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왕을 꿈꾼다 (3)
“와― 이 새끼 와꾸는 진짜 볼 때마다 놀랍네.”
헛웃음과 함께 천장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좌우로 휘젓던 그가 아직도 머금은 미소로 강청신을 응시했다.
“야―.”
“……네, 넵.”
“너는 어느 쪽 말이 맞는 것 같냐?”
“…….”
그저 듣기만 해도 머릿속에서 사이렌이 빨갛게 빛나는 물음.
강청신은 일부러 멍청한 얼굴을 보이며 눈을 데구르르 굴렸다.
“……그래, 네가 뭘 알겠냐.”
툭―!
가벼운 스윙으로 강청신의 뒤통수를 후리는 팽현재.
“그래도 너한테는 세상이 이렇게 좆된 게 로또일 수도 있겠네. 너는 이게― 좀 심각하잖냐.”
강청신은 얼굴 앞에 손바닥 슥슥― 흔드는 팽현재에 어색하게 웃어주었다.
“뭐 제일 좆된 건 원래 지세상처럼 나대던 기생오라비 새끼들이지. 그러고보니― 여기 회장이던 남도윤 그 새끼도 얼굴로 학생회장 먹은 남창 년이잖아.”
팽현재가 진한 미소와 함께 총학생회실을 천천히 휘둘러보았다.
“아― 그 새끼도 만약 살아있으면 도서관에 있지 않나? 아 도서관 하니까 또 손발이 덜덜 떨리네.”
“…….”
“씨발― 빨리 하이퀸즈도 따먹어야 하는데. 특히 차하얀, 그 씨발년 그 빨통 존나 쥐어뜯듯이 잡으면서 질싸 한 번 시원하게 해야 하는데.”
“…….”
강청신은 필사적으로 표정을 관리하며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런 자신과는 상관없이 이미 무언가를 상상하듯 허공을 보던 팽현재가 툭― 다시 강청신의 뒤통수를 후렸다.
“뭐 그년이 살아있으면 자기가 알아서 살려고 여기로 오겠지. 내가 살다 보니까 사람마다 운명이란 게 있더라고.”
무언가 비밀을 말하듯 살짝 자신에게로 고개를 숙이는 팽현재.
그가 자신을 보며 실실 웃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뭐 하라는 대로 그냥 하니까 물이 나오고 전기가 나오고…… 그러면서 이걸 뭐 ‘무치(無治)의 안정’이니 뭐니라고 하던데…… 야.”
“……넵.”
“넌 무치의 안정이 뭔지 아냐?”
강청신은 그의 물음에 다시 눈을 데구르르 굴렸다.
“……어― 자,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씨발― 오타쿠 새끼한테 내가 물어볼 걸 물어봐야지, 스미마셍이다, 새끼야!”
툭―!
유서준을 밀 때처럼 휙― 밀려나는 몸.
강청신은 눈치 빠르게 서둘러 철문을 향해 걸었다.
“아― 오랜만에 고추 새끼들이랑 대화를 너무 오래 했더니 발기가 다 죽었네.”
그런 그의 등 뒤로 다시 침대 쪽으로 걸어가는 팽현재의 발소리가 울렸다.
끼이이익―!
일단 뭐가 됐든 서둘러 철문을 열어젖힌 그의 시야에 들어서는 한 남자.
뭐가 급한지 발을 이리저리 동동 굴리던 그가 강청신을 보자마자 인상을 한껏 찌푸렸다.
“아이 씨발 존나 늦게 나오네. 네가 신입 맞지?”
“……네, 넵!”
“빨리 따라와라, 조원들한테 데려다줄 테니까.”
그는 자기 할 말만 마치고 서둘러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통과해 계단을 내려갔다.
5층이 아닌 4층으로 강청신을 안내하는 남자.
강청신은 새삼스런 눈으로 시야에 들어선 4층을 응시했다.
그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동아리들이 모여있던 층.
흐윽― 흑흑― 흑―!
허나 중간중간 동아리 방을 여는 남자들을 따라 흘러나오는 울음소리에 낯빛이 어두워졌다.
슬슬 해가 지는 밤에 맞춰 밝혀지는 정말 오랜만에 보는 형광등에도 이상하게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런 자신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그저 빠르게 안내를 마칠 생각뿐인 남자가 오른쪽 가장 끝에 있는 동아리방 문을 열었다.
밴드 동아리 방이었던 듯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드럼과 벽에 세워진 기타들.
“야, 신참이다.”
“……어― 이번엔 우리 조야?”
“그래. 그럼 난 데려다줬으니 간다.”
안내를 맡았던 남자가 강청신을 동아리방에 밀어 넣고 그대로 다른 동아리방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강청신은 구석에 앉아 자신을 인계받은 남자를 멀뚱히 내려다보았다.
나체의 상태로 바닥에 주저앉아 숟가락을 들고 있는 남자.
그의 손에 들린 햇반과 그 햇반에 올려진 노란 양념이 눈에 확 띄였다.
그는 햇반에 3분 카레를 비벼 먹고 있는 듯했다.
“와― 와꾸 보소.”
새로운 남자가 건네는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한 첫 마디.
아무리 강청신이 막중한 임무를 맡고 왔어도 이 정도쯤 되면 슬슬 표정 관리가 조금 힘들어질 참이었다.
가까스로 유지한 표정을 이리저리 살피며 장난스레 웃은 남자가 카레를 한 숟가락 더 퍼먹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운이 좋네. 여기까지 왔으면 좀비한테 뒤져도 아다로 죽진 않을 거 아니야.”
실실 웃으며 동아리방 안쪽을 턱짓하는 남자.
그 남자의 턱짓을 따라가 보면 동아리방 구석에서 덜덜 떨고 있는 세 명의 여자가 보였다.
지금껏 있는 줄도 모를 만큼 숨을 죽이고 몸을 말고 있는 여자들.
“아 쓰리섬 조지려고 3층에서 한 명 더 데리고 왔는데 일이 이렇게 되네.”
장난스레 웃으며 낄낄거리는 남자 뒤로 다시 동아리방 문이 열렸다.
끼이이익―
“뭐야, 이번엔 우리 조 차례야?”
“어.”
수건으로 젖은 몸을 탈탈 털며 들어오는 남자.
그가 자신의 얼굴을 위아래로 훑더니 천천히 입을 벌렸다.
“와― 와꾸 보소.”
‘와― 와꾸 보소.’
놈과 똑같이 마음속으로 말한 강청신이 부글거리는 속을 필사적으로 감췄다.
‘저 씨발 새끼, 자기도 좆같이 못생겼으면서.’
허나, 마음속 소리까진 듣지 못하는 남자가 수건으로 머리를 탈탈 털면서 카레를 먹던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아― 바둑부 동아리방에서 오늘도 왕 게임 한다던데?”
“뭐어?! 아니 나한테는 한다는 말 없었는데?”
“새끼야― 네가 시작하자마자 데리고 온 년들 그냥 박아대니까 너한테 안 알려주는 거 아니야, 병신아.”
“아니, 아―! 그래서 아까 그 씹새끼가 그냥 냅다 뛰어갔구나, 그 씨발 새끼!”
“킥킥― 이거 완전 블랙리스트네, 병신.”
“아니 그럼 여자가 보지를 벌리고 있는데 그걸 그냥 참아? 그건 게이 새끼들이나 하는 짓이지!”
“그냥 쑤셔박는 거랑 가지고 놀다가 마지막에 박는 게 꼴리는 정도가 틀리잖아, 맛알못새끼야.”
툭―!
끊어친 팔에 채찍처럼 날아간 수건이 장난스레 카레를 먹던 남자의 얼굴을 치댔다.
미간을 찌푸리며 숟가락으로 수건을 쳐낸 남자가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몰라. 난 그냥 시작부터 박아대는 게 훨씬 꼴리더라.”
“그래그래, 마음대로 하세요. 어차피 내일 도로 치우러 가야 해. 여자도 못 따먹고 가서 뒤지면 존나 억울하잖아.”
“뭐? 아 씨발, 혹시 그 씹선비가 또 차 치워달라고 징징댔데?”
“빙고.”
“씨발―! 병신 카푸어새끼!”
성큼성큼― 분노를 담아 동아리방 구석으로 걸어가는 남자.
그 남자의 발소리에 구석에 뭉쳐있던 여자들이 파르르― 떨어댔다.
“……잠깐만― 저기 저 두 명 어제 썼던 년들 아니야?”
그 순간, 옅게 웃으며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남자가 머리를 털던 손을 멈추며 중얼거렸다.
그 중얼거림에 고개를 돌려 끄덕여주는 햇반을 든 남자.
그 수긍에 남자의 얼굴이 잔뜩 찌그러졌다.
“씨발― 너 또 3층에 반납 안 했냐?”
“어차피 그냥 계속 박을 건데 시간 아깝잖아.”
“야 이 개새끼야. 그러다 도망갔으면 어쩌려고 그랬냐?”
“아니 이년들이 뭔 도망을 가. 그리고 도망쳐도 밖에 나가서 좀비한테 물리는 것밖에 더 해?”
“그래도 몰래 무기라도 들게 되면 존나 위험하다고 병신아. 어제도 미친년 하나가 칼 들고 깝치다가 형님한테 피떡 돼서 죽는 거 못 봤어?”
그 말에 잠시 걸음을 멈춘 김에 카레를 입 안에 넣던 남자가 와락― 얼굴을 찡그렸다.
“아 씨발― 밥 먹는데.”
“으― 나도 말하고 나니까 다시 생각나네!”
소름 끼친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동시에 부르르 떠는 남자들.
그중 햇반을 든 남자가 다시 걸음을 재개하며 헛웃음을 흘렸다.
“어쨌든 반항? 저년들이?”
그는 자신이 코앞에 왔음에도 그저 덜덜 떨고 있는 여자 중 한 명의 머리를 확― 붙잡았다.
“야.”
“…….”
“너도 반항할 거야?”
그의 우악스런 손짓에 끌려왔음에도 그저 덜덜 떨기만 하면 여자가 서둘러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곤 간절한 표정으로 그에게 속삭였다.
“아, 안 할 테니까. 제발 먹을 것 좀 주시면 안 될까요? 진짜 제발 한 번만―.”
꺼질 듯 아주 희미하게 이어지는 간청에 남자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진다.
그는 툭― 여자의 머리를 잡던 손을 놓고는 햇반을 반대로 뒤집었다.
투두두둑―
그의 손짓에 바닥에 떨어지는 햇반.
허나 그중 일부는 이미 빳빳하게 세워진 자지에 남아있었다.
“자.”
그런 자지를 보고 있는 여자에게 들려오는 조용한 속삭임.
“이게 네 맘마야, 이 년아.”
“…….”
“안 먹을 거면 다른 년한테 줘야지.”
머뭇거리는 여자에게서 빠르게 멀어지는 남자의 자지.
여자는 서둘러 그의 다리를 붙잡고는 간절하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그런 그녀에게 아무 말 없이 자지를 다시 내미는 남자.
여자의 동공에 누런 카레가 가득 묻은 그의 자지가 반사되어 비쳤다.
“쭈웁―”
덜덜 떨리는 입으로 한가득 머금은 그의 자지.
“아아―”
남자는 작게 신음을 흘리며 여자의 머리를 꽉 쥐어 잡았다.
“쭈웁― 쯔읍― 쭙―”
“아― 혀로 깨끗하게 빨아먹어야지, 이 년아. 어차피 네 보지로 갈 건대.”
“쭙― 쯔읍― 쭈웁―”
남자는 우악스럽게 여자의 머리를 앞뒤로 왕복시키다가 서둘러 여자의 머리를 떼어냈다.
퐁―!
얼마나 간절히 자지를 물고 있었는지, 입이 떼어지자마자 울리는 묘한 소음.
“아― 이제 못 참겠다.”
남자가 작게 읊조리며 여자를 강제로 바닥에 눕혔다.
어느새 그 남자 옆에서 다른 여자를 똑같이 바닥에 눕히는 샤워를 한 남자.
“하아― 뭐하냐 오타쿠. 씹아다 티를 존나게 내네.”
이미 짐승처럼 허리를 놀려대는 남자 옆에 있던 남자가 날리는 수건.
그가 마지막으로 남은 여자를 턱짓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덜덜 떠는 얼굴로 조용히 자신을 바라보는 여성의 눈빛.
강청신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며 어색하게 웃었다.
“……저, 저 잠시 화장실 좀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푸하하― 저 미친 새끼 설마 아다답게 화장실에 딸 치러 가는 거 아니야?”
“아으― 하아― 씨발 안 먹을 거면 꺼져. 내가 다 먹을 테니까.”
허리를 놀리다 말고 옆에 있던 여자에게까지 손을 뻗는 남자.
강청신은 서둘러 여러 번 고개를 숙인 뒤에 동아리방 문을 열었다.
쿵―!
세차게 이는 바람과 함께 서둘러 닫히는 동아리방 문.
밴드 동아리라 그런지 제법 방음이 철저한 구조인 듯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소음이 제법 옅어졌다.
강청신은 그대로 동아리방 문에 몸을 기대며 고개를 숙였다.
“……하.”
미처 말로 이어지지 못하고 그저 푹― 새어 나오는 한숨.
강청신은 잔뜩 찡그려진 자신의 얼굴과 그것과 반대로 이미 팬티 안에서 껄떡거리는 자지를 느끼며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이건, ……이건.”
그의 입에서 완전히 완성되지 못하는 문장들.
강청신은 하아― 길게 한숨을 내뻗으며 천장을 응시했다.
영원히 잃어버린 줄 알았던 문명의 혜택.
그 밝디밝은 빛을 바라보며 실소했다.
강청신의 머릿속에 관장님을 험담하던 옛 캠프원들이 천천히 그려졌다.
박태하의 옆에서 그놈들을 병신이라 칭하던 자신의 모습까지도.
아무것도 모르는 병신들이라 비웃던 스스로가 다시금 생각났다.
하지만 어쩌면―
“……하아―.”
법과 치안이라는 목줄이 풀린 사람은 어디까지 내달릴 수 있는가?
힘과 폭력이라는 불리한 게임에 임해야 하는 사람은 어디까지 떨어질 수 있는가.
멸망은 오늘 그에게 답을 알려줬다.
강청신은 계속해서 어깨를 들썩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신에게 몹시 관대해지는 뻔뻔한 자기합리화라 해도 상관없었다.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단지 개인의 감상일 뿐이었다.
하지만―
와하하하하하―!
얼굴이 잔뜩 붉어진 채 문을 여는 남자와 그 문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함성에 가까운 웃음소리.
강청신은 그 안에 숨겨진 울음기 섞인 신음에 힘없이 문에 기대어 헛웃음을 터트렸다.
……멸망은 도서관에 좀비 새끼들이 가득 찼을 때인 줄 알았는데.
“……씨발.”
강청신은 오늘에서야 비로소―
멸망을 실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