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폭군-41화 (41/120)

도서관의 왕 (6)

의외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건 큼지막하고 커다란 충격이 아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건 작고도 잦은 일들의 연속이다.

그렇게 그 사람의 ‘습관’이 돼버린 무언가가 곧 그 사람의 토대가 되어 그 사람 고유의 ‘행동’과 ‘감정’을 이끌어 내니까.

그런 의미에서 난 차설희에게 크고 강력한 충격이기도 했지만, 작고도 잦은 일들의 연속이기도 했다.

일과의 종료에서부터 함께 잠자리에 들기까지.

그렇게 함께 잠을 청하고 다시 일어나기까지.

하루의 반나절을 함께 하는 사람.

“병신이었지. 책으로 팔기엔 너무 흔해빠진 죽음이었어.”

아무에게도 하지 않는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를 나에게만 해주는 사람.

“나였다면 그렇게 뒤질 용기로 힘이 빠지기 전에 뭐라도 해봤을 거야.”

난 차설희에게 하루이자 습관으로 뿌리 박히는 중이었다.

1층을 탈환하기로 정한 디데이의 아침.

텅텅 비어있는 6층 제1열람실에서 반나체로 서로 몸을 겹치고―

부드럽게 분홍색 유두를 가지고 놀아도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끼익―

“죽을 용기로 차라리 뭘 하겠다는 충고가 제일 무의미한 충고라고 들었는데요.”

차설희의 살짝 고개를 돌리는 몸짓에도 작게 소리를 내는 간이침대.

도서관 사무실에서 얻은 간이침대 2개를 조잡하게 붙여놓은 제1열람실의 유일한 가구였다.

난 부드럽게 젖꼭지를 돌리는 손짓에도 아무렇지 않게 내게 말을 거는 차설희에게 옅은 미소를 내보이며 되물었다.

“그런 건 또 어디서 들은 건대?”

“공익 광고 찍을 때요. 보건복지부 홍보대사로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말이라서.”

난 아침부터 틱틱대는 평소의 차설희를 바라보며 젖꼭지를 가지고 놀던 손에 살짝 힘을 줬다.

“으흑―!”

갑작스런 고통에 어깨를 작게 들썩이며 눈가를 좁히는 차설희.

“……당신.”

“왜? 보건복지부 홍보대사로서 내 복지도 신경 써주셔야지.”

“하아― 전 그냥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용기도 있지만, 죽기 위해 필요한 용기도 있다는 말이었어요.”

“살아가는 것보다 위대한 용기는 없어.”

“모두가 당신 같지는 않아요, 한세계 씨.”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맞추고 있던 눈동자를 거두는 차설희.

난 다시 내게 등을 기대는 그녀의 가슴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럼, 넌?”

넌 어떻게 했을 것 같은데?

그녀의 귓가에 조용히 불어넣는 속삭임.

“…….”

그렇게 한참을 조용히 고민하던 그녀가 작게 어깨를 으쓱였다.

“잘 모르겠네요. 그래도 왠지 모르겠지만, 아마 자살은 안 했을 것 같아요.”

“그것 봐.”

틱―!

그녀의 대답에 다시 한번 힘을 주는 손가락.

덕분에 또다시 어깨를 들썩이며 빠르게 고개를 돌려오는 차설희를 보며 웃었다.

자신이 지금 몹시 화났다는 걸 보여주듯 살짝 찌푸린 미간.

“결국 너도 나랑 똑같은 생각을 했으면서.”

“전혀 아니에요. 그리고 또 티 나게 유도신문 하시는 거죠?”

내 술수에 당하지 않겠다는 듯 가늘게 좁혀진 두 눈.

의심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차설희에게 이번엔 내가 어깨를 으쓱였다.

“유도신문이든 아니든, 별로 상관없잖아?”

내 뻔뻔한 대답에 잔뜩 일그러지는 그녀의 얼굴.

난 그 생동감 넘치는 표정에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점점 가까워지는 내 얼굴에 자연스럽게 꺾이는 그녀의 얼굴.

조금씩 내게 다가오는 그녀의 고개를 부드럽게 피해 고개를 더 숙였다.

예상치 못한 내 회피에 잠깐 굳은 그녀의 목덜미에 조심스레 입술을 모았다.

쪽―!

언제나처럼 중독적인 체향으로 나를 반기는 그녀의 새하얀 목덜미.

차설희가 이젠 너무나도 익숙한 촉감을 반기듯 몸을 부르르― 떨어왔다.

“이젠 네가 이야기할 차례야.”

“하으― ……저, 저요?”

……가, 갑자기?

차설희에게서 쉽게 들을 수 없는 멍청한 반문.

쪽―! 쪽―!

난 아무 말도 없이 그녀를 재촉하며 조용히 그녀의 목에 영역을 표시했다.

“……흐윽―! 뭐― 아이돌 비밀 연애 얘기?”

“쪽―! 비밀인데 네가 어떻게 알아?”

“그냥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보면 다 보이거든요.”

아하―.

난 성의 없는 감탄사를 흘려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관심 없어. 또 그걸 지금 알아서 뭐에 써먹어? 난 그냥 너에 관한 이야기가 듣고 싶은 거야.”

“…….”

그녀는 해야 할 말을 고민하는 듯 또다시 침묵을 유지했다.

난 계속해서 그녀의 체향을 맡으며 조용히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너무 갑작스러워요. 막상 이야기하려 해도 뭘 얘기해야 할지도 모르겠구요.”

갑작스런 요구에 혼란스러운 티가 역력한 그녀를 부드럽게 안았다.

살과 살이 맞부딪히며 느껴지는 보드라운 살결의 감각.

“그럼 어쩔 수 없지. 이제부터라도 매일 하나씩 준비해 놔.”

“…….”

내 절충안에 그녀가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여온다.

그래도―

난 뒷말을 이으며 조심스레 그녀를 안고 있던 손을 움직였다.

“규칙을 어긴 건 어긴 거니까.”

“…….”

바로 조금 전에 내가 즉흥적으로 만들어 낸 규칙.

그녀로서는 알 턱이 없는 규칙과 벌인데도 그녀는 별다른 항의를 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머리에 얹은 손의 인도를 따라 조심스레 고개를 숙이는 차설희.

“…….”

그녀는 어느새 그녀의 코앞에 놓인 갈색의 젖꼭지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살짝 힘을 주며 그녀를 재촉하는 내 손길에 천천히 더 다가오는 고개.

쪽―!

난 가슴의 민감한 부분에서 느껴지는 축축함과 따뜻함에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쪼옥―! 쪽―! 쪽―!

부드럽게 이어지는 간지러우면서 기분 좋은 감각.

난 계속해서 이어지는 쾌감에 천천히 허리를 펴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쪼옥―! 쪽―! 쪽―!

그녀와의 입맞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의 선명한 정복감.

“아.”

난 정성스레 내 젖꼭지를 빨며 봉사하는 그녀의 정수리를 보며 작게 입을 열었다.

쪼옥―! 쭈읍―! 쪽―!

간지러움 때문인지 넘치는 쾌감의 여파인지 그녀가 입술을 오물조물 움직일 때마다 작게 움찔거리는 몸.

쪽―! 쭙―! 쭈웁―!

그런 내 반응을 관찰하듯 눈꼬리를 올리고 나를 보던 그녀가 오물거리던 입술을 조용히 멈췄다.

입맞춤하듯 내 젖꼭지에 봉사하던 입술이 부드럽게 가슴에 안착해 살짝 공간을 벌렸다.

베에―

아주 작게 들려오는 야릇한 소리와 함께 내 젖꼭지를 빙글빙글― 돌려오는 뭉텅이의 쾌감.

“아.”

베에에―

난 차설희가 냈다고는 상상도 못 할 천박한 소리와 눈꼬리를 올리고 내 반응을 관찰하는 천박한 얼굴에 얕은 신음을 내뱉었다.

계속해서 젖꼭지에 느껴지는 간지럽고도 따뜻한 감각에 저절로 등허리에서부터 짜릿한 섬광이 올라온다.

난 바지를 뚫을 듯이 빳빳하게 발기된 자지를 느끼며 그녀의 머릿결을 쓰다듬던 손을 다시금 옮겼다.

그녀의 얼굴을 양손으로 부여잡은 손길에 자연스레 목을 위로 완전히 꺾으며 나를 바라보는 차설희.

그녀는 천천히 다가오는 얼굴에 이번에도 조용히 눈을 감을 뿐이었다.

“으음―”

부드럽게 서로를 포개기 시작하는 촉촉한 입술들.

난 어느샌가부터 자연스럽게 내 가슴에 올려진 그녀의 손을 느끼며 옅게 미소 지었다.

이미 키스에 집중하고 있는 그녀를 느끼며 나 또한 조용히 눈을 감았다.

하루의 반나절을 함께하며, 비밀을 이야기하고, 사랑받는다는 확신을 준다.

어느 순간부터 이 모든 과정들이 그녀에게 없어선 안 될 습관이 될 때까지.

그녀가 내게 영원히 종속되는 첫 번째 단계였다.

어쩌면 그녀도 모르고 있을 그녀가 원하는 것을 아낌없이 퍼주는 것.

내가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될 때까지.

***

후우― 후우― 후우―

난 수색조의 거친 심호흡을 들으며 천천히 몸을 털었다.

꽤 오랜만에 보는 듯한 2층 정문의 광경.

신문지와 종이들로 덕지덕지 발린 유리창과 유리문.

난 가볍게 양손을 탈탈― 털며 뒤를 곁눈질했다.

나름 만반의 준비를 마친 수색조와 그들 뒤에 빼곡히 준비된 무거운 책장들.

끼이이익―

난 제일 가까운 책장 두 개를 가볍게 끌고 오며 이미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수색조를 훑었다.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달달 떠는 햇병아리들.

분명 저들을 억지로 데리고 1층을 확보하는 것보다 나 혼자 움직이는 게 더 효율적인 방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단기적으로도, 장기적으로도 그리 좋지 못한 방법이다.

인간이란 놈들은 언제나 일어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본성을 가지고 있다.

이대로 내가 모든 걸 다 해결해준다면 난 밥만 축내는 돼지 새끼들을 사육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진다.

내 캠프에 속한 이들은 모두가 어떤 식으로든 캠프에 이바지하여야 한다.

어떤 짓을 하더라도.

게다가 공통된 적에 대항해 공통된 과업을 수행하는 것만큼 공동체의 결속력을 쉽게 높이는 방법도 없다.

나치가 유대인을 증오하며 결속력을 높였듯이, 우리에게도 이미 죽도록 증오하며 적대해야 할 적이 사방에 널려있었다.

“명심해. 그냥 책장만 끝까지 미는 거다.”

꿀꺽―.

나지막한 독려에 마른침으로 답하는 수색조.

나 또한 저 햇병아리 새끼들에게 벌써부터 좀비를 죽이라 등을 떠밀 생각은 없었다.

저들은 1층의 바리케이드가 될 책장을 출입구까지 끌고 갈 운반 작업만 거들면 된다.

[♩~ ♪~ ♬]

그 순간, 작전의 시작을 알리는 음악이 1층에 울려 퍼졌다.

내부 계단 문을 열고 아주 조심스레 바닥을 미끄러졌을 스마트폰.

아끼고 아낀 보조배터리가 오프라인으로 저장돼있었던 음악 재생으로 변환된다.

“끼에에에에엑―!”

갑작스런 소음에 메아리가 겹치듯 한꺼번에 울리는 좀비들의 포효.

두두두두두―!

마치 땅이 울리는 듯한 감각을 느끼며 빠르게 유리문에 다가섰다.

턱―! 텅―! 끄드드득―!

닫혀있던 유리문을 강제로 밀어내는 소음.

1층과 2층을 분리해주던 믿음직한 유리문이 강제로 개방된다.

“끼에에에엑―!”

활짝 열린 공간으로 느껴지는 선명한 포효와 눈앞에 놓인 그리 높지 않은 계단.

난 내가 끌고 왔던 책장 두 개를 꽉 움켜쥐며 바닥을 박찼다.

팟―!

3~4계단씩 안정적으로 내딛는 발걸음과 내 손에 얌전히 고정되어있는 두 개의 책장.

무게를 더하기 위해 페이지가 두둑한 책으로 가득 차있는 책장이었지만, 스탯의 도움을 받는 내겐 전혀 무겁지 않았다.

툭―!

들고 온 책장을 1층 바닥에 놓으며 빠르게 주변을 휘둘러보았다.

계획했던 대로 1층 정문을 향해 미끄러진 스마트폰을 따라 달리는 좀비들과 뒤늦게 그 무리에 합류하고 있는 좀비들.

24시간 열람실과 학술자료운영실에서 여분의 좀비가 쏟아질 듯 튀어나오고 있었다.

팟―!

난 서둘러 다시 계단을 빠르게 돌파했다.

2층에서 다음 책장을 끌고 와 대기하고 있는 수색조.

놈들이 낑낑대며 끌고 온 책장을 다시 1층에 내려놓는 작업을 반복했다.

“끼에에에엑―!”

슬슬 음악에 어그로가 끌리지 않은 좀비가 나를 바라보고 발광하는 게 느껴졌다.

6개.

총 3번 책장을 옮긴 덕에 1층에 얌전히 자리 잡은 무거운 책장들.

“끼에에에엑―!”

뒤늦게 나를 발견한 좀비들이 몸을 사납게 흔들며 내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난 빠르게 계단을 내려오는 수색조의 선두를 바라보며 외쳤다.

“박태하!”

내 외침에 대답할 겨를도 없이 서둘러 손에 든 것을 내게 던져오는 박태하.

턱―!

난 손에 잡히자마자 착 감겨오는 손맛을 느끼며 빠르게 쇠 파이프를 휘둘렀다.

퍼어억―!

내게 제일 열정적으로 달려오던 좀비가 그대로 머리가 곤죽이 되며 공중을 날았다.

“끼에에에엑―!”

덕분에 잔뜩 집중된 이목으로 모두가 보게 된 새로운 먹잇감.

정문으로 내달리던 좀비들이 일제히 고개를 틀어 포효를 내지른다.

두두두두두―!

2층에서 느꼈던 것보다 훨씬 더 소름 끼치는 좀비들의 발 구름.

괴상하게 몸을 뒤흔들며 내게 간절히 손을 뻗는 놈들의 광기 어린 눈빛.

“밀어.”

난 이미 한 명씩 책장에 붙어있는 수색조에게 지시하며 수색조가 붙지 않은 여분의 책장을 손에 들었다.

콰아아아앙―!

그대로 빛살처럼 날아가 오른쪽의 24시간 열람실에 처박히는 책장.

한순간에 좀비들을 덮친 육중한 무게감과 책장에서 튀어나온 책들이 사방에 비산했다.

난 더는 오른쪽에서 나오는 좀비가 없는 걸 확인하고는 실내 조경용으로 보이는 제법 커다란 나무를 손에 들었다.

콰아아아앙―!

성문을 파괴하는 공성 병기처럼 앞으로 내달리던 좀비 일파를 쓸어버리는 나무.

“끼에에에엑―!”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를 포기하지 않은 좀비들.

“밀어―!”

“으으으으으으―!”

난 아직도 뒤에서 낑낑대는 수색조에게 고함치며 앞으로 내달렸다.

끼이이이익―!

그제서야 뒤에서 나지막이 들려오는 책장 끄는 소리.

난 잔뜩 울상을 짓고 달려오는 좀비들을 향해 책장을 끄는 수색조를 바라보며 몸을 틀었다.

쐐애애애액―!

바람을 빠르게 가르는 선명한 감각과 함께 시야의 정면에 들어서는 24시간 열람실.

난 열람실 문 앞에 잔뜩 찌그러진 채로 방치된 책장을 다시 손에 쥐고 빠르게 휘둘렸다.

퍼어어억―!

육중한 파쇄음으로 내게 다가오던 좀비들을 분쇄하는 책장.

푸화아악―!

난 얼굴까지 튀어 오른 썩은 핏물과 살점을 느끼며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더는 못 쓸 정도로 기괴하게 구겨진 책장을 앞으로 내던지며 남아있는 좀비들을 파악했다.

쿵―! 쿵―! 쿵―!

여전히 제법 많이 남아있는 좀비들과 아까부터 계속 사납게 울리는 충격음.

2층에서부터 내려와 책장을 끄는 직선의 주로.

그 레이스의 결승점일 1층 정문에 개미처럼 모여있는 좀비들이 보인다.

쿠웅―! 쿵―! 쿠웅―!

도서관 1층에서부터 퍼지는 소음에 일대의 좀비들이 다 모여들고 있었다.

굳게 닫혀있는 유리문을 사정없이 두드리는 수많은 좀비들.

점점 출입문을 지키던 유리가 위태롭게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끼에에에에엑―!”

게다가 내가 미처 정리하지 못하고 흘린 좀비들이 사정없이 수색조를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쿠웅―!

힘겹게 좀비 한 마리의 도약을 방패로 막아서며 땅에 엎어진 놈에게 몽키 스패너를 휘두르는 박태하.

난 그렇게 바닥에 둔기를 내려찍고 있는 박태하에게 무저항으로 내달리는 좀비를 막아섰다.

끄드드득―!

순식간에 좀비의 하체를 휩쓰는 무자비한 발길질.

단번에 휘청이며 바닥에 쓰러지는 좀비에게 박태하의 몽키 스패너가 잇따른다.

띠링―!

[복종의 공물]

[2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끄아아아악―!”

박태하가 5명의 운반책을 모두 보호하기엔 무리인 듯했다.

가장 선두에서 책장을 밀던 수색조원에게서 울린 처절한 비명.

퍼어억―!

난 서둘러 수색조원의 팔을 필사적으로 뜯고 있는 좀비의 대가리를 쇠 파이프로 분쇄했다.

“끄으으으으으―!”

이를 악물고 피가 샘솟는 감염 부위를 보며 바닥에 주저앉는 수색조원.

우우웅―!

놈의 팔을 부여잡고 난 서둘러 부분 무능을 주입했다.

“일어서.”

“으으으으으―!”

“일어서, 이 새끼야아―!”

굳이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수색조와 함께하는 이유.

놈들은 내가 없을 때 폭력을 담당해야 할 내 대리자들이었다.

그러니 그 대리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선 다른 이들보다 더 위험한 곳에서 캠프에 이바지하여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내게 받는 포상이 정당할 수 있고, 캠프원들이 수색조의 대리 심판에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으으으으―!”

내 고함에 질질 짜기 직전인 얼굴로 겨우 자리에서 일어선 수색조원.

“책장만, 책장만 밀라고 이 새끼들아―!”

끼이이이익―!

다시 무거운 책장들이 거북이처럼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끼에에에엑―!”

난 제법 수가 많이 줄은 좀비들을 격퇴하며 수색조와 발을 맞췄다.

생각보다 좀비를 침착하게 상대하는 박태하를 계속해서 거들어주며 책장이 마주하게 될 마지막 장애물을 응시했다.

정문 조금 앞에 배치된 출입 통제 게이트.

게이트 좌우에 위치한 작은 유리문이 책장이 지나갈 길을 꼼꼼하게 틀어막고 있었다.

쐐애애액―!

난 달려드는 좀비들의 대가리를 부수며 빠르게 출입 통제 게이트로 내달렸다.

끄드드드득―!

그리곤 그대로 발길질을 날려 출입 통제 게이트를 하나씩 부수기 시작했다.

끄드드득―!

왕권이 상승할수록 더 올라간 육체계 스탯 덕분에 이젠 쇠 파이프보다 더 강력해진 내 타격 도구.

난 서둘러 책장을 방해할 출입 통제 게이트를 날리며 앞을 응시했다.

“끼에에에엑―!”

유리창을 너머로 나를 노려보는 수십 개의 눈알.

쩌적―! 쩌적―!

그 좀비 무리를 힘겹게 막고 있는 유리문과 유리창이 소름 끼치는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끼이이이이익―!

드디어 출입 통제 게이트의 잔해를 헤치며 내 뒤에 근접한 책장들.

“으으으으으―!”

땀을 줄줄 흘리는 수색조원들이 이를 악물고 나를 지나쳐 정문 앞에 새로운 바리케이드를 배치했다.

쿠우웅―! 쿠우우웅―!

갑자기 더 많이 나타난 먹잇감에 말 그대로 발광을 시작하는 좀비들.

“끼에에에에엑―!”

유리문의 틈새를 타고 들어오는 좀비들의 포효가 저절로 뒷목을 오싹하게 만든다.

정문과 그 옆에 붙어있는 유리창에 빼곡히 들어선 다수의 좀비 무리.

계속되는 커다란 굉음에 도서관 일대에 방황하던 모든 좀비들이 다 모였다.

쩌저적―! 쩌저저적―!

점점 더 선명하게 유리창과 유리문의 단말마가 울린다.

“하악―! 하악―! 하악―!”

책장을 정문 앞에 배치하고 필사적으로 숨을 토해내던 수색조원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간다.

저 정도 무리의 좀비는 도서관에 갇혀있던 그들에게는 처음 보는 숫자의 폭력이겠지.

저 정도 숫자의 좀비들이면 지금 그들을 막고 있는 유리문과 유리창은 물론 수색조가 급하게 세운 바리케이드마저도 금방 무너트리고 그들을 덮칠 것이다.

예상이나 예측이 아닌, 아주 조금 뒤의 당연히 다가올 미래에 모두의 눈이 위태롭게 휘청였다.

“…….”

하지만 난 필사적으로 유리문을 깨부수려는 좀비들을 조용히 응시했다.

한 번도 날 실망시키지 않은 녀석이다.

놈이라면 가장 최적의 타이밍을 재고 있을 테지.

쩌저저적―!

유리가 깨지기 직전임을 알려오는 선명한 빗금.

유리를 가로지르는 빗금에서부터 순식간에 퍼져나가는 여분의 빗금들에 좀비들의 포효가 더 격해진다.

“끼에에에에엑―!”

유리 전체에 번져가는 빗금에 고개를 좌우로 털며 기쁨의 포효를 내지르는 좀비.

놈의 깨진 동공에 가득 찬 내 얼굴이 사뭇 기묘했다.

그렇게 나를 보며 한 번 더 입을 찢듯이 크게 벌리며 포효하던 좀비에게―

쿠우우우우웅―!

큼지막한 무언가가 추락했다.

마치 옥상에서 떨어진 일기의 주인처럼 순식간에 땅에 처박힌 육중한 무게.

첫 번째 추락을 시작으로 연이어 육중한 굉음이 정문 주변을 사정없이 폭격했다.

푸화아아아악―!

그렇게 떨어진 책장에 깔려 유리창 전체를 뒤엎어버리는 검붉은 색의 핏물.

띠링―!

[복종의 공물]

[43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난 밖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유리문을 완벽히 메운 썩은 핏물들을 조용히 응시했다.

아주 느릿느릿하게 내려오는 썩은 핏물과 주변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살점과 내장 조각들.

털썩―!

“……사, 살았다.”

이제야 다리에 힘이 풀린 건지 수색조원 김우정이 엉덩방아를 찧으며 속삭였다.

“산 게 아니라 이긴 거지.”

헐떡대는 숨소리만 가득한 곳에 조용히 울리는 내 목소리.

모두가 멍하니 내 얼굴만 바라보고 있는 이 순간에 난 제법 계산된 마지막 말을 던졌다.

“우리가.”

“…….”

내 마지막 말에 모두가 멍청한 얼굴로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툭―!

난 생각보다 더 묵묵하고 충실히 활약해준 박태하의 어깨를 두드리며 아직도 유리창을 가득 메운 살점과 핏물을 바라보았다.

띠링―!

[위협 수치가 일정 수준 미만으로 감소한 은신처를 확보하셨습니다.]

[당신의 은신처 : 반석대학교 중앙도서관.]

[속칭 ‘폭군’이 반응합니다.]

[영토(領土)를 확보하셨습니다.]

[지금부터 ‘폭군’이 확보하는 모든 영토는 왕권에 통합됩니다.]

[왕권 : 54 -> 104]

띠링―!

[일정 수치에 도달한 왕권 스탯에 의해 당신의 운명이 해금됩니다.]

[은신처 관리 항목이 폭군 전용 운명에 통합됩니다.]

[폭군 전용 운명]

[1. 건국 준비]

[1-1. 강제 명당 생성]

[천.지.인(天.地.人) 중 지(地)]

[폭군의 첫 번째 은혜를 선택하세요.]

[1. 근대화의 첫걸음]

[2. 사막 위의 오아시스]

띠링―!

[당신의 운명은 당신의 왕권이 높아질 때마다 차례대로 해금됩니다.]

[더 많은 백성을 거느리고, 더 많은 영토를 확보하며, (미해금 요소)하세요.]

“…….”

오랜만에 등장한 시야를 가득 메우는 상태창.

난 내 눈을 어지럽히는 글자들을 천천히 정독하곤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더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더 많은 땅을 확보하라.

어차피 운명이니 뭐니가 없었어도 당연히 그렇게 할 일이었다.

아―

그러니 내 운명인 건가.

난 잔웃음을 옅게 터트리며 정면을 응시했다.

“……단순한 치킨 레이스가 아니라.”

느릿느릿하게 유리창을 타고 내려오는 살점과 내장 조각.

아직도 뿌옇게 남아있는 검붉은 혈흔을 통해 투영되는 바깥의 사범대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 너머의 반석대학교와 그리고 그 너머의―

“땅따먹기였네.”

도서관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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