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탈 (2)
슬슬 날씨가 더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쨍쨍한 햇빛.
“끼에에에엑―!”
난 조금 멀리서 나를 발견하고 열심히 뛰어오는 좀비를 기다렸다.
퍼어억―!
내게 다가오자마자 그대로 픽― 쓰러지는 좀비 한 마리.
그리 힘을 주지 않은 둔기질에 절명한 좀비를 내려다보며 쇠 파이프를 까닥― 까닥― 흔들었다.
띠링―!
[힘 : 40(30+10)] [민첩 : 40(30+10)] [지능 : 1] [왕권 : 104]
[잔여 포인트 : 75]
전용 스킬 ‘천박한 품위’의 스탯 펌핑에 힘입어 40을 달성한 힘 스탯에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난 가볍게 허리를 숙여 땅바닥에 널브러진 좀비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그리곤 그대로 도서관 흡연 구역으로 놈을 내던졌다.
퍼억―!
정확히 시체들이 쌓인 작은 언덕에 안착하는 새로운 시체.
웨애애앵―!
그저 시체를 보기만 해도 귓가에 자동으로 재생되는 환청에 눈살을 찌푸리며 주변을 휘둘러보았다.
매번 도서관 창문에서 바깥을 바라보던 풍경이 아닌, 그 바깥에서 도서관을 바라보는 생소한 풍경.
현대적인 건축미가 진하게 담겨있는 총 6층의 도서관.
햇빛을 머금어 환하게 반짝이는 유리층들 중 유난히 휑한 구역을 다시금 응시했다.
좀비들의 간절한 돌파 시도에 이미 너덜너덜해진 유리창을 전부 정리한 도서관의 1층이자 로비.
그곳에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는 캠프원들이 보였다.
바리케이드 역할을 할 책장들을 테이프로 칭칭 감아 연결하려는 캠프원과 유리창이 사라진 공간에 암막 커튼을 치려는 캠프원.
아직 커튼이 쳐지지 않은 구역에서 열심히 캠프원들을 지시하고 있는 고장훈도 보였다.
그리고 책장 바리케이드 앞의 아직도 검붉은 핏물이 가득 베인 노면을 점거한 거대한 물체.
바퀴가 강제로 뜯긴 차량들이 새로운 바리케이드로 도서관을 둘러싸고 있었다.
난 새로 배치된 차량 바리케이드 안에서 분주하게 차 안을 수색하고 있는 수색조원들의 면상을 확인하곤 정면을 응시했다.
도서관과 대학을 이어주는 4차선의 중앙 도로.
그곳에 불규칙적으로 도로를 점거하고 있는 차량들을 주의 깊게 훑었다.
문이 열렸는지, 닫혔는지―
혹시 안에 미처 확인하지 못한 좀비가 있는지, 없는지―.
난 검정색 벤츠의 열린 운전석을 통해 차 안을 차분히 확인하곤 작게 고개를 주억였다.
도로에 방치된 차량들은 대부분이 엔진을 켜 놓은 채로 오래 방치된 탓에 차량이 방전되어있었다.
하긴―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차 밖으로 도망치기 전에 시동 여부를 확인하는 놈이 미친 새끼겠지.
난 주변에 널린 차량들을 다시 한번 확인하곤 제일 가까운 수색조원을 불렀다.
“야!”
“……예에엡―!”
내 호명에 헐레벌떡 달려오기 시작하는 익숙한 얼굴.
난 어리바리한 얼굴로 내 앞에 시립한 김우정에게 쇠 파이프로 뒤에 차량들을 가리켰다.
“여기 있는 차들부터 뒤져.”
“예―!”
작지만 누구든 알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하게 대답한 김우정이었지만, 빠릿빠릿하게 차량들쪽으로 달려가지 않았다.
무언가 말할 게 있다는 듯한 조심스런 태도.
고개를 비스듬히 꺾으며 놈과 눈을 맞추자 김우정이 침을 꿀꺽― 삼키곤 서둘러 주머니에 있는 무언가를 꺼냈다.
“저…… 이, 이걸 저쪽 티볼리에서 찾았습니다.”
나는 놈이 조심스레 내미는 작은 곽을 손에 들었다.
햇빛에 요란하게 빛나기 시작하는 겉면과 강조하듯 크게 박아 놓은 ‘003’이란 숫자.
게다가 읽으면 일본어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는 영어 스펠링.
“……오.”
난 내 손에 들어온 콘돔 한 갑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작게 웃었다.
그런 내 앞에서 콘돔을 건네고 조심스레 내 눈치를 보고 있는 어리바리한 얼굴.
툭―!
난 놈의 어깨를 가볍게 치며 허리를 옅게 숙였다.
“이걸 왜 나한테 준 거야?”
내가 이렇게 물을지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단번에 표정을 굳히는 김우정.
놈이 조용히 대답을 재촉하는 나를 보며 어버버 거리는 입을 서둘러 열었다.
“어, 어― 그,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서요.”
“…….”
힘겹게 대답을 마치고 마른 입술을 달싹이는 놈의 면상.
난 그 면상을 조금 오랫동안 지켜보다 끝에 살짝 웃어 보였다.
“……이제야 좀 쓸만한 수색조원이 된 것 같네.”
“…….”
“이제 좀 고생을 한 얼굴이고.”
툭―!
제법 세게 놈의 뺨을 두드리는 손길에도 놈은 전혀 기분 나쁜 내색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옅게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감추듯 어금니를 꽉 깨무는 티가 역력하다.
“그래― 이제 진짜 수색조원이 된 우리 우정이한테 뭘 줘야 하나?”
친근하게 놈의 어깨를 두르는 팔에 바짝 얼었으면서도 무언갈 기대하는 뜨거운 눈빛.
난 그 눈빛을 바라보며 조용히 뇌까렸다.
“역시 그거겠지?”
“…….”
내 물음에 나를 바라보며 아주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김우정.
난 그 모습에 헛웃음을 터트리며 놈에게 물었다.
“그동안 어지간히 다른 수색조원 친구들이 부러웠나 봐?”
“…….”
“하긴― TV랑 스마트폰도 없으니 이제 할 게 얘들이랑 노가리까는 것밖에 더 있나. 그럼 뭐 할 얘기도 거의 정해져 있을 테고.”
분명 김우정을 제외하곤 모두가 가진 새로운 즐거움을 대놓고는 아니더라도 은연중에 공유했겠지.
그런 내 물음에 아까보다 더 분명한 움직임으로 끄덕이는 놈의 고개.
“그래, 나도 다 좋은데 아직 한 가지 문제점이 남았다, 우정아.”
“…….”
“아주 중요한 문제점이 남았어.”
제법 긍정적으로 이어지던 대화에 갑자기 떨어진 부정적인 느낌.
꿀꺽―.
조용히 속삭여오는 내 목소리를 듣고 있던 김우정이 서둘러 마른침을 연신 삼켰다.
기대감이 가득하던 눈알에 서서히 차오르는 두려움.
난 그 동공을 뚫어져라 마주하며 빙그레 웃었다.
“남아 있는 여자들이 문제잖아, 우정아.”
“……예?”
꽤 오랫동안 멈춰있던 김우정이 끝내 멍청한 반문을 내뱉었다.
난 잔뜩 얼어있는 놈의 긴장을 풀어주듯 툭―! 어깨를 두드리곤 실실 웃어댔다.
“지금 내가 줄 수 있는 여자들은 이미 거르고 걸러진 여자들이잖아.”
“…….”
“솔직히 지금 고르라 해도 그리 마음에 드는 여자는 없지?”
솔직히 나한테만 말해 봐.
내 은근한 물음에 놈의 어리바리한 얼굴이 극대화되어 나를 멀뚱멀뚱히 쳐다봤다.
조금 더 놈의 대답을 기다리자 놈이 ‘헤헤―’거리며 병신같은 웃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새끼가 진짜로 솔직하게 말하네. 안에 있는 여자들이 들으면 상처받게.”
“…….”
급작스런 태도 변화에 만화처럼 단번에 표정을 굳히는 김우정.
점점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가는 놈의 얼굴을 보며 손에 들고 있던 콘돔 곽의 포장을 뜯었다.
내 손에 딸려 나오는 여러 개의 콘돔 중 하나를 뚝― 떼어 벌벌― 떨기 시작한 놈의 손에 쥐여줬다.
“다음에 노획한 여자들은 네가 첫 번째로 골라.”
“…….”
“그건 그때 시원하게 싸재끼는데 쓰고.”
툭―!
김우정은 다시 한번 가볍게 어깨를 치는데도 불구하고 멍하니 손에 들린 콘돔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난 그 멍한 얼굴을 보며 조용히 놈의 귓가에 읊조렸다.
“이번에도 솔직히 말해 봐, 우정아.”
“…….”
“어떤 면에선 지금처럼 사는 것도 나쁘지 않지?”
“…….”
내 말이 끝난 뒤에도 조금 오랫동안 콘돔을 내려다보던 김우정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네.”
그리곤 나를 보며 벌린 입에서 나오는 선명한 긍정에 부드럽게 웃어줬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지금처럼만 해. 그럼 내가 알아서 챙겨주니까.”
알겠어?
내 물음에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는 김우정.
“그럼 가서 저기 남아있는 차들 꼼꼼히 뒤져.”
툭―!
어깨동무를 풀고 놈을 가볍게 미는 손짓에 서둘러 앞으로 나서는 김우정.
놈이 내게 여러 번 고개를 숙이며 엉거주춤 손에 든 콘돔을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그리곤 빠르게 내가 지시한 방향으로 뛰어가는 것을 바라보며 천천히 등을 돌렸다.
난 손에 들린 콘돔 곽을 인벤토리로 옮기며 도서관 옆의 널찍한 공터를 휘둘러보았다.
규칙적으로 나누어진 하얀 페인트의 주차선과 군데군데 자리한 방치된 차량들.
이젠 도서관 주차장에 있는 차량들을 탐색할 순서였다.
아직도 제법 많은 차량들이 주차장에서 얌전히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광경에 저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역시 방치된 차량 수색이 시간 대비 효율이 나쁘지 않다니까.
또한 차 주인이 차 안에 뭘 박아놨을지 모르니 이상하게 랜덤박스를 열어보는 느낌도 충만했다.
콘돔, 군것질거리, 간단한 공구 혹은 취미로 하던 운동용품 등등.
1층 바리케이드 방비를 겸해서 하는 작업이라기엔 타율이 아주 높은 탐색 작업이었다.
“조장님.”
주차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나를 부르는 굵직한 목소리.
큼성큼성 내게 다가오는 박태하의 모습에 발걸음을 멈췄다.
“조장은 태하 너라니까.”
“…….”
명칭을 정리해주자 놈의 곰 같은 얼굴이 더 못생기게 일그러진다.
그럼, 나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고민하는 놈을 보며 부드럽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1층을 탈환하며 놈들을 빡세게 굴렸으니, 오늘은 당근을 줄 시간이었다.
“일단 됐다. 뭐 때문에 왔는데?”
“……아.”
그제서야 손에 든 길쭉한 봉지를 내게 내미는 박태하.
“담배네.”
“예.”
뜯긴 자국도 없는 담배 한 보루였다.
“……아.”
가볍게 담배 보루를 건네받는 와중에 들려오는 미약한 탄식.
그리곤 보루가 떠난 뒤 달달― 떨고 있는 박태하의 손을 보며 피식― 웃었다.
“흡연자였냐?”
“예.”
대답을 하는 와중에도 내가 들고 있는 담배 보루에 고정된 녀석의 동공.
이리저리 움직이는 보루를 따라 놈의 얼굴이 멍청하게 따라왔다.
“하루에 얼마 정도?”
“하루에 한 갑 정도 폈습니다.”
“그 정도면 평균이냐?”
“평균이라면 평균이고 많이 핀다고 하면 많이 피는 정도입니다.”
“뭔말인진 대충 알겠네.”
툭―!
난 보루를 가볍게 던졌다 다시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태하 너라면 식사 한 끼랑 담배 한 갑 중에 뭘 선택할래?”
“……지금이라면 담배 한 갑을 선택하겠습니다.”
“솔직하네. 그게 흡연자들 솔직한 대답이라 이거지…….”
난 주억이던 고개를 멈추고 박태하에게 입을 열었다.
“오늘부터 선택권을 준다고 공지해. 식량 배급 대신 담배를 선택할 수 있다고.”
“예.”
“너도 공지 전달하면서 담배 선택할 거면 고자한테 말하고.”
“예.”
좋아, 이걸로 식량 소모에 제법 유효한 제동을 걸 수 있겠네.
난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아직도 담배 보루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박태하를 조용히 응시했다.
구예리로 놈의 성욕을 자극했을 때와 비슷해진 얼굴 표정.
그동안 극한의 상황에 억눌러오던 흡연 욕구가 나아진 상황과 눈앞에 놓인 담배에 폭발하는 것이 선명히 느껴졌다.
놈들을 통제할 수단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게다가 ‘복종’을 되새기는 작업 또한 잦을수록 좋았다.
“박태하답지 않게 나한테 티를 내네, 계속.”
“…….”
“그만큼 간절하다 생각해야 하나, 건방지다 생각해야 하나.”
툭―! 툭―!
담배 보루를 가볍게 던지고 받으며 읊조리는 속삭임.
그제서야 박태하가 서둘러 표정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불쌍하게 쳐다보면 내가 시원하게 그냥 가지라고 할 줄 알았어?”
“……아닙니다.”
“아니긴― 얼굴에서 다 보이는데. 태하야―.”
“……예.”
난 날선 목소리로 놈을 부르며 표정을 죽였다.
그렇게 무표정으로 오랫동안 놈과 눈을 맞추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 안 했어?”
“……저, 저는―”
툭―!
가볍게 놈의 어깨에 얹은 손바닥에 크게 들썩이는 박태하.
경험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반응에 놈의 눈동자 또한 그날의 밤과 비슷해져 간다.
난 조금 더 허리를 숙이며 놈에게 읊조렸다.
“우리 태하가 그때 내가 했던 말을 잊어먹었나? 왜 눈알을 굴리지?”
“…….”
“정말 그렇게 생각 안 했어?”
“……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했는데?”
“잘했다고. 더 잘하라고 포상을 주실 줄 알았습니다.”
“…….”
툭―! 툭―!
아무 말 없이 놈의 어깨를 토닥이는 가벼운 손짓.
허나 그걸 받아들이고 있는 박태하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져 갔다.
“태하야.”
“……예.”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얘기하면 되지. 왜 아니라고 대답했니?”
“조, 조장님이―”
“내가 그 말을 듣고 화낼까 봐?”
놈의 말을 끊으며 부드럽게 묻는 질문.
박태하가 삐걱거리며 겨우 고개로 답했다.
“그걸 왜 네가 판단해?”
“…….”
“내가 뭐라고 했었지?”
툭―!
다시 한번 놈의 어깨를 가볍게 주무르며 이어지는 질문.
놈의 파르르― 떨리는 눈알을 바라보며 대답을 재촉했다.
“……생각하지 말고, 판단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잘 기억하고 있네.”
툭―!
난 어깨동무한 손에 들고 있던 담배 보루로 놈의 뺨을 툭― 치며 다시 물었다.
“다시 제대로 대답해 봐.”
담배 보루를 밥그릇 잃은 개새끼마냥 보고 있던 이유가 뭐야?
내 나지막한 울음에 박태하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하면 조장님이 담배를 포상으로 주실 줄 알았습니다.”
“그래.”
툭―!
난 더 깊게 놈의 뺨을 담배 보루로 밀어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하지 말고, 판단하지도 마.”
“…….”
“그건 내가 하니까. 그게 더 나은 결과를 만드는 방법이야.”
알겠어?
박태하가 내 물음에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
툭―!
그렇게 손에 들고 있던 담배 보루는 박태하의 품에 안겨줬다.
얼떨결에 담배 보루를 받게 된 박태하.
난 멍한 눈으로 ‘더 나은 결과’를 보고 있는 박태하에게 턱짓으로 도서관을 가리키며 말했다.
“가서 고자나 불러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