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폭군-86화 (86/120)

협박 (1)

끼에에에엑―!

아직도 요란하게 울려대는 좀비들의 찢겨진 괴성.

“도대체 저건 뭐야…….”

잘게 떨리는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던 이유진이 천천히 바닥에 주저앉았다.

급하게 도망쳐 온 사과대의 정확히 어딘지 모를 강의실 안.

이유진은 하얀 바닥에 수북이 쌓여있는 먼지들을 바라보며 얼굴을 있는 대로 찌푸렸다.

공대나 그 주변에서는 절대 볼 수 없었던 미친 밀도의 좀비들.

그 좀비 밭을 울며 겨자 먹기로 뚫어내야 했다는 것도―

그 뚫어야 하는 이유가 도망인 것도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진짜 존나 짜증 나.”

이게 다 남도윤 그 개자식 때문이다.

그 자식이 알아서 잘살고 있는 공대에 찾아온 이후부터 모든 게 다 어긋나기 시작했다.

“……유진아―.”

속에서 천불이 치솟는 그녀에 비해 너무나도 태평한 목소리.

이유진은 세모나게 뜬 눈으로 홱― 고개를 돌려 장덕구를 응시했다.

“왜.”

눈에서 살기가 레이저처럼 삐져나오나 마나 아무렇지 않게 바지춤 안에서 무언갈 긁적이는 손짓.

“고추가 너무 간지러워.”

“……존나 씨발―.”

“일단 급한 대로 네가 한 번만 대주면 안 되냐?”

들으면 들을수록 더 가관이 되어가는 말본새에 이유진의 손이 수전증이 온 것마냥 떨려왔다.

우우웅―

동굴처럼 강의실을 메아리치는 공명음과 함께 그녀의 손에 물드는 보라색 빛무리.

“네 인생 자체가 자연 콘돔인 인생이었으면서 존나 꼴깝이네, 진짜―. 진짜 존나 뒤질래?”

허나, 장덕구는 이유진의 손에서 피어난 요사한 빛무리에도 바지춤 안에 든 손을 계속해서 긁적였다.

“그러니까―. 그 억울한 날들을 보상받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존나 부지런하게 박아야 한다니까?”

“……하아아― 덕구야.”

“왜.”

“장덕구 이 씨발새끼야―!”

퍼억―!

보랏빛을 잠시 거둔 손길로 장덕구의 머리를 후려치는 이유진.

“……아―.”

장덕구는 갑작스런 손찌검에도 아주 짧은 반응만을 내보이며 다시금 바지춤을 열심히 긁적였다.

“이 병신 새끼야! 남도윤한테 집도 노예들도 다 뺏긴 와중에 그게 중요하냐―?! 어―?!”

“음― 그게 회장이 다 뺏었다고 말하긴 조금 이상하지 않나?”

“뭐어?!”

“아니― 회장이 대화 좀 하자고 했는데 네가 통수 때리고 튄 거잖아.”

장덕구의 무신경한 눈빛이 분노에 부르르― 떨고 있는 이유진의 얼굴을 차분히 훑었다.

“그리고 내가 왜 병신이야, 공대 아니었으면 여왕벌 행세도 못 했을 년이.”

“닥쳐― 너도 이능력만 없었어도 내가 그 필요 없는 네 좆대 먼저 녹여버렸어, 알아?!”

“어이쿠― 그럼 아까 같은 상황에서 넌 꼼짝 없이 좀비들한테 물려 뒤지는데?”

“이 대가리에 섹스밖에 안 차 있는 새끼야― 그래서 ‘네 이능력만 없었으면’이라고 말했잖아― 씨발 이젠 방금 전에 한 말도 까먹냐?!”

끼에에에엑―!

한창 열기를 더해가는 강의실을 식히듯 다시금 울려오는 좀비들의 괴성.

더 발광하며 몸에 쌓인 화를 풀어내려던 이유진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어쩔 수 없이 입을 닫았다.

“……하아― 진짜 이 개고생을 왜 해야 하는지.”

각인된 행동처럼 바지춤을 긁적이면서 한숨을 내쉬는 장덕구.

그가 아직 눈빛만은 거두지 않은 이유진과 시선을 맞대며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이럴 거였으면 그냥 회장 따라 농과대에 한 번 가보는 게 더 나았을 것 같은데―.”

“……진짜 드디어 돌아버렸니, 덕구야? 네가 강간한 여자들이 몇 명인지는 알고 이야기하는 거지?”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귀 옆에서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리며 묻는 이유진.

어이없음이 한가득 묻어있는 행동에 장덕구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보호비를 돈 대신 다른 걸로 받은 거지. 그리고 회장 눈빛을 보니까 별로 우릴 죽일 생각도 없는 것 같던데.”

“그게 더 무서운 거야, 이 병신아. 그 새끼가 뭔 감옥에 가두겠다느니, 교화인가 뭔가를 시키겠다느니 정신 나간 헛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거 못 들었어?”

“……에이 설마―. 그냥 우릴 겁주려고 했던 말이겠지. 어떤 바보가 쓸만한 이능력자를 감옥에 가둬? 따지고 보면 우리가 새로운 세상의 귀족 같은 사람들인데.”

하아아―

이유진이 장덕구의 태평한 대답에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라니까? 그 개자식 눈깔 못 봤어? 존나 눈깔이 너무 또렷해서 더 미친 새끼라니까? 그런 새끼가 너보다 훨씬 더 미친 새끼들이야.”

“……난 안 미쳤다고, 이 여왕벌 년아.”

“어쨌든― 그런 새끼는 우리가 쉽게 제어할 수 없는 부류의 인간이야.”

가까이 있다 보면 언젠가 소리소문없이 좆되버리는 유형.

아주 확신이란 확신은 모두 담은 목소리에 장덕구가 바지춤에 있던 손을 꺼내 간지러운 목을 긁적였다.

장덕구는 그런 자신을 혐오와 경멸을 담아 바라보는 이유진에게 재차 물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건대? 슬슬 인벤토리에 담았던 식량도 얼마 안 남았어.”

“일단 아까 주웠던 그거부터 빨리 꺼내 봐.”

자신을 바라보며 건성건성 흔들어대는 이유진의 손.

장덕구는 그녀의 손짓에 목을 열심히 긁적이던 손을 다시 바지춤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금 장덕구의 바지춤을 파고든 손이 쉴 새 없이 무언가를 긁적였다.

퍼억―!

“이 씨발놈아―! 고추 긁지 말고 그거 꺼내 보라고―!”

“……아―.”

로봇 같은 반응으로 주머니에 꼬깃꼬깃 접힌 종이를 꺼내오는 장덕구.

아주 더러운 걸 집듯이 엄지와 검지로 살짝 종이를 집어 올린 이유진이 장덕구를 있는 힘껏 노려보았다.

“……존나 씨발―.”

진한 욕지거리를 내뱉은 그녀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구겨진 종이를 곱게 폈다.

[이 종이를 발견한 모든 생존자분들에게 알립니다. 아직 생존을 포기하지 않은 모든 생존자분들은 학생회관으로 모여주세요. 학생회관엔 넉넉한 식량과 안전한 보금자리, 특별한 능력을 갖춘 학우들이 생존해있습니다. 이걸 읽으시는 모든 생존자분들은 학생회관으로 모여주세요.]

이유진은 A4 용지에 인쇄된 검은 글씨들을 뚫어져라 정독하며 조용히 읊조렸다.

“학생회관, 학생회관, 학생회관…….”

부스럭―

이내, 전단지를 내려다보던 시선을 떼고 창가를 응시하는 이유진.

그녀에겐 아주 익숙한 북쪽이 아닌 생소한 방향을 오랫동안 바라보던 그녀가 장덕구를 응시했다.

“그 정도 쉬었으면 이제 밥값, 아니― 떡값 좀 하자, 덕구야.”

“……누가 보면 지가 대주는 줄 알겠어.”

“이 개새끼야― 공대에서처럼 계속 그렇게 살고 싶으면 지금부터 웃음기 쫙― 빼고 내가 시키는 일만 하라고.”

알겠어?

제법 진지해진 이유진의 음색에 장덕구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여왔다.

“뭐, 언제는 안 그랬나?”

끝까지 태평한 목소리로 바지춤을 마저 긁다 일어나는 장덕구.

이유진은 그와 함께 주저앉았던 몸을 일으키며 다시금 손에 쥐고 있는 전단지를 내려다보았다.

학생회관, 식량, 보금자리, 이능력자.

그녀가 되찾아야 할 모든 것들.

“……절대로 두 번의 실수는 없어.”

***

“도서관, 사범대, 인문대, 경영대 그리고 학생회관.”

툭― 툭― 툭― 툭―!

고장훈의 호명대로 반석대학교 지도를 쿡― 쿡― 누르는 지시봉.

“관장님의 말씀대로 반석교회를 기준으로 대학을 북측과 남측으로 나눈다면―”

반석교회에서 쭉― 대학을 반으로 그은 지시봉이 대학 남쪽의 남은 단과대를 가리켰다.

툭―!

“이제 대학 남쪽에 남은 큰 단과대는 사회과학대학, 사과대 뿐입니다.”

반석교회의 조금 아래에 위치한 단과대.

난 고장훈의 지시봉이 누르고 있는 단과대에 고개를 주억이며 남측 전체를 훑어보았다.

정문 조금 뒤편에 큼지막하게 펼쳐진 대학 주차장과 대운동장.

그 외의 입학본부와 미술관 등의 대학 부속 시설들.

반석교회를 기준으로 반으로 나뉜 대학을 바라보면 확실히―

남측보다는 북측이 훨씬 더 부지가 넓었고 단과대도 조금 더 많았다.

게다가 조금 왼편에 치우쳐진 기숙 관련 시설들까지 북측이라 여긴다면 그 차이는 아주 극명하게 벌어진다.

“…….”

허나, 이건 아직 남쪽도 다 못 먹어 치운 내가 하기엔 너무 이른 생각이기도 했다.

툭―!

난 고장훈의 지시봉이 가리키고 있는 사과대와는 다른 구역을 손가락으로 집으며 고개를 들었다.

조용히 내 말을 경청하고 있는 6층의 핵심 캠프원들.

“사과대를 확보하기에 앞서 반석대 야구장과 체육 시설들부터 수색한다.”

대운동장 인근에 아주 여유롭게 자리 잡은 야구장과 여러 체육 시설들.

난 대운동장과 비슷한 초록 잔디로 칠해진 지도의 남측 부분을 가리키며 모두에게 말을 이었다.

“어떤 건 짧고, 어떤 건 너무 무겁고, 또 어떤 건 모양이 부적합하고― 온갖 잡동사니로 뒤죽박죽인 공구들보다는 야구 방망이 같은 도구가 둔기질에 훨씬 적합하겠지.”

툭―!

난 다시금 지도의 체육 시설 부분을 두드리며 수색조원들과 눈을 맞췄다.

“애초에 힘껏 휘두르라고 작정해서 만든 도구. 우리에겐 이런 무기로 쓸법한 도구가 아주 많이 필요하다.”

야구 방망이, 활, 목검 등등―

“학생회관에서 감칠맛만 나게 얻은 것들보다 본격적인 체육 시설에 가면 제법 건질 것들이 아주 많이 남아있겠지.”

툭―!

지도 옆에 올려진 쇠 파이프를 집는 손길에 앉아있던 캠프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를 하며 서둘러 몸을 추슬렀다.

“수색조는 나를 따르고, 타격조는 유서준과 함께 본래의 임무를 지속한다. 고장훈은 오늘 도서관에 남아서 밀린 업무를 수행해.”

“예, 알겠습니다. 관장님.”

끼이이익―!

지시가 끝나자마자 의자 끄는 소리로 시끄러워지는 회의실.

6층의 ‘누리뜰’이라는 휴게 공간을 개조한 회의실에 앉아있던 핵심 캠프원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다.

“헤헤― 모시겠습니다, 관장님.”

지시봉 대신 회의실 문을 활짝 연 채로 내게 간사하게 웃어대는 고장훈.

난 고장훈이 열어둔 문을 따라 회의실 밖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질서정연하게 내 뒤를 따르는 수색, 타격조들의 요란한 발소리가 6층 전체에 울려 퍼진다.

“……호호호―.”

그 갑작스런 발소리에 천천히 사그라드는 웃음꽃.

세미나실 앞에 펼쳐진 작은 라운지에 둥글게 앉아있던 여성 캠프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왔다.

끼이이익―!

그 테이블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던 차설희가 서둘러 의자를 끌어대며 일어섰다.

그녀가 일어서는 것을 보며 동시에 앉은 자리에서 일어서는 여성들.

“…….”

난 나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환하게 미소 짓는 차설희에게 조용히 손을 들었다.

내 제지의 손길에 달려오려던 몸을 멈칫거리며 눈을 동그랗게 뜨는 차설희.

난 점점 굳어가는 그녀의 표정에 서둘러 입 모양으로 그녀에게 말을 전했다.

‘……이따가 밤에.’

내 입 모양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녀가 그제서야 굳어가던 표정을 풀고 다시 환하게 웃었다.

화답하듯 그녀를 향해 지어주는 미소에 더 진한 호선을 그리는 그녀의 얼굴.

난 햇살을 머금은 탓인지 평소보다 훨씬 더 싱그러운 그녀의 미모를 감상하다 천천히 몸을 돌렸다.

“실례가 안 된다면 먼저 가서 엘리베이터를 대기시키겠습니다, 관장님.”

다시 재개된 발걸음에 서둘러 엘리베이터로 달려갈 시늉을 하는 고장훈.

허나, 난 그를 향해 옅게 고개를 내저으며 발걸음의 방향을 틀었다.

엘리베이터가 아닌 옥상 철문 앞에서 멈춘 발걸음.

“여기서 대기해,”

“예, 관장님.”

내 지시에 아무런 반문 없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는 캠프원들을 뒤로 한 채, 조용히 옥상 철문을 열어젖혔다.

끼이이익―!

활짝 열리는 철문 틈새로 빠르게 젖어오는 아직은 쨍쨍한 정오의 햇살.

난 꽤 큰 소리로 삐걱거린 철문에도 여전히 고개를 돌리지 않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툭―!

아주 부드럽게 철문을 마저 닫았다.

휘이이잉―!

제법 높은 고도 덕에 문을 닫자마자 앞머리를 간지럽히는 시원한 바람.

난 꽤 신경 써서 발소리를 죽이고 여전히 난간에 기대어 밖을 바라보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툭―!

일부러 그녀의 옆에 서며 크게 내디딘 인기척.

“…….”

그제서야 조용히 고개를 돌린 차하얀이 토끼처럼 놀래며 몸을 파닥거렸다.

튀어나올 듯 동그란 눈으로 팔을 허우적거리며 습관처럼 내뱉는 인사.

“……아, 안녕하세요.”

허나, 고개를 돌리지 않고 계속해서 파란 하늘을 바라보는 내 모습에 그녀의 목소리로 점차 사그라들었다.

“……형부.”

그 말을 끝으로 난간에 기대어있던 몸을 살짝 뒤로 물리는 차하얀.

그녀는 6층 라운지의 유일한 불참자였다.

하지만 그녀의 성격상, 그리고 차설희의 성격상 아예 불참했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분명 차하얀은 차설희에 이끌려 라운지에 함께했을 것이고― 그런 그녀가 라운지에 없다면 다른 핑계를 대고 잠시 모습을 감춘 거겠지.

웬만하면 바람이 시원한 곳으로.

“…….”

꽤 오랫동안 서로 간에 한 마디도 오가지 않는 어색한 분위기.

단지 잠시간 앞머리에 왔다가는 잔바람만이 옅은 휘파람을 계속해서 불어대던 와중―

“여, 여름이라 그런가 벌레가…….”

차하얀이 아주 티 나게 말을 버벅대며 못 박힌 듯 서 있던 몸을 뒤로 질질 끌었다.

그제서야 난 조용히 하늘을 바라보던 고개를 돌려 그녀를 응시했다.

버벅거리며 몸을 뒤로 돌리던 차하얀이 맞닿아오는 내 시선에 돌리던 몸을 멈칫거리며 나와 시선을 맞췄다.

난 아주 복잡하게 굳어있는 차하얀의 얼굴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내보였다.

그녀에겐 오히려 더 익숙한 얼굴로.

“안녕, 차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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