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폭군-83화 (83/120)

영원히 (4)

끼익―

도서관 로비에서 옅게 들려오는 브레이크 소리.

소리의 행방을 쫓아 고개를 돌리니 이미 후다닥― 달려간 고장훈이 유리창의 암막 커튼을 걷는 모습이 그대로 보여왔다.

치익―!

커튼이 걷힌 자리로 더 진하게 로비를 물들이는 오후의 햇빛과 유리창에 비춰오는 편의점 배송 차량.

난 정문 도로에 정차한 차량과 그 차량에서 서둘러 내리는 익숙한 얼굴들을 차분히 훑었다.

운전석을 여닫는 소리와 함께 모습을 보이는 유서준과 덜컹거리는 뒷문에서 하차하는 방대화와 그 동생들.

방대화가 뒷문에서 내리자마자 혹시나 따라온 좀비가 있을까 경계하는 모습이 유리창에 그대로 비춰왔지만―

그 경계가 무색하게 편의점 배송 차량을 따라온 좀비는 단 한 마리도 없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치지도 않고 튀어나와 차량에 거머리처럼 달라붙었던 좀비들의 실종.

허나, 그리 놀랍거나 충격적인 장면은 아니었다.

‘퍼어어엉―!’

난 아주 자연스레 귓구멍을 때리는 벌룬의 환청을 들으며 차하얀과 아주 질리도록 대면했던 중간의 좀비들을 떠올렸다.

아주 개미 떼처럼 바글바글거리며 중앙을 긴 띠로 점거한 좀비들의 파도.

그 파도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면, 지금 이 좀비들의 실종도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대학 곳곳에 퍼져있던 좀비들이 변종 ‘벌룬’에 의해 대부분 중앙으로 몰려간 것일 테니까.

“헤엑― 헤엑―”

난 암막커튼을 젖히고 다시 달려와 헥헥거리는 고장훈을 일별하곤 다시 유리창 너머를 응시했다.

서둘러 뒷문에서 하차하는 타격조와 그들 뒤로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낯선 생존자들의 하차.

급작스레 줄어든 좀비들의 수혜를 본 건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학생회관에서 무수히 뿌린 전단지만을 등불 삼아 최후의 도박을 한 생존자들.

저들은 타격조와 유서준이 무사히 학생회관에서 긁어온 도서관의 새로운 캠프원들이었다.

경영대에서의 새로운 생존자 노획과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저 생존자들.

난 제법 끊기지 않고 잘 이어지고 있는 캠프원 공급을 떠올리며 타격조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는 캠프원들의 면면을 조용히 눈에 담았다.

하나같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 청결 상태와 잔뜩 움츠러든 어깨.

그리고 공통적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눈알에 담겨있는 경계심과 두려움.

난 아주 멍한 얼굴로 차량 바리케이드에 둘러싸인 도서관을 바라보는 생존자들을 바라보며 고장훈에게 지시했다.

“새로운 캠프원들은 위층에 바로 합류시키지 말고 일단 2층에 전부 모아서 관리해.”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관장님.”

“2층에서 싹수가 보이는 새끼들부터 조금씩 일반 캠프원 층으로 올려보낸다.”

“예, 알겠습니다, 관장님.”

고장훈이 공손히 허리를 숙이는 것과 동시에 타격조가 한데 모인 생존자들을 통솔하며 도서관으로 다가오는 광경이 비춰왔다.

아주 조심스럽게 방대화와 그 동생들을 따르는 새로운 캠프원들과 그 뒷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유서준.

꾹 다문 입술과 파르르― 떨리는 동공으로 아주 오랫동안 그 행렬을 바라보던 놈이 천천히 시선을 유일하게 암막 커튼이 쳐지지 않은 유리창으로 옮겨왔다.

띠링―!

[‘유서준’이 ‘약하게’ 당신에게 ‘복종’합니다.]

[복종 요인 : 약속에 대한 신뢰, 폭력에 대한 ‘아주 강한’ 두려움 ……]

[특별한 힘을 지닌 이가 당신의 명령에 복종합니다.]

[왕권 : 245 -> 255]

유서준과 눈을 마주친 순간 갱신되는 상태창.

내 시선을 느낀 유서준이 나를 향해 조용히 머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난 그 무언의 인사에 작게 고개를 끄덕여준 뒤, 엘리베이터를 향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뚜벅― 뚜벅―

로비를 가로지르는 내 발걸음을 따라 분주한 움직임을 멈추는 캠프원들.

활짝 열린 진행 방향을 따라 내 뒤를 착실히 따라온 고장훈이 서둘러 엘리베이터 버튼을 꾹― 눌러댔다.

띵―!

애초부터 1층에 대기하고 있었던 문을 스르륵― 열어오는 엘리베이터.

난 다시는 못 들을 줄 알았던 경쾌한 전자음을 들으며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삑―!

6층 버튼과 닫힘 버튼을 차례로 누르는 고장훈의 손길.

천천히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 너머로 그제서야 1층의 물자를 다시 옮기기 시작하는 캠프원들이 보여왔다.

별다른 소음 없이 조용히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과 옅게 몸을 감싸는 엘리베이터 특유의 부유감.

툭―! 툭―!

쇠 파이프가 허벅지를 두드릴 때마다 전광판의 숫자가 차례대로 높은 숫자를 깜빡인다.

띵―!

난 맑은 도착음과 함께 ‘6’에 멈춘 전광판을 바라보다 스르륵― 다시 열리는 엘리베이터 문으로 시선을 옮겼다.

“““다녀오셨습니까, 관장님.”””

한데 겹쳐 울리는 높은 톤의 메아리와 함께 드러나는 6층의 라운지.

그곳에 모여있던 여성 캠프원들이 열린 엘리베이터를 바라보며 공손히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 전에 준비하고 있지 않았으면 절대로 보여줄 수 없는 즉각적인 반응.

도서관에서 엘리베이터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오직 나밖에 없기에 일어날 수 있는 광경이었다.

아직 그리 여유롭지 않은 전기 보유량 덕에 모든 캠프원들의 엘리베이터 사용은 절대적으로 금지였다.

공손한 허리숙임 뒤에 거의 동시에 올라오는 여성 캠프원들의 허리.

난 둥근 테이블 위에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잔의 김을 따라 모여있는 여성 캠프원들의 얼굴을 훑었다.

“…….”

그저 얌전히 내 시선을 마주하고 있는 여성 캠프원들의 평온한 눈동자.

그동안 꾹― 눌러 담아도 결국 튀어나와 그녀들의 눈을 파르르 떨리게 만들었던 공포와 두려움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난 이젠 공포보다 오히려 더 짙게 들어선 익숙함과 순종을 바라보며 작게 웃음을 토했다.

오랜만에 생각나는 두 쩌리들과 아주 흡사한 복종 과정.

그녀들에게 짙게 남아있던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옅어지고, 그 공간에 다른 긍정적인 요인이 자리 잡은 것이 아주 확실히 눈에 보였다.

이것이 바로 흘러간 시간의 힘이었고, 자기합리화의 힘이었다.

결국엔 도서관의 6층 캠프원으로서 적응을 거의 완료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시간과 자기합리화의 힘은 약해지긴커녕 점점 더 견고해지겠지.

도서관이 가장 안전한 구역이라는 사실을 되새김할수록, 자신보다 더 불행한 아래층 생존자들이 더 늘어날수록―

이들의 충성과 복종도는 자연히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아마, 방금 전 상태창이 갱신되었던 유서준도 이와 유사한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이겠지.

도서관의 모든 게 마음에 들진 않겠지만, 그래도 학생회관과는 확실히 다르게 확실히 유지되고 있는 법과 질서.

유서준에게 ‘도서관’은 합류하는 과정이 어찌 됐든 점점 소속감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보금자리였을 것이다.

그러니, 그 보금자리를 유지하는 질서와 그 질서 위에 있는 내게 자세를 달리하는 게 어쩌면 매우 당연했다.

직접적이고 임팩트있는 폭력과 공포를 계속하지 않아도 어느샌가 이루어내는 복종과 순종.

이 조용하고 은밀한 구조가 내가 계속해서 유지해야 할 필수적인 복종 과정이었다.

안 그래도 점점 불어나는 모든 캠프원들에게 내가 일일이 쇠 파이프로 겁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러니― 이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선 ‘도서관’이 대체 불가능한 공간이 되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유일한 보금자리.

그런 의미에서 농과대와 도서관은 절대로 양립할 수 없는 캠프였다.

그렇기에 무조건적으로 치워야 하는 걸림돌이다.

“…….”

난 조용히 내 눈을 바라보는 6층 캠프원들에게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손을 휘적거렸다.

그리곤 침실 복도를 향해 몸을 돌리고 나서야 다시 여성 캠프원들이 라운지에 마련된 의자에 앉는 소리가 들려왔다.

“작은 사모님 방부터 확인하시겠습니까, 관장님?”

“아니.”

난 넌지시 다음 일정을 묻는 고장훈에게 고개를 저으며 복도 끝을 턱짓했다.

“네가 어련히 알아서 잘했겠지. 침실에 잠깐 챙겨 나올 것이 있으니까 문 앞에서 잠시만 기다려.”

“예, 알겠―”

제1 열람실 앞에서 고장훈에게 들고 있던 쇠 파이프를 건넸다.

서둘러 내 지시에 입을 열려다 조용히 내가 내미는 쇠 파이프를 바라보는 고장훈.

놈이 또 덜덜― 떨리는 양손으로 아주 황송하다는 듯이 쇠 파이프를 건네받는 것을 보며 서둘러 철문을 열었다.

쿵―!

놈이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큰 소리로 닫히는 철문.

덕분에 침실 안에 있던 사람들의 이목도 자연스럽게 문 앞으로 끌려왔다.

끼이익―!

성큼성큼 침실 안을 가로지르는 나를 바라보며 의자를 끄는 두 여자.

차설희, 차하얀 자매가 창가의 테이블에서 일어나 큼지막한 눈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난 침실 구석에 놓여있던 목욕 바구니를 챙겨 들고 날 바라보고 있는 자매들에게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둘 다 어젠 편하게 잤어?”

“……당신.”

점점 가까워지는 거리를 빨리 좁히듯 테이블에서 내게 다가오는 차설희.

난 가까워진 차설희의 얼굴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그녀의 뒤편을 응시했다.

가까워진 차설희와 다르게 테이블 의자 앞에서 한 발자국도 내딛지 않은 차하얀.

“안녕, 처제?”

우두커니 선 채로 나를 응시하던 그녀의 동공이 파르르― 떨리며 내 시선을 조용히 피해 갔다.

“……안녕하세요.”

땅바닥을 응시하듯 내려간 시선과 아주 작게 새어 나오는 인사.

“……형부.”

그리고 웅얼거리는 입에서 마지막으로 튀어나오는 호칭에 더 진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툭―!

마치 차하얀을 바라보는 시선을 당기듯 옷소매를 당겨오는 손길.

“……어제는 도대체 어디서 주무신 거예요?”

난 내 눈을 바라보며 조심히 묻는 차설희에게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양팔을 벌렸다.

아무 말 없이 차설희를 완전히 품 안에 넣는 깊은 포옹.

난 순식간에 내 품에 안겨 온 차설희의 머릿결에 조용히 얼굴을 파묻었다.

킁― 킁―

일부러 큰 소리를 내며 한껏 들이키는 달콤한 샴푸향.

“……뭐, 뭐 하시는 거예요, 정말―”

이내 계속되는 킁킁거림에 간지럽다는 듯 몸을 꼬물거리던 차설희가 아주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기 시작했다.

“하, 하얀이도 보고 있는데…….”

조용히 뇌까리는 투덜거림에 비해 그리 선명하지 않은 반항.

오히려 나를 더 유혹하듯 약하게 꼬물거리기만 하는 그녀의 몸을 더 꽉― 안으며 속삭였다.

“뭐 어때? 다른 사람도 아닌 처제인데―.”

“…….”

나지막이 그녀를 안심시키는 속삭임에 차설희가 꼬물거리는 것도 멈추고 얌전히 내 등에 양손을 올렸다.

으스러지듯 꽉― 안아드는 포옹에 도리어 더 깊게 몸을 파고드는 차설희.

난 내 등을 꼬옥― 잡아 오는 차설희의 손길을 느끼며 다시금 시선을 뒤로 향했다.

“…….”

아무런 말 없이 그저 땅바닥만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는 차하얀.

허나 난 아까부터 계속 새어 나오는 묘한 소음의 진원지를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극― 극― 극― 극―

쉴 새 없이 나무 테이블을 긁어대는 차하얀의 검지 손톱.

의식적인지, 무의식적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강박에 가까운 속도로 테이블을 긁어대는 그녀의 가녀린 손가락을 아주 조용히 바라보았다.

“……오늘도 안 들어오실 거예요?”

그 순간, 내 귓가에 스며드는 부드러운 미성.

난 잠깐 포옹을 풀고 차설희와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자매끼리 밀린 이야기를 나누기엔 하루는 너무 짧지 않나? 내가 없는 게 너희들에겐 더 편할 것 같은데?”

“……그래서 당신 목욕 바구니도 챙겨 나가시는 거예요?”

“그런 셈이지.”

내 긍정에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옅게 찌푸려지는 미간.

“그래도 잠은 여기서 주무셔야죠.”

……여기가 우리 방이잖아요.

내 옷을 꼬옥 붙잡고 나를 올려다보는 큼지막한 눈망울.

난 내게 더 가까이 붙어오는 차설희와 뒤편의 차하얀을 번갈아 응시하며 난감한 미소를 내보였다.

“어― 그래도 다 큰 처제랑 같은 침대에 눕는 건 좀―”

“……조금 전엔 다른 사람도 아닌 처제라고 괜찮다 했으면서―.”

돌려 말하는 거절에 곧바로 튀어나오는 차설희의 툴툴거림.

난 작게 입을 삐죽― 내민 차설희의 얼굴을 다시금 쓰다듬었다.

고르게 그녀의 얼굴을 쓸어내리는 따뜻한 손길에 다시 눈을 맞춰오는 차설희.

난 차설희 특유의 별빛같이 반짝이는 눈망울을 오랫동안 바라보다 다시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그러고보니 하얀이 방이 다 완성됐다고 하던데.”

그리곤 그녀의 귓가에 불어넣는 아주 조용한 속삭임.

하지만 지근거리에 있는 다른 한 사람도 충분히 들을 수 있는 크기의 속삭임이었다.

난 내 속삭임이 끝나자마자 파르르― 떨리기 시작하는 차설희와 다시 눈을 맞췄다.

멍하니 나를 올려다보는 그녀에게 보내는 장난기 어린 미소와 살짝 가늘어진 눈.

─────.

이내, 내 신호를 오랫동안 머금고 있던 그녀가―

“…….”

아주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앞에 있던 나도, 뒤에 있던 차하얀도 쉽게 분간할 수 있는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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