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131)

무武란 무엇인가.

놀라울 정도로 간결한 설명에 등급조차 물음표.

입가가 씰룩이는 걸 참기 힘들었다.

대박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귀신이랑 대화했어?”

“대화라기보단 일종의 녹음 재생이었다. 혹시 모르니 상태창 확인해봐”

“어...?”

갑자기 한여름이 입술을 우물거렸다.

“뭔데 그리 망설이냐?”

“어... 호, 혹시 무혼이라는 거 얻었어?”

“어떻게 알았냐?”

“그... 공유한대 그거.”

“고작 그 말 하는데 왜 망설이고 그러냐.”

“시, 시끄러!”

한여름이 주먹을 꽉 쥐고 고개를 홱 돌렸다.

또 혼자 이상한데 꽂혔나 보다.

“마지막으로 인사나 드리자. 좋은 거 남겨주셨으니.”

당당하게 포권을 하고, 목함 두 개를 챙겼다.

무신비록과 무신의 시신이 동시에 빛 가루가 되어 흩날리기 시작했다.

쿠구궁-

순간, 미세한 진동음이 들려왔다.

“야, 얼른 나가자.”

“왜?”

“진동 울리잖아. 이러는 이유 하나밖에 없다.”

시간이 없다.

나는 한여름의 손을 붙잡고 빠르게 밖으로 달렸다.

콰과과광-!

우리가 나가는 것에 맞춰서, 무신의 무덤이 땅에 파묻혔다.

입구에 있던 석상까지 포함하여.

감쪽같이 풀숲으로 덮인 탓에, 이젠 아무도 발견 못 할 것 같은 장소로 변해버렸다.

“...너 생각보다 예리하구나?”

한여름이 평탄화된 땅을 보며 감탄을 내뱉었다.

“이제 서방님의 위대함을 알았냐?”

“서방님 아니거든.”

“어허, 튕기기는.”

“됐고, 그건 뭔데?”

한여름이 내 품을 쳐다보며 물었다.

“이거? 만년지극혈보랑 미타성수.”

“응? 내가 뭘 들은 거지.”

“영약이라고.”

“아니 아는데, 진짜 그거야?”

한여름이 눈을 부릅떴다.

각자 양기 계열과 음기 계열의 최고봉이나 다름없는 영약이었다.

“어.”

“솔직히 방금까진 야명주 존나 아깝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야명주는 놔두자. 괜히 파헤쳤다가 쓸데없는 저주나 받을 수도 있으니.”

“나,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해. 귀신이랑 대화했다며.”

에구 귀여운 자식.

나이가 얼만데 귀신을 무서워하냐.

나는 한여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전처럼 한여름은 거부하지 않았다.

“원래라면 둘이 동시에 먹어서 음양의 기운을 맞춰야 하는데....”

“우린 이미 깨진 상태잖아.”

“그래서 더 좋지. 각자 나눠 먹으면 되니까. 너부터 먹어라.”

목함 중 하나를 열었다.

안에는 핏빛에 가까운 붉은 액체가 담긴 병이 들어있었다.

“자, 가부좌 틀고 쭈욱 들이켜라. 먹고 바로 심법 운용하고.”

한여름이 긴장된 표정으로 내 말을 따랐다.

아무리 극양의 기운이 담긴 영약이라도 월음지체의 패널티를 없애줄 정도는 아니겠으나.

어느 정도는 완화해 줄 거다.

나도 마찬가지고.

무엇보다 그런 쪽에 효과가 없다 해도, 폭발적인 내공 증진은 보장된 거나 다름없었다.

한여름이 얼굴을 찡그렸다 풀기를 반복하더니, 어느 순간 편안한 상태로 변했다.

한참을 기다리다 보니 서서히, 그녀의 눈꺼풀이 들렸다.

“뭔가 달라졌냐?”

“...응. 지금이라면 누구의 머리통이든 수박처럼 박살 낼 수 있을 거 같아.”

얘는 예시를 들어도 참.

“내 차례니 호법 잘 서라. 이상한 짓 하지 말고.”

“안 해.”

한여름이 입술을 샐쭉거렸다.

나는 다른 목함을 열었다.

푸른빛이 미세하게 감도는, 우윳빛의 미타성수가 보였다.

자리에 앉아 곧바로 뚜껑을 따고 들이켰다.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

“....”

김무공의 정면에 한여름은 마주 앉았다.

이렇게 진지하게 눈을 감은 모습을 보니 자못 봐줄 만하다.

얼굴을 찡그렸다 풀었다 하는 게 묘하게 귀여우면서 재밌기도 하고.

“하아....”

한여름은 차마 김무공에게 말하지 못했던 상태창을 다시 쳐다봤다.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

등급 : ?

Till Death Do Us Part.

사랑의 증표로서, 김무공과 무혼武魂을 공유한다.

어째 일편단심보다 더 특성이 노골적으로 됐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예 김무공이란 이름이 박혀버렸다.

이것도 무신의 뜻인지 뭔지.

특성을 보자마자 얼굴이 새빨개지려는 걸 참기 힘들었다.

‘만년지극혈보는 전설대로긴 했는데....’

한여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무혼이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영약 효과는 끝내주긴 했다.

상태창만 봐도 30(D)에 불과했던 내공이 50(B)까지 늘어났으니까.

게다가 김무공과의 ‘음양합일’ 역시 여전히 필요했다.

혹여나 패널티가 사라지면 어쩌나 했는데, 그냥 전부 내공으로 변환된 모양이었다.

한여름으로썬 최고의 결과였다.

시간의 흐름도 잊고 멍하니 김무공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으니, 김무공의 눈꺼풀이 꿈틀거렸다.

한여름은 곧바로 일어나서 주변을 경계하는 척했다.

“...끝내주는 기분이야.”

김무공이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그치?”

배시시 웃으며 한여름이 김무공의 앞으로 쪼르르 다가갔다.

“그보다, 무혼이 뭔지 이해했다.”

잠시 골똘히 생각하던 김무공이 툭 내뱉었다.

“뭔데?”

김무공이 손을 쫙 폈다.

붉은 기운이 손바닥에 아른거렸다.

혈수마공의 기운이었다.

“...어떻게 했어?”

“천산신녀공부터 시작해서 소수마공까지 구결 떠올려 봐.”

김무공의 말대로 눈을 감고 한여름은 천천히 구결을 머릿속으로 읊었다.

“...말도 안 돼.”

“이해했냐?”

“...응.”

한여름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에는 난해하기 그지없었던 무공 구결들이 너무나도 쉽게 이해가 됐다.

손바닥을 펴고 단전에 잠들어있는 웅혼한 기운을 소수마공의 구결에 따라 변환했다.

새하얀 기운이 손바닥에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무의 혼이란 말처럼, 무공에 대한 압도적인 이해력 상승.

그것이 무혼의 첫 번째 능력이었다.

“내려가자. 여기서 얻을 건 다 얻었다.”

어느덧 노을이 지고 있었다.

집을 바로 앞에 두고도 굳이 그래야 하나 싶지만, 아카데미는 의무적으로 기숙사 생활을 강요했다.

당연히 통금 시간도 있었다.

김무공의 손을 꼭 붙잡고, 한여름은 산길을 내려갔다.

입가엔 작은 미소를 띠고.

***

“기숙사 싫어.”

한여름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나도 싫은데 별수 있겠냐. 학칙이 그렇다는데.”

땅바닥을 발끝으로 툭툭 치며 한여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진짜 싫다... 왜 우릴 갈라놓지 못해서 안달이지.”

“좋게좋게 생각하자. 어차피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하니, 친구나 좀 만들어 봐. 나중에 도움이나 받게.”

“...그래야겠네. 내일 봐.”

“오냐. 서방님 보고 싶다고 울지 말고.”

“내가 무슨 앤 줄 알아...!”

한여름이 내 옆구리를 팔꿈치로 퍽 치고 씩씩대면서 뒤돌아섰다.

애 맞는데 뭘.

그보다, 아프다.

좋은 걸 먹어서 그런가, 어째 한여름의 공격이 예전보다 더 아프다.

심호흡하며 통증을 해소하고 미리 배정받은 기숙사로 향했다.

자연스럽게 기숙사 방 안으로 들어간 나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대가 내 룸메이트인가.”

금발 미남이 우아한 몸짓으로 손짓했다.

아니, 미남이 아니라 미녀.

내 룸메이트는....

소천마 천하연이었다.

참고로 이 아카데미의 기숙사는 철저한 남녀분리가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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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연.

천마신교의 교주인 천마이자, 천하제일을 두고 흑룡검제와 다투는 위대한 무인의 이름이었다.

사실 흑룡검제는 정파 인물이라 게임 내 호사가들이 가산점을 엄청나게 때려 박은 거고, 플레이어들 사이에선 암묵적으로 천하연이 천하제일인 취급이었다.

물론.

그런 건 어디까지나 미래의 일이니 지금 당장은 알 거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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