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강탈 (2)
두두두두두―!
온 누리를 적시는 빗소리보다 더한 두드림.
“끼에에에에엑―!”
잠시의 공백도 없이 귓전을 때리며 치닫는 포효.
난 말 그대로 사방을 가득 메운 시체들의 질주를 조용히 휘둘러보았다.
대략적인 헤아림도 불가능한 무수한 수의 좀비들.
그 압도적인 숫자의 폭력은 놈들 하나하나를 포인트로 생각하고 있는 내게도 꽤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이런 지옥 같은 세상에 누구보다 잘 적응하고 있다고 자신하던 내게도 묘한 압박감을 주는 좀비들의 파도.
“끼에에에에엑―!”
점차 좁혀지는 거리를 나타내듯 선두의 좀비들이 나를 향해 애타게 손을 뻗어왔다.
우우웅―!
놈들의 깨진 동공을 점유하며 번져가는 황금빛.
난 전신에 피어오르는 부분무능을 머금으며 내 손에 들린 쇠 파이프를 내려다보았다.
뚝―! 뚝―!
이미 빗물로 흠뻑 젖은 쇠 파이프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옅은 핏물.
그리고 핏물을 토해내는 쇠 파이프까지도 머금은 내 부분무능.
언제나 본래의 쓰임 이상의 역할까지도 도맡아주던 무기와 이능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특히나 요즘 따라 잦았던 이능력자들과의 전투에서 톡톡히 제 역할을 했던 부분무능.
내 주력 이능이라 할 수 있는 이 스킬은 다수의 좀비를 상대하는 데 있어 그리 큰 효율을 내지 못한다.
이런 좀비 웨이브를 상대하는 데 있어서는 분명 나보다는 팽현재나 방대화가 훨씬 더 높은 효율을 보여주겠지.
하지만― 내가 그들보다 월등히 앞서는 건 따로 있었다.
팟―!
작게 발을 박찬 몸이 빗물을 헤치며 순식간에 교회에 주차된 고급 외제 차에 이르렀다.
끼이이익―!
외제 차를 꽉 붙잡는 손길에 종이처럼 우그러지는 차체.
난 천천히 앞으로 잡아끄는 내 힘에 온갖 소음을 다 내며 끌려오는 외제 차를 일별한 뒤 다시 앞을 응시했다.
공격보다는 방어에 특화된 내 이능과 단순한 둔기일 뿐인 쇠 파이프.
다수를 처리하는 데 있어 불리하기 짝이 없는 조건들이었다.
“끼에에에에엑―!”
하지만, 압도적인 힘은 모든 걸 가능케 한다.
쐐액―!
포물선을 그리는 왼팔에 바람을 가르며 나아가는 큼지막한 차체.
카가가가가각―!
전면에서 나를 향해 달려오던 좀비들이 그대로 거대한 공성 추에 갈려 핏물을 토해냈다.
요란한 스파크를 번쩍이며 아스팔트에 갈려가는 차체를 따라 시뻘건 핏물들이 함께 번져갔다.
쿠웅―!
그렇게 한참을 아스팔트를 붉게 색칠했던 외제 차가 붓질을 멈췄다.
방금 전의 고급스러운 외형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찌그러지고 부서져진 차체.
“끼에에에엑―!”
갑작스런 외제 차 투척에 적어도 수십 마리의 좀비가 갈려 나갔을 테지만, 파도는 여전히 나를 향해 젖혀들고 있었다.
끼이이익―! 쿵―! 쿵―!
사납게 포효를 내지르며 일그러진 차체를 간단히 밟아 넘는 좀비들과 어느덧 지근거리에 도달한 다른 방위의 좀비들.
툭―!
난 꽤 위험한 거리까지 치달은 좀비들을 무시하며 아직은 시야가 확보된 정면을 향해 질주했다.
“끼에에에엑―!”
갑작스레 멀어지는 나를 붙잡기 위해 몸을 날리는 좀비들의 투박한 충돌음.
서로가 서로의 진로를 방해하며 우당탕 넘어지는 좀비들과 그 좀비들을 밟고 더 악착같이 내게 질주하는 놈들의 발 구름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난 몸을 움직일 때마다 슬슬 몸에 착― 달라붙는 빗물의 습기를 느끼며 쇠 파이프를 양손으로 다잡았다.
그리곤 일그러진 차체를 넘어 내가 달려오고 있는 좀비들을 향해 있는 힘껏 휘둘렀다.
퍼어어억―!
빛살처럼 중앙을 가르는 둔기질에 그대로 터져나가는 좀비들의 머리.
턱―!
난 중앙을 가르는 둔기질을 피해 몸을 낮춘 좀비의 대가리를 왼손으로 빠르게 붙잡았다.
“끼에에에엑―!”
지나칠 정도로 가까이 다가온 살내음에 더 광분해서 아가리를 쩌억― 벌리는 좀비.
푸화아악―!
놈이 미처 아가리를 닫기도 전에 수박 터지는 소리와 함께 놈의 남은 몸뚱어리가 기우뚱― 흔들렸다.
툭―!
난 천천히 바닥에 허물어지는 시체의 등을 지렛대 삼아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쿠웅―! 쿵―! 쿠웅―!
내가 사라진 공간의 공백을 바로 채우기 시작하는 좀비들의 충돌음.
사방에서 오직 나를 보며 도약했던 좀비들이 자기들끼리 부닥치며 둔탁한 굉음을 내뱉었다.
툭―! 툭―! 툭―!
허공에서의 잠깐의 체류를 이어가게 만드는 발길질.
난 고개를 들어 내게 애타게 손을 뻗는 좀비들의 대가리를 발판 삼아 앞으로 전진했다.
내 신발 밑창이라도 뜯어먹으려 우악스럽게 벌린 아가리 대신 놈들의 콧등을 짓누르며 쇠 파이프를 휘둘렀다.
퍼어어억―!
잔뜩 휘어져 비명을 내지르는 차체 위에서 나에게 달려든 좀비의 대가리가 순식간에 터져나갔다.
“끼에에에엑―!”
선발대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경쟁하듯 일그러진 차체에 올라타는 좀비들.
오직 나에게만 집중된 수백, 수천의 깨진 동공이 마치 곤충의 겹눈같이 소름 끼쳤다.
난 다시 한번 스르륵― 무너지는 좀비의 등에 다리를 올렸다.
투욱―!
가벼운 발길질에 순식간에 반전하는 시야.
회전을 시작한 몸뚱어리를 따라 마저 무너지는 좀비 시체와 뒤편에서 내게 애타게 손을 뻗는 좀비가 위아래가 반전된 채로 담겨온다.
쐐애애액―!
귀를 휘감는 무거운 공기와 함께 좀비를 넘어 동공에 담겨오는 먹구름에 가려진 하늘.
“끼에에엑―!”
이어지는 회전이 다시 차체에 올라타고 있는 좀비들을 순서대로 담아온다.
난 맹렬히 회전하는 시야를 느끼며 천천히 양손을 위로 뻗었다.
툭―! 투둑―! 툭―!
돌아가는 몸뚱어리를 따라 고르게 내리는 빗방울이 손바닥과 손가락, 그리고 손등을 부드럽게 두드렸다.
“끼에에에엑―!”
갑작스럽고 뜬금없는 묘기에도 단 한 순간의 동요도 없이 내게 달려드는 좀비들.
난 점점 가까워지는 차체 위의 좀비들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미소를 내지었다.
이미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탄력성과 잠력.
내가 이미지한 행동이 그대로 재현되는 광경은 짜릿한 쾌감을 넘어 머리를 고장 낼 정도로 중독적인 무언가였다.
투둑―! 툭―! 쿠웅―!
빙빙 도는 손을 토닥이던 빗줄기와는 차원이 다른 묵직함.
난 갑작스레 내 손과 충돌한 철판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끼기기긱―!
종이처럼 찌그러지는 철판에 강하게 고정되는 손가락들.
이어지는 회전에 육중한 차체가 순식간에 들려 나를 따라 회전했다.
“끼에에에에엑―!”
위아래가 순식간에 바뀐 반전에 균형을 잃고 우수수 떨어져 나가는 좀비들.
그렇게 무임승차자들을 모조리 털어낸 차체가 망치처럼 지상을 내리찍었다.
쿠우우우웅―!
축축한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흙먼지와 사방으로 비산하는 대량의 핏덩이들.
차체에 올라타기 위해 몰려있던 좀비들이 점과 선이 아닌 면으로 갈려 나갔다.
철퍽―!
웅덩이라기엔 너무 깊은 수심으로 나를 반기는 피바다.
난 균형을 잡기 위해 내려선 발을 따라 얼굴에까지 튀어 오르는 핏물을 느끼며 차체를 붙잡는 손을 더 꽉― 힘줬다.
끼기기기긱―!
이젠 차가 아닌 고철이 뭉친 쇳덩이로 밖에 모이지 않는 큼지막한 차체.
난 차체를 붙잡은 손에 여전히 들려있는 쇠 파이프를 바라보며 옅게 미소 지었다.
다수의 좀비를 죽이는 데 쇠 파이프가 부적합하다면―
“끼에에에엑―!”
더 큰 둔기를 휘두르면 될 일이다.
우웅―! 우우우웅―!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는 나를 따라 함께 원을 그리는 차체.
퍼억―! 퍼억―! 퍼억―!
난 다가오는 즉시 차체에 터져버리는 좀비들을 바라보며 더 강하게 회전했다.
퍼버버버벅―!
살벌한 바람 소리를 내며 나를 중심으로 둥근 원을 그리는 차체.
그리고 오직 나를 바라보며 달려들어 그대로 핏물로 분하는 좀비들.
끼익―! 끼이익―! 끼이이익―!
난 점점 빨라지는 회전에 마지막 비명을 내지르는 차체를 다시 집어던졌다.
카가가가각―!
마지막까지 거대한 둔기로서의 역할을 다하며 바닥을 타고 미끄러지는 차체.
띠링―!
[변종 ‘벌룬’을 처치하셨습니다.]
[10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퍼어어어어엉―!
허나, 이어지는 소리의 폭격에 저절로 눈가가 좁혀진다.
끼에에에에엑―!
갑작스레 울리는 2차 집결 신호에 더 광분하며 달려들기 시작하는 좀비들.
지금까지 내가 쳐 죽인 좀비 이상의 좀비들이 여전히 파도처럼 내게 젖혀 들고 있었다.
……좀비는 좀비를 부른다.
그리고 더 많은 좀비는 더 많은 좀비를 부른다.
그렇게 이끌리는 좀비엔 변종도 예외는 없었다.
줄여도 줄여도 끝이 보이지 않는 좀비들의 웨이브.
“끼에에에엑―!”
난 내게 달려든 좀비의 대가리를 부수며 주변을 빠르게 두리번거렸다.
쯧―!
빈 공간을 찾기 어려울 만큼 빼곡히 다시 채워진 좀비들에 혀가 저절로 입천장을 튕긴다.
슬슬 국면이 포인트 파밍이 아닌 진짜 전투로 흘러가고 있었다.
난 몸 안에 남아있는 왕권을 재확인하며 여전히 몸 밖으로 피어오르는 황금빛을 곁눈질했다.
농과대까지 어떤 돌발 상황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여기서 불확실성을 더할 수는 없었다.
퍼어억―!
난 다시 쇠 파이프를 휘두르며 농과대로 이어지는 북쪽 도로를 빠르게 응시했다.
“끼에에에엑―!”
끝을 모르고 내게 달려드는 좀비들.
투웅―!
놈들의 머리를 향해 쉴 새 없이 내려치던 어깨가 갑작스레 찌르르― 울리며 묘한 진동을 토해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와 고막을 터트릴 듯 울리는 포효 속에서도 유난히 귀에 걸려 오는 작은 소리.
“끼에에에엑―!”
서둘러 쇠 파이프를 다시 거두는 내게 좀비 하나가 아가리를 벌려왔다.
두 눈이 집중된 정면에서 양팔을 확 벌리고 내게 달려오는 좀비 한 마리.
식욕으로 점철된 놈의 얼굴이 별안간 반죽처럼 찌그러졌다.
마치 검은 구멍처럼 놈의 얼굴을 순식간에 빨아당긴 점이 뾰족한 돌덩이 비스름한 무언가를 토해냈다.
──────.
완벽한 무음으로 좀비의 대가리를 구멍 내고 내게 쏘아져 오는 돌덩어리.
미리 대비하고 있던 몸이 부드럽게 고개를 틀어 돌덩어리의 진로를 피했다.
……콰아아아앙―!
뒤이어 교회 벽에 박혀 굉음을 토해내는 돌덩어리.
난 박힌 돌덩어리를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번져있는 균열을 바라본 뒤 다시 정면을 응시했다.
“…….”
스르륵― 몸에 구멍이 난 채로 쓰러지는 직선상의 좀비들.
그리고 그 기점에서 계속해서 무언가를 콜록이고 있는 심한 거북목의 인형.
탁―!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
“켁― 케엑― 켁켁켁― 케에에엑―!”
몸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로 쓰러지는 좀비들을 헤치며 달려오는 나를 바라보는 놈.
놈이 더 급하게 고개를 콜록대며 입 안에 무언가를 모으고 있었다.
“켁― 켁켁― 케에에에엑―!”
이내 반쯤 숙인 허리와 툭― 튀어나온 기형적인 거북목으로 달려오는 나를 응시하는 놈.
그런 놈의 입 안에 뭉쳐있는 뾰족한 돌덩어리에 빠르게 위로 올린 쇠 파이프를 내려찍었다.
“후우우우―”
주변의 바람을 힘껏 빨아들이며 홀쭉해지는 놈의 볼.
마치 장전하듯 놈의 돌덩어리를 휘감는 바람이 미처 쏘아지기 전에 쇠 파이프가 놈의 대가리를 우그러트렸다.
퍼어어억―!
띠링―!
[변종 ‘가래충’을 처치하셨습니다.]
[10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변종.
오늘만 해도 벌써 세 번째로 처치한 변종이다.
난 내가 지금껏 만나 처리했던 변종들의 숫자를 헤아리며 대가리가 움푹 패여 뒤진 변종을 내려다보았다.
기껏해야 ‘털바퀴’ 3마리와 ‘세이렌’ 하나.
지금껏 내가 만나 처리한 변종의 숫자와 필적한 수의 변종.
“끼에에에에엑―!”
그리고 여전히 압도적인 수로 내게 젖혀 드는 여분의 좀비들.
우우웅―!
안전을 위해 몸을 찬란히 밝히던 황금빛이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팟―!
농과대로 통하는 북쪽 도로를 박차며 내게 애타게 손을 뻗는 좀비들을 뒤돌아보았다.
투웅―!
그 순간, 또다시 들려오는 묘한 발사음.
본능처럼 들어 올린 쇠 파이프에 뾰족한 돌덩어리가 폭격하듯 치달았다.
콰아아앙―!
쇠 파이프 덕에 갑작스레 진로가 틀어진 돌덩어리가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간다.
“…….”
난 부르르― 떨리는 손 위의 처참히 찌그러진 쇠 파이프를 눈에 담았다.
육체계 능력자를 내려찍고 다시 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망가진 쇠 파이프.
이걸 다시 펴려 한다면 분명히 그대로 뚝― 떨어지겠지.
“케엑―! 켁켁켁케에에엑―!”
난 방금 전과 똑같이 동료 의식 없이 돌덩어리를 쏘아낸 가래충을 응시했다.
놈의 발사 루트를 따라 쭉 이어지는 구멍 뚫린 좀비들.
“끼에에에엑―!”
난 잔뜩 휘어진 쇠 파이프를 그 빈 공간을 채우며 달려오는 좀비들에게 내던졌다.
우우웅―!
부분무능을 휘감은 몸이 달려온 길을 빠르게 되감았다.
그리곤 순식간에 지근거리에 담겨오는 가래충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퍼어어억―!
띠링―!
[변종 ‘가래충’을 처치하셨습니다.]
[10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전력을 다한 주먹질에 풍선 터지듯 사방으로 비상하는 놈의 대가리 살점.
퍼억―! 퍼억―! 퍼억―!
그대로 바닥에 허물어진 놈의 몸을 계속해서 발로 짓이겼다.
“…….”
한순간에 다진 고기처럼 망가진 가래충의 시체.
난 미동도 없이 처참하게 망가진 놈의 시체를 보고 나서야 다시 바닥을 박찼다.
“끼에에에엑―!”
다가오는 듯하다 다시 멀어지는 내게 필사적으로 달려오는 좀비들.
저 웨이브를 언제 다 처치할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렇게 좀비를 마구 죽여 얻는 포인트보다 내겐 차하얀을 확보하기 위한 시간이 더 중요했다.
“끼에에에엑―!”
마치 대학의 중앙을 가르는 일종의 선처럼 길게 늘어지는 좀비 웨이브.
팟―!
난 아직도 징하게 남아있는 놈들을 눈에 담으며 다시 바닥을 박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