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탈 (1)
반석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본관 5층.
뚜벅― 뚜벅―
농과대 5층 복도에 울리는 두 명의 발걸음.
제법 지친 기색으로 스산한 복도를 걷던 두 남자 중 남도윤이 입을 열었다.
“오늘은 준기 네가 하나 더 사는 날이야.”
“어이구― 지겨워― 초콜릿바인지, 뭔 좆같은바인지.”
툭―! 툭―!
검 끝이 검붉은 핏물로 번들거리는 목검을 어깨에 습관처럼 치대며 미간을 찌푸리는 남자.
성준기의 동공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무언가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씨발― 내 피 같은 포인트가 다 어디로 가는지. 말 그대로 줄줄 샌다, 줄줄 새.”
“조금만 더 참자.”
“언제까지? 씨발― 비닐하우스에 있는 쌈 채소가 다 자랄 때까지?”
퉁명스레 툭― 내던지는 성준기의 대답.
“뭔 명색에 농과대인데 당장 먹을 수 있는 게 없냐. 어디 뭐 혁신적인 농업 기술이나 이런 거 배우는 데가 농과대 아니야?”
“그래서 본관 뒷산에 실습장도 크게 있잖아. 조금만 깊게 생각해보면 공대나 이런 곳보다 우리가 훨씬 상황이 좋을걸?”
“당장 먹을 게 부족한데 농사를 지을 수 있으면 뭐 하냐고. 막말로 우리가 농사를 짓는다고 다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는데. 생각해보니 이 새끼들은 농과대 학생이라는 새끼들이 농사도 안 짓고 방에 박혀서 씨발―!”
성준기가 대화를 이어가다 제 분을 못 이겨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톡―!
시뻘건 얼굴로 씩씩대는 성준기의 훤칠한 어깨를 토닥이는 또 다른 훤칠한 신장.
남도윤이 그를 향해 시원하게 미소를 내보이며 그를 다독였다.
“조금만 더 힘내자, 준기야. 상황이 계속 나아지고 있는 건 팩트잖아.”
“……그게 더 좆같아. 그래서 더 포인트가 아깝고.”
끄드득―!
목검을 꽉 쥐는 성준기의 손에서 들려오는 비정상적인 악력.
“옆관 학생 식당에서 얻은 식량들도 이제 다― 야아아아―!”
또다시 투덜거림을 시작하려던 성준기의 급작스러운 고함.
그가 목검을 쭉 내밀어 그들의 시야에 걸린 한 남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남도윤과 성준기를 보더니 멀리서도 확연히 보일 정도로 표정을 와락― 찡그리는 남자.
“너 이 새끼 일로―”
“준기야.”
남도윤이 쉴 새 없이 입을 오물거리며 다가오는 남자에게 소리치려던 성준기를 부드럽게 뒤로 물렸다.
대놓고 배를 살살 문지르며 그들 앞에 발걸음을 멈춘 남자.
“아 도윤 선배, 저 지금 좀 많이 급한데.”
“박재하 진짜 뒤질―”
“그래. 좋은 오후네, 재하야.”
남도윤이 또다시 툭 튀어나오려는 성준기를 막으며 부드럽게 웃었다.
“보아하니 화장실 가는 것 같은데, 우리가 서 있는 여긴 남측 윙이잖아.”
“아~ 선배.”
“화장실은 위생 문제 때문에 북측 윙만 쓰기로 약속했던 거 기억 안 나?”
박재하가 남도윤의 물음에 불만스럽게 얼굴을 구겼다.
“아~ 선배. 거긴 진짜 냄새 때문에 들어가지도 못하겠어요.”
“이제 물도 적지만 어느 정도 쓸 수 있어서 냄새가 덜해지지 않았나?”
“아 그러면 뭐해요. 그 조금 나오는 물도 아침에 썅년…… 여자들이 먼저 다 써버리는데.”
급작스런 욕설에 눈가를 좁히는 남도윤을 보며 서둘러 단어를 정정하는 박재하.
그가 보란 듯이 배를 빠르게 문지르며 살짝 무릎을 숙였다.
“선배 저 진짜 나올 것 같은데 한 번만 비켜주시면 안 돼요?”
“안돼.”
“아~ 진짜― 거긴 똥냄새 때문에 토할 것 같다고요.”
“그럼 코를 막고 싸면 되지?”
“입으로 맡아도 역겨워서 헛구역질이 나온다니깐요―!”
“그럼 입도 막아.”
“예에?! 아니 그럼 숨은 어떻게 쉬라고요.”
“어― 5초 안에 싸고 나오기?”
“아이―! 선배―! 안 그래도 배 아파죽겠는데 지금 뭔 소리를―”
이어지는 장난 같은 문답에 선명히 일그러진 박재하의 미간.
그가 짜증을 가득 담은 표정으로 남도윤을 노려보려다 무언갈 목격하고는 빠르게 표정을 지웠다.
“……그으― 나, 남측 윙으로 가서 싸면 되죠?”
무언갈 피하듯 서둘러 배를 꽉 부여잡고 남측 윙으로 가는 복도로 뛰어가는 박재하.
남도윤은 그 모습에 하아― 작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뭐? 왜?”
남도윤의 시선을 뻔뻔하게 흘려대는 뺀질스런 얼굴.
성준기가 남도윤의 눈을 피하며 습관처럼 목검을 어깨에 툭― 툭― 치대고 있었다.
“……또 애들 겁줬냐?”
“아니 듣자 듣자 하니까 애새끼들이 진짜 애새끼들처럼 징징대잖아. 그래서 검으로 겁을 좀 줬지. 누가 보면 우리가 지네 부모인 줄 알겠다니까.”
“우리가 임시 보호자는 맞으니까 맥락상 틀린 말도 아니네.”
“하아― 학생회가 언제 녹색어머니회가 됐습니까, 학생회장님.”
“그리고 검이 아니라 몽둥이겠지.”
“아이 씨―! 그럼 진검을 구해주던가, 이것도 어렵게 구한 건대.”
뚜벅― 뚜벅―
남도윤의 농담에 펄쩍 뛰는 성준기의 고함과 함께 재개된 발걸음.
남도윤은 목적지인 남측 윙의 구석으로 가기 위해 코너를 꺾으며 말을 이었다.
“어쨌든 우리보다 어린애들인 건 맞잖아. 더 어른인 우리가 잘 데리고 있어야지.”
“저기요, 남도윤 씨. 저 새끼들이나 저희나 같은 대학생입니다.”
“우린 이제 곧 취업해야 하는 반 어른이고요.”
“지겹다 씨발― 또 시작하려 하네.”
“지겹더라도 들어.”
“아― 좆같다.”
“좆같아도 듣고.”
“아― 남도윤 개새끼 같다.”
“남도윤 개새끼 같아도 듣고.”
“허―! 참나―.”
계속되는 도발에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치는 남도윤.
성준기가 그 일정한 톤으로 유지되는 음색에 결국 헛웃음을 내뱉었다.
톡―!
그런 그의 어깨를 장난스레 부딪치는 남도윤.
그 모습에 ‘하아―’ 한숨을 내지르며 성준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나저나 아까부터 주머니에서 뭘 그렇게 꼼지락거리냐, 딸치냐?”
“……미친놈.”
남도윤은 자신의 바지 주머니를 집요하게 내려다보는 성준기에게 헛웃음을 내뱉었다.
부스럭―!
작게 움찔거린 손아귀 덕분에 바지 주머니에서 흘러나오는 부스럭거림.
그 모습을 바라보는 성준기의 눈이 묘하게 가늘어진다.
“뭐― 내가 그렇게 눈치가 없는 사람은 또 아니잖냐. 문 앞까지만 가고 난 박재하 새끼 진짜 북측 윙에 똥 쌌는지 확인하러 가야겠다.”
“……아니야, 그런 거.”
“응~ 맞아. 그런 거.”
난감해하는 남도윤을 보며 더 능글맞아지는 미소.
하긴―
“옆에서 보니까 방송용 이미지도 아닌 것 같고. 그 정도면 대한민국 과탑녀 쌉인정이지.”
“…….”
“배정해준 방에서 안 튀어나오려 발악하는 년들보다는 훨씬 낫다. 인정.”
“……진짜 아니라니까!”
시뻘게진 얼굴과 필사적인 부정.
성준기는 남도윤에게 절대 볼 수 없었던 반응에 더 노골적으로 웃으며 그의 어깨를 툭― 밀었다.
에헤이~
“괜찮아~ 괜찮아~. 너도 이걸로 학생회장 먹으신 분이 뭘 그렇게 부끄러워하냐.”
남도윤은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빠르게 위아래로 휘젓는 성준기를 노려보았다.
“……공약이 좋아서 된 거야, 이 새끼야.”
“푸하하하―! 미친 새끼―!”
“그리고 하얀 씨가 자주 봤을 남자 아이돌 중에 나보다 못생긴 사람은 없을걸?”
“에헤이~ 그놈들이랑 너는 사이즈가 틀리지.”
툭―!
남도윤의 어깨에 가볍게 어깨동무하며 은근히 속삭이는 성준기.
“그놈들은 스토리가 없잖아, 스토리가. 널 봐.”
위기에 빠진 공주님을 구해낸 왕자님 아니야?
“이것보다 여자들이 뻑가는 스토리는 없다니까?”
“……씨발, 내가 이걸 왜 듣고 있지?”
“푸하하하하―!”
툭―! 툭―! 툭―!
남도윤은 자신의 어깨를 사정없이 쳐대는 성준기의 팔을 거칠게 밀어내곤 남측 윙의 제일 구석 방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농과대 교수님 집무실이라는 명패 위를 덧댄 A4 용지.
그 용지 안에 조금은 조잡하게 칠해진 초록 십자로고.
끼이이익―!
“더, 덕분에 머리가 하나도 안 아픈 것 같아요!”
“다행이네요. 또 아프시면 언제든 부담 없이 들려주세요.”
한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뒤에 누가 서 있는지도 모르고 바보같이 뒷걸음질 치는 한 남자.
그리고 부드럽게 닫히는 문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청아한 목소리.
“헤헤헤헤― 그, 그럼 내일도―”
툭―!
바보같이 웃으며 뒷걸음질 치던 남자의 발걸음이 커다란 턱에 막혔다.
깜짝 놀라 서둘러 고개를 돌린 남자의 시선에 담겨오는 목검을 든 훤칠한 남자.
“서, 선배님.”
“그래, 유준아.”
성준기가 제 발로 품에 들어온 남자와 가볍게 어깨동무를 나눴다.
“새끼가 또 의무실을 뭔 일대일 팬미팅마냥 써재끼고 있었네.”
“그, 그게 아니라 오늘은 진짜 머리가 어지러워서.”
“이 새끼는 입만 열면 구라네. 야― 내가 하얀 씨 귀찮게 만들지 말라 했지?”
그리곤 그대로 그를 데리고 왔던 복도로 유턴하기 시작했다.
“어우― 씨발 땀내 보소. 진짜 개역하네.”
“서, 선배님도 만만치 않거든요!”
“이 새끼가 하늘 같은 선배님한테―”
목검으로 후배의 배를 콕― 콕― 찌르며 남아있는 남도윤에게 윙크를 보내는 성준기.
남도윤은 ‘아니라고.’라며 입 모양으로 말하며 조심스럽게 초록 십자 로고가 그려진 문 앞에 섰다.
“후우―.”
그냥 서 있는 것 자체만으로 이미 쿵쾅대는 심장.
똑―! 똑―!
“네에~ 들어오세요.”
남도윤은 주인의 허락에 작게 심호흡을 내뱉으며 문을 열었다.
끼이이익―!
부드럽게 열리는 문 안으로 그를 반겨오는 의무실의 풍경.
농과대 교수가 썼던 책상을 중심으로 옆 관에서 얻은 편의점 약품들이 규칙적으로 배치되어있었다.
“잠시 만여~”
그리고 책장에 놓여있던 의약품 목록을 정리하고 있던 여자가 있었다.
교수 집무실 창문을 타고 들어오는 햇살을 머금은 하늘하늘한 뒤태.
하얀색과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뷔스티에 원피스가 몸을 돌리는 그녀에 맞춰 옅게 살랑거렸다.
“……도윤 씨?”
“예, 예― 조, 좋은 오후입니다, 하얀 씨.”
남도윤은 자신도 모르게 노골적으로 시선이 가는 부위를 필사적으로 외면했다.
뷔스티에 원피스의 검은 부분을 지나치게 부각시키는 숨길 수 없는 존재감.
“혹시 어디 다치셨어요?!”
“아, 아니요―!”
남도윤은 서둘러 묻는 차하얀에게 빠르게 손을 내저으며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그냥 드, 드릴 게 조금 있어서…….”
“저한테요?”
“네.”
“어쨌든 다치신 게 아니라니까 정말 다행이네요. 그럼― 일단 앉으실래요?”
“네.”
남도윤은 기계처럼 고개를 삐걱거리며 서둘러 차하얀이 안내한 자리에 앉았다.
책상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은 남녀.
남도윤은 아래쪽을 바라보지 않으려 노력하며 일부러 시선을 위에만 두었다.
그런 그의 동공에 담겨오는 온전한 차하얀의 얼굴.
보기만 해도 저절로 눈이 시원해지는 미모였다.
언니인 차설희가 화려했다면, 차하얀은 그저 보기만 해도 청량하며 또 청순했다.
하루종일 멍하니 얼굴만 바라봐도 즐거울 것 같은 편안한 풍경.
자기도 모르게 입을 헤― 벌린 남도윤의 귓가에 술자리에서 하이퀸즈에 관해 시시덕거리던 동기들의 말이 들려왔다.
연애는 차설희랑 해도 결혼은 차하얀이랑 해야 한다던 질 낮은 농담.
그때 당시에도 대놓고 얼굴을 찡그렸던 농담에 남도윤이 서둘러 머리를 휙― 휙― 돌려댔다.
“도윤 씨?”
“……아, 네, 네!”
“정말 괜찮으신 거 맞아요?”
“그, 그럼요. 아―!”
잠깐 몸을 들썩이며 허둥지둥거리던 남도윤이 서둘러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바스락― 거리며 그의 손에 들린 작은 물건 하나가―
우우웅―
묘한 울림과 함께 조용히 그의 손 위에서 두둥실― 떠올랐다.
천천히 묘기를 부리듯 그의 손에 부유하며 차하얀에게 다가가는 작은 물건.
“와아―.”
“커피 드시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남도윤이 환하게 웃으며 커피믹스 한 봉지를 받는 그녀를 보며 뿌듯하게 웃었다.
“……그냥 지나가는 말이었는데, 이렇게 신경 써주시면 제가 너무 죄송한데요―”
“에이― 아니에요! 옆관 탐색하다가 엄청 많이 얻었는데 마침 하얀 씨 생각이 나서 들고 온 거예요. 4층에 엄청 많이 쌓아 놨으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혹시나 그녀가 부담을 느낄까 필사적으로 그녀를 재촉하는 남도윤.
차하얀이 그런 남도윤의 몸짓에 풋―! 밝게 웃으며 책상에 놓인 생수병을 집어 들었다.
하루마다 마실 적정량을 검정 네임펜으로 표시해놓은 생수병이 조심스럽게 종이컵에 물을 흘려댄다.
쪼르르―
반쯤 찬 종이컵에 조심스레 뜯은 커피 믹스가 부어지고 봉지가 부드럽게 커피 믹스를 휘저었다.
“……잘 안 녹네요.”
그렇게 여러 번 휘젓다가 남도윤을 바라보며 장난스레 웃는 차하얀.
남도윤은 그 환한 미소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어색한 미소를 보냈다.
그리곤 계속해서 마음에 걸리는 말을 조심스레 내뱉었다.
“이렇게 무리하셔서 의무실을 안 지키셔도 돼요, 하얀 씨.”
“……그냥 불편하신 부위에 맞춰서 약만 드리는 일인데요, 뭘.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에요.”
“그래도 귀찮게 하는 얘들이 있어서 피곤하실 텐데―”
“아니에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될 것 같아서요.”
계속되는 만류에 그녀답지 않은 조금 오묘한 미소로 답하는 차하얀.
“언니가 해야 될 것 같다고 느낀 일은 무조건 하라고 했거든요.”
……나중에 꼬투리 잡힌다고.
제법 많은 것이 압축돼있는 게 느껴지는 그녀의 말.
그제서야 남도윤은 조용히 입을 닫고는 해야 할 말을 골랐다.
그녀의 언니, 차설희.
“……어― 옆관 정리도 곧 있으면 끝날 것 같아요. 그때가 되면 다시 한번 더 도서관으로 갈 수 있는 루트를―”
“아니요.”
차하얀은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쉽게 될 수 있는 일이었다면, 도윤 씨가 진작에 도서관으로 가주셨겠죠. 굳이 저 때문에 위험해지지 않으셨으면 해요.”
“그래도―”
“제 언니만 소중한 사람이 아니잖아요.”
차하얀은 다시 한번 그의 말을 끊으며 부드럽게 그와 눈을 맞췄다.
“도윤 씨도, 준기 씨도 모두 누군가에겐 제 언니만큼 소중한 사람이잖아요. 그런 분들을 제 소중한 사람 때문에 위험하게 만드는 건 안 될 일이에요.”
“…….”
자연히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잠시간 고개를 끄덕이던 남도윤이 옅게 잔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지금 같은 시기에 무조건 배워야 할 마음가짐이네요.”
“아― 그, 그 정도까진―”
“아이돌로 돌아가시면 제가 진짜 제대로 미담 한 번 커뮤니티에 쓰겠습니다.”
“찬물에 커피 믹스 부어 넣은 것도 쓰실 건가요?”
“아― 그건 저희 반석대 축제 공짜로 나와주시면 안 쓸게요.”
“풋―! 뭐예요, 그런 건 저희 사장님이랑 말씀하셔야 해요.”
“이럴 때 커피 믹스를 뇌물로 바친 연예인 지인 찬스 없나요?”
“…….”
계속해서 이어지던 대화가 갑작스레 멎었다.
남도윤을 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은 차하얀이 조용히 그에게 뇌까렸다.
“……도윤 씨는 언제나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씀하시네요.”
“당연하죠.”
잠시간의 틈도 없이 흘러나오는 확답.
“고작 좀비 하나에 세상은 끝나지 않습니다.”
남도윤은 차하얀과 눈을 맞추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는다는 기괴한 상황에 본질을 잊으시면 안 돼요. 원래 인간은 항상 인간을 죽여 왔습니다.”
제1차, 2차 세계대전.
모두가 지옥을 울부짖었을 대사건들.
“그게 백 년도 채 되지 않은 일들이에요. 병으로 치면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흑사병도 있고요. 적어도 유럽 내에서는 아직까지는 흑사병이 좀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이지 않았을까요?”
남도윤이 어깨를 으쓱이며 부드럽게 다음 말을 이었다.
“아마 흑사병에 걸린 유럽도 세상이 멸망하는 줄 알았을걸요? 그런데 저희는 흑사병을 교과서에서 역사로 배우고 있잖아요. 좀비도 별다를 거 없을 겁니다. 우리 모두가 힘을 합치면 곧 좀비도 교과서에나 나오는 과거가 되겠죠.”
……교과서, 우리 모두.
부드럽게 자신이 했던 말을 되뇌이는 청아한 목소리.
남도윤은 그 모습에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단지 우리만이 아니라, 도서관에 있는 친구들도 다 똑같을 겁니다. 제 지인들이라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어요.”
남도윤의 시선이 누군가를 그리듯 천장을 향했다.
“일단 태하라고 곰같이 듬직한 친구도 있고, 예리라고 아주 똑소리나는 친구도 있어요.”
그리고―
우진이, 민준이, 세준이, 세리, 창식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아주 그리운 얼굴과 이름들.
“마지막으로 하얀 씨의 언니인 설희 씨도.”
분명히―
“도서관에서 최선을 다하고 계실 거예요.”
단 한 조각의 의심도 없는 진실된 믿음.
차하얀은 그 흔들림 없는 얼굴을 마주하며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었다.
“도윤 씨가 말씀하셨던 친구분들을 빨리 뵙고 싶네요.”
도윤 씨의 지인분들이니 분명 모두가 좋은 분들일 거예요.
차하얀은 조용히 고개를 틀어 창밖을 응시했다.
그녀의 동공에 담겨오는 푸르른 하늘.
아니, 그 하늘보다 조금 더 먼 곳을 그리는 그녀의 눈동자.
“……물론 우리 언니도요.”
남도윤은 그런 차하얀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쿵― 쿵―
창밖을 바라보는 그녀의 옆태에 쉴 새 박동하는 심장.
“네.”
남도윤의 대답에 다시 고개를 틀어 그를 바라보는 차하얀의 얼굴.
자신의 대답에 환한 미소로 화답하는 그녀를 보며 남도윤은 멍하니 속삭일 수밖에 없었다.
“……반드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우수상 수상에 응원해주신 독자님들에게 모두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더 열심히 쓰고, 더 재밌게 쓰기 위해 노력하는 작가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