쌍으로 지랄을 하는 판국에 혀를 차며 입가를 비틀었다.

“끼에에에엑―!”

어느새 사다리 앞에 개미 떼처럼 모여든 좀비들.

난 점점 열린 창문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검은 가방을 보며 열린 창문을 넘었다.

그리곤 좀비 새끼들이 쥐고 흔들고 어깨빵을 치며 아주 지랄 중인 사다리를 서둘러 위로 끌어올렸다.

끄드드득―!

좀비와의 줄다리기에 살벌한 소음을 내며 찌그러지는 사다리.

허나, 내 근력을 이길 순 없었는지 점점 내게 딸려오는 사다리를 재빨리 도서관 바닥에 내려놓고 앞을 응시했다.

“으아아아아―!”

그곳에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고장훈에게 달려드는 낯선 남자가 있었다.

공격당하는 고장훈보다 더한 공포가 물씬 풍겨있는 놈의 얼굴과 그의 손에 들린 작은 망치.

손보다 더 빠르게 발이 반응한다.

퍼어억―!

달려드는 놈의 배때기에 깨끗하게 꽂히는 발길질.

달려들던 자세 그대로 바닥에 엎어진 놈이 순식간에 미끄러지며 책장에 부딪힌다.

쿠웅―!

책장에 머리를 박고 미동도 없이 기절한 남자.

난 뒷걸음질 치던 그대로 얼어있는 고장훈과 여태껏 있는 줄도 몰랐던 낯선 여자를 눈에 담았다.

특히나 달달― 떨리는 다리와 세차게 진동하는 눈빛으로 입을 꼭 가리고 있는 여대생.

이상하게 저 모습을 보니 다음 행동이 예견한 것처럼 눈에 훤했다.

귀찮은 표정으로 할 거면 하라는 듯 무심하게 팔랑이는 오른팔.

그 오른팔을 기점으로 여자의 목청이 찢어질 듯이 울린다.

“꺄아아아악―!”

“끼에에에엑―!”

그 비명에 화답하듯 또다시 울리는 좀비들의 포효에 열려있는 창문을 닫고는 블라인드를 쳤다.

우당탕탕― 거리며 여자의 비명을 따라 일단의 무리가 달려오는 소리.

난 비명을 지르다 말고 자기 스스로 바닥에 주저앉는 여대생을 보며 고장훈에게 물었다.

“뭐야?”

“그으― 제가 올라왔을 때 저 남자랑 저 여자랑 그으―”

아주 난감하다는 듯 눈알을 굴리는 고장훈.

아―

단번에 이해한 나는 헛웃음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새끼들이 이런 와중에도 그 지랄을 하고 있네.

“뭐야―! 무슨 일이야―!”

숨을 헐떡이며 고장훈과 나를 순식간에 둘러싸는 다수의 사람들.

좀비 아포칼립스가 터진 이후로 처음으로 열 명이 넘는 생존자를 한 시선에 담는 것 같았다.

좀비가 아닌 다수의 생존자들이 우리의 존재를 눈치채고는 찢어질 듯이 눈을 커다랗게 뜬다.

“흑― 흑― 오빠아―”

질질 짜며 달려온 무리를 향해 애처롭게 손가락을 내뻗는 여대생.

“갑자기― 갑자기― 흑― 흑―”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면서 책장에 부딪혀 기절한 남자를 가리켰다.

“세준이? 세준아―!”

그때서야 망치를 들고 덤비던 남자를 인식하고는 달려온 무리 중 남자 한 명이 서둘러 그에게 달려갔다.

“세준아―! 뭐야, 괜찮아?! 이, 이 새끼가 왜 이러지?!”

기절한 듯한 남자의 뺨을 약하게 치며 어깨를 흔드는 남자.

그 남자를 빼고는 갑작스레 달려온 모두가 우리를 경계하고 있었다.

“다, 당신들 누구야―!”

어쩌면 당연히 튀어나와야 할 뾰족한 물음.

이쪽도 나처럼 공구함을 발견했는지 각자의 손에 작은 공구들을 겨누듯이 우리에게 내밀고 있었다.

그들의 공구 끝단에 옅게 묻어있는 검은 핏물.

하긴, 개미 떼처럼 공기 반 사람 반이었던 도서관에서 아무런 저항 없이 안전 공간을 확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저들도 나름 자기들을 먹어 치우려는 좀비 새끼들을 죽인 뒤에야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겠지.

덕분인지 우리를 바라보는 눈빛이 평소의 같은 재학생을 바라보는 눈빛이 전혀 아니었다.

아주 날카롭고 공격적인 시뻘건 눈빛.

“아―! 혹시 학생회 부회장님 아니세요? 그때 저희 수업에 유세하러 오셨잖아요. 기억 안 나세요?!”

그 순간, 팽팽한 대치를 뚫고 한 발자국 나서는 고장훈.

녀석이 무리의 리더로 보이는 중앙의 남자를 콕 집으며 밝게 물었다.

그의 지목을 받고 약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커다란 덩치의 남자.

“예, 맞습니다. 유세는 거의 모든 학과에 다 들렸기 때문에 기억은 안 나지만.”

경직된 분위기에 딱 들어맞는 딱딱한 대답.

부회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전혀 풀리지 않은 분위기 속에 눈을 가늘게 좁히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누구시냐고 물었는데요.”

“아― 저희는 인문대에서 왔습―”

“예? 사범대도 아니고 인문대라니 인문대는 여기서 한참―”

“예리야.”

고장훈의 말을 끊고 반문하는 높은 톤의 음색.

부회장이 단번에 무리 중에 의문 섞인 얼굴로 쳐다보는 여대생의 말을 끊었다.

하하―

고장훈이 그 모습에 옅은 웃음을 내보이며 말을 이었다.

“물론 저희도 그으― 개고생하며 겨우 이곳에 온 겁니다. 좀비들한테 쫓기는 와중에 정말로 운좋게 열린 창문이랑 사다리를 발견해서요.”

후우~ 운이 정말~ 좋았죠.

고장훈이 숨을 푹 내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아직도 기절해있는 남자를 응시했다.

“물론― 올라오는 와중에 저희를 좀비로 착각한 저 남성분과 아주 약한 충돌이 있었지만, 괜찮을 겁니다.”

진짜 아주 조금 부딪혔거든요.

손가락으로 ‘아주 조금’을 강조하며 어깨를 으쓱이는 고장훈.

난 그의 등 뒤에 있어 들썩거리는 검은 가방밖에 보지 못하지만, 아마 지금쯤 한참 간사한 눈을 이리저리 돌리며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이 눈에 훤했다.

“정말 인문대에서 오셨어요? 아니 어떻게? 지금 밖에 좀비들 투성일텐데. 어떻게 그 좀비 밭을 뚫고―”

“예리야.”

지금도 한참 땅바닥에서 질질 짜는 여자를 다독이며 빠르게 쏘아붙이는 여대생.

부회장은 또 한 번 더 여대생의 말을 끊고는 고장훈을 응시했다.

“인문대에서 왔든, 어디서 왔든 상관없습니다. 나가세요.”

“……예?”

갑작스런 축객령에 한껏 당황한 고장훈의 반문.

“안전 문제도 그렇고, 식량 문제도 그렇고. 지금 저희가 다른 학생분들을 더 받아들일 여유가 없습니다. 다시 왔던 곳으로 돌아가세요.”

“……예?”

별로 놀라운 반응은 아니다.

나라도 아마 이런 상황에서 낯선 방문자에게 그렇게 했을 테니까.

하지만 고장훈은 아니었다는 듯, 한 발자국 더 내디디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다시 저 좀비들 사이로 돌아가라고요?! 그건 그냥 죽으라는 말이잖아요!”

고장훈의 고함에 양심에 찔리는 듯 눈을 피하는 도서관 2층 무리.

난 고장훈의 뒤에서 찬찬히 놈들을 하나씩 훑어보았다.

각자의 무기를 들고 우리를 겨누고 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뒤에서 불안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도서관 2층의 생존자들.

난 그중에서 여자들 무리에 둘러싸여 있는 한 여자에 시선이 멈췄다.

그냥 한눈에 봐도 남들과는 전혀 다른 인종인 것처럼 눈에 확 띄는 미모.

매번 유튜브에서 보던 얼굴보다 훨씬 더 파괴력 있는 실물에 어쩔 수 없이 입이 살짝 벌려졌다.

고장훈의 후배가 호들갑을 떨었다는 것처럼 카메라로는 다 담지 못한 듯한 저 우월한 미모.

조용히 우리를 노려보는 저 큼지막한 눈동자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이름이 떠오른다.

‘설희’.

본명은 아마 차설희로 하이퀸즈의 비주얼 센터였다.

데뷔 후에 내는 곡마다 대박 행진을 이어가며 소속 가수가 하이퀸즈 하나뿐이던 기획사를 단번에 3대 기획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만든 중소돌의 기적.

그것도 팬덤의 충성도 자체가 다른 남돌이 아닌 여돌로 이루어낸 진짜배기 기적의 주인공들.

그 하이퀸즈에서도 독보적인 미모로 여자 아이돌 개인 브랜드평판 순위 1위를 데뷔 후부터 계속해서 수성해나가는 여돌 1황.

저 ‘설희’가 데뷔하고부턴 자기 아이돌이 정말 이쁜데 운이 안 좋아서 뜨질 못하고 있다는 변명도 통하지 않았다.

그렇게 말하는 팬에게 모두가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으니까.

‘그럼, 네 아이돌이 설희만큼 예쁘지 않았겠지.’

뭐, 가난한 내 입장에서 유튜브만큼 경제적인 취미도 없었다.

그렇게 유튜브를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이돌 직캠 영상을 보게 되고―

그렇게 직캠을 보다 보면 알고리즘을 타고 들어오는 영상으로 이것저것 잡정보들을 아주 많이 알게 된다.

‘아이돌 덕질’이라는 것도 깊게 들어가면 여유 있는 놈들의 돈지랄인 걸 알게 된 후로는 그렇게 깊게 들어가진 않았지만.

그래도 댓글로 치고박는 새끼들의 투기장을 한 번만 정독해도 웬만한 아이돌판은 대충이나마 윤곽은 알 수 있었다.

“도서관이 학생회나 여기 있는 사람들 것도 아니고 무슨 권리로 저희를 내보내시려는 겁니까! 도서관은 반석대 학생들 모두의 공간입니다!”

“반석대 총학생회 부회장으로서 정중하게 통보하는 겁니다.”

“아니, 씹―! 그런 통보가 어딨어요?! 학생회 부회장이 뭐라고 그런 뭐 같지도 않은 감투로 어떻게―!”

“저는 학생회 부회장이라는 감투라도 있지. 그쪽은 뭐 그런 감투라도 있으신가요?”

뻔뻔한 대답에 기가 찬 지 뒷걸음질 치는 고장훈을 보지도 않고 계속해서 차설희를 응시했다.

정말 타고난 아이돌인지 한 번 보기 시작한 뒤부터 시선을 뗄 수가 없는 마력이 있는 것 같았다.

이기적인 비율과 큼지막하게 자리한 이목구비들을 하나씩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고양이상의 완벽한 냉미녀가 우릴 노려보고 있었다.

“학생회비! 학생회비도 낸 사람들인데 이럴 겁니까!”

“점점 이야기가 유치해지네요. 두 번 말 안 합니다. 나가세요.”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을 위해 일하라고 뽑아놨더니 학생들을 사지로 내모네― 이 씨발!”

“그래서 학생들을 위해 나서고 있잖아― 이 새끼야.”

점점 짧아지는 말투와 격한 욕설.

부회장의 말을 끝으로 그의 뒤에 함께 서 있던 학생들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선다.

덕분에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보던 차설희의 얼굴이 웬 남자 새끼의 얼굴에 가려진다.

쯧―!

왜인지 모르게 작게 혀를 차대며 씩씩거리고 있는 고장훈의 어깨를 툭― 두드렸다.

내 손짓에 입술을 깨물며 뒤로 물러서는 고장훈.

뚜벅― 뚜벅―

순식간에 정적에 물든 도서관 2층에 몇 발자국 앞으로 나선다.

언뜻 보면 호기롭게 무기를 내밀고 있는 모양새지만―

내 눈에는 조금 다른 게 비친다.

이런 적은 처음인 듯― 옅게 떨리고 있는 그들의 손과 다리.

그리고 부회장의 의견에 따르고 있지만 끝내 숨기지 못하는 인간으로서의 갈등, 그 눈빛.

어쩌면 저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독단적인 부회장을 설득해서 도서관 캠프에 합류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툭―! 툭―!

점점 앞으로 다가가며 오른손에 든 쇠 파이프를 까닥― 까닥― 흔들었다.

좁은 지형덕에 쇠 파이프에 계속해서 걸려드는 책장들.

그렇게 묘한 소음을 내는 쇠 파이프에 모두의 시선이 모인다.

내게 내밀고 있는 자기들의 도구와는 뭔가 다른 꺼림칙함.

쇠 파이프 끝단에 지워지지 않고 칠해진 마치 타르와도 같은 샛검정의 무언가.

대화와 설득으로 저들의 생각을 바꿀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건 꽤나 복잡한 일이었다.

그리고 난―

이제 복잡한 일은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었다.

“……싫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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