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가 (2)
“……태하 선배?”
내 뒤에서 상황을 주시하던 박우진의 중얼거림.
그 소리에 반응한 커다란 등이 서서히 몸을 돌렸다.
핏물을 잔뜩 끼얹은 얼굴로 조용히 우리를 바라보는 박태하.
“하악― 하악― 하악―”
뜨거운 입김이 보일 것 같이 격하게 숨을 몰아쉬던 박태하가 위로 들어 올렸던 손을 늘어뜨렸다.
그의 손에 달달― 떨리며 들려있는 핏빛의 몽키 스패너.
난 벙어리같이 어떠한 말도 하지 않는 박태하에게서 시선을 떼고 도서관 캠프 전체를 휘둘러보았다.
하나같이 충격을 가득 머금은 얼굴로 이 기묘한 상황을 바라보고 있는 캠프원들.
두세 명씩 군데군데에 뭉쳐 멍한 눈으로 입을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난 입을 막고 눈물을 질질 흘리고 있는 구예리와 조금 멀찍이서 이 상황을 바라보고 있는 차설희를 눈에 담고는 다시 박태하를 응시했다.
“…….”
분노가 아닌 다른 감정으로 파르르― 떨리고 있는 놈의 눈동자.
뭐가 어찌 되었든, 이미 상황은 종료된 것 같았다.
지금 여기서 저 상황에 개입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
두 개를 조용히 저울질하던 나는 결정을 내리고 등을 돌렸다.
이미 끝난 상황에 개입하는 건 개입이 아니라, 뒤처리겠지.
굳이 내가 저들의 뒤처리를 해줄 이유는 없었다.
“……멈춰.”
임시 거처로 향하려는 나에게 다가오는 속삭임.
몸이 떨리는 만큼 파르르― 떨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박태하가 핏빛의 몽키 스패너를 내게 겨누고 있었다.
“……너희도 좀비들이랑 있었던 거잖아.”
매우 불안하게 흔들리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너희도 확인해야겠어.”
벗어.
아주 단호하게 명령투로 던지는 두 음절.
“……예?”
“벗으라고오오―! 너희도 물린 거 아니야?! 물린 채로 온 거 아니냐고오오오―!”
두 쩌리의 멍청한 반문에 박태하가 발광하기 시작했다.
곰 같은 덩치로 무엇이 불안하지, 다리를 쿵― 쿵― 구르며 핏빛의 몽키 스패너를 난잡하게 흔들어댄다.
그냥 한눈에 봐도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지금 박태하의 상태가 매우 불안정하고 위험하다는걸.
“특히 너어어어―! 그런 눈깔로 쳐다보지 말라고 이 씨발년아아아아―!”
핏발이 가득 선 눈으로 나를 지목하는 박태하.
놈의 손에 들려 달달― 떨리고 있는 몽키 스패너가 왠지 모르게 같잖았다.
……이거 반면교사가 너무 훌륭한데?
“가자.”
“……옙!”
“멈춰―! 멈추라고 이 새끼야아아―!”
그대로 다시 임시거처로 향하는 내게 다시 발광하는 목소리가 찔러들어온다.
“벗어―! 너희도 벗으라고 이 새끼들아―!”
“아니, 선배! 갑자기 왜 이러세요!”
“가까이 다가오지 말고 일단 벗으라고, 이 새끼들아!”
점점 거리를 벌리는 박태하의 발광에 기나긴 설명은 필요 없었다.
한계.
극한의 상황에 무너졌든―
누군가의 목숨을 책임져야 하는 부담감에 무너졌든―
저게 박태하의 한계인 것이다.
뚜벅― 뚜벅―
2층 캠프를 지나 우리의 임시 거처에 도착하자 그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안세준이 광속처럼 고개를 돌렸다.
“아―! 아―!”
뭔가 대단히 안심한 듯한 표정으로 서둘러 달려오는 안세준.
“오, 오셨네요! 오셨어요!”
뭔가 어제와는 상당히 다른 반응에 저절로 고개가 비스듬히 젖혀진다.
그 모습에 세상 급하게 내 팔을 붙잡는 안세준.
“지, 지금 큰일 났습니다! 과. 광일이가 좀비가 돼서 옆에 있던 진수를 물고―”
안세준이 계속해서 도서관 캠프 쪽을 필사적으로 가리키며 어버버 거렸다.
광일이는 누구고, 진수는 또 누구야.
“알아듣게 말해.”
“……시, 식량을 지키고 있었는데 갑자기 태하 선배랑 예리랑 사람들이 갑자기 오더니―”
캠프를 가리키는 손가락을 틀어 다른 쪽을 가리키는 안세준.
“가, 갑자기 사다리로 밖으로 나가더니―”
안세준이 지목한 곳은 나에게 매우 익숙한 곳이었다.
도서관 캠프에 진입하고 저들과 대면한 첫 장소.
그곳에 벌겋게 번져있는 핏자국들이 발자국처럼 요란하게 찍혀있었다.
“얼마 안 돼서 막― 막― 좀비들이 울어대고― 그다음에― 막― 보고 있던 여자애들이 막 비명 지르고―”
그곳으로 다가가는 나를 따라 안세준이 간신히 설명을 이어갔다.
“그다음에 다시 태하 선배랑 얘들이 급하게 올라오고― 그래서 걱정돼서 따라갔는데― 갑자기 광일이가 이상해지더니―”
2층 창문을 중점으로 번져있는 핏물들과 2층 캠프 쪽으로 길게 이어지는 핏빛 발자국들.
꽉 닫혀있는 창문 틈새에 흥건한 핏물과―
칙―!
블라인드를 제치자 그 밑에 개미처럼 모여있는 좀비들이 보였다.
“끼에에에―”
특유의 괴음을 내지르며 방황하는 검은 점의 좀비들.
그리고 그사이에 버려져 있는 익숙한 사다리가 눈에 띄었다.
“……허.”
설마.
“그 설마가 맞는 것 같은데요?”
옆에서 조용히 동조하는 고장훈을 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나도 최대한 전투를 지양하며 도주한 곳에 자기들 스스로 발을 내디뎠다는 건가.
지금도 최대한 좁은 구석에서 싸우려하는데 겁도 없이 지들이 개활지로 나가서 좀비들을 마주한다고?
……허.
이건 너무 어이가 없어서 순수한 감탄만 나올 지경이었다.
“……어디로?”
“그러니까― 저, 저기 사범대로 가려 하다가―”
짧은 물음에 뉴스에 출연한 아주머니처럼 호들갑을 떨며 사범대를 가리키는 안세준.
“사범대. 1층에 카페랑 편의점이 있습니다.”
대충 상황을 깨달은 고장훈이 서둘러 내게 보충 설명을 이어갔다.
도서관에서 제일 가까운 사범대.
그리고 그곳 1층에 위치한 편의점.
“……허.”
상황을 짜 맞춰갈수록 더더욱 어이가 없어진다.
대충 무엇을 노렸는지는 알겠다.
어젯밤, 나를 두고 개노답 회의를 하던 와중에 절실하게 깨달았겠지.
내가 식량을 책임지고 있는 이상, 주도권을 빼앗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순리라는 것을.
그러니 주도권을 되찾고, 더는 내게 끌려다니지 않기 위해선 새로운 식량 루트가 필요했고.
저들은 여기서 제일 가까운 사범대 편의점을 타겟으로 고른 것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진짜로 지나칠 정도로 용감했네.
두 쩌리에게 좀비를 어떻게 처리했냐고 물었다던 박태하가 생각난다.
게다가 심유한이 뒤진 이후에 제법 안정권에 들어선 수색조를 바라보던 박태하의 눈빛까지도.
“……하.”
그저 생각을 하면 할수록 헛웃음밖에 안 나왔다.
그렇게 쉽게 생각하고 사다리를 타고 도서관을 내려갔고―
도중에 좀비들에게 발각당해 다시 헐레벌떡 2층으로 귀환.
급한 와중에 사다리는 저기 바닥에 내팽개치고, 새로운 수색조 중 한 명은 물린 채로 캠프 안에 들어왔다.
“……그래서 캠프 안에서 좀비로 변한 그 광일인가 하는 놈이 멀쩡한 진수인가 뭔가 하는 놈을 물었다.”
그렇게 좀비가 된 이들을 박태하가 스스로 정리했고.
그래서 물린 자국을 찾는다고 그렇게 발광이었던 거구나.
“저어― 저쪽은 괜찮나요? 호, 혹시 세리도 보셨나요?”
간절한 눈빛으로 내게 물어보는 안세준.
그리고 이 겁쟁이 놈은 광일이라는 놈이 좀비가 돼서 진수를 무는 순간 부리나케 이쪽으로 도망친 거고.
“그래― 그래서 식량 가방은 잘 지켰니?”
“무, 물론이죠! 하루종일 지켰습니다! 다, 당연히 저는 손도 안 댔습니다!”
내 물음에 기다렸다는 듯 답하는 안세준.
난 고개를 끄덕이곤 내 옆에 있는 고장훈에게 말했다.
“확실히 체크하고 변동사항 없으면 원하는 거 두 개 챙기라고 해.”
“예.”
설마 보상까지 줄 줄은 몰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는 안세준.
툭―!
놈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말을 이었다.
“한 개로 커플이 끼니를 해결하기는 좀 그렇잖아?”
“…….”
“아 맞다, 고자야. 잊지 말고 생수도 한 병 챙겨줘라.”
“옙!”
대화가 진행될수록 안세준의 눈망울에 물기가 점점 차오른다.
불과 어제의 일이 그렇게 생생한데도, 전혀 다른 감정으로 울기 시작하는 안세준.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웃겨서 미소를 숨기며 도서관 캠프 쪽을 바라보았다.
지하 1층을 같이 수색하려 하거나, 밤 사이에 기습으로 우리 식량을 빼앗으려 할지 알았는데.
새로운 식량 루트를 만들려 했다니.
간이 커도 너무 커서 배 밖으로 나왔네.
덕분에 별일이 없으면 안전할 거라 여겼던 2층 캠프에서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번엔 광일이와 진수라는 이름도 모를 남자 새끼들이었지만―
정말 운이 안 좋았다면 사상자가 차설희가 될 수도 있었던 상황.
그 상상만으로 가슴이 철렁였지만, 차라리 다행이었다.
남자 새끼 두 명으로 값싼 예방 주사를 맞은 거니까.
이제 웬만해선 학생회 쪽에서 돌발 행동을 하진 못할 것이다.
결국 식량 쪽으로 내게 더더욱 예속되는 결과만 도출됐을 뿐이다.
이제 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기새처럼 내가 주는 식량에 아가리를 벌리는 일밖에 없었다.
***
꺄아아아아악―!
도서관의 이른 아침을 깨우는 처절한 비명 소리.
덕분에 빠르게 눈을 뜬 나는 서둘러 바닥에 있던 쇠 파이프를 집었다.
급하게 일어나는 고장훈과 그 옆에 더 허둥지둥거리며 잠에서 깨어나는 안세준.
“예지야아아―! 흑흑흑―!”
상황의 다급함을 알리듯 찢어지는 비명과 울음이 이어진다.
난 쇠 파이프를 까닥― 흔들곤 그대로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쐐애애액―!
오랜만에 전력을 다한 달리기에 순식간에 바람을 찢으며 도착한 소리의 진원지.
“흐흑―! 흐흐흑―!”
화장실 바로 옆에 늘어진 책장들 앞에서 한 여자가 울고 있었다.
바닥에 주저앉아 너무나도 서럽게 울어대는 여자.
그 여자의 시선을 따라간 나는 준비하고 있던 쇠 파이프를 천천히 내렸다.
책장 앞에 엎어진 의자.
책장 사이에 어설프지만 나름 튼튼하게 묶여있는 매듭.
그리고 그 매듭에 걸려 몸을 축 늘어트리고 있는 여자.
“……허억―!”
뒤늦게 나를 따라온 고장훈과 안세준이 급하게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린다.
때아닌 아침의 소란에 한자리에 모이는 도서관 캠프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멍하니 바라보는 한 여자.
끼익― 끼익―
도서관 캠프의 생존자가 이미 굳어버린 몸을 대롱대롱 흔들며 모두에게 자신의 최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흐흑―! 예지야아아―! 흑흑흑―!”
계속해서 서럽게 울어대는 여자의 울음에 동조하듯 순식간에 훌쩍이는 소리로 가득해지는 도서관.
사람이 죽었다.
좀비에게도, 다른 생존자에게도 아닌.
자기 스스로에게.
멍하니 시체에게 걸어가던 남자 한 명이 머리를 꽉 움켜쥐며 제자리에 주저앉는다.
부족한 식량, 오지 않는 구조대.
끊겨버린 물과 전기.
좀비로 변해버린 친구.
스스로 목숨을 끊는 친구.
도서관 캠프의 모든 생존자들이 너무나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점점 살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사라져 간다.
그리고 그 희망이 사라진 공간에―
자꾸만 시커먼 무언가가 차오르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후원 감사합니다!
더 재밌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보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