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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 폭군-105화 (105/120)

반석

우우우웅―!

나와 성준기의 전신에 선명히 일렁이는 황금빛이 빠르게 예대 건물을 타고 올랐다.

남도윤의 염력에 참혹하게 부서진 건물 외관을 박차는 발길질.

팟―!

예대 건물에서 반대쪽 건물을 향해 직선으로 쏘아지는 추격.

남도윤은 그 직선을 황급히 피하면서도 막무가내로 내뻗은 손을 거두지 않았다.

내 추격을 어떻게든 뿌리치며 계속해서 성준기를 조준하기 위해 이리저리 흔들리는 놈의 손길.

“……이익―! 이이이익―!”

툭―! 툭―!

예대 건물을 직선으로 오가던 도중 내 상체를 후려치는 너무나도 약한 주먹질.

난 흰자가 거의 보이지 않는 실핏줄 가득한 눈동자로 나를 노려보고 있는 성준기를 내려다보았다.

어찌나 이를 악물었는지 쉴 새 없이 피를 토하는 입가에 섞여 드는 핏물과 게거품.

난 연분홍색으로 물든 놈의 입가를 내려보며 여유가 있던 오른손을 내리꽂았다.

퍼억―! 퍼억―! 퍼억―!

놈의 얼굴을 무자비하게 내리꽂는 주먹질에 다시 경련을 시작하는 성준기.

“그만해―! 그만하라고―! 이 미친 새끼야, 그만해애애애애애―!”

드드드드드드―!

또다시 주변에 널브러져 있던 사물들이 부유하며 나를 노려왔다.

허나, 난 그 간절한 화살들에 아무렇지 않게 내 손에 든 방패를 내밀었다.

까드득―!

이가 부서질 듯이 서로 마찰하는 소리와 함께 내 방패 앞에 멈춰서는 부유물들.

탁―!

난 제법 미꾸라지처럼 잘 빠져나가는 남도윤을 올려다보며 직선으로 예대 건물을 오가던 추격을 멈췄다.

“……하아― 하아― 하아―.”

아주 잠시간의 공백을 채우는 누군가의 헐떡임.

난 처음과 달리 아주 연한 빛깔로 반짝이는 남도윤의 붉은빛과 놈의 얼굴에 줄줄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지그시 바라보며 오른손에 힘을 풀었다.

털썩―!

이미 제 기능을 상실한 다리 덕에 단번에 바닥에 쓰러지는 성준기.

툭―! 툭―!

바닥에 볼품없이 쓰러져 경련을 계속하는 성준기의 몸을 발로 건드릴 때마다 남도윤의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지지직―! 지지직―!

성준기의 면상을 담배꽁초처럼 비비적거리는 발길질에 또다시 양팔을 내게 내뻗는 남도윤.

난 놈을 재촉하듯이 성준기의 머리를 조준한 채로 살짝 발을 들어 올렸다.

우우우웅―!

다시 처음의 진한 빛깔로 돌아오는 남도윤의 붉은빛.

허나, 놈의 잔뜩 일그러진 얼굴이 놈의 상황을 간접적으로 알려줬다.

아직도 여전히 성준기의 전신에 일렁이는 황금빛.

남아있는 여력을 전부 긁어모아도 성준기에게 염력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자명한 사실.

드드드드드드―!

남도윤이 여력을 긁어모아 선택한 것은 땅이었다.

이미 처참하게 갈라지고 망가진 지반을 다시금 뒤흔드는 남도윤의 염력.

놈의 염력에 성준기와 내가 딛고 있던 땅이 서로 멀어지기 시작했다.

공중에 붕 뜬 지반 덩어리 채로 정반대로 갈라지는 성준기와 나.

허나, 굳이 성준기를 뒤쫓지 않았다.

난 그저 이를 악물고 염력을 시전 중인 남도윤을 올려다보며 미소를 내지었다.

내 여유로운 미소를 경계하며 조금 더 위로 거리를 벌리는 남도윤.

쿵―! 쿵―! 쿠웅―!

그걸로 끝이었다.

갑작스레 공중에 뜬 부유감을 잃고 바닥에 내려앉는 지반 덩어리들.

약하게 흔들리는 시야 사이로 붉은빛이 사그라드는 남도윤이 들어섰다.

“……어?”

너무나도 연한 붉은빛을 집어삼키는 황금빛과 그 황금빛에 점거당하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멍청한 소리를 내뱉는 남도윤.

염력을 잃은 지반 덩어리처럼 남도윤의 몸이 천천히 지상으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아직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남도윤의 멍한 얼굴.

놈이 아주 천천히 고개를 틀어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그제서야 놈의 동공에 반사되는 황금색 거미줄.

성준기에게만 집중되었던 시선이 이제야 예대의 두 건물 사이에 거미줄처럼 잔존하던 부분 무능을 인식했다.

쐐애애애액―!

그런 순간에도 아주 착실하게 바닥으로 추락하는 몸뚱어리.

남도윤이 다시금 땅바닥을 향해 고개를 돌려왔다.

그렇게 바닥을 내려보는 놈의 시야 한 가운데 맺히는 내 얼굴.

난 놈의 염력을 흉내 내며 공중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남도윤이 나를 내려다보며 다급히 오른손을 뻗어왔다.

“…….”

허나, 여전히 놈의 전신을 점거하고 있는 내 부분 무능.

턱―!

아무런 염력도 일으키지 못하고 이능력이 무효화된 남도윤의 목에 내 손이 틀어박힌다.

난 내 손에 붙잡힌 백군의 왕을 그대로 땅에 박아 처넣었다.

“……잡았다.”

콰아아아아앙―!

***

“……쿨럭―! 쿨럭―!”

아주 나지막이 들려오는 피가래 끓는 소리.

난 쇠 파이프에 흥건한 핏물을 털어내며 그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머리가 뭉개진 성준기의 시체에서 땅바닥에 처박힌 남도윤에게로 돌리는 시야.

저벅― 저벅―

흉하게 일그러진 땅바닥과 아직도 자욱한 흙먼지를 헤치며 남도윤에게로 돌아갔다.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빗금을 토해내고 있는 작은 크레이터의 중앙.

뱃가죽을 뚫고 튀어나온 철근 하나와 너무나도 흐릿해진 놈의 눈깔.

끄드드득―!

“……끄르르륵―!”

놈이 이능력을 시전하는데 필요한 조건으로 보이는 손을 발로 즈려밟았다.

놈의 전신을 내달릴 격통에 파들파들 몸을 떨며 경련하는 남도윤.

난 그 고통에 다시 또렷해진 놈의 눈을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어때, 예고했던 가장 쉬운 방법에 당하는 기분이?”

끄드드드득―!

옅은 미소와 함께 반대쪽 팔도 즈려밟는 발길질.

“……끄르르륵―! 쿨럭― 쿨럭―!”

남도윤이 다시 한번 경련하며 입가에 게거품을 물었다.

이내 핏물이 뒤섞인 기침을 내뱉으며 눈물을 줄줄 흘리는 남도윤.

난 찬찬히 눈동자를 굴러 남도윤의 처참한 꼴을 감상했다.

심하게 뒤틀려 파들파들 떨기만 하는 놈의 양손과 핏물도 막아버린 채 놈을 꼬챙이 낸 철근.

그리고 눈물에 이어 콧물까지 질질 흘려대는 놈의 추한 얼굴.

“그래도 명색에 왕이신데 콧물까지 흘리면서 질질 울어대냐, 새끼야.”

“…….”

내 조롱에 사방을 헤매던 놈의 눈깔이 내게 고정되었다.

난 찢어진 실핏줄로 가득한 놈의 눈깔을 내려다보며 잔웃음 섞인 고개를 갸웃― 흔들었다.

“암군이든 백군의 왕이든 좀 왕답게― 품위 있게 가셔야죠, 암군님.”

“……왕.”

처음으로 아가리를 연 남도윤에게서 새어 나오는 심하게 갈라진 목소리.

놈이 여태껏 질러댄 고함과 혹사된 성대를 절로 알게하는 일그러진 목소리가 잇달았다.

“……그 왕이라는 것 때문에 앞으로 넌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을 죽여댈까?”

나를 올려다보는 남도윤의 눈빛이 점점 더 선명해졌다.

회광반조(回光返照).

말로만 듣던 죽기 전의 마지막 불꽃이 남도윤의 눈빛을 휘감았다.

“아니― 너에게 그 끝이 있을까?”

쿨럭―!

남도윤은 내게 갈라진 목소리를 토해내며 기침을 내질렀다.

그 기침에 한껏 베인 핏물이 그대로 남도윤의 얼굴을 덮었다.

“한세계.”

나를 부르는 남도윤의 나지막한 목소리.

“난 네가 불쌍해.”

핏물 가득한 놈의 얼굴이 옅은 미소를 그렸다.

“그렇게 아싸로 살면 아무도 모를 줄 알았어? 알 사람들은 다 알아.”

네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울타리 안에 아무것도 없어서 어떻게든 울타리 안을 채우려 아등바등거리는 고아 새끼.”

“못 받은 애정과 관심을 그 누구보다 갈구하는 불쌍한 고아 새끼.”

“쿨럭― 병신같은 세상엔 당연히 너 같은 병신이 왕이겠지.”

너 나 해.

그 병신같은 왕.

“난 성군도 백군의 왕도 아닌, 그냥 남도윤이니까. 처음으로 남이 준 이름에 광분하는 고아 새끼가 아니라.”

쿨럭―! 쿨럭―!

검붉은 핏물을 토해내는 놈의 기침에 점점 흔들리는 촛불.

난 바람에 금방이라도 꺼질 듯 위태로운 놈의 눈동자를 내려다보며 잔웃음을 흘렸다.

흐릿해지는 눈빛에도 끝까지 나를 올려다보며 내보이는 처절한 분노와 저주.

……그래.

“남도윤.”

난 내 밑에 깔린 패배자가 바라는 이름을 읊어주며 오른손을 뒤로 당겼다.

“그게 바로 네가 나한테 진 이유야.”

퍼어억―!

빛살처럼 내리꽂혀 남도윤의 머리를 뭉개는 쇠 파이프.

놈의 머리가 뭉개지는 동시에 넘어진 자세에서도 그의 머리를 떠나질 않던 하얀색 왕관이 땅바닥에 흘러내렸다.

팅― 팅티리링―!

하얀색 왕관과 내가 내던진 쇠 파이프가 동시에 땅바닥을 굴러가는 소리.

툭―!

난 한참을 굴러간 뒤 멈춰서는 하얀색 왕관을 바라보다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띠링―!

[참칭자 ‘성군’ 살해.]

[참칭자의 피를 획득하셨습니다.]

어느새 내 발치를 물들이고 있는 남도윤의 핏물.

우우웅―!

그 핏물이 내 발치에 스며든 동시에 저 멀리 굴러갔던 하얀색 왕관이 서서히 공중에 떠올랐다.

띠링―!

[백군의 왕 ‘성군’ 남도윤 사망.]

[반석대학교 도읍 쟁탈전, 라스트 킹 스탠딩 (Last King Standing)의 최종 승리자를 공지합니다.]

[도읍 쟁탈전 최종 승리 : 흑군]

[축하합니다, 도읍 쟁탈전 최종 승리의 보상으로 ‘도읍’을 획득하셨습니다!]

띠링―!

[새로운 ‘도읍’의 이름을 정해주세요.]

기나긴 메시지들과 마지막의 다소 뜬금없는 물음.

난 내 대답을 기다리듯 쉴 새 없이 점멸하는 메시지창을 바라보다 천천히 주변을 휘둘러보았다.

전투의 여파로 처참하게 망가졌지만, 이제는 너무 선명히 눈에 익어버린 예술대학의 전경.

그리고 그 너머의 도서관, 사범대, 인문대, 농과대.

그리고 그 너머의…….

도읍의 이름은 이미 정해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반석.”

[반석.]

내 조용한 읊조림을 되묻듯 메시지에 새겨지는 도읍의 이름.

우우웅―!

갑작스런 공명음과 함께 머리 위에 올려져 있던 검은 왕관이 공중에 떠 있는 하얀 왕관으로 날아갔다.

동시에 내 몸을 빠져나가는 검은 피와 하얀 왕관에 빨려 들어가는 남도윤의 붉은 핏물.

공중을 부유하는 하얀 왕관이 천천히 진한 검은색으로 물들어갔다.

띠링―!

[도읍, 참칭자 ‘암군’의 피, 참칭자 ‘성군’의 피.]

[참칭자 전용 운명 ‘입궁 선언’ 필수 조건 충족.]

[도읍 ‘반석’에서 폭군의 입궁 선언이 시작됩니다!]

파아아앗―!

두 개의 왕관과 두 참칭자의 피가 뒤섞인 왕관이 하늘 위로 솟아올랐다.

빠르게 검은 점이 되어 하늘 정중앙에 걸린 검은 왕관이―

펑―! 펑―!

검은색과 붉은색 폭죽이 되어 하늘을 수놓았다.

푸른 하늘과는 너무나도 대비되는 색으로 무언가를 축하하는 빛 덩어리들.

펑―! 펑―!

“…….”

난 멍하니 하늘의 폭죽들을 올려다보다 시선을 밑으로 내렸다.

푸르른 하늘에 비해 너무나도 엉망으로 망가진 바닥과 그곳에 누워있는 두 명의 시체.

고장훈과 차설희, 차하얀도 없이 홀로 바라보는 불꽃놀이였다.

애초에 그들 모두에게 이곳에 올 것을 금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알고 있는 사람이 죽는다는 것.

그리고 그 알고 있는 사람을 죽인 사람이 가까운 사람이라는 것은 그리 쉽게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굳이 차하얀이 아니더라도 왠지 모르게 지금은 혼자가 편했다.

하여, 난 희미한 미소를 머금으며 다시 하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두 명의 시체와 함께하는 조촐한 불꽃놀이를 계속해서 감상했다.

펑―! 펑―!

[폭군의 왕궁이 자신의 도읍에 세워집니다!]

[새로운 왕이 인간의 영토를 선포합니다!]

[참칭자가 아닌 새로운 왕에게 그 격에 걸맞은 보물을!]

띠링―!

[당신의 나라에 첫 번째 ‘국보(國寶)’가 탄생합니다!]

[국보 ‘반석대학교’]

[시작의 도읍 그리고 지식의 요람]

투둑― 투둑― 투둑―

하늘을 나풀거리며 추락하던 빛덩어리들이 어느새 비처럼 대학 전체에 스며들었다.

[당신의 국보에 참칭자의 피가 스며듭니다.]

[국보 ‘반석대학교’에 권능이 생성됩니다!]

쿵―! 쿵―!

계속해서 갱신되는 메시지를 읽던 와중에 갑작스레 지축을 울리는 발구름.

두두두두두―!

그 발구름을 쫓아 정문 쪽을 바라보던 고개가 순식간에 대학에서 멀어지는 발구름들을 쫓아 사방을 빙― 둘러보았다.

띠링―!

[출입금지구역에 도사리던 좀비 웨이브가 인간의 영토에서 물러납니다!]

[대규모 좀비 웨이브가 특별 보상 구역으로 둥지를 옮깁니다!]

[국보 쟁탈전이 해금됩니다!]

[영토 쟁탈전이 해금됩니다!]

띠링―! 띠링―! 띠링―!

쉴 새 없이 울리는 알림음과 함께 계속해서 갱신되는 시스템 메시지들.

난 그 수많은 메시지들을 피해 하늘로 시야를 돌렸다.

펑―! 펑―!

여전히 하늘을 수놓는 특별한 색의 폭죽들과―

투둑― 투둑― 투둑―

여전히 땅을 가볍게 두드리는 빛덩어리들.

난 얼굴에 내려앉는 빛덩어리들을 머금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

……

띠링―!

[서울특별시 은평구 반석대학교의 튜토리얼을 종료합니다.]

[최종 승리자 : 한세계]

[승리를 축하합니다!]

[당신의 피가 조금 더 고귀해집니다.]

[공통 권능 ‘왕혈’ 해금.]

[지금부터 도읍 ‘반석’에 임시 보호 기간을 적용합니다.]

[60 : 00 : 00 : 00]

[59 : 23 : 59 : 59]

[59 : 23 : 59 : 58]

………

……

[롱 리브 더 킹(Long Live The King)!]

[당신의 왕국이 제국이 될 때까지.]

띠링―!

[당신의 반석에 번영이 있기를.]

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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