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폭군-37화 (37/120)

도서관의 왕 (2)

[1. 백마 탄 폭군]

[당신의 모든 행동이 특히 여성을 대상으로 더욱 효과적으로 긍정적인 요소를 유발합니다. 또한 당신은 여성의 긍정적인 요인을 유발하는 기저심리를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2. 모두에게 평등한 패악질]

[당신의 모든 행동이 모두의 복종에 더욱 효과적으로 긍정적인 요소를 유발합니다.]

“……씨발.”

다시 한번 전문화를 정독하고 나니 입에서 저절로 욕설이 튀어나온다.

이거 쉽게 쉽게 선택할 만한 요소가 아닌데?

퍼어억―!

“크헉―! 조, 조장― 쿨럭― 쿨럭― 쿨럭―”

그 순간 일정하게 이어지던 구타 음을 깨는 불협화음.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내 눈치를 보는 박태하와 밑에서 몸을 바짝 웅크리고 다리를 허우적거리는 김우정이 보였다.

발길질을 장전하듯 발을 뒤로 디딘 채로 조용히 나를 보고 있는 박태하.

마치 ‘조금 더 세게 때릴까요?’라고 묻는 듯한 눈길에 불협화음의 전말이 보였다.

박태하로서는 내가 처벌의 강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욕을 내뱉은 걸로 보인 듯했다.

“거기까지 해.”

“예.”

내 지시에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원래 위치로 복귀하는 박태하.

내 눈짓에 얼어붙은 채로 처벌 현장을 바라보던 수색조가 아직도 쿨럭이고 있는 김우정을 서둘러 부축했다.

“저 새끼 입부터 막아.”

연이은 지시에 우악스러운 여러 개의 손이 김우정의 입을 빠르게 막아댔다.

“…….”

좋아, 이제 좀 조용하네.

난 집중을 깰 수 있는 모든 요건을 없앤 후에 다시 전문화에 집중했다.

그러니까―

요약하면 1번 ‘백마 탄 폭군’은 여성 특화 전문화고 2번 ‘모두에게 평등한 패악질’은 모두에게 특화보단 낮은 보정치를 부여한다는 것 같은데…….

난 생각을 이어가면 이어갈수록 더 찌푸려지는 미간을 긁적이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둘 중 하나가 특별히 우월한 선택지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스킬의 전문화를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

게다가 각 선택지의 장단점이 너무나도 뚜렷했다.

먼저 ‘백마 탄 폭군’.

그냥 텍스트를 읽기만 해도 앞으로 대면하게 되는 여성들에게 절대적인 우위를 가져갈 수 있는 전문화였다.

세상의 반을 이루는 여자들에게 절대적인 우위라.

매우 매력적인 전문화지만, 실상을 보자면…… 조금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조금 험하게 말하자면 조금만 대가리를 굴려도 별로 선택할 필요가 없는 전문화다.

세상의 반이 여자라 하지만, 지금 이 세상에서 여성의 존재란― 솔직히 성 관련 문제가 아니라면 별로 쓸모가 없다.

어차피 좀비를 죽이고 새로운 장소를 수색하고 조직을 유지하는 중추는 전부 남자가 할 테니까.

어차피 여자들은 남자들을 빡세게 관리하면 알아서 관리가 될 족속들이란 거다.

시스템도 그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는지 ‘백마 탄 폭군’에 여성 특화 보정치말고 또 다른 이점을 추가해놓았다.

‘긍정적인 요인을 유발하는 기저심리.’

안 그래도 인간의 치명적인 비밀을 들추는 복종 요인에 그 안에 깔린 기저심리까지 파악할 수 있다라.

이건 쉽게 말해 한 인간의 ‘답안지’를 볼 수 있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안 그래도 절대적 우위를 가져갈 수 있는 여성인데, 그 답안지까지 들춰볼 수 있다?

이 전문화를 선택하면 앞으로 여성을 관리하는 데는 시행착오가 별로 필요 없어질 것이다.

허나, 두 번째 전문화 ‘모두에게 평등한 패악질’을 보자마자 곧바로 마음이 갈대처럼 흔들렸다.

이건, 별로 설명을 더 할 필요도 없었다.

시스템이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기저심리 파악을 ‘백마 탄 폭군’에 넣어준 것으로 말을 다 했으니까.

남자.

여자가 아닌 남자들에게 복종 보정치를 가한다는 점에서 내게 무엇보다 소중한 전문화였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조직을 이루는 중추는 열에 아홉은 모두 남자일 것이다.

이건 내가 바꾸고 싶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사실이 아니다.

효율이라는 면을 생각하면 과정이 어떻든 결과는 대부분 그럴 것이니까.

물론 새로운 변수인 ‘나와 비슷한 능력을 가진 여자들’이 있지만…….

글쎄.

애초에 나부터가 남자고, 이런 능력을 가진 놈들 중에서도 여자, 남자를 나눈다면―

보다 더 강력하고 효율적인 능력자들은 아마 남자 능력자들이겠지.

애초에 좀비를 죽여 포인트를 모아 ‘성장’을 한다는 게임식 시스템에 더 익숙한 자들이 남자들이니까.

톡―! 톡―! 톡―!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수록 고민이 깊어진다.

톡―! 톡―! 톡―!

쉴 새 없이 손톱으로 들고 있는 쇠 파이프의 겉면을 두드리며 아주 조용히 심사숙고를 이어갔다.

……톡―!

띠링―!

[폭군 전용 스킬 ‘연역적 지배’의 전문화로 ‘백마 탄 폭군’을 선택하셨습니다.]

[연역적 지배 Lv.5]

[하지만 좋든 싫든, 당신은 그들의 왕입니다.]

[당신의 모든 행동이 복종에 긍정적인 요소를 유발합니다.]

[당신의 모든 행동이 특히 여성에게 더욱 효과적으로 긍정적인 요소를 유발합니다.]

[당신은 여성의 긍정적인 요인을 유발하는 기저심리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적용 중인 전문화 : 백마 탄 폭군 (항상 숨기기)]

선택 완료된 것을 알려오는 상태창 메시지.

난 선택을 완료하자마자 스멀스멀 올라오는 아쉬움을 꾹 눌렀다.

너무나도 매력적인 기회비용 덕분에 더 크게 올라오는 아쉬움.

하지만― 내 선택에 번복은 없다.

저 기저심리 파악은 정말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었다.

답안지를 볼 수 있는 건 정말 죽었다 깨어나도 못 참는다.

애초에 내가 효율에 미친 효율충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안 있지.

도서관에 들어오자마자 차설희를 진작에 오나홀로 만들고 하루종일 좀비 대가리만 깨부쉈을 것이다.

그렇게 폭발적인 성장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그렇게 성장해서 뭘 얻고 싶은지를 생각하면 조금 난감하다.

그렇게 강해져서 얻고 싶다고 생각할만한 게 뻔했으니까.

성장은 언제든 할 수 있다, 남자 새끼들도 조금 더 공을 들여 관리하면 된다.

하지만 사라진 답안지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여자에 관련된 전문화는 도저히 양보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내가 절대적 우위를 가져갈 상대가 차설희, 차하얀이면 더더욱.

‘어차피 첫 번째 전문화라고 했으니 두 번째도 있겠지.’

두 번째 전문화 개방 때 ‘모두에게 평등한 패악질’이 나온다면 그때 저 전문화를 선택하면 된다.

게다가 첫 번째 전문화보다 당연히 스킬 레벨이 높아져야 두 번째 전문화가 개방될 테니 그때 되면 더 좋은 전문화가 개방될 테지.

그렇게 생각하니 포인트가 더 절실하게 고팠다.

어디 환급 시스템이라도 있으면 차설희가 가진 돈을 강제로 출금해 시스템에 전부 박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이렇게나 절실한데…….

난 멀뚱멀뚱 나를 기다리고 있는 수색조를 보자마자 속에서 열불이 끓어올랐다.

정말 한 대만, 한 대만 진심으로 쳐버리고 싶다.

난 달달 떨리는 손을 꽉 붙잡고는 후― 작게 숨을 골랐다.

“……김우정은 말했던 대로 하루 동안 금식이다.”

조용했던 열람실에 울리는 선고에 김우정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이젠 헛기침을 멈추고 다른 수색조의 부축을 받고 있는 김우정을 보며 말을 이었다.

“금식이니 당연히 물도 못 마시는 거 알고 있겠지?”

“…….”

“……이 새끼가 이제는 대답도 안 하네.”

“예, 예―! 알고 있습니다아―!”

난 소리치다 말고 갑자기 서러워졌는지 잔뜩 울상인 김우정 옆에 있는 수색조원들을 찬찬히 훑었다.

“저 새끼가 물 한 방울, 바닥에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라도 먹는 순간 김우정 말고 너희가 각오해야 할 거야.”

“예, 알겠습니다아아―!”

혹시나 내가 튀어나올까 서둘러 답하는 수색조원들.

난 만족스런 반응에 고개를 주억거리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이렇게나 고생하는데 또 아무것도 없으면 그건 내가 개새끼지.”

오늘 하루종일 채찍질만 했으니 이제 당근을 줄 차례였다.

난 내 옆에 묵묵히 대기 중인 박태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밑에 내려가면 애들 데리고 고자한테 가봐. 그냥 가면 놈이 알아서 세팅할 테니까.”

음―

난 일부러 말끝을 길게 끌며 다시 수색조원들을 휘둘러보았다.

그중 유독 다친 곳이 많은 멍청한 얼굴.

“어이, 너.”

“예, 예엡―!”

오늘 하루 두 번이나 물린 병신 수색조원이었다.

난 놈을 여러 번 손가락질하며 말을 이었다.

“네가 제일 먼저 골라.”

“……예, 예에에엡―! 알겠습니다아악―!”

잠깐의 당황과 그 당황을 가볍게 누르고 삐죽 튀어나오는 미소.

난 왠지 모를 불안함에 다시 한번 더 확인했다.

“내가 무슨 얘기하고 있는지는 알지?”

“예에엡―! 알고 있습니다악―!”

“씨발 이런 건 또 귀신같이 알아 처 듣네. 좀비 쳐 죽이는 건 백번 말해도 못 알아처먹더니.”

“……딸꾹!”

순간 확 올라오는 욕지거리에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가는 놈의 얼굴.

보면 볼수록 그냥 화만 나는 얼굴을 날파리 쫓듯 손을 휘젓고는 다음 순서를 손가락질로 알려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우정.”

“예에에엡―!”

실수를 대답으로 만회할 작정인지 제일 우렁찬 고함.

난 고개를 비스듬히 꺾으며 놈을 노려보았다.

“네가 생각하기에 너는 고생을 한 거 같냐?”

“…….”

내 물음에 입을 벌리다 말며 우물쭈물하는 김우정.

한참을 내 눈치를 보던 새끼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아, 아니요.”

“그렇지? 네가 생각해도 고생은 안 했지?”

“……예.”

“새끼가 그래도 양심은 있네. 김우정은 고생할 때까지 혼자 자.”

“…….”

난 금식을 당했을 때보다 더 절망적인 얼굴로 고개를 숙인 김우정을 보며 다시 박태하에게 말했다.

“내일은 김우정 먼저 확인한다.”

“예.”

그 말을 끝으로 열람실을 나서는 나를 뒤따르는 수색조.

내 바로 뒤에 바짝 붙은 박태하와 그보다 조금 더 뒤에서 헐레벌떡 우리를 따라오는 수색조의 발걸음이 들려왔다.

5층의 가장 넓은 구역인 대학원 열람실을 정리한 것으로 5층도 완전히 내 손에 떨어졌다.

사실상 거의 대부분의 좀비는 나 혼자 격살하고, 일부러 남겨둔 좀비들을 수색조가 뒤처리한 격이었지만―

뭐― 오늘은 이 정도에서 만족해야 했다.

내일은 더 나아지겠지.

왠지 아닐 것 같은 느낌이 팍팍― 왔지만 그래도 믿는 수밖에 없었다.

이 덜떨어진 수색조가 지금 내가 기용할 수 있는 최적의 인선이었으니까.

더군다나 앞으로 늘어날 수색조 교육을 내가 다 할 순 없으니 지금 이 첫 번째 수색조를 교육시키는 게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 새끼들이 늘어나는 수색조의 교육을 담당해야 했으니까.

“……어때?”

난 다시 2층으로 돌아가던 중 던지듯 물음을 내뱉었다.

골머리를 싸매게 하는 요소들 중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요소가 조용히 고개를 들어왔다.

제법 포괄한 것이 아주 많은 물음.

그저 ‘어때?’라는 짧은 물음에 박태하는 오랫동안 대답을 입안에서 굴렸다.

“……오랜만에 편하게 잔 것 같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난 박태하의 나지막한 뒷말을 들으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시원하게 한 발 빼서 그런 게 아니고?”

“…….”

내 농담에 작게 어깨를 들썩이며 웃어 보이는 박태하.

난 하루 만에 놀라울 정도로 뒤바뀐 곰 새끼를 차분히 훑으며 말을 이었다.

“구예리는 어때?”

“……모르겠습니다. 충격을 많이 받았는지 아무런 말 없이 쥐 죽은 듯이 있습니다.”

“밥은?”

“아침에 밥은 같이 먹었습니다. 물론 좀 심하게 깨작거리긴 했지만.”

허.

“그래도 밥은 먹는 거 보니까 죽기는 죽기보다 싫은가 봐. 그 무언의 시위 같은 것도 얼마 안 가겠네.”

내 예상에 동의한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거리는 박태하.

툭―!

난 놈의 어깨를 장난처럼 치대며 다시 입을 열었다.

“질리면 언제든지 얘기해.”

“…….”

“지금처럼만 하면 여자들에 깔려 뒤지는 것도 꿈은 아닐 거야.”

내 속삭임에 박태하는 조용히 침묵하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그에게 답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어느새 박태하의 입가에 자리 잡은 옅은 미소가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부회장이라는 감투가 그리 쓸모없는 감투는 아니네.”

툭―!

“학생회니까 당연히 아는 여학생도 많을 테고, 그럼 평소에 따먹고 싶다고 생각한 여자들도 많겠네.”

계속되는 속삭임에 놈의 미소가 노골적으로 진해진다.

“이 넓은 반석대에 생존자가 우리뿐일 리가 없잖아, 안 그래?”

“……예.”

가볍게 어깨동무를 한 박태하에게서 연신 흥분한 기색이 역력한 호흡이 이어진다.

“지금처럼만 하는 거야. 그럼 내가 알아서 챙겨줄 테니까.”

“……아닙니다.”

내 속삭임을 부정하는 뜬금없는 대답.

허나, 난 나를 응시하는 박태하의 눈빛을 보며 잔웃음을 흘렸다.

“더, 지금보다 더 잘하겠습니다.”

“……그래.”

툭―!

난 계속해서 잔웃음을 흘리며 놈의 어깨를 치하하듯 가볍게 두드렸다.

모든 방지턱이 사라진 한창때의 남자.

자기 욕망에 지나치게 솔직해진 남자보다 다루기 쉬운 사람이 또 있을까?

아니―

어쩌면 지금 이 모든 행동은 ‘연역적 지배’의 보정을 받았기에 나오는 반응일 수도 있었다.

아니다. 분명 받았을 것이다.

감염을 무효화시키는 스킬도 작동하는 마당에 100포인트를 투자한 전용 스킬이 작동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난 아직도 진한 미소를 얼굴에서 거두지 못한 박태하의 얼굴을 유심히 훑어내렸다.

감염을 무효화시키는 스킬보단 확실히 극적이지 않은 효과.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이 ‘연역적 지배’의 파괴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겉이 아닌 보다 깊은 곳에서 작동하는, 사람의 무의식에 관여하는 스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안에서부터 천천히 내게 잠식당하는 스킬.

난 어느새 눈앞에 다가온 내부 계단 문을 바라보며 짙게 미소 지었다.

이제 전문화 ‘백마 탄 폭군’의 위력을 확인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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