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폭군-23화 (23/120)

젠가 (5)

3층으로 올라가기 위한 계단을 막고 있던 바리케이드를 치우고 3층 문 앞에 도착하는 그 짧은 시간.

“그나저나 설희 씨가 이 제안 너희들한테 먼저 했다던데……. 이런 개꿀 같은 제안을 왜 거절했냐? 어차피 너희 수색조잖아.”

“……좀 닥쳐.”

그 짧은 시간을 못 참고 두 쩌리에게 떠드는 박효은과 그를 제지하는 쩌리들.

“에이~ 결국 이렇게 된 거 그만 삐져라, 좀. 내가 잘되면 어련히 안 챙겨줄까. 이왕 이렇게 된 거―”

“좀 닥치라고, 박효은.”

두 쩌리에게 편하게 어깨동무를 하려던 박효은의 팔이 거칠게 튕겨 나온다.

“……조금 심하게 많이 낯설다, 얘들아?”

“알아서 상황 파악 좀 하고 그만 좀 나대, 이 새끼야. 너 그러다 진짜 제대로 좆돼.”

“……허.”

난 뒤쪽에서 흘러나오는 일촉즉발의 분위기에 바로 옆을 응시했다.

“가서 안 말려도 괜찮나?”

“전 고용자지 보호자가 아니에요. 저 남자분들의 유치한 서열 싸움에 끼이고 싶은 생각도 없구요.”

“아― 그래서 내 옆에 붙어있는 건가. 난 또 기분 좋은 오해를 할 뻔했네.”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이건 저한테 튜토리얼이기도 하지만, 재협상 테이블이기도 하니까.”

난 제법 욕심이 많아 보이는 당찬 목소리에 가볍게 웃으며 뒤를 눈짓했다.

“장난 그만 치고 슬슬 집중해라.”

“옙, 조장님.”

내 지시에 제법 살벌한 눈싸움을 끝내고 준비가 다 됐다는 듯 테이블 방패를 까닥― 흔드는 두 쩌리와 눈을 가늘게 뜨며 그런 나와 두 쩌리를 번갈아보는 박효은.

그리고 대열의 중간에서 식칼 창과 혹시 모를 물품들로 가득한 가방을 메고 있는 고장훈.

마지막으로 대열의 선두인 나와 내 옆에서 작게 숨을 고르고 있는 차설희.

도합 6명의 수색 인원이 3층 내부 계단 문 앞에 도착했다.

목적은 당연히 3층 수색 및 온전한 확보.

“지금부터 내가 지시하는 행동만 그대로 이행한다.”

난 문고리에 손을 잡고 수색조의 가장 붕 뜬 부분을 주시했다.

박효은이 노골적인 내 눈빛에 눈을 더 가늘게 좁힌다.

“만약 누군가 팀워크를 해치거나―”

꿀꺽―

박효은이 아닌 박우진과 김민준에게서 흘러나오는 꼴깍임.

“트롤링을 한다면…….”

경고는 이걸로도 충분하겠지.

난 굳이 말을 끝맺지 않으며 작게 웃었다.

자연스럽게 내게 모여있는 수색조의 손전등 불빛들.

그 환한 빛줄기들을 등지며 조심스레 손아귀에 힘을 줬다.

끼이이익―!

어쩔 수 없는 소음이 침묵에 젖어있는 3층을 깨운다.

난 스르륵― 열리는 내부 계단 문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 왼손으로 옮겨놨던 쇠 파이프를 다시 오른손으로 옮겼다.

그리곤 찬찬히 왼손에 들고 있던 손전등으로 앞을 비춘다.

…….

문 열리는 소리에도 아무런 화답이 없는 3층.

2층과 매우 비슷한 구조로 보이는 공간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탁―! 탁―!

내 턱짓에 귀신같이 반응한 고장훈이 서둘러 남은 계단을 올라와 주머니 속에 쟁겨둔 동전을 내던졌다.

팅― 티리리링―!

부드럽게 날아가 스포트라이트 같은 손전등 불빛 아래서 춤추는 동전.

가까이 있던 좀비들에겐 제법 성가실 소리가 울렸지만, 3층은 여전히 침묵에 젖어있었다.

“…….”

그 모습에, 작게 고개가 갸웃거린다.

지금껏 수색 중에 이렇게 조용한 구역이 있었나.

지하 1층처럼 완벽히 어둡지도, 그렇다고 손전등을 끄기도 애매한 그야말로 적당한 어둠.

육안으로 분명히 안이 보이지만, 그렇다고 확실히 시야를 확보했다곤 못할 짜증 나는 어중간함에 자연스레 미간이 찌푸려졌다.

“……손전등은 그대로 유지한다.”

물자를 아끼는 것도 좋지만, 인명 손실이 나는 순간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그러니 나는 내가 들고 있던 손전등만 차설희에게 넘기고 조용히 문턱을 넘었다.

쓰으으으으―

고작 문턱을 하나 넘은 것일 뿐인데 귀에 물이 가득 차는 것 같은 기묘한 소리와 감각.

매우 예민해진 오감에 계속해서 기분 나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서서히 발걸음을 앞으로 내디디는 나를 보조하는 두 개의 불빛.

하나는 이제는 이런 짓거리도 익숙할 고장훈이었고 하나는―

‘허.’

난 내게 받은 손전등을 앞으로 비추고 있는 차설희를 보며 잔웃음을 흘리며 턱짓했다.

내 무언의 지시에 서서히 3층으로 진입하는 수색조.

손전등 없이도 제법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명암에 찬찬히 주위를 훑었다.

중앙도서관 3층 사회, 역사 자료실.

보면 볼수록 2층과 빼다박은 듯이 똑같은 구조의 공간이었다.

하긴, 생각해보면 2층 인문 자료실과 굳이 구조가 달라야 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다른 것이라곤 아마 하나.

인문 자료실에는 존재할 정문 비슷한 구역이 없다는 거겠지.

2층은 1층과 중앙 계단으로 편리하게 연결되어있지만 3층부터는 다른 계단을 이용해야 하니까.

캠프가 존재하는 2층과 거의 비슷하지만 조금 더 넓은 공간.

난 빌딩 숲처럼 빼곡히 박혀있는 책장들을 찬찬히 살피며 수색을 시작했다.

숨을 내쉬는 것도 잊은 듯이 아주 조용히 내 뒤를 따르는 수색조.

난 그들을 이끌고 먼저 3층의 오른쪽을 수색했다.

제법 정리를 끝마친 2층과 달리 그날의 흔적으로 가득한 3층.

엎어진 책장과 잔뜩 어질러진 책들.

난잡할 만큼 덕지덕지 묻은 핏자국들을 조용히 주시하며 제법 감이 안 좋은 곳엔―

팅― 티리리링―

무조건 동전을 던져 확인을 끝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내디디는 것도 조심스러운 아주 은밀한 수색.

자연히 정신력을 꽤 많이 소모할만한 노동이었다.

난 앞에 아무런 위협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수색조를 살필 겸 고개를 돌렸다.

내 시선에 몸을 살짝 숙이며 힘을 주고 있던 이들이 서서히 몸에 힘을 풀며 자세를 바로 하기 시작한다.

대열의 후미를 맡고 있던 두 쩌리와 박효은.

그중 박효은을 살피던 내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손전등으로 위를 비추며 입을 멍하니 벌리고 있는 멍청한 모습.

내 시선에 함께 박효은을 바라보던 수색조 중 박우진이 서둘러 그의 어깨를 거칠게 툭― 쳤다.

“뭐해.”

“……아.”

사납게 쉭― 쉭― 거리며 속삭이는 박우진의 물음에 그제야 손전등을 앞으로 향하는 박효은.

“위에서 무슨 소리가―”

“지랄하지 말고 어두운 부분이나 잘 비춰.”

“……아니, 천장도 어두운 건 마찬가지―”

한심한 놈을 보는 듯한 박우진의 시선에 억울하게 말을 이으려는 박효은.

놈의 눈동자에서 아주 대놓고 보이는 공포와 두려움의 편린에 비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직 본게임은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이 정도로 벌벌 떠는 게 우습기보다는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저 몸뚱아리에 붙어있는 근육과 단증들이 아까울 정도로.

“……누구나 처음은 있는 법이에요.”

“아까 누가 자기는 고용자지 보호자는 아니라 하지 않았나?”

“이건 보호가 아니라, 이해에요.”

“아하― 그런데 난 처음에도 엄청 잘할 것 같은데.”

“……이런 순간에도 성희롱을 하시네요.”

못 볼 것 봤다는 듯 경멸어린 시선.

난 차설희의 눈빛에 가볍게 웃고는 고장훈에게 지시했다.

“가끔씩 위도 비춰봐. 저 새끼 말대로 책장 위에 숨어있다가 좀비가 된 새끼가 있을 수도 있잖아.”

“옙.”

병신은 병신이고, 시야의 사각은 사각이니까.

혹시 모를 위험도 대비하는 것이 당연했다.

“끼에에에―”

꽤나 평화로운 수색 도중 드디어 귀를 간지럽히는 괴음.

3층 오른쪽 구석에서 조용히 흘러드는 괴음에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그래, 오히려 저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놓이네.

3층은 지하 1층과 달리 너무 조용한 것이 오히려 더 불편했다.

좀비 새끼들이 어디 한 곳에 모여 심리상담이라도 받고 있지 않는 이상―

지금 저 소리처럼 소수의 좀비들이 괴음을 흘러대고 있어야 정상적인 상황이니까.

“고장훈.”

내 호명에 빠르게 차설희 옆에 살짝 붙는 고장훈.

그의 손에 들려있는 식칼 창과 손전등, 그리고 차설희 손에 들려있는 작은 망치와 손전등을 보며 그들 모르게 작게 혀를 찼다.

무조건 저쪽까진 좀비가 접근하지 못하게 해야 했다.

“방패조.”

“옙.”

후방을 책임지던 두 쩌리가 테이블 방패를 들고 서둘러 내게 다가온다.

덕분에 뒤에 덩그러니 놓이게 된 박효은의 표정이 썩어가는 게 보였지만, 굳이 다른 명령을 내리진 않았다.

들을지도 의문이고, 지금 저런 모습 자체로 나에겐 나쁘지 않은 상황이니까.

어차피 지금 내가 박효은이 걸리적거린다고 죽여버리는 걸로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차설희는 박효은이 죽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새로운 피고용자를 찾아내겠지.

진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차설희 본인이 절실하게 깨닫는 거다.

박효은 같은 이들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걸.

팅―! 티리리링―!

고장훈의 동전이 대비를 마친 수색조에게서 멀어지며 소음을 일으켰다.

그리고―

“끼에에에에엑―!”

오랜만에 찾아온 인기척에 지나치게 발광하며 우릴 반기기 위해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쿵―! 쿵―!

진로를 방해하는 책장에 수없이 부딪히며 불쑥― 튀어나오는 인형.

오른쪽 구석에 길게 늘여진 책장 끝으로 좀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 마리.’

입을 쩌억― 벌리며 특유의 자세로 우릴 향해 내달리는 좀비.

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놈의 질주를 방관했다.

이미 좀비가 한 마리만 튀어나오면 어떻게 할지 이야기를 다 끝낸 이후였다.

후우―! 후우―! 후우―!

긴장한 티가 역력한 벅찬 숨고르기가 귀를 간지럽혔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둘러 내 앞을 가로막은 박우진과 김민준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을 앞으로 내세운다.

그들의 손에 달달달― 떨리고 있는 테이블 방패.

“끼에에에엑―!”

그들이 마주하고 있는 적은 갑자기 나타난 두 먹잇감에 더 광분하며 괴음을 내질렀다.

탁―! 탁―! 탁―!

점점 가까워지는 광기에 찬 질주.

그 특유의 깨진 동공에 꽉 차서 반사되는 자신들의 모습.

옅은 어둠에도 이상하게 번들거리는 놈의 눈동자와 뭉툭한 이빨.

“으으으―.”

자연스레 앓는 소리가 튀어나오는 쩌리들이었지만, 발걸음을 뒤로 돌릴 순 없었다.

그들 뒤에는 자신들의 앞에 있는 놈보다 더 확실한 공포가 자신들을 보고 있을 테니까.

앞에 있는 놈과 대적하면 살 수 있는 확률이 있지만,

이대로 도망친다면 그들은 분명히 죽는다.

‘―다시.’

심유한처럼.

“으으으으으―.”

난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끝까지 내 명령을 수행하고 있는 쩌리들을 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뭐, 내가 전쟁을 배우거나, 군사학을 배운 건 아니지만―

병사를 다루는 게 이런 맥락이 아닐까.

마주한 위협보다 더한 두려움을 심어주고, 복잡하지 않은 간단한 공정을 지시한다.

“막아.”

“끼에에에에에에엑―!”

쿠웅―!

엉거주춤하게 몸을 숙이고 있는 거북이들에게 찾아온 충격.

그저 먹잇감이 있다는 사실에만 충실했던 좀비의 도약이 테이블 방패에 보기 좋게 막혔다.

“끼에에에엑―!”

크게 주춤이는 두 쩌리의 등과 이젠 아래에서 울려 퍼지는 좀비의 포효.

난 두 쩌리를 가볍게 헤치며 도약의 실패로 바닥에 엎어진 좀비의 대가리를 후려쳤다.

퍼어어억―!

제법 힘을 싣지 않은 가벼운 스윙에도 움푹 패인 좀비의 대가리.

[잔여 포인트 : 5]

난 가장 확실한 확인 사살을 확인하곤 미동도 없는 좀비에게서 두 쩌리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잘했어.”

“……헤, 헤헤.”

그 짧은 시간 동안 샤워라도 한 듯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는 박우진과 김민준.

“봐봐. 하면 되잖아, 하면.”

내 미소에 겨우 로봇처럼 화답하는 모습에 툭― 가볍게 그들의 어깨를 밀었다.

하긴, 놈들은 내가 지하 1층에서 고장훈과 좀비들을 정리할 동안 매점에서 꿀만 빨았으니 이런 경우는 처음이겠지.

놈들이 꽤나 충실하게 변했다 해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놈들이 혹시나 기어오를 생각도 못 하게 이렇게 주기적으로 공포를 실감시켜줄 생각이었다.

그래야 그들이 누리는 것이 얼마나 달콤한지 저절로 느낄 테니까.

왠지 모르게 더 공손하게 굽신거리는 두 쩌리에게 입을 열었다.

“너희는 이 정도면 됐으니까 저 뒤에 벌벌 떠는 저 새끼보고 가까이 오라 해.”

저 지시에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며 뒤쪽으로 이동하는 박우진과 김민준.

뒤에서 겁에 잔뜩 질린 채 사방을 휘둘러보던 박효은이 박우진의 속삭임에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쿨럭― 쿨럭―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며 표정을 정리하는 박효은.

놈이 몽키 스패너를 들고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당연히 보고 있을 차설희.

오늘 내가 두 쩌리보다 더 확실히 공포를 박아줘야 할 상대들이었다.

“귀찮지만 약속은 약속이니, 이제 튜토리얼인가 뭔가를 해볼까 하는데.”

“…….”

내 목소리에도 멍하니 내 밑에 깔린 좀비 시체를 바라보는 박효은.

난 놈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은근히 물었다.

“왜? 시간이 더 필요해?”

“……무슨.”

급하게 입을 연 탓에 메마른 목소리.

“무슨 시간이 더 필요해요. 그냥 저는―”

침으로 목을 적신 박효은이 뒤를 손짓한다.

“우진이랑 민준이가 갑자기 뒤로 가길래― 좀비를 잡을 때 저 방법이 아주 좋아 보이던데 왜―”

“걱정하지 마.”

박효은의 말을 끊으며 더 은근히 속삭인다.

비웃음이 가득한 내 얼굴에도 조용히 나를 올려다보는 긴장감 가득한 저 얼굴.

“당연히 너한테는 더 좋은 방법이 있으니까.”

쓰으으윽―!

난 발길질로 가볍게 좀비 시체를 구석으로 밀어버리고 걸음을 재촉했다.

“끼에에에엑―!”

그리고 박효은의 차례는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왔다.

오른쪽 구석을 다 확인하고 이제 중앙을 확인할 순서.

졸업생이 기증한 책들이 모여있는 책장에 멍하니 있던 좀비 두 마리가 우리의 존재를 포착했다.

쿠웅―! 쿵―!

게다가 뒤늦게 모습을 드러내는 한 마리.

첫 번째 좀비들의 포효를 가까이서 들은 또 다른 경쟁자였다.

“끼에에에엑―!”

“바, 박우진―! 김민준―! 뭐, 뭐해 이 새끼들아―!”

한 마리도 아닌 세 마리의 돌격에 기겁을 하는 박효은.

그의 재촉에도 뒤쪽을 지키고 있는 두 쩌리는 아무렇지 않게 그 좀비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매점에 박혀 있었다해도 알 건 알고 있었다.

지금 그들에게 달려드는 좀비 세 마리는 아무것도 아니란 걸.

당장 심유한이 뒤질 때만 해도 화장실에 달려든 좀비가 몇 마리였는지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탁―!

가볍게 땅을 박차는 소리와 곧바로 찾아오는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

“끼에에에엑―!”

점점 다가오는 나를 붙잡기 위해서 간절히 손을 뻗는 좀비 세 마리.

난 그중 가장 선두에 선 좀비에게 여느 때처럼 쇠 파이프를 휘둘렀다.

퍼어어억―!

갑작스레 자신을 덮친 쇠뭉치에 그대로 쓰러지는 좀비.

허나, 그 참혹한 광경은 신경도 쓰지 않는 두 번째 좀비가 서둘러 두 팔을 벌린다.

난 그 포옹을 반기듯 오히려 놈에게 다가갔다.

그런 나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두 팔로 내 몸을 껴안으려는 손짓.

내 허리를 가로질러 두 손이 모이기 전에 내 어깨가 놈의 가슴을 먼저 가격한다.

끄득―!

무언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바닥을 나뒹구는 좀비.

그런 놈에게 걸려 함께 넘어지는 세 번째 좀비.

퍼어어억―!

난 그중 세 번째 좀비의 대가리를 후리곤 한 발자국 물러섰다.

“끼에에에엑―!”

한눈에 봐도 심각할 정도로 가슴이 움푹 패인 좀비가 아무렇지 않게 일어난다.

퍼어억―! 퍼어억―!

그리고 그런 좀비에게 찾아오는 두 번의 스윙.

끄드드드득―!

쇠 파이프에 심하게 우그러진 두 다리가 중심을 지탱하지 못하고 결국 스러진다.

“끼에에에엑―!”

멀쩡한 입으로 마치 고통을 내뱉듯 포효를 내지르는 좀비.

“끼에에에에엑―!”

허나 그 포효와는 다르게 좀비의 몸은 풍랑을 만난 배처럼 격하게 출렁였다.

애타게 내게 뻗는 손과 달리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는 다리.

난 그 모습을 제대로 확인하곤 고개를 돌렸다.

…….

앞에서 시끄럽게 울리는 포효와 달리 끈적하게 달라붙어 있는 침묵.

난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는 박효은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차설희를 보며 가볍게 웃었다.

생각보다 격한 반응은 아니네.

“뭐해?”

내 물음에 정신을 차린 듯 어깨를 움찔거리는 박효은.

“끼에에에엑―!”

난 내게 어떻게든 다가오려 몸을 질질 끄는 좀비를 가리키며 턱짓했다.

“튜토리얼.”

짧은 단어에 너무 티 나게 침을 삼키는 놈의 목젖.

툭―!

난 석상처럼 제자리에 박혀있는 놈을 재촉하듯 일부러 어깨를 툭― 부딪히며 내 자리에 돌아왔다.

“끼에에에엑―!”

점점 멀어지는 나를 보더니 놈이 본능처럼 올바른 선택을 내린다.

거리가 더 멀어진 내가 아닌 가장 가까운 상대에게 몸을 질질 끄는 좀비.

포효를 내지르며 박효은에게 애타게 손을 뻗는 좀비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처음이라…….”

내 중얼거림을 당연히 듣고 있을 차설희.

그녀가 말했던 처음의 미숙함을 곱씹으며 옅게 웃었다.

지이익― 지이이익―

도서관 바닥을 질질 끄는 소리와 굼벵이처럼 가까워지는 거리.

그것이 못내 참기 힘들었는지 박효은이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친다.

“처음이고 두 번째고 뭐가 중요하지? 그냥 좀비에게는 언제나 미치게 먹고 싶은 살덩이일 뿐인데.”

봐봐.

난 재촉하듯 그녀의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그저 입을 다문 채로 내 말을 듣고 있는 차설희.

난 그녀의 또렷한 눈동자에 눈을 맞추며 빙그레― 웃었다.

“내가 해프닝으로 만들어줘도 저 새끼한테는 지금 이 순간보다 무서운 종말은 없어.”

멀리서 보면 사람이 슬랩스틱을 하듯 추하게 기어오는 좀비.

그리고 그 좀비가 다가오는 모습에 너무나도 공포에 질린 채로 뒷걸음질치는 박효은.

“영상으로 보던 호랑이한테는 귀엽다고 실실 웃어대다가도 길거리에서 만난 사나운 개새끼가 자기를 보고 으르렁거리는 거에 몸이 굳어.”

굳이 박효은이 아니더라도, 모두가 그래.

“생각과 현실은 너무나도 다르지. 아니, 이건 다르다가 아니라 틀리지. 생각과 현실은 너무나도 틀려.”

여기서 문제.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 가벼운 말투에도 조용히 나를 보고 있는 차설희.

항상 당당하게 내 말에 말대답하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의 모습에 저절로 웃음이 새어 나온다.

“어제 개새끼한테 굳었던 몸이 내일 개새끼를 보면 굳을까요, 안 굳을까요?”

“끼에에에엑―!”

어느새 수색조의 지척으로 다가온 기묘한 추격전.

몸을 질질 끌며 어떻게든 먹잇감을 차지하려는 거북이와 언제든 뛸 수 있으면서도 그걸 망각한 토끼.

난 박효은의 뒷모습을 곁눈질하며 차설희에게 속삭였다.

“그리고 그 개새끼가 좀비가 된다면 저 굳어있는 몸을 어떻게 통제하실 거죠, 차설희 학생?”

“…….”

“왜요? 돈을 더 준다고 소리치셔야죠. 그렇게 해도 안 듣는다면 그 매력적인 제안으로 유혹하셔야죠.”

내 비아냥에도 끝까지 입을 꾹 다물고 내 눈을 피하지 않는 차설희.

“그게 지금 저 병신에게 들리겠냐만.”

난 지금도 계속해서 뒷걸음질만 치고 있는 박효은을 보며 얼굴에 한가득 비웃음을 맺었다.

“여기서 두 번째 문제. 그럼 저 병신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적절한 것은 무엇일까요, 차설희 학생?”

난 그렇게 말을 끝마치고 박효은에게로 걸어갔다.

그를 쫓고 있는 좀비와 비슷한 속도.

턱―!

결국 뒤로 물러나던 박효은의 등허리에 내가 뻗고 있는 쇠 파이프가 닿는다.

갑작스런 장애물에 섬광처럼 고개를 돌려 뒤를 확인하는 박효은.

난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 문제의 정답을 속삭였다.

내 속삭임이 끝나자마자 드디어 멈춘 뒷걸음질.

툭―!

재촉하듯 더 깊게 등허리를 찌르는 쇠 파이프에 박효은의 몸이 들썩였다.

“으, 으아아아아―!”

그리곤 마치 비명을 지르듯 소리치며 달려가는 박효은.

퍼억―! 퍼억―! 퍼억―!

놈이 바닥에 몸을 질질 끌고 오던 좀비에게 쉴 새 없이 몽키 스패너를 내리찍었다.

“정답이 뭘까요, 차설희 학생?”

“……죽는다고 했겠죠.”

내 재촉에 조용히 답안지를 제출하는 차설희.

난 그 답안지를 보며 옅게 웃었다.

“정답.”

난 코가 닿을 듯 그녀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가며 읊조렸다.

“지금 저 좀비를 안 죽이면 반대로 박효은이 죽는다고 했거든.”

박효은은 지금.

네 돈 때문이 아니라, 네 몸뚱이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내 협박에 내지도 못했던 용기를 내고 있는 거야.”

“으아아아아―!”

우리들의 뒤에서 들려오는 아주 처절한 용기.

쉴 새 없이 좀비의 대가리를 후리고 있는 타격음을 들으며 내가 그녀에게 속삭였다.

“그럼 여기서 세 번째 문제.”

지금 이건.

“협박일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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