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폭군-89화 (89/120)

협박 (4)

“……장님―! 관장님―!”

잠시간 고요에 젖어있던 지하 1층에 울려 퍼지는 고함.

아주 다급하게 쿵쾅거리는 발소리가 빠른 속도로 복사실에 다가오고 있었다.

“과, 관장님―! 똑같은, 똑같은 증세의 캠프원입니다―!”

오랜만에 다시 보는 두 쩌리 중 박우진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는 얼굴로 내게 소리친 박우진이 여분으로 남아있던 병실 침대에 업고 있던 여성 캠프원을 눕혔다.

“끄륵― 끄르르륵―!”

병실 침대에 눕히자마자 쉴 새 없이 몸을 비트는 여성 캠프원의 입에 이미 흥건한 게거품.

“하아― 하아― 하아―”

난 뒤늦게 달려와 숨을 헐떡이는 차하얀을 바라보다 다시 병실 침대로 시선을 돌렸다.

“끄르르르륵―!”

보기만 해도 괴로움과 고통을 엿볼 수 있는 잔뜩 찡그려진 얼굴과 입가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거품.

“잡아.”

여성 캠프원에게 다가가며 뇌까린 지시에 박우진이 서둘러 몸을 비트는 여성 캠프원의 몸을 내리눌렀다.

“끄르륵―! 끄르르륵―!”

몸에서 떠나질 않는 고통을 털기 위해 필사적으로 비트는 몸짓을 억제하는 손짓.

덕분에 더 격하게 발작하는 여성 캠프원을 내리누르던 박우진이 이를 악물고 더 강하게 팔을 내리눌렀다.

턱―!

유일하게 자유롭던 머리를 꽉― 붙잡는 손길.

홱― 홱― 휘젓던 머리까지 제한당한 여성 캠프원의 동공이 거의 흰자만 보일 지경으로 위로 치켜올려졌다.

우우웅―!

그런 그녀의 머리에 스며들기 시작하는 황금색 빛무리.

복사실을 누런빛으로 물들이는 왕권이 그녀의 머리에서부터 전신으로 빠르게 번져갔다.

“……끄륵―.”

황금빛을 온전히 머금어갈수록 점점 줄어드는 여성 캠프원의 발작.

여성 캠프원을 고정시키던 박우진의 팔에 박동하던 힘줄이 서서히 옅어지고 있었다.

“……새액― 새액―.”

이내, 차분히 가라앉은 여성 캠프원의 얼굴과 안정된 호흡.

띠링―!

[왕권 : 302]

난 조금 전과 달리 변동 사항이 없는 왕권을 확인하며 발걸음을 뒤로 물렸다.

“…….”

내 부분 무능으로 다시 안정을 되찾은 여성 캠프원.

캠프원들이 쓰러지는 이유가 누군가의 이능력이라는 것과 이능력자가 내 캠프를 공격했다는 것이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지금 당장 모든 캠프원들을 빠짐없이 5층에 집합시켜.”

조용히 내 얼굴만 바라보고 있던 박우진에게 내리는 지시.

“그리고 수색조에게 발작 증세를 보이는 캠프원은 모조리 지하 1층으로 데리고 오라고 전해.”

“……예, 알겠습니다―!”

난 내 지시에 부리나케 복사실을 뛰쳐나가는 박우진의 뒷모습을 확인하고 다시 병실 침대에 누워있는 여성 캠프원의 상태를 찬찬히 살폈다.

“……저, 형부.”

그 순간, 아주 조심스레 귓전을 두드리는 고운 미성.

아직 복사실에 남아있던 차하얀이 자신을 바라보는 내 시선에 서둘러 다음 말을 이었다.

“100% 확신은 없는데― 그래도 형부에게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잠시간 병실 침대에 누워있는 여성 캠프원들을 훑은 차하얀이 다시 내 눈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제가 저 두 분과 똑같은 증상을 농과대에서 본 것 같아요.”

……농과대?

조금 뜬금없이 튀어나온 이름에 눈가가 가늘어졌다.

“그, 그러니까 형부가 저를…… 어― 데, 데리러 오셨을 때 재하 씨라는 농과대 분이 저분들과 똑같았어요.”

발작 증세와 입가의 거품.

“혹시 기억 안 나세요? 그, 그날 들것에 실려있던 남학생분.”

확실히― 차하얀을 되찾기 전에 이미 분주했던 농과대 정문을 떠올렸다.

패닉이 온 듯 허둥지둥대던 캠프원들과 차하얀.

그리고 들것에 실려있던 남자.

“……그 남학생분도 지금 저분들처럼 아주 갑자기 쓰러졌다고 들었어요. 공대와의 협상 자리에서 아주 갑자기.”

“……공대?”

“네. 농과대 분들의 말로는 아주 질 나쁜 이능력자 두 명이 생존자분들을 노예처럼 부리는 곳이라 하셨어요.”

툭―! 툭―!

갑작스레 내 손에서 튀어나온 쇠 파이프에 차하얀이 깜짝 놀라 몸을 움찔 떨었다.

허나, 아무렇지 않게 허벅지를 툭― 툭― 치대는 둔기질에 차하얀이 천천히 다음 말을 이었다.

“아, 아주 나쁜 사람들이라고 농과대분들이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하셨고― 또 거의 끝났다고, 협상이 아니라 사실상 항복 선언을 하는 자리라고 전해 들었는데. 그 이후는 저도 잘…….”

농과대와 공대.

협상 자리에서 지금과 똑같은 방식으로 쓰러진 농과대 캠프원.

협상이 아닌 사실상의 항복 선언을 받는 자리에서 일어난 이변.

툭―! 툭―!

그리 섣불리 단정 지을 수 없는 단편적인 조각들이었다.

그래도―

“대학 북측의 공대 쪽 이능력자 두 명.”

“네, 이름이 어― 이, 이유진이랑 장―? 자, 장덕구? 어― 그런 비슷한 이름이었어요.”

일단 제일 처음 든 궁금증은 왜 가깝고 원한 관계도 쌓였을 농과대를 놔두고 내 도서관을 공격했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 첫 번째 궁금증에 답해줄 수 있는 가장 큰 가능성은 두 가지였다.

“……그런 거리상 문제가 사소할 정도로 이능력의 범위가 넓거나―”

……아니면 능력을 시전하는 이능력자가 가까이 왔거나.

“……가까이.”

가까이.

난 제법 선명하게 걸리적거리는 두 번째 가능성을 입 안에서 계속해서 굴려댔다.

사실상 항복을 선언하는 협상 테이블에서 쓰러졌다는 농과대 학생.

이건 빼도 박도 못하는 공대 이능력자들의 선전 포고였다.

정의감이든 동정심이든 뭐든―

공대에게 조치를 취하겠다는 농과대가 절대 가만히 있을 리가 없는 분명한 공격.

그럼, 지금쯤 한참 농과대 쪽 문제를 해결하고 있어야 할 공대가 갑자기 도서관을 공격한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전개 방향이다.

아니면 공대가 아주 단기간에 농과대를 잡아먹고 도서관에까지 마수를 뻗치는 거다?

그럼 협상 테이블로 가기 전에 공대가 진작에 농과대를 이기고 있었겠지.

툭―! 툭―!

다소 비약적인 가정들을 빼고 지금 내게 남아있는 상황적 진실들을 골라냈다.

농과대와 공대는 서로 충돌했었다.

공대를 협상 테이블에 불러낼 만큼 우세에 있었던 농과대 캠프원이 아주 위중한 상태로 쓰러졌었다.

그런데도 공대 놈들의 소행으로 보이는 이능력이 갑자기 내 도서관을 공격했다.

농과대가 아닌 나에게로 공격 방향을 틀었다.

즉, 이제 농과대보다 나를 공격하는 것이 놈들에게 더 우선적인 일이 됐다.

“……본거지를 도서관 인근으로 옮겼거나 도주했거나.”

아니면 둘 다이거나.

툭―! 툭―!

그렇게 갑작스럽게 본거지를 옮겼으니 모든 게 낯설고 부족하겠지.

그런 와중에 남측의 모든 물자를 독식하고 있는 내 캠프를 발견했을 거고―

그 상황에서 이능력자가 할 행동은 하나뿐이었다.

자신의 능력을 활용해 남이 가진 것을 빼앗는 것.

“……주제도 모르는 거지새끼들이 붙었네.”

“지금 당장 타격조를 호출할까요, 관장님?”

“아니.”

난 고장훈의 물음에 고개를 내저으며 병실 침대를 눈에 담았다.

안정된 호흡을 회복한 여성 캠프원과 호흡을 멈춘 또 다른 캠프원.

내 부분무능을 이용해 사상자가 더 늘어나는 것은 확실히 억제할 수 있다.

허나, 방어에 성공한다고 놈들의 공격이 이대로 멈출 거란 확신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놈들이 계속해서 내 캠프를 공격하도록 놔둘 생각도 없었다.

이대로면 남측 점령에 열을 올려야 할 내 캠프의 역량이 다른 불필요한 곳에 소모되고 만다.

“지금부터 발작 증세를 보이는 캠프원들은 모두 지하 1층으로 옮긴 뒤에 왕권을 주입한다.”

이능력에 당하고 있다는 건 인지했지만, 어떤 이능력인지는 섣불리 단정 지을 수 없다.

온갖 기상천외한 능력들이 즐비할 이 세상에서 능력 하나를 특정하는 것만큼 미련하고 병신같은 심력 소모는 없겠지.

“이후 발작 증세를 보였던 캠프원들은 모두 지하 1층에 격리한다.”

난 고장훈의 눈동자를 지그시 응시하며 다음 명령을 지시했다.

“그 누구도 지하 1층을 확인할 수 없게 조치해.”

“예, 알겠습니다, 관장님.”

“그리고 당분간 모든 캠프원들의 야외 활동을 금지한다. 수색조든, 타격조든 그 누구든 도서관 밖을 나가지 말라 전달해.”

갑작스런 기습을 당한 이들의 반응은 대표적으로 두 가지일 것이다.

깜짝 놀라 몸을 한계까지 움츠리거나, 아주 천둥벌거숭이가 되어서 기습자를 찾기 위해 사방으로 날뛰거나.

“아주 자연스럽게 허둥지둥하고, 안절부절못하면서,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워.”

놈들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병신같이 대학을 뒤질 생각은 없다.

애초에 그럴 필요가 없었다.

“…….”

난 다시금 내가 처음으로 잃은 캠프원을 조용히 눈에 담았다.

한꺼번에 발작을 유도하는 것이 아닌 한 명씩, 한 명씩 발작을 일으키는 캠프원들.

공대 이능력자 능력의 리미트라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다기엔 능력에 당한 캠프원들의 시간 차가 너무 촘촘하다.

야금야금 머릿수를 줄이려는 생각이든, 어떤 같잖은 생각으로 자행한 기습이든―

놈들은 지금 내 반응을 떠보듯 아주 살짝 나를 노크하고 있었다.

“오늘부터 우리는 도서관 자체의 문을 닫는다.”

그럼, 으레 문을 두드린 도둑놈들이 그렇듯―

그놈들이 조만간 스스로―

“……문을 열고 기어들어오겠지.”

***

아주 피부를 태울 작정으로 쨍쨍하게 내리쬐는 햇살.

이유진은 손차양으로 옅게나마 햇볕을 피하며 푸르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던 고개를 내리며 함께 내려오는 시선.

이유진은 살짝 내린 시선에 크게 담겨오는 도서관의 전경을 휘둘러보며 미소 지었다.

“……예쁘게 꾸몄네.”

아주 상태가 좋아 보이는 건물 외관과 보기 좋게 이어진 차량을 이용한 바리케이드.

이유진은 차량 바리케이드로 이어진 도서관과 사범대, 그리고 이곳에선 조금 멀리 떨어진 학생회관 방면을 눈짓하며 더 진한 미소를 머금었다.

학생회관에서부터 시작해서 사범대와 도서관, 그러니 거의 대학 남측의 전부가―

“관장인가 뭔가 하는 사람 거란 말이지…….”

굳이 일을 여러 번 할 필요가 없는 아주 잘 차려진 생크림 케이크.

아니, 농과대는 생각도 나지 않는 잭팟 그 자체의 상황이 그녀를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툭―!

방긋방긋 미소 짓는 이유진의 어깨를 두드리는 손짓.

“아, 왜―?!”

이유진이 신경질적으로 피부가 맞닿은 부분을 털어내며 장덕구를 노려보았다.

장덕구는 살기가 듬뿍 담긴 시선에도 아무렇지 않게 유리창 너머를 턱짓했다.

“그 관장인가 뭔가 하는 놈이 저 새끼 같은데?”

툭―! 툭―!

암막 커튼을 모두 젖힌 유리창 너머의 도서관 로비.

그곳에서 뭔 쇠 파이프를 계속해서 허벅지에 치대는 남자가 그들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겠지. 아까부터 제발 좀 알아달라는 듯이 맨 앞에서 저 지랄 중이잖아.”

이유진은 아무렇지 않게 남자와 시선을 마주치며 더 방긋 미소 지어 주었다.

“그런데 왜 저렇게 병신같이 서 있기만 하는 거야?”

“한 삼일 정도 지 부하들이 이유도 모르고 픽픽 쓰러지는 것 정도면 별의별 좆같은 생각이 다 들기 적당한 시간이잖아. 그렇게 고추만 벅벅 긁고 있을 때 갑자기 나타난 우리.”

그럼, 저 새끼가 우릴 보고 뭐라고 생각하겠어?

지금 이 좆같은 상황의 원인을 우리라 생각하겠지.

“원인이 우리니까 그걸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우리지. 저 새끼에겐 지금 세상 그 무엇보다 중요한 해독제를 우리가 가지고 있으니 저렇게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서 있을 수밖에 없는 거잖아.”

“……그럼 당장이라도 나와서 레드카펫이라도 깔고 양옆에 존나 새끈한 여자들이라도 붙여줘야 하는 거 아니야?”

“……씨발, 덕구야. 너는 같은 남자면서 나보다 남자를 모르니?”

아주 한심하다는 듯 장덕구를 바라보던 이유진이 잔웃음을 흘리며 유리창 너머의 남자를 턱짓했다.

“그냥 좀 귀엽게 봐줘. 남자란 동물은 남들 앞에서 센척을 안 하면 죽는 동물이거든.”

“그런가? 아 어쨌든―, 언제까지 저 새끼랑 눈싸움하고 있어야 하는 건데. 슬슬 존나 덥다, 유진아.”

“……넌 제발 좀 센척이라도 해라, 병신아. 씨발 내가 하라는 건 다 하고 이 지랄 중인 거 맞지?”

“당연하지. 이미 건물 전체에 흩뿌려났으니 그건 걱정하지 마.”

자신 있게 말하는 장덕구의 확답에도 눈을 가늘게 뜨고 건물 주위를 살피는 이유진.

그렇게 한참을 건물 주변을 휘둘러보고 나서야 이유진이 만족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독한 년. 어쨌든 난 하라는 일 다 했으니까 요구 사항에 여자도 넣는 거 절대로 잊지 마.”

“그냥 네가 알아서 타이밍 봐서 말하면 되는 거잖아, 새끼야.”

“음― 그걸 내 입으로 직접 말하긴 뭔가 부끄럽잖아.”

“진짜 갈 때까지 간 새끼가 별걸 다 부끄러워하네, 참나.”

경멸과 매도를 담은 눈빛에도 태연히 어깨를 으쓱이는 장덕구.

이내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친 장덕구의 손이 결국 바지춤으로 내려가는 것을 확인한 이유진이 와락― 인상을 찌푸리며 앞을 고갯짓으로 가리켰다.

“알았어, 가자. 가자고, 이 미친 새끼야. 이 정도면 슬슬 손님 맞을 준비가 되셨겠지.”

뚜벅― 뚜벅―

천천히 도서관 정문 쪽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따라오는 시선.

“……우리 귀여운 관장님이.”

이유진은 그 시선에 일부러 입을 크게 벌리며 그에게 속삭였다.

툭―!

아주 부드럽게 정문 손잡이에 올리는 손.

이유진은 자신들의 능력에 당한 후 꽤 오랫동안 닫혀있던 문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 작은 행동으로도 미리 파악할 수 있는 관장의 성격.

신중하거나 혹은 우유부단하거나.

둘 중 어느 것이라도 만져주긴 쉬운 타입이네.

밝은 얼굴로 잔웃음을 토한 이유진은 가볍게 손잡이를 쥐고 있는 손을 잡아당겼다.

끼이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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