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장 속 강아지 (1)
와하하하하―!
시끌벅적한 웃음소리로 가득 찬 도서관 6층.
난 어두운 밤인데도 6층을 적당한 밝기로 비추는 전등을 새삼스런 눈으로 응시하며 소파에 등을 기댔다.
♩~ ♪~ ♬
6층을 각양각색의 노래로 물들이고 있는 전자기기들.
분명 축제 첫날엔 누구 폰엔 신곡이 없다, 어떤 노트북엔 순 발라드뿐이라 조용히 툴툴대던 모습들을 어디 갔는지―
경쟁이라도 하듯 전자기기에 저장된 음악들이 최대 음량으로 도서관 자체를 두들기고 있었다.
일종의 파티룸으로 변모한 도서관 최상층.
환한 웃음으로 맥주캔을 부딪치는 캠프원들의 한껏 풀어진 얼굴들이 한눈에 담겨왔다.
대학 밖으로 갑작스레 물러난 좀비들과 임시 보호 기간이라는 시스템의 공언.
좀비라는 괴물이 출현한 이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진실된 안전을 모두가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지금도 한창 모두의 귓전을 때리고 있는 이 시끄러운 음악 소리도―
좀비라는 존재 때문에 매일매일을 숨죽여 살아야 했던 스트레스의 반동일 것이 분명했다.
“와아아아―! 고장훈―! 고장훈―! 고장훈―!”
순간 폭발적으로 6층을 뒤흔드는 고함과 자신을 연호하는 캠프원들에 두 팔을 벌리며 화답하는 고장훈.
탁구대 앞에서 괴상한 세레모니를 반복하던 고장훈이 다가오는 박태하에게 환하게 웃으며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짝―!
가벼운 잔웃음으로 고장훈과 손뼉을 마주치고는 탁구채와 맥주캔을 교환하는 박태하와 고장훈.
탁구대 맞은편에 있던 두 쩌리들도 쩌렁쩌렁하게 서로 간의 훈수를 교환하며 탁구채와 맥주캔을 교환했다.
“에헤이~! 지금 뭐 하자는 건데―?! 벌칙주부터 마시고 다시 우리한테 도전해야지, 새끼들아―!”
“어? 이거 3판 2선승 아니었습니까?”
“에헤이~ 에헤이~! 남자는 단판이지, 뭔 3판 2선이야?”
“에이― 남자는 5판 3선승이죠. 저희는 첫판은 연습 판인 줄 알고 탐색전 겸 살살했습니다, 형님.”
“어허…….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고장훈의 작은 속삭임에서부터 탁구대 주변의 캠프원들에게 번지는 고함.
장난스런 미소로 두 쩌리를 순식간에 압박하는 고함이 빗발쳤다.
그 익살스런 압박에 손을 휘― 휘― 저으며 테이블에 널린 맥주캔 하나를 따는 박우진.
“허― 탁구 한판에 맥주 한 캔을 태워?”
목적을 달성한 고장훈의 능글맞은 농담.
그 농담을 받은 박우진이 일순간 근엄하게 표정을 굳히며 맥주를 든 손으로 고장훈을 가리켰다.
“……너― 지금 당장 한 판 더해.”
오오오오올― 와하하하하―!
맥주 한 캔을 그대로 목에 들이붓는 박우진에게 돌아오는 캠프원들의 환호성.
한 번에 캔에 든 맥주를 다 해치운 박우진이 자신을 바라보며 실실 웃고 있는 김민준에게서 다시 탁구채를 받았다.
그 모습을 연신 미소를 달고 바라보던 박태하의 재촉.
탁구대에 선 박우진을 보며 아주 과장스런 표정으로 아무렇지 않게 걸어온 고장훈이 박태하에게서 탁구채를 건네받았다.
“어떻게― 이번 판은 자리라도 바꾸실래요, 형님?”
툭― 툭― 툭―
탁구공을 굴리며 고장훈을 도발하는 박우진.
고장훈은 크게 어깨를 으쓱이며 과장스런 표정을 유지했다.
“어허― 늑대 새끼가 어떻게 개랑 자리를 바꿉니까?”
“……이 형님 이거 진짜 안 되겠네.”
툭―!
박우진의 선공으로 시작하는 랠리.
툭― 툭― 툭―
계속 탁구대를 오가던 하얀 공이 박우진의 탁구채를 비켜 맞고 바닥에 떨어졌다.
와아아아아―!
“이거지―! 이거거든―! 이게 더 핑퐁이거든―!”
득점을 확인하자마자 또 괴상한 지랄을 시작하는 고장훈.
“푸하하하―! 야, 너 맥주 한 캔에 취했냐?”
“지랄―! 안 취했거든, 새끼야―?! 그리고 맥주 한 캔이 아니라 씨발 세 캔은 넘게 마셨어―!”
점수판을 넘기며 박장대소를 터트리는 김민준과 공을 주우며 발끈하는 박우진.
짝―!
이번에도 고장훈의 지랄에 손뼉을 마쳐주는 박태하를 바라보며 절로 헛웃음이 일었다.
축제를 열겠다 말했던 첫날에 비해 개벽이 일어난 수준으로 뒤바뀐 풍경.
난 어디 깡패들 술자리마냥 길게 늘어선 소파에 허리를 쭉 세우고 나만 바라보고 있던 캠프원들을 떠올리며 잔웃음을 내뱉었다.
그에 반해―
와아아아아아―!
왁자지껄한 웃음소리로 가득한 탁구대 주변, 아니― 온갖 잡담과 노랫소리로 가득 찬 6층을 쭉― 휘둘러보았다.
6층의 구석에서 서로 딱 붙어서 귓속말을 주고받으며 킥킥대는 안세준과 정세리.
학생회관을 오고가는 생존자 운반을 계속 함께하며 친해졌다는 보고대로 한 자리에서 카드를 섞으며 이야기를 주고받는 방대화와 유서준.
그리고 이곳에서 조금 먼 테이블에서 무언가 영웅담을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는 김우정과 그 옆의 수색조원들까지.
모두가 경직된 첫날에 비해 너무나도 편한 마음으로 도읍 쟁탈전이 끝난 그날부터 이어진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난 환하게 웃고 있는 캠프원들 중 비교적 생경한 얼굴들을 찬찬히 살폈다.
즐겁게 축제를 즐기는 이들에 동화되어 그들과 똑 닮은 미소를 내짓고 있는 전향자들.
경직되고 아주 어색했던 첫날의 눈알만 데구루루 굴리던 그들에 비해―
지금은 오히려 원래의 6층 거주자들보다 더 환한 미소로 축제를 함께하고 있었다.
톡― 톡―!
바라던 대로 부드럽게 캠프에 섞여 들고 있는 전향자들을 바라보던 내 어깨를 두드리는 손짓.
고개를 돌리니 유리잔에 담긴 형형색색의 액체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달그락―!
살짝 흔드는 유리잔에 시원한 소리를 내뱉는 얼음과 내게 친숙한 주류들과는 확연히 다른 빛깔.
“헤― 이것도 드셔보세요.”
힘이 풀려 나른한 호선을 그리는 눈가로 차설희가 내밀어오는 유리잔.
난 고장훈이 알려준 비율대로 주조한 그녀의 칵테일을 조금 홀짝였다.
“……어때요? 맛있죠? 그죠? 맛있죠?”
칵테일을 조금 홀짝이자마자 쉴 새 없이 조잘대는 차설희.
난 내 팔을 가볍게 뒤흔드는 그녀의 양손과 테이블에 널브러진 칵테일 주조의 흔적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고개만 두 눈을 집중해서 올려다보던 그녀의 동공에 비춰오는 부드러운 미소.
그 미소가 아무런 저항 없이 그녀의 입술로 번져갔다.
난 새빨갛게 달아오른 볼의 홍조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테이블에 널브러진 각종 주류들과 함께 섞는 데 이용한 수많은 음료수들.
이미 꽤 많은 칵테일을 주조한 흔적과 맛있는 칵테일을 시음한 내가 계속해서 그녀에게 반복했던 행동.
난 작게 웃으며 유리잔에 든 칵테일을 한 모금 들이킨 후 고개를 돌렸다.
점점 가까워지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입술을 살짝 벌리는 차설희.
“……으음―”
옅은 물기로 촉촉이 번들거리는 입술에 입술을 맞대자 그녀가 기다렸다는 듯 입술을 벌려왔다.
그녀의 얼굴을 조심스레 붙잡는 손길에 서둘러 내 손길에 덧대어오는 가녀린 손길.
어미 새가 아기새에게 물을 옮겨주듯 맞닿은 입술을 통해 그녀가 만든 칵테일이 그녀에게로 흘러갔다.
꿀꺽― 꿀꺽―
아주 조용히 울려오는 귀여운 꼴깍임과 계속해서 내 소매를 붙잡고 파르르 떨고 있는 그녀의 손길.
“……쪼옥― 쪽― 쪼옥―”
그렇게 입 안에 든 칵테일이 모두 사라졌는데도 그녀는 입술을 떼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가까이 내게 붙으며 내 입술을 머금었다.
천천히 고개를 이리저리 기울이며 다양한 각도로 맛보는 촉촉한 촉감.
그렇게 중독성 넘치는 그녀의 입술을 아주 한참 동안 즐기고 나서야―
“……푸하―”
그녀가 옅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뒤로 물렸다.
“헤― 정말로 맛있네요―?”
내가 계속해서 나눠준 칵테일의 여파가 한눈에 보이는 그녀의 얼굴.
흐물흐물하게 풀린 얼굴 근육과 다소 바보같아진 미소.
평소의 그녀라면 쉽게 하지 못했을 이중적인 농담에 헛웃음을 터트리며 손을 뻗었다.
내 손길에 얌전히 턱을 내밀어 입맞춤 동안 흘러내린 타액을 닦아내는 차설희.
이내, 내 손길이 거둬지는 것을 확인한 그녀가 천천히 내 팔을 꼭― 끌어안았다.
“……안 졸려요?”
잠이 들기 직전, 항상 그녀가 습관처럼 내게 묻는 말.
난 장난스레 눈가를 좁히며 쉽게 보지 못할 흐물흐물해진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생각보다 술에 아주 많이 약하시네요?”
“……아니에요―! 그냥 시간이 조금 늦었으니까 확인차 당신한테 물어본 거죠! 허― 꼭 이럴 때 취했다고 몰아가는 사람이 제일 많이 취했던데―!”
“…….”
아주 가성비 좋은 도발을 보낸 뒤 계속해서 거두지 않는 은근한 미소.
그 미소를 입술을 꾹― 다물고 노려보던 그녀가 이내 앙칼지려 노력하는 표정으로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냥 조금 쉰 다음에 바로 다음 칵테일 만들어드릴게요.”
편한 자세를 찾듯이 잠시간 어깨를 비비적거린 후 그대로 움직임을 멈춘 그녀에게서 피어오르는 익숙한 샴푸 향.
난 그녀가 편할 수 있게 살짝 몸을 숙여주며 다시금 축제를 휘둘러보았다.
와하하하하하―!
여전히 축제를 즐기는 웃음과 고함 소리로 가득한 최상층.
다시금 캠프원들을 살피는 시야에 익숙한 얼굴이 담겨왔다.
양옆의 여성 캠프원들에게 옅은 미소를 내지으며 여성 캠프원들이 모여있는 구역으로 걸음을 옮기던 생존자.
별안간 서로를 확실히 마주치는 눈빛에 그녀가 걸음을 멈췄다.
“…….”
그리 밝지 않은 얼굴로 옅게 몸을 파르르 떨어대는 구예리.
입술을 꾹 다물며 무언가를 참아내던 구예리가 짧게 고개를 숙였다.
그 목례에 나 또한 고개를 짧게 끄덕여준 후에야 다시 걸음을 앞으로 옮기는 구예리.
그녀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던 시야에 아주 시뻘건 면상이 끼어들었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갑작스레 곡소리를 내며 서둘러 내게 뛰어오는 고장훈.
난 놈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을 함께 돌아본 이후에야 그 곡소리의 원인을 깨달았다.
새근― 새근―
내 어깨에 기대어 조용한 숨소리를 흘리고 있는 차설희.
“……아이고― 사모님이 주무시는데 이 자식들이…… 지금 당장 다 조용히 시킬까요, 총장님?”
쉭쉭 거리는 목소리로 속사포처럼 말을 잇는 고장훈이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으음―.”
살짝 몸을 일으키는 순간, 칭얼거리며 고개를 흔드는 차설희.
그녀의 몸을 번쩍 들어 안자마자 그녀가 고목에 붙는 매미마냥 나를 꽉― 끌어안았다.
난 익숙하게 두 다리로 내 허리를 잠궈대는 차설희를 느끼며 나를 바라보고 있던 고장훈에게 미소 지었다.
“헛소리하지 말고 가서 마저 더 노세요, 더 핑퐁 씨.”
“……헤헤헤―.”
고장훈이 내 미소에 간사한 웃음으로 화답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난 이만 들어갈 테니까 고자 네가 오늘 축제도 잘 마무리하고 들어가.”
“……옙, 알겠습니다―!”
“아― 술 취해서 헛짓거리하는 새끼 없게 잘 단속하고.”
“옙, 염려 말고 푹 쉬십시오, 총장님―!”
시뻘건 얼굴로 갑작스레 근엄한 경례를 올리는 고장훈.
어이없음에 절로 터지는 헛웃음을 보곤 놈이 경례한 손을 경쾌하게 튕기며 돌아섰다.
“……와아아아아―! 웰컴주~ 웰컴주~”
난 놈이 돌아간 방면에서 울려오는 캠프원들의 환호를 들으며 복도를 걸었다.
점차 인적이 줄어드는 복도와 함께 깜짝 놀란 채로 일어나 고개를 숙이는 이 하나 없는 조용한 공간.
끼이이익―!
난 차설희와 나의 침실로 들어선 뒤, 그녀를 조심스레 침대에 눕혔다.
“……으으음―.”
갑작스레 그녀를 반기는 푹신함에 한 번 더 칭얼거리며 옅은 미소를 내짓는 차설희.
난 손을 뻗어 예쁜 미소가 머무는 그녀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내 손가락에 다시 옆으로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그녀의 머릿결.
“…….”
난 조용히 그녀가 덮고 있는 이불을 조금 위로 끌어올렸다.
스윽―
천천히 그녀를 포근히 끌어안는 따뜻함.
“…….”
그녀는 환한 미소를 내지으며 내게 감사를 표했다.
잠결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그림 같은 미소였다.
***
휘이이이잉―!
옥상 문을 열자마자 익숙하게 앞머리를 간지럽혀오는 밤바람.
난 깜짝 놀란 얼굴로 벤치에서 일어서던 그녀를 응시했다.
쿵―!
철문이 닫히는 소리에 삐걱거리며 서둘러 벤치를 벗어나려는 차하얀.
“……이번엔 어떻게 도망치려고?”
난 등 뒤의 철문을 고갯짓하며 가벼운 미소를 내지었다.
내 잔웃음에 전혀 화답하지 않으며 천천히 고개를 떨구는 차하얀.
이내, 내가 가로막고 있는 철문을 여러 번 응시한 후에야 다시 벤치에 몸을 앉혔다.
도읍 쟁탈전이 끝난 이후, 아니― 남도윤과 성준기가 죽은 것이 확실시된 이후 계속해서 나를 피해오던 차하얀.
식사 시간이든 차설희와 함께하는 어떤 시간이든―
일부러 나를 아주 필사적으로 피하던 그녀를 떠올리며 그녀의 옆에 앉았다.
툭―!
벤치에 등을 기대는 가벼운 소음에도 어깨를 들썩이며 놀라는 차하얀.
난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땅바닥만 바라보는 그녀를 바라보다 그날처럼 하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와하하하하하―!
“……죄송해요, 한세계 씨.”
옥상 철문으로는 막지 못하는 축제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가녀린 목소리.
“다 같이 즐거워야 하는 축제 기간에 혼자 이렇게 떨어져 있고― 한창 바쁘신데 괜히 신경 쓰이게 꿍해진 티만 내고…….”
고개를 돌리니 땅바닥을 바라보는 그녀의 읊조림이 이어졌다.
“……그냥―.”
어깨를 으쓱인 뒤 지어 보이는 쓰디쓴 자조.
“두 분이 그렇게 되니까 너무―, 제가 너무 나쁜 짓을 저지른 것 같아서…….”
그녀는 옅은 미소를 띠며 고개를 들었다.
아니―, 미소라기엔 너무나도 부자연스러운 미소와 처연한 눈빛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한세계 씨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휘이이이잉―
선선한 밤바람과 함께 날아드는 잘게 떨리는 목소리.
난 쉽게 정의할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에게 조용히 물었다.
“……이거 하나만 물어볼게, 설하야.”
“…….”
“지금의 네가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지금의 넌 그때와는 다른 선택을 할 거니?
나지막이 묻는 말에 차하얀의 동공이 파르르― 떨려왔다.
이내, 다시금 그녀의 입가에 맴도는 자조와 함께 그녀가 고개를 옅게 내저었다.
“……아니요.”
“……나도 그래.”
그 자조에 화답하듯 데칼코마니처럼 내 입가에 지어지는 쓴웃음.
난 그녀와 지그시 눈을 맞추며 연이어 속삭였다.
“절대 바뀌지 않을 선택을 두고 너무 괴로워하지 마, 설하야.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착한 짓만 하면서― 착한 아이로 살 순 없어.”
우리에게 중요한 건 딱 하나야, 설하야.
난 벤치 위에 올려진 그녀의 손을 맞잡으며 계속해서 속삭였다.
천천히 그녀의 손을 깍지 끼는 손짓에도 조용히 내 다음 말을 기다리는 차하얀.
“언젠가 반드시 나쁜 짓을 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는 것.”
“…….”
“나쁜 짓보다는 그 나쁜 짓으로 얻을 무언가를 위해―”
꼭 해야만 하는 나쁜 짓이 있다는 거야.
“……설하야.”
난 부드럽게 맞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어루만졌다.
엄지로 계속해서 그녀의 손등을 쓸어내리는 손짓에 그제서야 맞잡은 손을 흠칫― 떨어대는 그녀.
난 맞잡은 손을 더 꽉 맞잡으며 다시금 속삭였다.
“차설하.”
“…….”
맞잡은 손을 천천히 끌어당기며 점차 가까워지는 고개.
파르르― 떨리는 그녀의 동공에 비춰오는 내가 점점 더 크게 번졌다.
툭―!
서로의 숨결이 맞닿을 거리에서 나를 멈춰 세우는 손짓.
맞잡고 있는 손의 반대쪽 손으로 나를 제지한 그녀가 잘게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
“취, 취하신 것 같아요, 형부.”
그녀가 지금 느끼는 당황스러움을 나타내듯 평소에 입에 자연스레 붙은 말을 꺼내는 차하얀.
난 여전히 잘게 떨리고 있는 그녀의 눈망울을 바라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그러니까 나쁜 짓이지.”
흐릿한 미소와 나를 마지막으로 막던 그녀의 반대쪽 손길과 함께―
서로의 숨결을 느낄 수 있던 거리에서 더 좁혀지는 거리.
오똑한 그녀의 콧등에 비벼지는 콧등을 느끼며 살짝 고개를 비틀어 그녀와 입술을 맞닿았다.
보드라운 촉감이 입술을 휘감는 동시에 전신을 내달리는 전류.
그녀 또한 똑같은 걸 느꼈는지 짜릿한 전류가 통한 것 마냥 눈을 꾹― 감고 입술을 파르르 떨어댔다.
입술을 머금거나 혀를 집어넣지도 않는― 그저 입술만을 계속해서 맞닿는 기초적인 입맞춤.
허나, 그것만으로도 차하얀의 온몸이 잘게 떨리며 연신 뜨거운 콧김을 내 인중에 불어왔다.
“…….”
천천히 맞닿고 있는 입술을 떼며 멀어지는 고개.
그제서야 꾹 감고 있던 눈을 뜬 그녀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이것도?”
흐릿한 눈동자와 아직 흘리지 못한 옅은 열기가 흘러나오는 숨소리.
“……이것도.”
그녀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이번엔 그녀의 입술이 내 입술을 덮쳐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