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1)
‘방’이라 칭하기엔 조금 지나칠 정도로 넓은 공간.
차하얀은 은은한 무드등이 밝혀오는 제1 열람실을 다시금 천천히 망막에 담았다.
드넓은 공간 사이사이를 꾸미고 있는 정갈하고 깔끔한 인테리어.
누가 가구를 배치하고 꾸몄는지 단번에 알 수 있을 만큼 익숙한 분위기가 흠뻑 묻어있었다.
“…….”
그렇게 언니와 한세계의 침실을 둘러보던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움켜쥐는 따뜻한 체온.
“……졸려?”
차하얀은 걱정과 사랑이 듬뿍 담긴 언니의 물음에 서둘러 고개를 내저었다.
그와 동시에 두 눈 가득히 자신을 담고 있는 언니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뜻으로 부드러운 미소를 띠었지만―
이상하게도 언니에게 항상 내보이던 그 미소가 너무나도 어색하고 낯설었다.
생각해보면 그리 오랜 시간 만에 언니를 다시 만난 것도 아니었다.
1년도 아닌 근 1~2개월의 짧은 시간이었을 뿐인데…….
차하얀은 축축한 트레이닝복이 아닌 부드러운 실크 잠옷이 너무나도 어색했다.
찝찝하고 옅은 습기가 아닌 뽀송한 바디워시와 샴푸 향이―
쉽게 삐걱이는 간이침대가 아닌 푹신한 매트릭스와 지나치게 보드라운 이불이―
그리고 그 위에서 그렇게 보고팠던 언니를 마주하고 있는 이 순간이 너무나도 어색했다.
농과대에서도 이것보단 아니지만, 그래도 불편한 생활을 했던 적은 분명히 없었는데…….
정확한 이유를 특정할 수 없는 찝찝한 감정이 계속해서 그녀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거짓말.”
언니의 나지막한 한 마디에 잠시 아래를 응시하던 그녀의 고개가 다시 들려왔다.
조금 더 고개를 자신에게 숙인 채 눈을 가늘게 뜨고 있는 차설희의 얼굴.
“표정에서 다 보이는데 또 곰탱이처럼 헤헤 웃기만하고, 으휴― 진짜 차하얀답네, 차하얀다워.”
스르륵―
차설희가 못 말린다는 듯 한숨을 푹― 쉬며 침대에서 일어섰다.
차하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무드등을 끈 뒤, 다시 침대로 돌아오는 차설희를 조용히 응시했다.
옅은 불빛이 마저 꺼진 어두컴컴한 제1 열람실.
“……정말―. 이렇게나 무서워진 세상에서 잠 오는 거 하나 말 못하는 이런 착해빠진 동생을 정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차하얀은 애정이 듬뿍 담긴 투덜거림과 함께 그녀에게 다가오는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스윽―
언니의 손길을 따라 그녀의 오른쪽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오는 푹신한 매트리스.
정말 오랜만에 베는 것 같은 베개의 푹신함과 정성스레 자신을 감싼 이불을 한 번 더 점검하는 꼼꼼한 손길.
이내 여러 번 차하얀을 덮은 이불을 고르게 펴며 정리를 끝낸 차설희가 부드럽게 맞은편 자리에 몸을 뉘었다.
그리곤 다시 꼬옥― 차하얀의 손을 맞잡으며 이미 가까운 거리를 조금 더 가까이 좁혀온다.
스윽― 스윽―
한 손으론 차하얀의 손을 꽉― 움켜쥐곤 쉴 새 없이 차하얀의 얼굴과 머릿결을 쓸어내리는 소중한 손길.
차하얀은 그 손길을 조용히 받아들이며 지금 자신이 베고 있는 베개의 주인을 떠올렸다.
원래라면 그녀 말고 언니의 맞은편에 누워있어야 할…….
“……언니.”
“으응?”
가족, 멤버들 그리고 기획사 사람들.
언니와 다시 만났을 때부터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도란도란 나누었던 대화에서 일부러 피해 갔던 주제.
끝내 하루의 끝이 다가온 듯한 예감이 들고나서야 겨우 내뱉을 수 있는 말.
“……하, 한세계 씨는 지금 어딨어?”
“아― 그 사람?”
허나, 차설희는 생각보다 너무 평이한 어조로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
“아마 지금쯤 고자 씨랑 이런저런 밀린 일들을 처리하고 계시지 않을까?”
“……고자? 사람 이름이 혹시 고자셔?”
“아― 푸흡―! 미안, 그 사람이 매번 고자고자거려서 그런지 나도 입에 붙어버렸네.”
고장훈 씨라고― 믿음직― 으음― 열정적이고 활기찬 분이 한 분 계셔.
흐린 어둠 속에서도 너무나도 선명히 들려오는 언니의 음성.
차하얀은 왠지 모르게 살짝 톤이 올라간 언니의 대답이 껄끄러웠다.
“학생회관이랑 다른 곳에 밀린 일들도 처리하셔야 하고, 무엇보다 그 사람이 지금까지 안 들어오는 건 우릴 배려해주고 계신 거니까…….”
……그 껄끄러움이 쉽게 그녀를 떠나질 않았다.
혓바닥에 난 가시처럼 계속해서 그녀를 분명하게 찔러대고 있었다.
차하얀은 어느 순간부터 언니의 입가에 진하게 새겨진 미소를 바라보며 퉁명스레 다음 말을 내뱉었다.
“그 사람이 계속 자길 형부라 부르래.”
“……형부?”
차하얀의 투덜거림이 끝나고 한참 뒤에야 새어 나오는 차설희의 가녀린 미성.
“……저, 정말?”
“응.”
차하얀은 맞잡고 있는 손이 갑작스레 꼬물거리는 것을 느끼며 짧은 단문을 토해냈다.
“……그, 그게 맞긴 하지. 하, 하얀이한테는 그 사람이 형부가―”
“너무 빠르지 않아?”
차하얀은 꼬물거리는 차설희의 손을 꽉 붙잡으며 그녀와 눈을 맞췄다.
이리저리 흔들리던 차설희의 눈이 차하얀의 시선에 요란한 방황을 멈췄다.
“아직 엄마, 아빠 허락도 못 받은 일이잖아.”
“……어차피 어머니 의견은 필요도 없었어. 그리고 아빠도 그렇게 반대하실 거라는 생각은 안 드는데?”
“…….”
“그, 그래도 생각해보면 너, 너무 빠른 거 같기도 하구―.”
“…….”
분명 자신의 의견에 동의를 표하는 언니였다.
하지만― 차하얀은 다음 말을 쉽게 이을 수가 없었다.
가족이기에 너무나도 쉽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부끄러움을 참듯 꽉 쥔 자신의 손을 벗어나 다시 꼬물거리는 가녀린 손가락.
어둠 속에서도 너무나도 선명히 이는 홍조와 쉴 새 없이 입가를 번지다 사라지는 미소.
“그, 그래도― 그 사람이 그렇게 부르라면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긴 시간을 함께한 여동생임에도 처음 보는 언니의 얼굴이었다.
“……정말?”
그런데도 그녀는 왜 다시 확인을 요하는 말이 튀어나왔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정말 형부라고 부를까?”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를 꾹 누르며 언니의 꼬물거리는 손을 더 꽉 붙잡았다.
저도 모르게 조금 더 언니의 얼굴로 가까이 간 눈길로 차설희의 두 눈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응.”
언니는 그 눈길에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
그 환한 긍정에 다음으로 내뱉을 말이 없었다.
“으이구―!”
그 순간, 차하얀의 볼을 부드럽게 꼬집는 차설희의 손가락.
부드럽게 손가락에 톡― 잡힌 볼살을 이리저리 흔든 차설희가 짓궂은 미소를 내지였다.
“갑자기 새로운 가족이 생겨서 어색해 죽겠다는 말이지?”
우리 내성적인 곰탱이가 하고 싶은 말이.
몇 번의 꼬집힘 뒤에 조금 더 차하얀과의 거리를 가까이 한 차설희가 다시금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래도 하얀이 너랑 금방 친해질 수 있을 거야. 생각보다 너무 좋은 사람이거든…….”
서로의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워진 자매.
차하얀은 자신의 얼굴을 너무나도 소중히 쓰다듬는 언니의 두 눈을 응시했다.
“……처음 봤을 때는 상상도 못 할 만큼.”
지금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는 듯한 흐릿한 그녀의 동공.
“……무엇보다 우리를 다시 만나게 해준 너무너무 고마운 사람이잖아.”
이내, 다시 차하얀에게 돌아온 차설희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하얀아.”
나지막한 미성과 그녀의 눈에서 또르르 흘러내려 콧등에 맺히는 작은 물방울.
“……응.”
차하얀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자신을 꽉― 안아 드는 언니의 따스한 체온을 조심히 머금었다.
“……정말 다시는 못 보는 줄 알고 너무너무 무서웠어.”
이 넘치는 사랑에 보답하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차하얀은 파들파들 떨리는 손으로 자신을 꼭 안고 있는 언니를 느끼며 자신의 팔로 그녀의 떨림을 보듬었다.
툭―!
조심스레 언니의 등을 교차한 팔에 더 꽉― 차하얀을 안는 차설희.
“나쁜 일을 겪으면 좋은 일이 온다잖아.”
“…….”
“이렇게나 큰 나쁜 일을 겪었으니 이제 우린 행복한 일만 남은 거야.”
……알겠지?
울음이 가득 메여있는 언니의 물음.
차하얀은 그 간절한 물음에 살며시 눈을 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톡― 톡― 톡―
그리고 자신이 눈을 감았다는 걸 안다는 듯 동생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이는 언니의 손길.
차하얀은 언니의 애정 넘치는 토닥임을 머금으며 오랫동안 눈을 뜨지 않았다.
톡― 톡― 톡―
계속해서 길게 이어지는 토닥임―
“……새액― 새액―”
이내 차하얀의 입가에서 조용히 새어 나오는 고른 숨소리.
그 소리를 듣고 나서야 차설희는 토닥임을 멈추고 다시 동생을 더 꽉 안았다.
───────.
오랜만에 다시 듣는 동생의 얌전한 숨소리를 자장가 삼아 차설희도 눈을 감았다.
“…….”
허나, 긴 시간이 흘러도 잠이 들지 않는 자신을 느끼며 조용히 눈을 떴다.
스윽― 스윽―
작게 위치를 바꾸며 계속해서 흐르는 이불과 잠옷이 스치는 소리.
차설희는 이내 몸을 떠나가질 않는 어색함에 멍하니 어둠을 보던 동공을 옮겼다.
그녀의 동공에 흐릿하게 담겨오는 침실의 철문.
“새액― 새액―”
그렇게 오랫동안 잠들지 못하는 언니를 느끼는 동생의 눈이 서서히 뜨여왔다.
이토록 따뜻한 체온과 사랑에 안긴 채 내쉬는 고운 숨결.
허나, 너무나도 이상하리만큼 쉽게 잠에 들 수 없었다.
“새액― 새액―”
호흡을 이어갈수록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어색함과 답답함.
차하얀은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사랑하는 언니와의 포옹이 조금은 갑갑했다.
“새액― 새액―”
참으려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오히려 더 송곳처럼 뾰족이 찔러오는 감각.
차하얀은 오직 그 감각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긴 적막 덕에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계속해서 그녀를 괴롭히던 정체 모를 감각의 원인을.
───────.
‘똑―. 똑―.’
차하얀은 짙고 깊은 침묵 속에서 환청처럼 흘러드는 소리를 조용히 더듬었다.
“…….”
어느덧 숨소리도 내뱉지 않는 그녀의 뜬 눈에 담겨오는 창가.
밝은 달빛만을 머금은 창가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이 조금 더 먼 곳을 응시했다.
투둑― 투둑―
빗방울이 쉴 새 없이 맺혀오던 창가와 짙은 어둠에도 이상하리만치 눈에 선명한 칸막이.
그리고 그 칸막이 너머의―
‘……차설하.’
차하얀은 짙은 장난기를 담은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다시 투명한 유리창을 응시했다.
그곳에 단 하나도 맺혀있지 않은 물방울들.
이곳에서는 비가―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안녕하세요, 독자님들!
기나긴 고민 끝에 소설의 제목을 조금 더 간결하게 '아포칼립스 폭군'으로 변경하고 '가스라이팅'을 태그로 옮기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이 변경에 관해 독자님들의 말씀을 듣고 싶어 작가 후기를 남깁니다.
조금 번거로우시더라도 혹시나 여유와 시간이 되신다면 이 제목 변경의 호불호에 관해 댓글로 말씀해주시면 감사히 경청하겠습니다!
항상 제 소설을 봐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밤 되시고, 다가오는 추석도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