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폭군-44화 (44/120)

약탈 (3)

끄드드득―!

살벌한 단말마를 내지르며 뜯겨나가는 차 문.

난 혹시나 울릴 차량 경보음을 대비하여 주먹을 움켜쥐었다.

─────.

그런 내 대비가 무색하게도 아무런 경보도 내뱉지 않는 차량.

난 백미러 앞에 달려있는 검정색의 블랙박스를 훑고 나서야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블랙박스 때문에 방전됐네.’

하긴― 지금이 한겨울도 아니고.

주차된 차량이 방전되는 대부분의 이유는 아마 켜놓은 채 방치된 블랙박스 때문일 것이다.

별로 탐색할 거리도 보이지 않는 운전석 쿠션을 무릎으로 누르며 뒷좌석을 훑었다.

그런 내 시야에 들어오는 분홍색 바구니.

차 주인이 목욕탕에 들고 다니는 목욕 바구니로 보였다.

부스럭―

서둘러 바구니를 챙겨 들며 안에 있는 내용물을 살폈다.

칫솔, 치약, 샴푸, 린스에 뭔 어려운 영어로 가득한 알록달록한 목욕용품들.

딱 봐도 남자가 아닌 여자가 쓰던 목욕 바구니에 저절로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이건 차설희에게 주면 되겠네.

“……저어― 관장님.”

그 순간 뒤에서 나를 부르는 조심스런 목소리.

난 목욕 바구니에 조수석에 방치된 담배 한 갑과 라이터를 집어넣고 운전석에서 몸을 빼냈다.

턱―!

그리곤 얼떨결에 목욕 바구니를 받아드는 고장훈을 보며 말했다.

“담배는 고자 네가 챙기고. 라이터도 나올 때마다 꼬박꼬박 챙겨놔.”

불은 언제 필요할지 모르는 중요한 요소니까.

게다가 조만간 흡연 구역에 역겹게 방치된 좀비 시체들도 한 번 싸그리 태워버려야 하기도 했다.

위생을 걱정하면서 주변에 방치된 시체를 태우지 않는 것만큼 병신 같은 짓도 없었다.

“그리고 그 기름 같은 거 차에서 빼낼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았나? 그런 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할 줄 아는 새끼 찾아 봐.”

“옙!”

고장훈이 연신 고개를 큼직하게 끄덕이며 확실히 알아들었다는 걸 내게 어필했다.

“그리고―”

한창 과업 지시를 하던 와중에 작게 가늘어지는 눈가.

고자 놈이 제일 처음 나를 부른 호칭이 확연히 어색했다.

“헤헤헤― 어떠십니까? 마음에 드십니까?”

그런 내 눈치를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서둘러 묻는 고장훈.

난 얼굴을 와락― 찡그리며 놈에게 물었다.

“혹시 도서관장의 관장은 아니겠지?”

“맞습니다. 이제 조장님이라 부르는 건 격에 맞지 않고 그렇다고 폐하나 전하 같은 말은 싫어하시니까― 그럼 장소와 격에 맞게 도서관의 주인이시니 도서관장.”

어떠십니까?

“춘식이와 제가 머리를 맞대고 또 맞대서 나름 꾀를 내봤습니다요, 헤헤―”

분홍색 목욕 바구니를 든 채로 평소처럼 굽신거리는 고장훈.

놈의 쭉 찢어진 눈과 싱글벙글한 입가를 보며 저절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그럼 반석대를 먹으면 총장이고, 서울시를 먹으면 시장이라 부를 거냐?”

“그렇게 불리길 원하신다면, 당연히.”

내 물음에 어떠한 표정 변화 없이 조금 더 깊게 숙이는 허리.

난 당연함이 가득한 놈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잔웃음을 실실 흘렸다.

“……어이가 없네.”

“헤헤―”

연신 내 눈치를 보며 웃어대기 바쁜 고장훈.

난 놈에게 마음대로 하라는 의미로 손을 가볍게 휘젓곤 다시 입을 열었다.

“됐고. 진행 상황이나 빠르게 읊어봐.”

“옙―! 6층은 말씀하신 대로 정리를 거의 끝냈습니다. 열람실이랑 세미나룸에 있는 불필요한 가구나 장식품도 모조리 아래층으로 옮기는 중입니다.”

권력을 가장 시각적으로 잘 나타낼 수 있는 요소는 ‘높이’다.

높은 곳에 있는 것, 높은 층에 사는 것.

남들보다 더 위에 산다는 것은 곧 그가 밑에 있는 이들보다 더 많은 권력을 누리고 있다는 증거였다.

“식량들도 전부 지하에서 6층 제2열람실로 옮기고 있고 우진이랑 민준이가 철저히 감독하고 있습니다. 다 옮기면 곧바로 제2열람실을 새로운 식량 창고로 공표하고 세준이를 통해 꼼꼼히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좋네.”

“헤헤― 당연히 말씀하신 대로 세미나룸 또한 수색조원들의 방으로 새로 배정하고 배급된 여성 캠프원도 함께 배정하겠습니다.”

최상층에 산다는 것은 그 조직의 최상위 계층이라는 확실한 증표였다.

난 수색조원들의 쉼터를 6층에 배정하여 남들과는 다르다는 우월감과 충족감을 제대로 자극시켜 줄 작정이었다.

“6층의 세미나룸이 총 몇 개지?”

“총 14개의 세미나룸이 있고 현재 수색조원들의 방으로 5개 배정했습니다.”

그러니 9개의 세미나룸이 더 있다는 말이네.

“그동안 안세준이랑 그놈 여자친구가 식량 가방을 제대로 못 지킨 적이 있었나?”

“아직까지는 기록 간의 오차 없이 잘 지키고 있습니다.”

“좋아.”

난 만족스레 고개를 주억거린 후 다시 고장훈에게 입을 열었다.

“오늘 저녁에 캠프원들 전부 모아서 똑똑히 전해. 안세준 또한 자기 여자친구와 함께 6층 세미나룸에 배정될 거라고.”

배정 이유는 그동안 식량 가방을 충실히 지켜온 포상.

“옙.”

잠시의 틈도 없이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는 고장훈을 바라보다가 일순간 갑자기 옅은 미소가 새어 나왔다.

저녁에 캠프원들에게 이 사실을 공지했을 때 그들의 얼굴이 자연스레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캠프원들에겐 어쩌면 너무 어이가 없는 포상일 테니.

애초에 도둑이 털 생각도 안 하는 집을 지킨 개새끼에게 개껌을 던져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2층 생존자 모두의 앞에서 아주 거하게 본보기를 보인 후에 그 누구도 내 식량 가방을 털 생각을 하지 못했으니까.

게다가 그 본보기가 식량 가방을 잘 지켰다는 이유로 포상을 받는다라…….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겠지.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게 이 포상의 핵심이었다.

사람이란 더는 올라갈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손에 들고 있던 돌멩이를 위에 있는 자들에게 던지니까.

만약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존재하고 그것을 목도했다면, 그 안을 비집고 들어가려는 자의 뒤통수에 돌을 던지는 게 인간의 본성이었다.

올라갈 수 있고, 올라갈 방법을 안다면 인간은 위에 서 있는 자들을 적대하지 않는다.

자신도 모르게 위에 있는 자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니까.

단지 아무도 훔칠 생각도 안 한 식량 가방을 잘 지켰다는 의미로 6층으로 올라간 별 볼 일 없는 캠프원.

그 별 볼 일 없는 캠프원, 안세준이 곧 자신이 될 수도 있으니까.

단지 내 말을 잘 들었다는 것만으로 내게 선택받았다는 의미로 통할 6층에 갔으니.

그들도 내 말을 잘 듣는다면 6층에 올라갈 수 있다는 희망을 모두에게 주는 것이 핵심 중의 핵심이었다.

아― 그리고…….

“……확인했어?”

내 은근한 물음에 서둘러 내게 가까이 붙는 고장훈.

놈이 아무도 보이지 않는 와중에도 입가를 가리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예. 정말로 관장님 말처럼 물이 나옵니다.”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고장훈.

띠링―!

[폭군 전용 운명]

[1. 건국 준비]

[1-1. 강제 명당 생성]

[천.지.인(天.地.人) 중 지(地)]

[폭정의 은혜 (항상 감추기)]

[사막 위의 오아시스 Lv.1]

[폭군이 확보한 영토에 한하여 하루마다 식음이 가능한 지하수 300L를 생성 및 저장합니다.]

[Tip : 운명 보상으로 선택한 은혜에는 포인트를 통한 단계 상승이 불가능합니다. 전용 스탯을 높여 더 많은 운명을 해금하세요. 운명이 해금됨에 따라 당신의 은혜도 자연히 단계를 상승할 것입니다.]

도서관을 점거한 후에 나를 반겼던 상태창 메시지 중 유난히 강조되던 선택지.

[폭군의 첫 번째 은혜를 선택하세요.]

[1. 근대화의 첫걸음]

[2. 사막 위의 오아시스]

은혜 1번은 근대화니 뭐니 하는 것을 봐서 웬만하면 전기에 관련된 요소일 확률이 높을 것 같았고, 2번은 그냥 딱 봐도 물에 관련된 요소였다.

그리고 난 지금 이 상황에서 보다 절실하게 필요한 요소를 선택했다.

“변기에 물도 내려가고?”

“예. 전기가 다 끊겼는데 물이 내려가더라니 깐요!”

후― 좋아.

그래, 그렇게 깐깐하게 굴진 않는다 이거지.

난 후회 없이 선택한 요소에서 제일 껄끄럽게 걸려 오던 장애물이 치워진 것 같아 후련하게 웃었다.

“정말 이건 기적보다 더한 기적입니다. 그 옛날의 예수도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빵과 물고기를 불린 적은 있지만 그 누구도 무에서 물을 만들어내진 못했습니다!”

“……기독교였냐?”

또다시 고장훈이 눈을 심하게 번쩍이며 가동을 시작하려는 기미가 보여 서둘러 놈에게 질문을 던졌다.

“헤헤― 이게 철학과 종교는 서로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가 없는 요소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제가 중세철학―”

뭔― 한 번 눈치를 줘도 굳세게 튀어나오는 때아닌 철학과의 바이브에 자연히 표정이 가라앉았다.

그런 내 얼굴을 보고나서야 합― 입을 크게 다무는 고장훈.

“……무교입니다.”

“그래.”

드디어 기어 나온 질문의 답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잊어먹을 뻔했던 지시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저녁에 다 모였을 때 물이 나온다는 소식도 공지해.”

“옙.”

“그리고 그때부터 물 쓰는 새끼들 있나 없나 감시 잘하고.”

“옙.”

“혹시라도 물 몰래 쓰다 걸리면 바로 나한테 끌고 와.”

“……옙.”

아주 제대로 본보기를 보여줄 테니까.

사치품인 담배나 콘돔뿐만 아니라 물 또한 내가 주는 포상으로 관리할 생각이었다.

그러니―

“확실히 체감 가능하게 오늘 굴린 새끼 중에 제일 열심히 한 새끼는 샤워시켜줘서 모두에게 보여주고.”

“옙.”

“아직 지하수가 충분치 않으니까 대소변은 그대로 하루마다 모아서 땅에 묻어.”

“옙.”

그리고―

지시를 하고 또 해도 끝이 없는 상황.

다음 해야 할 지시를 조용히 고르고 있던 와중에 급박한 발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도로에서부터 나를 보며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어리바리한 얼굴.

“조장니이임―!”

하악―! 하악―! 하악―!

서둘러 내 앞에 멈춰서 거칠게 쉼호흡을 하던 김우정이 도로를 가리켰다.

“조, 조장님이 살펴보셔야 할 게 있습니다!”

그런 김우정의 귓가에 조용히 다가가는 고장훈의 고개.

놈이 무어라 속닥거리더니 그걸 듣고 있던 김우정이 ‘아―.’거리며 작게 탄성을 흘렸다.

“과, 관장님이 살펴보셔야 할 게 있습니다!”

나를 부르던 호칭을 정정하며 여전히 도로를 찔러대고 있는 놈의 손가락.

조장이나, 관장이나―

내가 놈에게 안내하라는 뜻으로 턱짓을 하자 김우정이 서둘러 왔던 길을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런 김우정의 뒤를 따르는 나와 고장훈.

뚜벅― 뚜벅― 뚜벅―

세상 급하게 발을 오가며 나를 안내하는 김우정 너머로 이미 한 자리에 모여 있는 수색조원들이 들어섰다.

퍼억―!

[복종의 공물]

[1 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그 순간 내게 울려오는 투박한 둔기질 소리와 상태창 알림음.

도로의 한복판에 완전히 엎어져 있는 트럭 한 대가 시야에 담겨온다.

그리고 그 트럭의 엎어진 조수석 위에 올라선 박태하가 몽키 스패너를 거두며 얼굴에 튄 썩은 피를 소매로 훔치고 있었다.

“트럭이 완전히 엎어져 있어서 몰랐는데 위에 올라타니 로고가 조장, 아― 관장님이 확인하셔야 할 차량인 것 같아서, 그래서―”

서둘러 트럭과 나를 번갈아보며 정제되지 않은 사전 정보를 어버버 거리는 김우정.

대충 맥락을 파악했단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곤 발걸음의 속력을 높였다.

“조장님.”

내가 다가온 것을 확인하곤 서둘러 고개를 숙이는 수색조원들.

난 놈들에게 작은 끄덕임으로 화답한 후에 엎어진 트럭 뒤편에 섰다.

제대로 트럭을 훑어보게 된 뒤에 자연스럽게 기대감으로 물드는 얼굴.

수색조원들이 왜 나를 급하게 불렀는지 바로 알 것 같았다.

“편의점 발주 차량인 것 같습니다.”

엎어진 트럭 위에서 로고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내게 전달하는 박태하.

난 묘한 미소와 함께 회색빛의 잠금장치를 손아귀에 붙잡았다.

만약 이게 대학 내에 존재하는 편의점 발주를 책임졌던 차량이라면―

여긴 정문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도서관 쪽 도로이고 더럽게 넓기만 한 반석대의 초입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이 차량 하나가 대학 내 편의점 전체를 담당하진 않았겠지만―

끄드드드득―!

제법 진심을 다한 손아귀에 종이처럼 뜯겨져 나가는 잠금장치와 차 문.

단번에 제 속을 내보인 트럭 안에서 쿰쿰한 냄새가 새어 나왔다.

끄드드드득―!

남은 반대편 문을 가볍게 떼어내며 정말 오랜만에 햇빛을 머금었을 트럭 안쪽을 조용히 응시했다.

차량이 엎어진 탓인지 제법 난잡하게 어질러진 갈색 상자들.

이미 앞쪽 단과대 편의점을 들렸던 후였던지 뜯겨져있는 상자 안에 있는 내용물이 한껏 튀어나와 있는 것도 보였고―

유리병으로 된 음료수가 깨진 탓에 변색된 상자들도 여럿 보였다.

하지만 내 눈에 보이는 것은 그렇게 망가진 듯한 식량들보다 훨씬 더 많은 멀쩡히 보관돼있는 식량들이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눈대중으로 식량을 새어나갈 때마다 찢어질 듯 입가에 맴도는 미소.

“……오.”

결국 짧은 감탄사를 토해낸 나는 작게 입을 벌렸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잭팟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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