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화 (30/131)

내구 : 10(F)->40(C)

민첩 : 11(F)->44(C)

내공 : 60(A)->71(S)

CCCS.

FFFA였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였다.

내공은 일종의 상한선에 걸렸는지, S에 그쳤지만 충분했다.

전에도 느꼈지만, A와 S의 차이는 ‘고작 한 단계’라고 하기엔 너무 막대했다.

게다가 추가로 오른 1의 수치 역시 확연히 체감될 정도였다.

내 말에 따라 이지아는 신아리를 안고 빠르게 시야에서 사라졌다.

도착하기도 전부터 비릿한 냄새가 풍겨왔었다.

단순히 신아리가 흘린 피 때문만은 아니었다.

적들 하나하나의 몸에서, 도저히 감출 수 없는 피내음이 느껴졌다.

대체 얼마나 많은 인간을 죽이고 잡아먹었어야 기운에서부터 저런 악취가 나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살려둘 필요가 없는 것들이다.

“고작 생도 주제에 감히...!”

눈앞의 사내가 악귀처럼 인상을 찌푸리며 으르렁댔다. 목표를 놓친 데서 오는 놈의 분노와 살기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딱 좋다. 덕분에 예리한 칼날처럼 감각이 정제됐다.

“저놈을 당장 죽여!”

사내가 소리쳤지만, 여전히 혈귀들의 움직임은 굼뜨기 그지없었다.

[천마신공이 하등한 마기를 감지했습니다.]

[천마군림보가 하등한 마기를 억제합니다.]

단 두 줄의 상태창 메시지.

이건 나도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이었다.

대체 유니콘 신공이랑 마기가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지만.

천마신공에는 ‘마기’ 자체를 억제하는 공능이 있는듯했다.

이로써 승산이 훨씬 올라갔다.

적혈귀도 사내의 옆을 지키고 있는 녀석 하나뿐이었다. 객관적으로도 할만하다.

내가 천마군림보를 밟을 때마다 놈들이 흠칫하며 멈춰섰다. 약간의 틈이지만 충분했다. 달려들던 혈살귀 한 놈의 머리통을 붙잡았다.

강화된 근력 덕에 인간을 들어 올렸음에도 솜털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붉은 안광을 번들거리며 놈이 벗어나려 발악했다.

아까 발로 차서 날릴 때 반탄력을 보아하니, 외부 공격에는 꽤 내성이 있는듯했다.

상관없다.

손아귀에 힘을 꽉 주면서 혈수마공의 기운을 사정없이 때려 박았다.

퍼석-

혈살귀의 머리통이 안쪽에서부터 터져 나갔다. 익어버린 뇌수와 피가 뒤섞인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얼굴에 끈적한 것들이 달라붙었다.

투두둑, 털썩.

머리를 잃은 몸통이 무너지듯 쓰러졌다.

박살 난 잔해들에선 뜨거운 열기가 아른거렸다.

진한 피비린내 사이로 구역질이 날 만큼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저벅.

발걸음을 옮기며, 한 놈 한 놈.

쉬지 않고 쳐죽였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병기에 가깝다 하나, 이들도 인간이었다. 물론 한번 혈귀로 변한 순간, 멀쩡한 몸으로 되돌아오는 건 불가능했다.

혈교에서 그걸 바라지도 않을뿐더러, 수없이 인간을 잡아먹으며 골수까지 들어찬 마기는 해소할 방도가 없었다.

미약한 공격은 무시하고 달려드는 탓에, 무슨 좀비 떼를 상대하는 기분이다. 여러 공격을 시도해 봤지만, 머리통을 아예 날려버리는 편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당연히 인간의 몸을 구성하고 있던 온갖 부산물들이 달라붙었다. 피와 살점, 지방 덩어리가 손에 엉겨 붙는 느낌은 빈말로라도 유쾌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인간의 몸에서 이렇게 많은 피가 뿜어져 나올 수 있구나.

차라리 무기를 쓰면 좀 나았을 텐데.

그런, 격렬한 전투에 걸맞지 않은 생각마저 들었다.

우드득-

또 한 놈의 머리를 분쇄했다.

상념과 별개로, 기계적으로 몸은 움직였다.

극양의 기운과 내가중수법 특화인 혈수마공은 혈살귀에게 특효약 수준이었다.

단단한 몸체가 허무할 정도로 간단히 스러졌다.

중소문파 하나쯤은 가볍게 괴멸시킬만한 전력이 내 손에 의해 실시간으로 사라져갔다.

“키에에에엑!”

놈들이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인간답지 않은 괴성을 질러댔다.

사내가 당황하며 열심히 통제하려 시도했지만.

이미 공포가 뇌수까지 지배한 혈살귀는 무지성으로 달려들 뿐이다.

본능만 남아있기에, 오히려 두려움에 빠지기 쉬웠다.

몇 명이나 죽였을까?

모르겠다.

만약 현실이었다면, 이런 경험을 한순간 온몸을 덜덜 떨면서 주저앉았겠지만.

첫 살인임에도 내 마음은 고요했다.

흥분하지도, 죄책감에 휩싸여 망설이지도 않았다.

그저.

내공을 아낌없이 때려 박으면서 오는 탈력감만이 나른하게 온몸을 감쌌다.

오히려 점점 익숙해지는 탓에, 혈살귀 정도는 개미를 밟아 죽이는 느낌마저 들었다. 개미치곤 조금 컸지만.

콰직-

열양지기가 일렁이는 손날을 세워 마지막 남은 혈살귀의 배에 꽂았다. 뱃가죽과 갈비뼈를 뚫고 들어간 손이 내부 장기를 전부 곤죽으로 만들었다.

투두둑. 뜨거운 무언가가 뻥 뚫린 구멍에서 쏟아졌다.

당연히 즉사였다.

시뻘건 피로 범벅인 손을 가볍게 털었다.

“혈살귀를 이, 이렇게 쉽게? 말도 안 돼...! 네놈, 대체 무슨 사술을 쓴 거냐!”

놈이 눈을 부릅뜨며 뒷걸음쳤다.

혈교의 주구 입에서 사술이라니, 웃기지도 않는다.

저벅저벅.

대답하지 않고 놈에게 다가갔다.

놈을 지키려 들듯이 적혈귀가 내 앞을 막았다. 2m는 가볍게 넘어가는 거대한 덩치였다.

천마군림보를 밟으면서, 천마신공의 기운을 변환하여 장심에 모았다. 어렵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되니 마치 숨 쉬듯 자연스럽게 가능했다.

놈이 날 막아서기 위해 달려드는 것에 맞춰 그대로 모은 기운을 발경했다.

혈수마공 血手魔功

염화만천 炎火滿天

퉁- 내 손에서 발출된 묵직한 경력이 놈의 복부에 닿았다.

퍼버버버벙-!

맹렬한 경파와 함께 북이 터지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그걸로 끝이었다.

적혈귀의 몸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산산이 조각나 흩날렸다.

비산하는 핏물과 육편 사이로 마지막 남은 사내의 얼굴이 보였다.

경악한 표정.

혈귀들과 달리, 저건 이성이 있는 인간이다.

상관없다.

저벅.

한 걸음, 다시 발을 옮겼다.

“처,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그, 그럴 리 없다. 그럴 리가 없다! 천마군림보는 이미 실전된 지 오래야. 아니, 조금 다르다? 저, 정체가 뭐냐!”

이성을 잃은 놈이 아무렇게나 지껄여댔다.

“알 거 없다.”

“이익...! 이 내가 우습게 보였나!”

쾅! 사내가 허리춤에 있던 연검을 뽑아 들고 땅에 내리쳤다.

그 모습을 묵묵히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나머지는 부탁드립니다.”

내 말에 맞춰, 때마침 도착한 흑의인 둘이 사내의 목에 검을 겨눴다.

“무, 무흔마영? 네놈들이 여긴 왜...? 크아아악!”

그대로 마혈을 제압당한 놈이 비명을 지르다가, 이내 아혈까지 막혔는지 읍읍거리기만 반복했다.

나는 미리 풀숲에 던져놨던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손에 잔뜩 묻은 피 때문인지 제대로 눌리지 않았다. 스마트폰 화면을 소매로 슥슥 닦으면서 무심코 주변을 둘러봤다.

피곤하다.

한때는 ‘인간이었던 것’으로 가득한 시산혈해의 현장을 쳐다보며, 내가 느낌 감상은 그것뿐이었다.

살육이 아닌, 마치 조금 지루하고 피로한 노동을 한 기분이다.

투둑투둑.

흐린 하늘에서는 갑자기 소낙비가 내렸다.

나는 천천히 손을 비비며 흘러내리는 빗물에 피를 닦아냈다.

잘 닦이진 않았다.

“괜찮으십니까? 이걸 다 혼자....”

사내를 제압한 중년의 무흔마영 중 하나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괜찮습니다. 혈살귀와 적혈귀를 부리는 거로 보아 혈교 놈임은 확실합니다.”

양손으로 이마를 쓸어 올리며 말했다.

피로 목욕이라도 한 기분이다.

무흔마영이 지그시 나를 보더니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바로 돌아가실 예정입니까?”

“예, 오늘은 쉬고 싶네요. 아마 무림맹 쪽에서도 나올 텐데, 수습은 맡기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길. 호위는 필요하십니까? 소교주님께서 최대한의 협조를 당부하셨습니다.”

“호위보단... 좀 씻고 싶네요. 옷도 좀 갈아입고. 이 꼴로 어디 돌아다닐 수는 없으니.”

정확히는 한여름에게 이 꼴을 보이고 싶진 않았다.

“그것도 그렇군요. 근처에 있는 저희 안가 중 하나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렇게, 나는 무흔마영 중 하나를 따라 이동했다.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

한여름은 엄지손톱을 입에 물고 잘근잘근 씹어댔다. 돌아오겠다던 김무공은 한참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톡을 보내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

‘대체 뭔데...?’

무언가 심각한 일이 발생했음은 김무공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먼저 자라고 했지만, 그런 얼굴을 보고도 먼저 잘 수 있을 리가.

‘저 표정’을 지었을 때 김무공은 무언가를 결심했다는 뜻이다.

그녀 자신의 고집으로도 절대 꺾을 수 없는.

이 세계에서 김무공이 굳은 결심을 해야 할 만큼의 사건?

한여름으로서는 짐작도 가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며 거실을 왕복했다.

띠리링-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도어락 열리는 소리와 함께 지친 기색이 역력한 그가 들어왔다.

“자고 있지. 시간이 몇 신데.”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김무공이 말했다.

억지로 짓는 웃음임이 명백했다.

“...어떻게 자.”

옷을 갈아입었다.

향수를 뿌렸지만, 감출 수 없는 미미한 피비린내가 코끝을 아릿하게 스쳤다.

...무언가를 죽이고 왔다.

그가 저런 표정을 지을 정도면.

‘무언가’의 정체는 안 봐도 뻔했다.

인간이다.

그것도 아마 여럿.

한여름은 몇 가지 사실을 통해 진실을 도출해냈다.

털썩.

김무공이 소파에 앉아 멍하니 정면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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