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폭군-63화 (63/120)

누구나 왕을 꿈꾼다 (4)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집보다 차를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 뉴스에 눈을 반짝이며 ‘어? 나랑 똑같네.’라고 활짝 웃던 사람이 있었다.

유서준은 그런 사람이었다.

집보다는 차 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묘한 향기가 좋은 사람.

침대보다는 차 시트의 푹신함이 더 잠이 솔솔 오는 사람.

갇혀있는 듯 갇히지 않은 묘한 압박과 해방감이 동시에 느껴지는 마법의 공간이 너무나도 좋은 사람.

“……아, 씨발 존나 덥네.”

“진짜 군대도 아니고 대낮부터 이게 뭔 지랄이냐, 개씨발.”

“이게 어떤 개 징징이 새끼 때문이잖아, 이 씹새끼 안에서 지혼자 에어컨 틀고 있는 거 아니야?”

툭―! 툭―!

유서준은 타이어를 화풀이하듯 툭― 툭― 차는 발길질에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런 마법의 공간에 있기에 그는 참을 수 있었다.

살짝 열린 유리창을 타고 그대로 들려오는 일방적인 험담을 조용히 무시할 수 있었다.

아마 자신이 듣고 있는 걸 알아도 아무것도 바뀌는 건 없을 테지만.

“……그나저나 그 신참 새끼 어디 갔지? 안 보이는데?”

“내 알 바냐? 어디 오타쿠답게 몰래 구석에서 좆뺑이치고 있겠지, 씨발.”

“씨발― 여기서 좆뺑이를 어떻게 쳐 병신아. 언제 어디서 좀비가 튀어나올지 모르는데.”

“그리 걱정되시면 네가 알아서 찾아보시던지요, 씨발놈아.”

유서준은 계속 이어지는 놈들의 잡담에 감았던 눈을 떴다.

핸들을 꼭 붙잡으며 습관처럼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신참이 누구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어제 총학생회실에서 보았던 잊을 수 없는 인상의 남자.

유서준은 그들의 말을 재확인하기 위해 서둘러 창밖을 휘둘러보았다.

인상을 마구 찌푸리며 도로를 점거한 자동차들을 수색하는 남자들.

그사이에 잊을 수 없는 얼굴을 계속해서 훑었다.

“내가 미쳤냐? 게이도 아니고 그 오타쿠 새끼 때문에 목숨을 왜 걸어?”

“병신. 게이도 그 오타쿠는 거른다.”

유서준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 얼굴에 조금 앞으로 내세웠던 몸을 다시 차 시트에 묻었다.

조원이 갑작스레 사라졌는데도 농담 따먹기나 하고 있는 저 짐승 새끼들이 너무나도 한심했다.

핸들을 쥐고 있는 손이 부르르― 떨려왔지만, 고작 그것뿐이었다.

“끼에에에에엑―!”

차창 너머로 소름 끼치는 괴성을 내지르는 좀비 한 마리가 들어선다.

“에비~ 에비~.”

그리고 그 좀비를 장난처럼 대롱대롱 흔들어대는 임완기를 조용히 응시했다.

그의 손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좀비 덕에 추하게 엉덩방아를 찧는 짐승 새끼들.

“아― 좆됐다. 저거 듣고 다른 좀비들 몰리겠는데?”

“그래도 이 주변의 좀비는 형님이 다 죽이지 않으셨냐?”

“아 몰라, 일단 형님 주변에 빨리 붙자.”

유서준은 도리어 좀비를 들고 장난을 치는 임완기 주변으로 모이는 남자들을 헛웃음과 함께 지켜보았다.

“아― 혀, 형님. 놀라서 똥 지릴 뻔했습니다.”

“사내 새끼들이 이런 좀비 하나에 잔뜩 쫄아서 말이야. 에라이― 꼬추 떼라, 새끼들아.”

어떻게든 누군가를 붙잡으려 필사적으로 몸을 비트는 좀비와 그 좀비를 보며 본능처럼 뒷걸음질 치는 남자들.

그리고 안전한 차 안에서 그걸 아무 말 없이 지켜보는 자신.

그도 사실 알고 있었다.

자신과 저 남자들은 별반 다르지 않다는걸.

정말 유일하게 하나 다른 게 있다면, 특별한 능력을 방패 삼아 이렇게 차 안에 숨어있다는 것이었다.

차량을 개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지만, 그건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저 임완기가 더러운 도로를 정리해주는 것을 기다려야만 했다.

할 수 있는 건 이렇게 차를 타고 계속해서 게으름을 피우려는 임완기에게 무언의 시위를 하는 것뿐.

“…….”

유서준은 조용히 고개를 내려 계기판을 응시했다.

언제나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던 계기판이었지만, 이번엔 그러지 못했다.

그의 머릿속에 또다시 좀처럼 떠나지 않는 악몽이 아른거렸다.

팽현제의 닦달에 어쩔 수 없이 도달해보려 했던 중앙도서관.

중앙도서관에 가기 위한 도로를 통과하던 그의 문 앞에 펼쳐졌던 정문으로 통하는 도로.

유서준은 마치 묘비처럼 도로 위에 빽빽하게 세워진 자동차들과 그 너머를 다시 떠올렸다.

크롸아아아아아―!

멀리서도 큼지막한 점으로 우뚝 서 있던 괴물과 개미 떼처럼 바글거리던 좀비들.

결국 뒤도 돌아보지 않고 꽁무니를 내뺐던 악몽에 실소를 머금었다.

자신은 임완기도 아니었고, 팽현재도 아니었다.

그는 팽현재처럼 물과 전기를 만들어 낼 수 없었다.

아직 팽현재가 물과 전기를 만들 수 없던 시절, 그 지옥을 몸소 겪었기에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체념뿐이었다.

“끼에에에엑―!”

대롱대롱 흔들리던 좀비에게 찾아온 결정적인 기회.

갑작스레 자신을 옥죄던 힘에서 벗어난 좀비가 자신을 가지고 놀던 적을 향해 몸을 뒤틀었다.

그리곤 본능처럼 내밀어오는 놈의 팔을 옭아매며 아가리를 쩍― 벌렸다.

끄득―! 끄득―!

이것조차 놀이의 일종이었다는 것을 모르고 열심히 임완기의 팔을 씹어대는 좀비.

하지만 실실 웃는 임완기의 팔뚝은 상처 하나 없이 깨끗했다.

좀비가 악을 쓰며 아가리를 들이미는 그의 팔에 넘실거리는 푸른 빛.

“이야― 이 새끼 이제 밥 먹으려면 틀니해야겠는데?”

뿌드득―거리며 도리어 살벌한 소리가 나기 시작한 좀비를 또다시 대롱대롱 흔들며 임완기가 실실 웃어댔다.

그리고 그 농담에 어색한 웃음으로 딸랑거리는 남자들.

“새끼가 주제도 모르고 형님한테―”

푸욱―!

남자의 아부를 갑작스레 끊으며 울리는 묘한 소음.

임완기 주위에 둥글게 모여있던 남자들의 시선이 모두 그곳으로 향했다.

아부를 이어가던 남자의 가슴에 꽂혀있는 나무 막대기와 식칼.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는 남자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기도 전에 뒤통수에 뜨끈한 열풍이 치달았다.

그나마 그들과 조금 거리를 두고 있었던 유서준만이 인지한 공격.

서둘러 브레이크와 변속기로 손과 발을 옮기는 그의 동공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화르르륵―!

차장 너머의 모든 것을 휘감아버리는 붉은 불길.

유서준이 핸들을 끝까지 틀며 빠르게 뒤를 응시했다.

쿠우우웅―!

허나, 연이어 들려오는 굉음과 크게 흔들리는 차체.

액셀을 있는 힘껏 밟아도 그저 침묵을 유지하는 차량에 저절로 고개가 정면으로 향했다.

삐거덕거리며 다시 바라보게 된 차창 너머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처참하게 일그러진 차량 전면부에 올라서 자신을 천천히 위아래로 훑어대는 남자.

쇠 파이프를 들고 있는 남자가 자신을 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유서준.

“으아아아― 살려줘― 이게― 이게 뭐야아아―!”

“뜨거워― 씨발 뜨거워어어어―!”

일순 시야를 붉게 물들였던 화염이 멎은 공간.

아직도 그들의 옷가지를 불살라 생을 이어가는 불길에 먹힌 남자들이 아우성치고 있었다.

이리저리 몸을 굴리고 오두방정을 떨며 불길을 떨쳐내려는 남자들.

그 짐승들에게 순식간에 달려드는 또 다른 남자들.

그들 손에 들린 둔기가 불길에 휘감긴 남자들을 조준하고 있었다.

“이 씨발 누구야아아아아―!”

그리고 분노를 가득 담아 울려 퍼지는 거구의 포효.

푸른 빛에 휘감긴 임완기의 몸이 아주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의 이글거리는 눈에 포착된 양손을 뻗고 격하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남자.

임완기가 곧바로 얼굴이 부어있는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쿠웅―!

그 순간, 차체가 또 한 번 들썩거리는 흔들림.

유서준은 차량 전면부에서 어느새 임완기의 등허리에 달라붙은 남자를 발견했다.

까아앙―!

그가 휘두른 쇠 파이프에 질주를 멈추고 멈칫거리는 임완기.

임완기가 살짝 굽혀진 무릎을 축 삼아 거세게 허리를 뒤틀었다.

빠르게 후방을 가로지르는 그의 솥뚜겅만 한 주먹.

쐐애애액―!

허나 남자는 예상했다는 듯 가볍게 어깨를 돌렸다.

그리고 주먹을 내지른 틈을 이용해 다리를 살짝 들어 올렸다.

까아아앙―!

마치 채찍처럼 잔상을 남기며 임완기의 정강이를 후려치는 발길질.

임완기의 몸이 기우뚱― 흔들리며 몇 차례 뒷걸음질을 반복했다.

다리와 다리가 맞부딪혔다기엔 너무 청명한 공명음.

좀비의 치악력도 뚫을 수 없는 육체가 충격을 이기지 못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임완기의 잔뜩 일그러진 표정에 분노가 아닌 당혹감이 깃들었다.

그렇게 다시 선제권을 빼앗긴 그의 눈에 담겨오는 잔상.

방금 전과 달리 황금빛에 둘러싸인 놈의 발이 사뭇 소름 끼쳤다.

끄드드득―!

“꺼어어억―! 꺼어어억―!”

무엇도 볼 수 없게 시야 자체를 하얗게 물들이는 섬광과 벌린 입에서 본능처럼 새어 나오는 풍선 빠지는 비명.

유서준은 새끼 기린처럼 바닥에 주저앉는 임완기를 보며 찢어질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끼이이익―!

그리고 임완기의 머리를 후려친 여파인지 크게 휘어진 쇠 파이프를 다시 원래대로 구부리며 다가오는 남자.

그가 바닥에 주저앉고 풍선 빠진 신음만 흘리고 있는 임완기를 향해 쇠 파이프를 서서히 들어 올렸다.

침을 질질 흘리면서도 용케 쇠 파이프를 따라간 임완기의 동공이 무조건반사를 일으켰다.

덜덜 떨리면서도 머리를 막기 위해 올라가는 양팔.

허나,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들고 있는 쇠 파이프를 내리찍었다.

끄드드득―!

황금빛 잔상을 남기며 임완기를 타격한 쇠 파이프가 다시 위로 들린다.

비정상적인 각도로 뒤틀려 힘없이 땅을 향해 떨구어 내려진 임완기의 양팔.

쐐애애액―!

남자의 쇠 파이프가 장애물이 사라진 임완기의 머리를 향해 내려쳐진다.

파르르― 떨리는 동공으로 그 쇠 파이프를 바라보는 임완기와 유서준.

퍼억―!

순식간에 바람을 가르며 도착한 쇠 파이프가 임완기의 머리를 으깼다.

퍼억―! 퍼억―! 퍼억―!

그리곤 연이어 이어지는 무자비한 쇠 파이프 세례.

첫 번째 타격 이후 실 끊긴 인형처럼 바닥을 바라보던 그의 고개가 타격을 이기지 못하고 파도처럼 흔들렸다.

쿵―!

결국 임완기의 거구가 땅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

뇌수를 줄줄 흘리며 절명한 임완기를 내려다보던 남자가 그제서야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임완기.

툭―! 툭―!

임완기 시체 옆에 둔기를 든 남자들이 끌고 온 시체들이 쌓여갔다.

무자비한 둔기 찜질에 피떡이 된 그들의 몸에 뒤늦게 보이는 화상의 수포들.

그렇게 정리를 마치고 둔기를 든 남자들이 쇠 파이프를 든 남자 뒤로 질서정연하게 도열했다.

툭―! 툭―!

그리고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듯 쇠 파이프로 허벅지를 치대는 선두의 남자.

그가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을 인지한 유서준이 이미 바짝 마른 울대를 꿀렁였다.

달달 떨리는 손으로 마지못해 차 문을 열었다.

끼이이익―

마구 휘어진 차체 덕분인지 끝까지 열리지 못하고 중간에 턱― 막히는 차 문.

“이이익―!”

유서준은 자신을 기다리는 남자의 눈길에 반쯤 열린 차 문을 열며 이를 악물었다.

텅―!

급작스럽게 끝까지 열린 차 문에 허우적거린 유서준이 그대로 땅바닥에 엎어졌다.

아스팔트에 몸을 뉜 덕에 더 선명히 시야에 들어서는 임완기의 시체.

유서준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서둘러 바들바들 떨리는 양손을 바닥에 짚었다.

***

3 포인트.

임완기를 죽이고 놈에게서 강탈한 포인트였다.

난 강청신이 말한 외형 그대로인 임완기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작게 혀를 찼다.

역시 대부분의 이능력자들은 포인트를 벌자마자 따박따박 쓰기 바쁜 유형의 이능력자들이었다.

나 또한 그랬으니, 이것에 관해선 뭐라 할 말도 없었다.

스윽― 스으윽―

난 발을 질질 끄는 소음에 어느새 지근거리에 다가온 유서준을 응시했다.

툭―!

가볍게 임완기의 시체를 건드리는 발길질에 자동 반사처럼 몸을 떨어대는 유서준.

놈이 지그시 자신을 바라보는 내 시선에 서둘러 무릎을 꿇었다.

이 밑에 있는 시체가 임완기면, 지금 내 앞에 무릎 꿇고 있는 이 새끼가―

“카푸어 씹선비.”

잔웃음을 달고 튀어나온 중얼거림에 눈을 동그랗게 뜨는 유서준.

놈이 눈치 좋게 내 뒤에 시립한 강청신을 보며 이미 커진 눈을 더 찢어지게 넓혔다.

“……아―.”

뒤늦게 무언갈 깨달았다는 듯 작게 탄식하는 유서준.

그 멍청한 표정에 오히려 내가 어이가 없었다.

누군가 잠입해 정보를 빼낸다는 생각 자체를 안 하는 행동거지.

오히려 꽤 신중을 기했던 내가 병신이 된 것 같은 이 이상한 기분에 다시 한번 발길질을 날렸다.

툭―!

내 발길질에 또 한 번 들썩이는 임완기의 시체.

“……누, 누구십니까?”

오돌오돌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물어대는 질문에 답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듣기로는 팽현재에게 불만이 많았다던데.”

도중에 이탈하는 강청신에게 관심 하나 없는 기적의 집단.

덕분에 강청신을 다시 픽업한 후 빠르게 놈에게 전후 사정과 쓸만한 정보들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유서준은 그중 제일 흥미로웠던 총학생회실에서의 대화에서 꽤 큰 비중을 차지하는 조각이었다.

“…….”

난 내 질문에 표정도 관리하지 못하고 그대로 동공을 크게 떨어대는 유서준에게 다시 말을 이었다.

“학생회관과 연락하는 수단이 있나?”

“……네?”

“얼마 정도 연락이 안 되면 후속 지원이 오냐고.”

“……그, 그런 거 없는데요.”

겨우 고개를 휘저으며 내 말에 답하는 유서준.

난 고개를 주억이며 다음 질문을 꺼냈다.

“들은 바로는 좀 거칠게 여자들을 배급하고 있다던데.”

“…….”

“도대체 콘돔이 얼마나 많길래 그 지랄을 할 수 있지?”

“…….”

이번엔 대답도 없이 그저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유서준.

놈이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고개를 바닥으로 떨구었다.

……미친.

난 최근 들어 제일 소름 끼치는 대답을 들은 것 같아 마음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러다 여자들이 임신하면 그 후속 처리를 어쩌려고 그러는 거지?

난 임완기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눈가를 찌푸렸다.

진짜 작정하고 오늘만 사는 새끼들이네.

“……팽현재.”

학생회관의 우두머리를 내뱉는 읊조림에 유서준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놈의 능력이 시야 차단이나 오감 차단 비슷한 건가?”

“…….”

“가만히 있는 게 극한의 효율이라는 말은 또 뭐지? 놈의 전용 스탯 같은 건가?”

“…….”

굳이 입을 열지 않아도 질문을 할 때마다 파도처럼 격랑 하는 놈의 눈동자.

난 그 눈동자에 고개를 끄덕이곤 쇠 파이프를 든 손으로 이마를 긁적였다.

유서준의 반응과 강청신이 그대로 읊어준 총학생회실에서의 대화.

놈의 능력, 놈의 생각, 놈의 말.

이젠 제법 다 맞추어진 퍼즐 속 유난히 빛나는 두 개의 퍼즐을 들어 올렸다.

‘운명’과 ‘무치의 안정’.

놈이 말한 운명이 뭔지, 그리고 무치의 안정이 무엇인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가 모르면 절대로 안 되는 단어들.

띠링―!

[폭정의 은혜]

[사막 위의 오아시스 Lv.1]

난 내 운명을 응시하며 잔웃음을 흘렸다.

무치의 안정.

그러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서 안정을 얻는다는 건가.

그럼 오히려 집단을 터치하는 게 놈에게 불이익일 수도 있겠군.

그렇게 생각하니 거의 다 맞추어진 퍼즐이 완성된다.

오히려 아무것도 안 해야 하기에 지금 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은 덩치를 불리는 것.

나처럼 내부 기강을 다질 필요가 없기에 그저 확장만을 무한히 이어가는 거네.

임완기와 남자들이라는 일종의 대리인을 세운 채로 방치 아닌 방치를 하며.

그 덩치를 불리기 위한 방법으로 전단지를 선택했고, 그 전단지 하나가 흘러 흘러 도서관에 이르렀다.

“……운이 좋았네.”

난 순수한 감상을 토하며 다시 한번 헛웃음을 토했다.

절대 살려두면 안 되는 새끼를 빠르게 발견했다.

“……호, 혹시―!”

그 순간, 아래에서 크게 울리는 외침.

유서준이 나를 보며 달달 떨리는 입술을 서둘러 열었다.

“저희를 구하러 오신 겁니까?”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아주 간절한 물음.

난 그 물음에 어깨를 들썩이며 주변에 널린 시체들을 응시했다.

내 발아래 머리가 처참히 으깨진 채로 죽은 임완기.

지금 유서준은 이 모든 광경을 다 목격하고도 나에게 구원을 말하고 있었다.

……개새끼들이 너무 많았다.

딱히 공명정대한 일을 하지도 않았는데 상대적으로 덜 개새끼가 되어버린 것 같은 이 미친 세상.

난 어이없음을 숨기며 놈을 향해 부드럽게 웃었다.

살짝 무릎을 굽혀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유서준과 시선을 맞췄다.

굳이 여기서 놈의 바람을 부정할 이유가 없었다.

내가 상대적으로 덜 개새끼가 된 점도 이용하면 될 뿐이다.

“그래, 구하러 왔다.”

내 확답에 눈과 입을 천천히 벌리는 유서준.

난 놈을 향해 옅은 미소를 유지한 채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

“학생회관에 남아있는 남자가 총 몇 명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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