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폭군-29화 (29/120)

새장 속 고양이 (3)

은은한 달빛 속에 있던 차설희도 지나칠 정도로 매력적이었지만,

역시 차설희에게 가장 치명적인 디버프는 ‘어둠’이었다.

창을 통해 임시 거처를 밝히는 햇빛 아래에 놓인 차설희.

햇볕이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있는 차설희의 얼굴은 언제나 바보같이 입을 벌리게 만든다.

하긴― 저게 그녀의 진짜 얼굴이다.

스포트라이트, 방송 조명, 팬과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

언제나 환한 빛 속에서만 살아가던 여자였으니까.

그리고 그런 차설희가 얌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은 아침부터 평정을 되찾기 힘들게 만들었다.

더군다나 차설희가 아침을 해결하는 동안 3층에 남아있는 찌꺼기 좀비들을 처리하고 내려온 입장에선 더더욱.

좀비들의 대가리를 깨부수며 몸 안에 가득 찬 아드레날린이 자연스레 다음 행동을 종용한다.

쿵―!

살짝 거칠게 그녀를 벽으로 밀어붙이며 일어나는 충돌음.

이미 그녀의 뒤통수를 보호하던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더 강하게 쥐며 고개를 숙였다.

“쪼옥―! 쪼옥―! 쪼옥―!”

그녀의 허락도, 동의도 필요하지 않은 일방적인 입맞춤.

벽에 고정된 그녀의 몸에 바짝 밀착한 가슴에서 폭신한 촉감이 그대로 전해졌다.

조금 더 가까이 밀착하는 내 몸에 부드럽게 반발하는 젤리 같은 감각.

난 노골적으로 그녀의 가슴에 내 몸을 비비며 게걸스럽게 그녀의 입을 탐했다.

“쪼옥―! 쪼옥―! 츄릅―!”

이른 아침부터 임시 거처를 울리는 야릇한 소음.

어제의 경험으로 그녀의 혀를 가지고 놀아도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난 혀를 집어넣지 않고 계속해서 그녀의 입술을 빨아먹었다.

이렇게 강제로 그녀의 입술을 빼앗아 먹는 게 훨씬 더 재밌고, 흥분됐으니까.

“푸하―! 하아―! 하아―!”

제법 긴 키스를 마치고 입을 떼니 이제 조금 익숙하게 호흡을 정리하는 차설희.

난 귀엽게 숨을 몰아쉬는 차설희의 번들거리는 입술과 목덜미를 조용히 내려보았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어깨 옆의 새하얀 목덜미.

그곳을 검붉게 물들이고 있는 입맞춤의 흔적들.

난 못해도 다섯 개는 넘는 키스 마크들을 부드럽게 쓸어 넘겼다.

그저 이 흔적들을 보는 것만으로 이미 트레이닝복 안의 자지가 금방이라도 정액을 싸버릴 듯이 껄떡거리기 시작했다.

탁―!

“……아침에는 적당히 좀 하세요.”

차설희가 그런 내 손을 살짝 밀어내며 뒤쪽을 곁눈질했다.

불안한 눈빛으로 책장 뒤를 바라보며 사납게 속삭이는 미성.

난 고개를 돌려 그녀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확인했다.

임시 거처의 벽 역할을 하는 책장.

일종의 가리개 역할로 빼곡히 쌓아놓은 책으로도 가릴 수 없는 틈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수색조가 보였다.

임시 거처에서 흘러나오는 야릇한 소리를 함께 듣고 있었을 관음자들.

“……왜? 부끄러워?”

“그럼, 아침부터 대놓고 쪽쪽 거리는 소리로 광고를 하는데 안 부끄러워요? 게다가 아침 먹고 양치도 안 했단 말이에요.”

따발총을 쏘듯 투다다다― 쏘아붙이는 차설희의 오른손.

난 키스 마크를 숨기듯 목덜미를 가리고 있는 오른손에 둘러진 하얀 붕대를 지그시 응시했다.

“……아.”

내 시선을 느낀 차설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다시 오른손을 내려 서둘러 왼손으로 덮었다.

다시 그녀의 왼손에 숨겨진 오른손의 붕대와 활짝 드러난 키스 마크.

“아직도 불안해?”

조용한 내 물음에 그녀가 입술을 살짝 깨물며 대답했다.

“……제가 아니라 이걸 보는 다른 사람들이 불안하겠죠.”

“오, 본인은 안 불안하시다?”

언제 다시 좀비가 될지 모르는데?

살짝 고개를 더 숙이며 겁을 줄 요량으로 목소리를 깔아봤지만, 그녀는 미동도 없이 나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그랬다면 저보다 어떤 분이 먼저 발광하지 않을까요?”

벽에 화풀이를 한다든지, 뺨을 진짜 아프게 후려갈긴다든지―.

오―

한창 주마등이 지나갔을 타이밍에 용케도 그걸 다 기억하네.

난 그녀의 말에 살짝 잔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 감염 부위를 이용해 재밌는 장난들을 몇 가지 생각해놨는데―

지금 그녀의 반응을 보니 통할 가능성이 조금 낮아 보였다.

“끝까지 내 머리 위에서 놀려 하네.”

“제가 적응력이 좀 강한 편이라.”

또다시 한 마디를 안 지고 받아치려는 모습에 다시금 고개를 젓고는 뒤를 턱짓했다.

“그래, 적응력이 좋다는데 욕을 하는 것도 웃기지.”

그 적응력이 이번에도 그대로였으면 좋겠네.

뚜벅― 뚜벅―

밀착했던 몸을 풀고 임시 거처를 나서자 뒤따르는 차설희의 발소리가 같이 울렸다.

“아이고― 조장님, 너무 좋은 아침입니다, 헤헤―!”

임시 거처 밖을 나오자마자 매크로처럼 튀어나오는 인사.

“혼자 3층에 가셨다는 걸 들었습니다. 아이고― 혼자 가셨으면 불편하셨을 텐데 제가 미리 알고 준비하고 있었어야 했는데― 아니면 우진이나 민준이라도 미리 준비시켜놨어야 하는데― 이게 다 제가 모자라고―”

고장훈이 누구보다 빠르게 내게 다가와 일상처럼 굽신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장훈 뒤에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삐쭉거리는 쩌리들.

난 놈들의 살짝 굽어진 허리와 거칠어진 호흡이 왠지 모르게 익숙했다.

그리고 그들이 필사적으로 곁눈질하는 시선의 종착지.

그 종착지를 눈치챈 차설희가 황급히 목덜미에 가득한 키스마크를 손으로 가렸다.

얼굴을 푹― 숙이고 키스 마크를 가리는 차설희.

그리고 그런 모습을 필사적으로 곁눈질하는 두 쩌리의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하긴, 그렇게나 서라운드 사운드로 광고를 했는데 모를 수가 있나.

“아이― 박우진, 김민준. 너희 뒤에서 뭐 하냐? 우리 조장님이 식사 시간에 너희들이 해야 할 일을 친히 대신해주셨는데, 이 새끼들이 빠져가지고. 빨리 와서 어디 피곤한 곳은 없으신지―”

그냥 이런 순간에도 아부에 열중인 이 새끼가 제일 신기할 뿐이다.

툭―!

“헤헤, 조장님.”

치하의 의미로 어깨를 두드려주자 더 공손하게 굽신거리는 허리.

난 그런 고장훈과 조용한 내 시선에 헐레벌떡 방패를 챙기는 두 쩌리.

그리고 그런 우리에게서 한 발자국 떨어진 안세준 커플을 휘둘러보았다.

이젠 제법 수를 불려 나간 수색조의 인원들.

“오늘은 모두 다 여기 박혀있어.”

항상 아침마다 내 명령을 받기 위해 모이던 수색조들의 얼굴이 어리둥절하게 바뀐다.

특히나 매번 나를 따라다니며 수족 역할을 하던 두 쩌리와 고장훈이 대놓고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우고 있었다.

“슬슬 골라야지.”

애초에 팀워크의 보상으로 약속한 거였으니.

옅은 미소를 내보이며 던진 짧은 문장에 단번에 알아들은 고장훈의 미소가 더 진해진다.

그런 고장훈 뒤에서 아직도 영문을 모를 표정으로 멍청하게 나를 보고 있는 두 쩌리.

난 굳이 더 설명하지 않고 고장훈에게 턱짓했다.

“안세준은 여자친구랑 같이 계속 식량 가방 지키게 하고 고자 네가 알아서 분배해.”

“옙―! 제가 책임지고 완벽히 수행하겠습니다아―!”

군필이었는지, 제법 각 잡힌 경례를 하며 우렁차게 답하는 고장훈.

난 헛웃음을 흘리며 내 뒤에 붙어있는 차설희에게 고갯짓으로 재촉했다.

정세리와 차설희의 캠프 이탈.

특히나 정세리보단 차설희의 캠프 이탈은 꽤나 많은 것을 뒤바꿀 것이다.

아무리 차설희가 좀비에게 물린 낙인을 달고 와서 캠프원들에게 배척받았다 하더라도, 그녀는 차설희다.

매번 당연하다는 듯 남들의 시선을 몰고 다니는 그녀가 멀쩡히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저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그것도 캠프에 있을 때보다 더 건강한 모습으로.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평생동안 비교의 저주를 달고 살아간다.

그들은 처음엔 캠프에 있던 차설희와 지금의 차설희를 비교하다가―

종국엔 내가 만든 캠프와 그들이 속해있는 캠프를 비교할 것이다.

더군다나 차설희와 정세리는 원래 그들과 함께 있던 사람들.

차설희와 정세리가 캠프를 옮겼다면, 그들도 또한 당연히 캠프를 옮길 수있다고 생각하겠지.

즉, 이제 곧 저쪽 캠프에 탈주자가 발생할 시간이 머지않았다.

아마 이런 불편하고 굶주린 생활에 대한 역치가 낮은 여자들부터 탈주를 시작하겠지.

툭―!

“고자 반만 닮아도 어련히 챙겨줄 텐데.”

난 뒤늦게 내 뜻을 알아차리고 싱글벙글 미소 짓던 두 쩌리의 어깨를 두드렸다.

조용히 그들을 보며 미소 짓는 내 얼굴에 백지장처럼 하얗게 물드는 놈들의 얼굴.

방금은 내가 일부러 괘씸한 차설희의 수치심을 자극하기 위해 유도한 반응이었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눈깔관리 잘하자, 얘들아.”

“예, 예에에엡―! 죄, 죄송합니다아아아―!”

그래도 눈치가 아예 없는 건 아닌지 마지막 당부에 놈들이 사시나무 떨듯이 몸을 떨며 허리를 푹― 숙인다.

그래도 저 녀석들이 눈치가 없는 거지, 짬이 없는 건 아니니까.

내가 저지른 폭력의 산증인들이니,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알아들었을 것이다.

난 안세준 커플까지도 엉거주춤 허리를 숙이는 걸 짧게 응시하곤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다, 다녀오십시오, 조장니이임―!”

다시 정신을 바짝 차린 수색조의 배웅을 들으며 내부 계단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끼이이익―!

원래라면 내부 계단 문 바로 앞에 3층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있는 바리케이드가 있어야 하지만, 그것 또한 아까 3층으로 올라가면서 한 층 위로 배치를 옮겨놨다.

쿵―!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단번에 어두워진 내부 계단.

딸칵―!

난 쇠 파이프가 아닌 손전등의 스위치를 올린 후 뒤에 있는 차설희에게 건넸다.

조용히 손전등을 이어받아 시야를 밝히는 차설희.

뚜벅― 뚜벅―

그녀가 비추는 손전등의 인도를 받으며 여상하게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왜 너만 데리고 올라가는지 안 궁금해?”

내부 계단을 타고 웅웅― 울려 퍼지는 목소리.

“……보나 마나 또 그 짓을 하려고 그러는 거겠죠.”

“오― 그것도 있고, 다른 이유도 있고.”

적응력이 강하다는 게 거짓말은 아닌 듯 이젠 제법 태평한 목소리.

그녀의 추측에 솔직히 답해주며 계속해서 걸음을 재촉한다.

오른손에 쇠 파이프가 아닌 아무것도 안 들린 게 제법 많이 어색했지만―

이미 3층은 완벽히 좀비 정리가 끝난 이후였기에, 별로 상관은 없었다.

“……다른 이유?”

“슬슬 2단계로 가볼까 해서.”

“……2단계?”

대화를 나눌수록 오히려 더 미궁에 빠지는 대화.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차설희를 보며 난 더 진하게 미소 지었다.

그런 내 얼굴을 조용히 바라만 보는 차설희.

난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문고리를 턱짓했다.

내 지시에 천천히 문고리를 잡는 차설희.

툭―!

그리고 문고리에 올린 손을 돌리려던 그녀가 움찔거리며 움직임을 멈췄다.

“…….”

아주 미세하게 입술을 깨무는 불안한 표정과 옅게 흔들리는 동공이 담고 있는 그녀의 오른손.

그 오른손에 낙인처럼 새겨져 있는 하얀 붕대가 그녀를 멈칫거리게 만들었다.

“……왜?”

무서워?

다시는 겪기 싫은 지옥 같은 경험.

말 그대로 삶의 끝에서 다시 돌아온 그녀에게 이 문을 여는 건 어떤 의미일까?

“……아니요.”

그녀는 더없이 단호한 목소리로 내 물음을 부정했다.

내 도발에 지지 않겠다는 듯이 별빛 같은 눈동자로 나를 노려보는 차설희.

“…….”

난 그럼, 열어보라는 의미로 계속해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1단계는 그녀가 품고 있는 헛된 희망을 부수는 과정이었다.

구조대가 온다는, 이 모든 게 해프닝이라는, 결국엔 여동생을 자신의 힘으로 구할 수 있다는 희망.

그 희망이 부서진 그녀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확률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그렇게 내가 바라던 대로 살짝 맛보게 된 그녀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달콤했다.

다른 쾌락과는 비교도 못 할 정도로 소유하고 싶고, 독점하고 싶어지는 마력.

당연히 여기서 멈출 생각은 없었다.

난 말 그대로 그녀의 전부를 원하니까.

그러니, 이제 2단계로 넘어갈 시간이었다.

“……여기서 더 떨어질 곳도 없어요.”

끼이이익―!

스스로 각오를 다지며 3층의 문을 여는 차설희.

난 그녀를 반기며 서서히 다가오는 어둠을 바라보며 더 짙게 미소 지었다.

……과연,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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