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기원 (3)
낯설다.
“어쨌든 저는 오늘부터 식량 지원은 더는 없다고 분명히 전달했습니다, 박태하 씨.”
“뭐, 박태하 씨?! 이 새끼가 태하 선배한테―”
박태하는 저렇게나 선명하게 자신들을 비웃고 있는 박우진의 저 얼굴이 너무나도 낯설었다.
그에게 더 익숙한 박우진의 얼굴은 조금 부담스러울 만큼 살갑게 형님, 형님 거리며 빌붙던 얼굴이었으니까.
“병신 새끼들이 아직도 선후배 타령을 하고 있네.”
“……이, 이 새끼가 진짜― 너 나중에 어떻게 하려고 지금 이러냐?! 예진아―, 김예진! 너라도 뭐라고 말 좀 해봐!”
“…….”
또한 낯설었다.
지금 후배들의 닦달에도 뭐가 무서운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또 다른 후배의 얼굴이.
분명 저쪽 캠프로 한데 뭉쳐 이탈했던 여자들 무리에 끼였던 여후배.
뒤풀이란 뒤풀이에 항상 출석 도장을 찍으며 남자답게 호탕하게 웃던 김예진이 그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박우진 뒤에 서 있는 게 너무나도 낯설었다.
“조장님 명령이니까 그냥 닥치고 따르세요.”
“우진아, 일단 내가 한세계 씨를 한 번만―”
“아, 구예리 씨.”
박우진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구예리에게 날카롭게 손가락을 뻗었다.
“당신은 장훈 선배님이 귀찮게 그만 좀 찾아오라고 전달하라 했습니다.”
알아들었죠?
마치 날파리를 내쫓듯 귀찮음이 가득한 표정으로 재차 묻는 박우진.
구예리는 한 달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박우진의 모습에 그저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당신도 알아들었죠?”
구예리에 이어 박태하에게도 향하는 재확인.
“…….”
그저 조용히 박우진을 바라보는 박태하의 눈빛에 박우진은 심드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됐네, 조장님 명령이니까 꼭 명심하세요.”
이제 더는 식량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일방적인 통보.
그것을 끝으로 박우진은 아무렇지 않게 등을 돌렸다.
그런 그를 서둘러 따르는 김예진의 엉덩이를 마음껏 주무르는 손길.
박우진은 마치 그들에게 보라는 듯이 대놓고 김예진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희롱했다.
그리고 그런 손길에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고 그저 박우진의 옆을 따르는 김예진.
그저 박태하는 낯설 뿐이다.
방금의 대화, 그들의 얼굴, 지금 우리 모두를 둘러싼 상황.
이 모든 것들이 마치 한 여름밤에 꾸는 악몽처럼 먹먹하고 낯설다.
“저― 씨발 새끼. 저 새끼는 내가 무조건 강간으로 콩밥 먹인다.”
김예진의 엉덩이를 마음대로 가지고 노는 박우진을 바라보는 울분에 가득 찬 목소리.
박태하와 가까이 앉아있던 학생회 후배의 울먹임이었다.
그리고 박태하는 그 후배의 울분을 당연히 이해했다.
평소에 김예진을 좋아하는 티를 많이 냈던 후배였으니까.
술도 잘 마시지 못하는 놈이 컨디션 같은 걸 모조리 챙겨 먹으며 뒤풀이에 매일 얼굴도장을 찍는데 모를 리가 없었다.
때문에 그 사실을 당연히 아는 김예진과 저 후배 놈이 썸을 타고 있다는 걸 심유한에게 들은 기억이 있었다.
물론 지금에서야 딱히 기억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사실이지만.
“김예진뿐만 아니라 매일 아침마다 누구 맞는 소리도 나잖아. 이거 다른 애들 더 이상 저쪽에 못 가게 저희가 강제로라도 막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씨발 그게 막아지냐고, 병신아. 안 그래도 혜지랑 가린이도 요즘 우리 눈치 존나게 보잖아. 저쪽에 간 지 친구들이랑 얘기를 좀 한 모양이던데― 걔들도 조만간이다.”
박우진이 떠난 자리에 남아있던 캠프원들의 불만은 자연히 하늘을 찌를 듯 뾰족했다.
캠프원들은 김예진을 대놓고 성희롱하던 박우진이 시야에서 사라진 것을 확인하며 더 분통을 터트렸다.
“개 같은 범죄자 새끼들이 먹는 거 가지고 좆같이 장난치네. 씨발― 동물의 왕국도 아니고, 개새끼들.”
“차설희 손에 있던 상처 자국도 한세계 그 새끼 거인 거 아니야? 차설희도 좀비가 아니라 인간인 채로 저쪽 캠프에서 한세계 옆에 얌전히 박혀있는 다잖아.”
“씨발― 그럼 설마…….”
……씨발.
무언가를 상상했는지 동시에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욕을 내뱉는 캠프원들.
“……그 새끼 진짜 미친 새끼 아니에요?”
동의를 구하듯 박태하에게 묻는 또 다른 후배의 물음에 그는 눈을 조용히 감았다.
“그런 것보다 지금 우리 식량 문제가 훨씬 더 시급해요.”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골몰하던 구예리가 모두의 주목을 모았다.
“우리는 저쪽이 좋든, 싫든 어쩔 수 없이 식량 자체를 저쪽의 지원에 의존해왔어요. 그런데 오늘 갑자기 저쪽에서 우리에게 식량 지원을 끊겠다고 통보했구요.”
모두에게 강조하기 위해 손으로 자신의 목을 긋는 시늉을 한 구예리가 다시금 말을 이었다.
“당장 오늘을 해결할 끼니도 저희에겐 하나도 남아있지 않아요. 더 심각한 건― 그건 오늘뿐만이 아닐 확률이 높다는 거예요.”
태하 선배.
박태하는 자신을 부르는 구예리의 목소리에 조용히 눈을 떴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구예리의 말이 끝나자마자 자신에게 모이는 모두의 시선.
그 거북하고 소름 끼치는 눈빛에 그는 녹음기를 틀 듯 같은 말을 반복했다.
“……구조대가 올 때까지 여기서 안전하게 버티기로 결론 났잖아.”
사범대 편의점 수색에 실패하고 후배 두 명을 잃었을 때, 모두가 동의한 행동 지침.
“알아요. 하지만 그건 식량과 식수가 충분했을 때의 이야기죠. 구조대가 언제 올 줄 알고 계속 굶고만 있을 순 없잖아요!”
“……그걸 나보고―.”
어떡하라는 거야.
구예리의 흠 잡을 데 없는 정론에 반발하듯 튀어나오는 고함.
박태하는 마지막까지 튀어나오려는 고함을 겨우겨우 집어삼켰다.
구예리는 필사적으로 무언갈 참는 박태하를 바라보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안 되겠어요. 일단 다시 한번 더 그 사람을 찾아가서―”
“그만해라, 예리야.”
“맞아요. 그건 안 돼요, 선배! 그 새끼들이 무슨 짓을 할지 알고요!”
“맞아. 분명히 예진이한테 그랬던 것처럼, 너한테도 비슷한 짓을 할 거야, 범죄자 새끼들.”
이렇듯 그들의 회의는 상황은 매번 달랐지만, 결말은 매번 똑같았다.
“그렇다고 굶어 죽을 순 없잖아요!”
“아니야. 아까 박우진 그 씹쌔기가 예리 너만 콕 집어서 오지 말라고 한 얘기 못 들었어? 딱 봐도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야.”
박태하는 당장이라도 한세계에 찾아가려는 구예리와 그녀를 말리는 캠프원들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래―! 이제 우리까지 매수하려고 그러는 걸 거야. 나중에 우리가 입만 벙긋거려도 그 개새끼들은 모조리 콩밥을 처먹으니까 우리를 식량으로 매수하려는 속셈인 거야.”
“……병신들.”
잔뜩 흥분한 캠프원들 사이로 나지막이 흐르는 한 마디의 욕설.
과열된 캠프에서 오직 박태하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속삭임이었다.
때문에 목소리를 쫓아 고개를 돌린 박태하만이 그와 비슷하게 저들에게서 분리된 캠프원을 찾을 수 있었다.
“…….”
그의 시선을 눈치채고 조용히 눈을 맞춰오는 익숙한 얼굴.
강청신이었다.
2층에 머무르게 된 생존자들은 정확히 두 그룹으로 나뉠 수 있었다.
하이퀸즈 촬영 소식에 구름처럼 모여들 학생들을 통제하는 것을 돕기 위해 도서관에 모여있던 학생회 소속 학생들.
그리고 하이퀸즈를 어떻게든 조금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통제를 뚫으려 애를 쓰던 극성 빠돌이, 빠순이 학생들.
강청신은 누가 봐도 후자의 그룹에 속할 것이 분명한 유형의 남학생이었다.
한 마디로 ‘오타쿠’의 전형적인 스테레오 타입 그 자체의 남학생.
허나, 박태하는 강청신의 갑작스런 욕설에도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어쩌면 그들이 큰 피해 없이 2층에 숨어들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강청신이었으니까.
가장 먼저 같은 학생들에게 달려들던 학생들을 좀비라고 부르짖었던 것도 그였고.
그렇게 패닉에 빠진 다른 학생들을 대신해 자신에게 다음 해야 할 일을 크게 소리치던 것도 강청신이었다.
“……좋은 생각이라도 있나?”
하지만 그때와 지금의 상황은 180도 달랐다.
그렇게 큰 기대를 품지 않은, 그저 던지듯이 그에게 물은 질문.
허나, 그 질문을 받은 강청신은 당연하다는 듯 은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
그 넘치는 자신감에 박태하는 그에게 조용히 다음 말을 재촉했다.
강청신은 박태하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이며 속삭였다.
“식량이 부족하면 식량을 뺏으면 되죠.”
“…….”
“신경 쓰이는 사람이 있으면 잠시 치우면 되죠.”
거침없이 이어지는 해결책에 박태하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내뱉었다.
잠시 옆으로 치운다라…….
그게 가능했다면 지금 여기서 병신같이 개노답 회의만 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세계는…….
박태하는 놈의 얼굴을 떠올리자마자 와락― 미간을 찌푸렸다.
발길질 한 번에 바닥을 나뒹구는 자신.
그렇게 갑작스레 목이 꽉 막히는 처절한 무력감.
그리고―
그런 자신을 위에서 조용히 내려다보는 그 재수 없는 눈깔.
‘이제 나도 더 이상 안 봐준다, 태하야.’
박태하는 스스로를 절대로 병신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병신이라도 한세계 그 자식은 뭔가 다르다는 걸 누구나 알아차릴 것이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어디 동네방네 소문내는 삼국지식 일기토를 하라는 게 아니고요.”
그런 박태하의 얼굴을 보며 한심하게 말을 잇는 강청신.
그가 다시 자신과 눈을 맞추는 박태하를 바라보며 또박또박 입을 열었다.
“뭐 옆으로 치우는 게 한두 가지 방법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예를 들면― 밤에 기습을 한다던가.”
밤, 기습.
강청신이 조용히 언급한 방법에 박태하의 눈이 잠시간 흔들렸다.
“뭐요, 기습이요?!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그런 짓을 하면 우리가 저쪽이랑 다를 게 뭐예요?!”
“아깐 뭐 식량이 제일 중요하다느니 뭐니 하더니, 이젠 또 고리타분한 도덕 얘기를 하네.”
“뭐?! 야, 강청신―!”
어느새 대화를 듣고 있던 구예리와 강청신간의 일촉즉발의 분위기.
허나, 이를 제지해야 할 박태하는 조용히 강청신이 내뱉은 해결책을 입 안에서 굴리고 있었다.
밤, 기습.
“……그래.”
그리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들을 둘러싼 이 좆같은 상황이 때려 박듯이 박태하에게 말하고 있는 사실은 오직 하나였다.
누구보다 절친했던 심유한이 머리가 부서진 시체로 돌아왔을 때도, 아끼던 후배들이 좀비가 되어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 했을 때도―
죽음은 그가 생각했던 것만큼 특별한 의미가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그에게 죽음은 너무나도 가깝고 흔한 단어가 되어버렸다.
누군가 좀비가 되어 죽는다.
누군가 그 좀비에게 죽는다.
누군가 이 사실을 버티지 못하고 스스로 죽는다.
부모님, 동생, 친구, 후배, 교수님.
그 누구도 언제나, 언제든 아주 쉽게 죽어버릴 수 있다는 걸 이제야 절실히 깨달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한세계도.
그 한세계도.
“……그 새끼도 결국은 죽이려 하면 죽겠지.”
죽음이란 그리 특별한 게 아니니까.
“놈도 먹고, 싸고, 자는 인간일 거 아니야?”
“……태하 선배!”
구예리가 박태하의 눈빛을 보며 다급히 그에게 다가왔다.
“지금 생각하시는 그건 정말 최악의 대처에요! 그럼, 그쪽이나 우리나 서로 극단적인 방법밖에 남지 않는다구요!”
“먼저 시작한 건 그쪽이야.”
구예리가 점점 또렷하게 변해가는 박태하의 눈동자에 대고 더 크게 소리쳤다.
“그쪽도 저희한테 지금까지 식량을 지원해주고 있었잖아요! 최소한의 인간의 도리는 하고 있었다는 말이에요! 대화가 통할 여지가 충분하다구요!”
“인간의 도리?”
박태하는 무기력하게 도서관 벽에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너도 알고 나도 알던 사람들이 저 새끼들에게 강간당하고 있는데 인간의 도리? 이젠 굶으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가는 새끼들한테 인간의 도리?”
곰같이 으르렁거리며 쉴 새 없이 구예리에게 다가가는 거대한 덩치.
“한세계 그 새끼가 그런 게 있는 새끼일 것 같아? 애초에 그 새끼가 들어오고 난 후에 모든 게 이상하게 바뀌었어. 그러니 그 새끼만 치우면 다시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갈 거야.”
“태하 선배, 지금 너무 흥분―”
“닥쳐어어어어―!”
박태하는 구예리의 얼굴을 노려보며 우렁차게 포효했다.
매번― 매번―!
아주 씨발 매일 매일 나한테 어떻게 해야 할지 질리도록 물어봤으면서―!
해결하기 어려운 것들은 다 나한테 떠넘겼으면서―!
“내 의견을 그렇게나 물어봤으면 내 의견에 따르란 말이야아아아―!”
“…….”
구예리 뿐만 아니라, 모두가 입을 다문 고요한 정적.
하아― 하아― 하아―
급하게 숨을 몰아쉰 박태하가 모두와 눈을 맞추며 집 씹듯 읊조렸다.
“무기가 될 만한 건 모두 다 챙겨.”
오늘 밤.
“한세계를 죽인다.”
***
───────.
압사당할 것만 같은 끝없는 적막.
박태하가 모두에게 지시를 내린 후로 캠프원들은 모두 하나같이 침묵을 유지했다.
그저 무기가 될만한 것들을 차츰차츰 찾으며 해가 떨어지는 것을 기다렸다.
그렇게 은근히 찾아오지 않길 바라던 밤이 찾아오고―
그 후에도 한참을 조용히 기다리던 박태하가 유령같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미 숨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 중앙 도서관 2층.
박태하는 오른손에 든 몽키 스패너를 더 꽉― 쥐어 잡으며 살금살금 한세계에게로 걸었다.
그런 그를 따르는 모든 캠프원들.
이 작전을 극렬하게 반대했던 구예리조차 어쩔 수 없이 작은 망치를 든 채로 그들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이 작전이 실패하면 모든 것이 끝이었다.
말 그대로 캠프의 모든 것을 건 기습이었으니까.
스윽―! 스윽―!
신경을 있는 대로 긁어모은 발가락이 조심스레 도서관 바닥을 쓴다.
그렇게 그동안 곁눈질로만 살폈던 한세계의 캠프가 어둠 속에 어렴풋이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미 모두가 잠에 빠진 듯 코 고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캠프.
박태하는 구석에 위치한 누가 봐도 제일 큰 거처로 조심스레 발걸음을 이었다.
두근― 두근―
한 발자국, 한 발자국씩 거처와 가까워질 때마다 터질 듯이 박동하는 심장.
박태하는 어느새 그의 구렛나루를 지나는 식은땀을 느끼며 쉴 새 없이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한세계만 죽이면 끝날 일이다.
한세계도 결국 인간이다.
죽음은 그리 특별하지 않다.
“하아― 하아―”
의식하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모자란 산소를 갈구하듯 조심스레 벌려지는 입.
박태하는 입 안에 가득한 단내를 느끼며 계속해서 스스로를 세뇌하듯 진실을 되뇌었다.
한세계만 죽이면 된다.
한세계만―
턱―!
거처의 벽 역할을 하는 책장 구석을 조심스레 잡는 손.
이제 이 안으로 들어가 곤히 자고 있는 한세계의 대가리를 깨부수면 끝난다.
이제―
“이것 봐라.”
그 순간, 박태하는 저도 모르게 몸을 휘청거렸다.
목소리를 듣자마자 몸이 쭉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듯한 아찔한 탈력감.
천천히 고개를 돌린 그의 얼굴을 수많은 손전등들이 환히 비춘다.
그와 캠프원들이 지나왔던 길을 가로막듯이 서 있는 그들의 목표물.
숨 쉬는 소리도 내지 않고 침묵하고 있던 캠프원들이 서서히 앓는 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짙은 어둠 사이에서도 구별이 될 만큼 하얗게 질려가는 모두의 얼굴.
“이런 은혜도 모르는―”
박태하는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던 놈들의 선두에 선 이를 조용히 응시했다.
자신들을 보며 헛웃음을 내뱉고 있는 그 선명한 얼굴.
항상 소름 끼치는 느낌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놈 특유의―
‘이제 나도 더 이상 안 봐준다, 태하야.’
“버러지 새끼들을 봤나.”
몽키 스패너를 쥐고 있던 손의 힘이 스르륵― 풀려나간다.
박태하는 자신을 바라보고있는 놈의 눈길을 느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