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폭군-36화 (36/120)

도서관의 왕 (1)

환한 손전등 불빛이 햇빛이 미처 투과하지 못한 구역을 밝혔다.

규칙적으로 빼곡히 자리한 열람석들.

하얀 칸막이가 쳐진 학생들의 공부 공간엔 그날의 흔적들이 가득했다.

아직도 책상 위에 올려진 두터운 전공 서적과 필기구들.

덮지도 못한 노트북과 이리저리 바닥에 흩뿌려진 낱장의 종이들.

그리고 이젠 너무나도 익숙한 핏빛의 흔적들.

난 말 그대로 공부 중에 날벼락을 맞은 격인 5층 대학원 열람실을 천천히 훑었다.

텅―!

그리곤 하얀 칸막이를 가볍게 후려치는 쇠 파이프 덕에 크게 울리는 소음.

“끼에에에에엑―!”

좀비가 반응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는 미끼였다.

조금 멀리서부터 미칠 듯이 몸을 흔들며 다가오는 좀비.

상의가 걸레처럼 찢겨 상처투성이인 가슴이 여실히 드러난 여자 좀비였다.

“끼에에에엑―!”

정면에 떡하니 기다리고 있는 우릴 보며 기쁨의 포효를 내지르는 여자 좀비.

특별히 별 다를 것 없는 그저 좀비 한 마리였다.

저렇게나 엉망진창이 됐는데도 머리 쪽은 멀쩡한지 꽉 조여진 똥머리가 신기했고.

조금 추할 만큼 크게 움직이는 가슴을 보곤 자연스레 눈살이 찌푸려지지만, 이상하게 눈을 거둘 순 없는 좀비.

그저 대가리를 후려치면 그대로 나자빠질 좀비 한 마리였지만―

“히이이익―!”

지금 내 앞에 있는 이들에게는 아닌 듯했다.

“도망치면 나한테 죽는다.”

파르르― 떨리는 등에 대고 경고하자 그들의 등이 더 격하게 떨려온다.

“방패 들어.”

난 이보다 더 엉성할 수 없게 덜덜덜― 떨며 테이블 방패를 드는 모습에 미간을 찌푸렸다.

박우진, 김민준도 이보다 폐급은 아니었는데.

그 두 쩌리 새끼들이 그리워질 날이 오다니, 세상이 정말 말세긴 말세였다.

벌써 몇 번이나 반복한 좀비 사냥인데도 아직도 저렇게 덜덜덜― 떠는 꼴이라니.

저 좀비를 죽인 후에 다시 한번 정신 개조가 필요한 듯했다.

난 새로운 수색조 4명을 휘둘러보며 말했다.

“이번에 내 눈에 걸리는 새끼는 진짜 각오해라.”

계속되는 경고에 덩치값을 못 하고 달달 떠는 수색조원들.

나름 체격이 있는 새끼들만 선별했는데도 이 정도였다.

“끼에에에에엑―!”

난 이제 거의 다 근접한 좀비 새끼를 바라보며 옆을 곁눈질했다.

내 옆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곰 같은 덩치.

이 신생 수색조의 조장으로 내정된 박태하였다.

이미 검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몽키 스패너를 들고 조용히 내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박태하.

그는 이미 충분한 검사를 받고 잠시 내 옆에 열외된 상태였다.

아니, 지금껏 달려든 좀비들은 웬만하면 저 곰 새끼에게 정리당해서 다른 조원들을 위해 잠시 옆으로 치웠다는 말이 더 정확했다.

“끼에에에에엑―!”

좀비의 깨진 동공에 가득 찬 먹잇감들의 얼굴.

놈은 그 모습에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게걸스럽게 흔들며 두 팔을 쫘악― 벌린다.

덕분에 더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는 상처투성이의 그로테스크한 가슴.

“으으으으―!”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 듯 앓는 소리가 속출한다.

쿠웅―!

엉성하게 내밀고 있던 방패들과 좀비의 충돌음.

감속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우악스러운 돌진에 나름 평행을 유지하던 방어선이 흔들린다.

주춤거리며 뒷걸음질치는 방어선과 유일하게 방어선을 지킨 단 하나의 방패.

“끼에에에에에엑―!”

“으으으으으으으으―!”

아니, 지켰다기보다는 다리가 얼어붙었다는 표현이 정확했다.

이젠 서로의 숨결까지 느껴질 만큼의 거리에서 힘겨루기에 들어간 수색조원과 좀비.

좀비가 마구잡이로 흔들어대는 양손이 쉴 새 없이 수색조원의 얼굴을 치댔다.

“으으으으으―!”

그 때문인지 점점 안으로 굽혀지는 팔꿈치와 방패.

“끼에에에에엑―!”

오직 식욕밖에 남지 않은 무서운 광기와 집념이 필사적으로 자신을 가로막는 방패를 밀어내곤―

콰직―!

끝내 바라던 먹잇감의 살을 취했다.

“끄아아아아아악―!”

방패를 포함한 수색조원의 몸을 꽉― 껴안은 좀비의 포식.

수색조원은 몸 전체를 활어처럼 팔딱이며 좀비에게 얌전히 목을 내주고 있었다.

“……하.”

난 데자뷰처럼 또 시작된 개지랄에 헛웃음을 내지으며 박태하에게 눈짓했다.

퍼어억―!

내 눈짓에 곧바로 달려가 수색조원의 목에 달라붙은 좀비의 대가리를 후려버리는 몽키 스패너.

난 좀비 시체와 함께 바닥에 깔린 수색조원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이들을 밀치며 앞으로 걸었다.

“꺼억―! 꺼어어억―!”

전조처럼 시작된 발작에 수색조원의 몸을 깔고 있던 좀비 시체도 함께 팔딱거리기 시작한다.

철푸덕―!

난 수색조원을 깔고 있던 좀비 시체를 내던지고 수색조원을 내려다보았다.

“야.”

“꺼어억―! 꺼어억―!”

짜아아악―!

“꺼억―! 끄어어억―!”

내 호명에도, 조금 힘을 실은 손바닥에도 기괴하게 몸을 비트는 수색조원.

난 놈의 왼팔에 묶여있는 하얀 붕대를 훑으며 천천히 놈의 감염 부위에 오른손을 내밀었다.

우우우웅―!

더 선명히 들려오는 가동음과 함께 내 손을 가득히 메우는 찬연한 황금빛.

조금 어둡던 5층 열람실을 갑작스레 밝히는 빛이 천천히 수색조원의 목으로 스며들었다.

“끄어어억―! 끄으어어어어―”

점차 흰자뿐이던 수색조원의 눈알에 검은 자가 내려온다.

“끄어― 하아― 허억―! 허억―!”

그리곤 기괴하게 비틀던 몸을 다시 바닥에 눕히고 빠르게 숨을 몰아쉬는 수색조원.

난 좀비가 되기 직전에 다시 인간으로 돌아온 수색조원을 바라보곤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오늘 총 두 번 물리고, 두 번 ‘부분 무능’을 사용해 감염을 무효화시킨 저 수색조원.

저놈 덕분에 혹시나 내 ‘부분 무능’이 딱 한 번만 감염을 치료해주는 게 아닐까라는 의문은 자연스럽게 해소되었다.

인간의 면역이라는 게 워낙 신통방통해서 혹시나 걱정했었는데 횟수에 상관없이 좀비가 되기 전이면 내 부분 무능은 계속 유효한 듯했다.

“그만 주접떨고 일어나.”

“하악― 하― 예, 예에엡―!”

나지막한 선고에 불에 데인 듯 바닥에서 일어서는 수색조원.

놈은 내 부분 무능을 두 번이나 경험한 산증인인데도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자신의 몸을 천천히 훑어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바라보고 있는 다른 이들의 눈도 마찬가지였다.

찢어질 듯이 커진 눈으로 믿기지 않는 기적을 바라보고 있는 수색조원들.

좀비에게 물리면 어떤 짓을 하든 결국 물린 좀비와 똑같이 좀비가 된다는 진리.

그 절대적인 진리가 너무나도 쉽게 내 손에 깨졌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야.”

“…….”

“하아―.”

“어, 예, 예에에에엡―!”

병신같이 정신줄을 놓고 있던 새끼가 내 한숨 소리가 다급히 목소리를 높였다.

난 머리가 깨질듯한 짜증에 고개를 살짝 숙이고 여러 번 이마를 신경질적으로 긁적였다.

누군가를 처음부터 차근차근 가르쳐준다는 건 상당히 많은 정신력을 소모하는 작업이었다.

특히나 조직의 중간층이라고 있는 놈들이 고장훈과 두 쩌리뿐인 지금이라면 더더욱.

그렇다고 두 쩌리와 저 신생 수색조를 같이 올려보내면 그건 좀비들에게 먹잇감을 퀵으로 쏴주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나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박태하가 더 쓸만한 건 좋았지만, 그것 빼고는 정말 모든 게 최악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손을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띠링―!

[‘박태하’가 좀비를 처치하였습니다.]

[복종의 공물]

[1 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지금 내 눈앞에 출력되는 이 생소한 상태창 메시지.

내게 복종하는 이들이 좀비를 처치할 때마다 발생하는 공물.

즉, 복종의 공물이 있다는 걸 알아차린 뒤부터는 더더욱.

처음 박태하가 좀비를 스스로 죽이고 갑작스레 나타난 이 상태창 메시지를 읽고는 얼마나 쾌재를 불렀는지 모른다.

그동안은 조금 악착같이 좀비는 무조건 내가 죽였으니 더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건 포인트 파밍의 혁명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나는 포인트를 함께 모으는 아주 많은 계정을 얻게 된다는 뜻이었다.

게임 좀 했다던 사람들은 ‘다계정’이라는 세 글자가 가진 파괴력을 누구나 알고 있을 터였다.

소위 나만을 위한 ‘포인트 작업장’을 양산할 수 있는 최적의 상태.

어쩌면 속칭 ‘폭군’이 가진 가장 강력한 이점을 지금 발견한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 이점을 제대로 활용해보려 했는데.

“하아―”

정말 가까스로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욕을 집어삼켰다.

난 이마를 긁적이던 손을 거두고 바짝 얼어붙은 수색조원과 눈을 맞췄다.

“이번엔 병신같이 방패도 안 놓치고 뒤로 도망도 안 쳤네.”

“…….”

“그래서 오히려 더 병신같이 좀비에게 물렸지만.”

“…….”

냉정한 평가에 놈의 고개가 자라처럼 쑥― 들어간다.

눈에 확 띌 만큼 크게 꿀떡이는 목젖 옆에 새로운 상처 부위.

어떻게 내 부분 무능이 출혈은 멈추게 한듯하지만, 한눈에 봐도 그리 가볍게 아물 상처는 아니었다.

“그래도 지시를 따른 건 따른 거니까.”

난 놈을 바라보던 시선을 박태하에게 옮겼다.

“아까 그거 취소해.”

“예.”

세상 긴장한 얼굴로 우리의 대화를 듣던 놈의 얼굴이 점차 환해진다.

방금 죽을 뻔했다는 건 까마득히 잊어버린 듯한 기쁨의 미소.

하긴― 죽을 뻔했다는 건 이제 과거고, 놈이 걱정해야 하는 건 내일이었으니까.

그 내일을 책임질 밥이 다시 생겼다는 건 제법 기쁜 소식이었다.

난 수색조원에게 내렸던 벌을 번복하고 다시 박태하에게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번엔 누구야.”

내 물음에 다시 싸늘하게 얼어붙는 분위기.

조용히 내 말을 경청하던 박태하가 천천히 손가락을 뻗었다.

그의 지명에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꾹 다무는 수색조원 중 한 명.

“김우정입니다. 김우정이 제일 많이 뒷걸음질 쳤습니다.”

김우정이 다가올 미래를 알고 있다는 듯 눈을 질끈 감았다.

“새끼들이 이번에 진짜 각오하라고 겁을 줘도 말을 쳐 안 들어먹네.”

이젠 정말 인간이 아니라 짐승으로 보이는 수색조를 휘둘러보며 박태하에게 눈짓했다.

내 무언의 지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김우정에게 다가가는 박태하.

뚜벅― 뚜벅―

제법 널찍한 열람실을 조용히 울리는 발소리에 기겁하듯 눈을 번쩍 뜬 김우정이 울상을 지었다.

“태, 태하 선배― 태하 선배―”

“……저 새끼는 진짜 안 될 새끼네.”

나지막한 내 선고에 김우정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더 커진다.

“아, 아―! 조, 조장님―! 수, 수색조장님!”

김우정의 간절한 애원에도 한 번의 멈칫거림 없이 그에게 다가간 박태하.

퍼억―!

그리곤 곧바로 김우정의 배때기에 주먹이 꽂혔다.

쿨럭―이며 급하게 숨을 들이켜는 김우정에게 무차별적으로 꽂히는 구타.

“쿨럭―! 크헉―! 케엑―!”

제법 사람을 패며 요령을 익힌 나와는 달리 그저 상대를 가격하겠다는 의지만 가득한 요령 없는 주먹질.

오히려 그래서 더 위험하고 아픈 구타를 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눈 까는 새끼는 저 새끼보다 더 뒤진다.”

내 경고에 크게 어깨를 들썩이며 살벌한 구타 현장에 다시 눈알을 두는 수색조원들.

퍼억―! 퍼억―! 퍼억―!

난 일종의 리듬을 타듯 일정하게 들려오는 구타 음을 들으며 시야의 구석을 응시했다.

띠링―!

[연역적 지배 Lv.4 -> 연역적 지배 Lv.5]

[스킬 레벨업에 40포인트가 소모됩니다.]

……씨발.

난 스킬이 레벨업 하는 순간인데도 튀어나오는 욕을 조용히 삼켰다.

하나의 스킬이 5레벨을 달성하는데 필요한 포인트는 정확히 100포인트.

스킬 레벨이 1씩 오를 때마다 레벨업에 요구하는 포인트도 10포인트 늘어나는 좆같은 시스템.

그야말로 내가 개고생을 하며 도서관 3층, 4층, 5층을 쓸어 담으며 얻은 포인트를 모두 저 스킬에 쏟아부은 것이다.

때문에 수전증이 온 것처럼 옅게 떨리는 손을 꽉― 쥐어 잡았다.

이제부터 잔여 포인트는 적재적소에 쓰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쓰고 있는 건데도 처음으로 세 자릿수의 포인트를 소모해서 그런지 정신이 아찔했다.

연역적 지배.

도서관 캠프의 생존자들을 모두 무릎 꿇리며 폭발적으로 상승한 왕권 덕에 해금된 새로운 스킬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왕권 50’ 달성에 해금된 전용 스킬.

[연역적 지배 Lv.1]

[하지만 좋든 싫든, 당신은 그들의 왕입니다.]

[당신의 모든 행동이 아주 미약하게 복종에 긍정적인 요소를 유발합니다.]

지금 이 상황에 딱 필요한 스킬이었다.

내가 설계한 상황대로 제법 부드럽게 일이 이어졌지만, 그 효과를 과신하진 않았다.

그 당시에 무릎을 꿇은 이들이 전부 내게 복종한 것은 당연히 아닐 것이다.

분명히 분위기에 휩쓸려, 군중 심리에 압도당해 무릎을 꿇은 자들이 없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 일종의 복종도를 상승시키는 데 베네핏을 부여하는 것으로 보이는 새로운 전용 스킬에 포인트를 투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연역적 지배 Lv.3]

나도 분명 처음에는 이 스킬에 포인트를 올인할 생각은 없었다.

레벨 3 정도만 찍어놓고 다시 포인트를 쌓아두려 했는데―

띠링―!

[Tip : 당신의 전용 스킬이 전문화를 선택할 때까지 ‘2’레벨 남았습니다. (이 알림은 당신이 첫 번째 전문화 스킬을 선택할 때까지만 유지됩니다.)]

또다시 보게 된 생소한 메시지.

시스템이 처음으로 알린 전문화라는 요소는 제법 구미가 아주 많이 당기는 요소였다.

대략적으로 예상해도 저 전문화는 ‘스킬 강화’나 ‘스킬 진화’ 비슷한 걸로 보였기에 더더욱.

때문에 난 팝업처럼 튀어나오는 상태창 메시지에 시선을 집중했다.

내 피 같은 포인트를 쏟아부은 새로운 요소에서 무조건 이득을 뽑아야 했다.

띠링―!

[목표 스킬 레벨 달성으로 당신의 전용 스킬에 첫 번째 전문화가 개방됩니다.]

[폭군 전용 스킬 ‘연역적 지배’의 전문화를 선택하세요.]

[1. 백마 탄 폭군]

[당신의 모든 행동이 특히 여성을 대상으로 더욱 효과적으로 긍정적인 요소를 유발합니다. 또한 당신은 여성의 긍정적인 요인을 유발하는 기저심리를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2. 모두에게 평등한 패악질]

[당신의 모든 행동이 모두의 복종에 더욱 효과적으로 긍정적인 요소를 유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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