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가 (7)
“으아아아아―!”
그런 그의 옆에 함께 바닥에 엎어져 있던 차설희.
그녀가 박효은과 똑같이 천장을 보며 서둘러 오른팔을 방어하듯 굽혔다.
그런 차설희에게로 빠르게 추락하는 검은 형체.
온몸이 검은 털로 뒤덮인 무언가가 차설희에게 아가리를 벌리며 기습적으로 추락했다.
까득―!
검은 형체가 차설희를 완전히 덮친 후에 들리는 선명한 소음.
쐐애애애액―!
화장실 앞에서 화장실 끝으로.
그렇게 화장실 끝에서 다시 화장실 문 앞으로 이어지는 난잡한 루트에 자연스럽게 뒤늦은 대처.
난 이를 악물고 차설희를 덮친 검은털에게 최대한 빨리 쇠 파이프를 휘둘렀다.
퍼어어억―!
게걸스럽게 차설희의 팔에 붙어있던 놈의 대가리에 정확히 꽂히는 스윙.
빛살처럼 놈에게 젖혀든 쇠 파이프에 검은 털의 움직임이 멈췄다.
덮친 차설희의 위에서 그대로 축 늘어지는 검은 털.
띠링―!
[변종 ‘털바퀴’를 처치하셨습니다.]
[10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그와 동시에 생소한 상태 메시지가 떠올랐지만, 전혀 의식할 틈도 없었다.
난 서둘러 변종의 시체를 걷어내고 그 안에 깔려있는 차설희를 안아 들었다.
서둘러 화장실 끝으로 달려가는 내 뒤로 고장훈의 고함이 들려온다.
“문―! 문 막고 있어―! 박우진, 김민준 빨리 문부터 막어어―!”
“끼에에에엑―!”
고장훈의 지시에 남자 화장실 문이 닫히며 쩌렁쩌렁하던 좀비의 포효가 아주 조금 작아진다.
쿵―! 쿵―!
발광을 하며 남자 화장실에 몸을 박기 시작하는 좀비들.
“으으으으으으―!”
내 뒤로 두 쩌리가 기겁을 하며 문을 막고 있는 앓는 소리가 그대로 들려왔다.
하지만, 전혀 신경 쓸 틈도 없었다.
툭―!
조심스레 화장실 벽에 내려놓는 차설희를 따라 빠르게 쫓아온 고장훈의 손전등이 그녀를 비춘다.
갑작스레 그녀의 눈을 쬐는 불빛에도 멍하니 어딘가를 보고 있는 차설희.
그리고 그녀가 조용히 들고 있는 오른손에 아주 선명히 찍혀있는 이빨 자국.
“……아.”
작은 탄식을 내뱉은 그녀가 계속해서 멍하니 이빨 자국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내 잘못 아니야…….”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와중에 들려오는 나지막한 속삭임.
“내, 내가 분명히 위에 뭐가 있다고 했잖아―!”
바퀴벌레 같은 생명력인지 어느새 고장훈과 내 옆에서 차설희를 바라보던 박효은이 발작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건 내 잘못이 아니라 네 잘못이야, 이 병신 새끼야―!”
놈의 돌아버린 붉은 눈이 미친개처럼 나에게 쏘아진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내 잘못이 아니야―! 내 잘―”
퍼어억―!
놈의 턱주가리에 정확히 꽂힌 주먹에 놈이 실 끊긴 인형처럼 바닥에 쓰러졌다.
알람 시계 같던 고함이 끝나고 난 서둘러 바닥에 무릎을 대고 그녀의 물린 자국을 자세히 살폈다.
그 누구도 의심하지 못할 만큼 선명히 찍혀 있는 이빨 자국과 짓눌린 살 자국에서 새어 나오는 새빨간 피.
새하얀 눈에 찍힌 발자국처럼 너무나도 선명한 흔적에 어금니가 터질 듯이 빠드득거렸다.
“……엄마?”
물린 자국이 아닌 어딘가 더 먼 곳을 보는 듯한 차설희의 흐리멍텅한 눈동자.
“……엄마.”
내게 너무나도 익숙한 죽음의 전조가 시작되고 있었다.
“……하얀아. 하얀아, 언니가 미안해…….”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죽음이라기보다는―
“하얀아, 하얀― 끄륵―!”
변화의 전조였다.
난 발작하기 시작하는 그녀의 몸을 짓누르며 서둘러 허공을 응시했다.
띠링―!
[감염 치료제 : 합당한 가격을 제시하시오.]
[감염 치료제를 10포인트에 구매하시겠습니까?]
곧바로 내가 바라던 팝업창을 띄우는 상태창.
변종을 처치하고 얻은 내 전 재산을 그대로 쏟아부었지만―
띠링―!
[최소 구매 포인트가 미달.]
“씨발―! 얼마가 됐든 나중에 무조건 갚을 테니까 일단 내놔아아아―!”
띠링―!
[최소 구매 포인트가 미달.]
콰앙―!
“씨이이이바아아아알―!”
그녀의 오른쪽 귀 바로 옆의 벽이 찌그러지는데도 여전히 계속되는 발작.
난 그녀의 몸을 더 억세게 억누르며 한쪽 손을 뒤로 젖혀졌다.
“창!”
“예, 옙―!”
내 지시에 서둘러 식칼 창을 건네오는 고장훈.
난 식칼 창을 받자마자 식칼과 마대자루를 연결하던 테이프를 찢어버리며 식칼을 빼냈다.
오른손에 식칼을 들고 왼손으로 물린 자국이 역력한 그녀의 팔을 들어 올린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감염 치료제조차 포인트 미달이라는 좆같은 벽에 막혀버렸다.
그럼, 진짜 마지막으로 남은 희망은―
“지혈, 지혈할만한 거 준비해!”
“옙―!”
난 고장훈이 서둘러 가방을 뒤적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이를 악물었다.
어둠 속에서 칼날이 다 무뎌진 식칼이 옅게 반짝였다.
“끄륵―! 끄르르륵―!”
그런 나를 보고 있는 차설희의 눈빛.
점점 눈가에 핏줄기가 가로지르며 그녀의 동공에 침투한다.
더 심하게 발작하며 거품을 무는 듯한 모습에 빠드득― 이빨이 더 심하게 갈리며 소음을 일으켰다.
이젠 마지막 클리셰에 따르는 수밖에 없다.
수많은 좀비 매체에서 나오는 감염의 마지막 치료법.
물린 부위의 절단.
감염 치료제도 살 수 없고, 내 스킬들은 이미 옛적에 확인이 끝났다.
부분무능은 이미 감염된 좀비에겐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다.
그러니 내가 지금 가진 것들로만 그녀의 감염을 제거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아무리 날이 무뎌진 칼날이라도 지금 내 스탯으로 여자의 오른팔 하나 자르는 게 불가능할 리는 없었다.
문제는 자르기 전보다, 자른 후의 출혈이랑 뒤처리인데.
절단 후에 병원의 케어를 받을 수 없는 건 당연했으니, 팔을 자른다해도 그녀가 목숨을 부지할 확률은 최대한 높게 생각해도 그리 높지 않았다.
“……씨발!”
“끄륵―! 끄륵―! 끄륵―!”
그래도 이대로 차설희를 잃는 것보다는 나았다.
차설희가 이대로 좀비가 되는 것보단 물린 부위를 제거해 아주 작은 희망에라도 걸어보는 것이 훨씬 나은 경우다.
씨발―!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내게 가진―
이를 악물고 차설희의 팔에 식칼을 내려치려는 찰나에 스치는 섬광.
스파크가 터지듯 한순간에 머릿속을 점거한 빛살에 들고 있던 식칼을 놓았다.
텅―!
바닥에 식칼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서둘러 왼손으로 그녀의 목을 짓눌렀다.
“끄르륵―! 끄르르르륵―!”
벽에 짓눌린 그녀의 눈빛엔 이미 생기라곤 하나도 없었다.
별빛처럼 빛나던 눈동자는 이미 이지를 상실하기 직전이었다.
난 그녀의 발작을 왼손으로 억세게 짓누르며 오른손으로 그녀가 물린 부위를 붙잡았다.
[부분무능 Lv.1 -> 부분무능 Lv.2]
[스킬 레벨업에 10포인트가 소모됩니다.]
우우웅―!
언제나처럼 내 의지에 화답해 오른손에 모이는 옅은 황금빛.
묘한 가동음과 함께 내 오른손을 밝히는 금빛 기운이 서서히 그녀의 오른팔로 번져가기 시작했다.
“끄륵―! 끄르륵―!”
분명 ‘부분무능’은 좀비에게는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차설희는 엄밀히 말하자면 아직 완전히 좀비가 된 것은 아니었다.
“끼에에에에엑―!”
“으으으으으―!”
그랬다면 지금 두 쩌리가 힘겹게 막고 있는 좀비들처럼 특유의 포효를 내질러야 했으니까.
“끄르르륵―!”
그러니 난 마지막 도박에 가능성을 걸었다.
팔이 달려있으나 없으나, 결국 죽을 확률이 높은 방법보단 차설희가 살 수 있는 확률이 존재하는 가능성에 걸어보기로 했다.
우우웅―!
어둠을 찬연히 밝히는 금빛이 계속해서 내 손을 떠나 부드럽게 차설희의 오른손에 스며들었다.
난 억세게 그녀의 목을 억누르며 눈도 깜빡이지 않고 그녀의 눈동자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끄륵―! 끄……”
무언가를 참듯이 이를 꽉 물고 있던 차설희의 입이 서서히 입을 풀어간다.
그녀의 동공까지 찢겨저 번지던 붉은 핏줄이 서서히 그녀의 눈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우우웅―!
난 내 왕권을 더 강하게 밀어 넣으며 그녀를 관찰했다.
내 왼팔을 간지럽히던 발작이 서서히 멎어갔다.
점점 더 내가 기억하던 별빛이 그녀의 눈동자에 서리는 동시에―
“……아.”
짐승이 아닌 본래의 미성이 그녀에게서 흘러나왔다.
“하아아아아―.”
그제서야 내 입에서 제어도 못할 만큼 깊게 흘러나오는 한숨.
정말 오랜만에 등허리를 적히는 식은땀의 존재를 느끼며 그녀의 목을 억누르던 팔을 거뒀다.
그리곤 깊은 한숨으로도 떼어내지 못한 감정을 그대로 휘둘렀다.
짜아아아악―!
감정을 실은 손아귀에 그대로 홱― 젖혀지는 그녀의 얼굴.
“이―! 이―!”
난 입에서 튀어나오려는 무수한 말을 삼키며 떨어진 식칼을 다시 주웠다.
“끼에에에에엑―!”
“으으으― 조, 조장니이이임―!”
이젠 한계에 도달한 것이 역력해 보이는 두 쩌리의 비명.
난 차설희를 노려보던 눈을 돌리며 다 깨진 유리문을 테이블 방패로 억지로 막고 있던 두 쩌리에게 소리 질렀다.
“문 열어어―!”
내 고함에 기다렸다는 듯 테이블 방패를 회수하는 두 쩌리가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그리고 드디어 뚫린 장애물을 지나 본능처럼 목소리를 높이는 먹잇감에게 내지르는 도약.
“끼에에에에엑―!”
턱―!
제일 먼저 몸을 던져 내게 도약하던 좀비의 목덜미를 콱― 움켜쥐었다.
끄드드득―!
힘을 주는 손아귀에 곧바로 화답하는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
난 목이 기괴하게 뒤틀린 좀비를 그대로 달려오는 좀비들에게 내던졌다.
“끼에에엑―!”
갑작스런 시체 투척에 바닥에 엎어지는 좀비들.
난 왼손에 들고 있던 식칼을 오른손으로 옮기며 그대로 놈들에게 내달렸다.
“끼에에에엑―!”
자신들을 덮친 좀비 시체를 헤치며 서둘러 일어서려는 좀비들.
난 그중 한 마리의 머리를 꽉 붙잡고 들고 있던 식칼을 그대로 놈에게 틀어박았다.
푸욱―!
무뎌진 칼날로 찌른다기보다 말 그대로 강제로 틀어박는다는 게 더 정확한 칼질.
난 축 늘어지는 좀비의 대가리에서 식칼을 빼내 바로 옆에 있는 좀비의 대가리도 꽉 부여잡고 식칼을 틀어박았다.
“끼에에에엑―!”
덕분에 조용해진 왼쪽에 비해 한창 시끄러운 오른쪽.
좀비 시체를 헤집고 나와 내게 달려들던 좀비에게 짧게 디딤발을 디디며 뾰족하게 어깨를 들이밀었다.
끄득―!
그대로 벌러덩― 넘어지는 좀비 반대편에서 내 지척에 이른 좀비들.
퍼어억―!
두 팔을 쫙― 벌리고 내게 달려들던 놈의 배때기에 발길질을 밀어 넣곤 그 옆에서 내게 대가리부터 밀어 넣던 좀비의 대가리를 콱― 움켜잡았다.
“끼에에에엑―!”
푸욱―!
그대로 옆통수에 식칼을 박아넣고 축 늘어지는 놈을 그대로 휘둘렀다.
퍼어억―!
내가 휘두르며 던진 새로운 좀비 시체에 다시 벌러덩 넘어지는 좀비.
이미 내 어깨에 완전히 움푹 패인 놈의 가슴을 한번 훑고는 다시 오른쪽을 응시했다.
아직도 내 발길질에서 일어나지 못한 좀비.
“끼에에에엑―!”
발광을 하며 어떻게든 일어서려는 좀비 대가리를 축구공 차듯이 후려갈렸다.
퍼어어억―!
괴상한 소리와 신발을 넘어 내 다리에 틀어박히는 물컹하면서도 딱딱한 감각.
물컹한 축구공을 힘껏 후려 찬 나는 빠르게 발을 회수하며 마지막 축구공에게 발을 휘둘렀다.
퍼어억―!
생각보다 미약한 충격과 그 전에 나를 덮치는 미묘한 균형감각.
이미 바닥에 흥건한 핏물에 넘어질 뻔한 신체는 스탯이 주는 놀라운 균형감각으로 회복했지만, 이미 발길질의 임팩트는 많이 옅어진 이후였다.
“끼에에에엑―!”
내 발길질에도 여전한 괴음을 터트리며 바닥에 엎어져 있는 좀비.
난 핏물이 흥건한 바닥에 콰앙―! 왼발을 찍어 넣듯이 균형을 잡고는 오른발을 놈의 대가리 바로 위에서 들어 올렸다.
그리고―
퍼어어어억―!
이번엔 발등이 아닌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오묘한 감각.
내 신발과 얼굴에까지 튄 썩은 핏물을 느끼며 조용히 발을 거뒀다.
“끼에에에에에엑―!”
여전히 3층을 요란하게 울리는 놈들의 포효.
하지만 화장실 근처에 있는 좀비들은 모조리 바닥에 널브러져 침묵하고 있었다.
난 내가 넘어트린 책장과 장애물들에 깔려 애타게 손을 뻗고 있는 좀비들을 찬찬히 훑은 뒤에 다시 화장실에 들어섰다.
찌걱― 찌걱―
내 발걸음을 따라 신발 밑창에 가득 붙어있던 이물질과 핏물들이 화장실 바닥에 찍혀간다.
찌걱― 찌걱―
점점 가까이 오는 나를 보고 있던 두 쩌리가 황급히 몸을 틀어 길을 열었다.
그 안에서 멍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는 차설희.
난 그녀를 무시하며 땅바닥에 널브러진 박효은의 목을 움켜쥐었다.
끄드드드득―!
점점 악력을 더해가며 한 손으로 근육질로 가득한 박효은의 몸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켁―! 끄르륵―! 케에엑―!”
기절보다 더한 생존 감각이 그를 깨운 것일까.
점점 조여지는 숨통을 참지 못한 그가 발작하듯 일어나 반항하기 시작했다.
“끄르륽―! 끄르르르륵―!”
가래가 끊는 듯한 처절한 비명.
난 한 손으로 박효은의 목을 조금씩 조여가며 아래를 응시했다.
그곳에서 여전히 멍하게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차설희.
“한 번 뒤졌다가 살아나니까 기분이 어때?”
“끄르륵―! 켁―! 케에엑―!”
차설희도 박효은도 답하지 않았다.
박효은은 앙탈이라기엔 너무 절박한 손짓으로 애타게 내게 손을 뻗고 있었다.
아등바등거리며 내게 흔들어대던 손이―
끄드드득―!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뚝― 멈췄다.
“이제 좀 실감이 나?”
종말이 왔다는 게.
철푸덕―거리며 그녀의 앞에 널브러지는 박효은의 시체.
미동도 없이 목이 꺾여 추하게 죽어있는 박효은의 시체를 보던 그녀가 갑작스레 입을 꽉― 다물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렁그렁― 차오르는 눈물.
어느새 물기가 가득한 눈으로 정말 억지로 눈물을 참아내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얼굴을 보자 짜증 나게 한숨만 새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