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蠱다.”
“방금 날아다닌 거 아냐?”
독벌레라 볼 수 있는 고의 종류는 꽤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내가 아는 고충蠱蟲 중에, 날아다니는 종류는 없었다.
“그래. 일반적인 고는 아니구나.”
“...이것에 당했을 수도 있겠군요.”
안태준 원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천하연의 손바닥을 쳐다봤다.
화르륵- 천하연이 불길을 일으켜 고의 사체를 태워버렸다. 고절한 삼매진화三昧眞火의 수법이었다.
“그대들은 돌아가는 게 낫겠다. 나와 여기 김무공 생도는 괜찮다. 하지만 그대들은 안될 것 같구나.”
천하연이 가볍게 손을 털며 군인들을 향해 말했다.
“두 분은 어쩌시려고?”
“저희는 계속 수색하겠습니다.”
안태준 원사의 물음에, 천하연 대신 내가 답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괜찮습니다. 위험하면 바로 몸을 뺄 겁니다. 그보다 아까 말했듯이 제보자 신변 보호부터.”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안태준 원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무리는 하지 마시길. 지원병력과 함께 금방 장비를 갖춰 돌아오겠습니다. 이건 비상 연락용 무전기입니다.”
그가 투박한 무전기 하나를 내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무운을.”
안태준 원사가 가슴에 손을 올리는 것으로 경례를 대신했다. 나 역시 똑같은 방식으로 화답했다.
군인들이 빠르게 물러간 뒤, 천하연이 입술을 달싹였다.
“우리 둘만 남았구나.”
“그러게. 여기 고가 왜 있는 거지?”
“모르겠구나. 이런 종류는 나도 처음이야.”
“혹시 이거 몸에 들어가면 환각이나 환청도 막 보이고 그러나?”
“대부분의 고는 심장 또는 뇌까지 파고드는 특성이 있으니, 아마 뇌를 파고든다면 그럴 가능성이 높긴 하겠구나.”
작은 크기 특성상 호흡기를 통해 숨어들었으면 안태준 원사가 이상을 짐작 못 할 만도 했다.
“의료 기기에도 안 걸리나 보네.”
“날개가 있는 것으로 보아 개량된 형태인 모양이구나. 모종의 회피 수단이 있는 거겠지.”
“우리는 괜찮아?”
“그대가 지닌 극양의 기운은 고가 들어오는 즉시 불태워버릴 테니 걱정 없다. 그리고, 나는 괜찮다.”
천하연이 가슴을 활짝 펴고 오연하게 말했다.
하긴, 고작 벌레 따위에 천하연이 당하는 모습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아까부터 기감에 거슬리는 게 있구나. 이쪽이다.”
이미 뭔가를 파악했는지, 천하연이 성큼성큼 앞장섰다.
중간에 벌레 무리들이 발견됐지만, 천하연이 그저 기파를 뿜어내는 것만으로도 전부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새삼스레 느끼지만.
천하연은 그냥 치트키다.
한참을 걸어간 끝에, 막다른 벽에 도달했다.
“여기...?”
이제는 내 기감에도 확연히 감지될 정도로 이질감이 강해졌다.
“그래. 무언가 있구나.”
쾅-
천하연이 곧장 주먹을 내질러 벽을 박살 내버렸다.
뻥 뚫린 구멍 사이로, 끔찍할 정도의 악취가 새어 나왔다.
시큼하면서도 응축된 썩은 내가 코를 찔러댔다.
그저 냄새를 맡은 것만으로도 온몸의 근육이 경직되는 느낌이다.
“시귀屍鬼의 악취가 나는구나.”
벽 너머는 지하수로와 달리, 희미한 청광만이 감돌고 있었다.
시귀라 함은 간단하게 좀비나 구울류를 뜻했다.
판타지 세상의 대표적인 잡몹이 좀비듯이, 여기도 똑같았다.
다만 마법 대신 약물과 사이한 대법으로 만들었다는 게 다른 점이었다.
게다가 요즘 판타지 좀비들이 종류에 따라 나름 엘리트 잡몹 취급받기도 하듯, 이 세상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엘리트 좀비 따위가 있어 봐야 천하연 앞에선 그냥 평등한 잡몹일 뿐이겠지만.
- 그워어어어....
칼날처럼 예리해진 감각에 어디선가 시귀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우리가 들어온 걸 인지한 모양이다.
내부는 조명이 깜빡이는 걸 빼면 의외로 현대적인 양식이었다.
몇 년 이상 방치된 것이 분명함에도 아직 깔끔함을 유지했다.
“시귀부터 처리하자.”
“그래.”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저 더러운 것들을 두고 내부를 수색하기엔 너무 찝찝했다.
비릿한 냄새를 따라가니 조금 넓은 방이 나오기 시작했다.
“...미친놈들.”
섬뜩한 기분에 유리 벽 너머의 방 내부를 슬쩍 바라본 순간, 자연스럽게 욕지거리가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매사에 담담한 천하연조차 눈앞의 광경에는 눈을 부릅떴다.
여러 개의 네모난 방 안에는 전부 투명한 비닐 백이 매달려 있었다.
그 숫자만 수백이 넘는.
그리고 그 비닐 안에는, 진공포장 된 인간의 시신이 담겨 있었다.
마치 도축한 소를 매달듯.
양손이 위로 매달린 채, 인간의 시신이 고깃덩이처럼 걸려있는 걸 보니 역겨움에 구토가 나올 것만 같았다.
시신의 종류는 어린아이부터 노인, 남성 여성을 가리지 않고 다양했다.
정확히 말하면, 어린아이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보이는 것이 수백이면, 이곳에서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스러진 사람들의 숫자는 수천도 넘었겠지.
죽음, 온 사방 천지에 죽음이 가득했다.
굳이 이 세상뿐만 아니라, 내가 살던 세상에도 분명 어딘가에선 이런 일이 발생했을 것이다.
무림전기가 얼마나 시궁창 세계인지, 좆같은 세계인지, 대충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역시, 그냥 막연히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한 것과 직접 현실을 눈으로 마주한 건 달랐다.
스멀스멀 밀려드는 엿 같은 기분에 다 때려 부수고 싶은 마음을 애써 가라앉혔다.
“그대가 여기 오고자 한 이유가 있었구나.”
잠시 멈춰서 물끄러미 방 내부를 쳐다보던 천하연이 말했다. 다행히 천하연은 이 참상을 보고도 비교적 차분함을 유지했다.
목소리에 은은한 노기와 씁쓸함이 실리는 것까진 감출 수 없는듯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만. 혈교 놈들이겠지?”
내 물음에 의외로 천하연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속단할 수는 없다. 세상엔 쓰레기들이 너무나 많은 법이니. 어쩌면 멸망하기 전 북한 정부의 소행일 수도 있는 법이지.”
“...가능성은 있겠네.”
그런 것치곤 시설이 게이트 사태 이후 지은 것 같았지만.
시신으로 가득 찬 끔찍한 방들 사이를 지나 결국 거대한 철문 앞에 도착했다.
최소한의 전력은 살아있는지 우리가 다가가자 자연스럽게 문이 열렸다.
- 그워어어어어!
운동장만큼 넓은 내부.
지하에 이 정도 시설이 숨어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리고 그런 곳을, 시귀떼가 지키고 있었다.
검푸른 시체들은 온전한 것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팔다리가 기괴한 방향으로 꺾여 있거나, 아예 없거나, 살점이 녹아내리고 뜯겨 나가고.
언데드의 무서움이 이거다.
약물 냄새와 뒤섞인 끔찍한 썩은 내도 그렇고.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멘탈을 뒤흔든다.
“안타깝게도. 숙주가 된 모양이구나.”
천하연이 묵묵히 기운을 일으키며 말했다.
나 역시 어찌 된 일인지 깨달았다.
썩다 만 시체에는 아까 본 고蠱가 들끓고 있었다.
저런 것들 일부가 미세한 환풍구 같은 곳을 타고 지하수로로 흘러나왔다는 거겠지.
우리 쪽으로 슬슬 달려들 준비를 취하는 좀비 떼를 보며 천마신공을 일으켰다.
쿵-
자연스럽게 천하연과 내 기운이 공명하며 폭발적인 내공이 전신 혈도를 질주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아까부터 협인지로 역시 발동 중이었다.
다음화 보기
최초의 천마, 시천마始天魔는 하늘이 정한 인간의 한계를 부수고자 했다.
천마신공天魔神功이라는 불가일세不可一丗의 무학은 그렇게 탄생했다.
칠대천마, 멸세마제滅世魔帝는 신분제를 부정하고 중원의 제왕인 천자天子의 지배를 거부했다.
정사가 연합하고 관군까지 동원된 대전쟁 끝에, 신교는 천산의 한 자락까지 밀려났다.
그때부터 신교神敎는 마교魔敎라는 사특한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하며 배척받았다.
부당한 억압에 대항하는 것이 마魔라면, 우리는 마 그 자체가 되겠다.
신교의 사람들은 기꺼이 마를 자처했으며.
그 결과 지금의 천마신교天魔神敎가 탄생했다.
파천破天.
시대에 따라 내포된 의미는 달랐을지언정, 신교의 천마들은 모두가 하늘을 깨부수고자 했었다.
하늘.
그것은 인간의 한계일 수도 있었고, 때로는 지배자의 폭정일 수도 있었으며, 때론 신분제 그 자체가 될 수도.
...때로는 인간이라면 모름지기 지켜야 할 선인 윤리 같은 것을 뜻하기도 했다.
작금의 신교가 부수고자 하는 하늘이란 인간의 멸절을 원하는 듯한, 게이트 사태 그 자체였으니.
신교가 전 세계에서 가장 게이트 사태에 적극적으로 대항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우리의 원죄로구나.’
어기적거리는 시귀들을 쳐다보며 천하연은 씁쓸한 마음을 감추기 힘들었다.
저것들을 만든 게 혈교라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시귀가 탄생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건 신교가 맞았다.
정파는 일부 주술적인 용도를 제외하면 인간을 가지고 대놓고 실험하진 못했다.
사파는 그럴 능력이 부족했다.
반면, 과거의 신교는 능력도 있고 의지도 있었다.
지금도 신교의 비처에는 시귀를 만들고 다루는 법이 상세하게 적힌 비급들이 존재했다.
한국으로 이주하며 사특한 기술들은 봉인하고 배척하려 노력했지만, 게이트 사태라는 미증유의 난장판에서 모든 걸 완벽히 처리하는 건 불가능했다.
신교 중 일부가 반발하여 뛰쳐나가서 혈교가 된 것처럼.
금기를 저지르고 신교에서 도망친 모든 자가 혈교 소속은 아닐 터이다.
확률은 높겠지만.
쿵-
준비를 마치고 천마신공天魔神功을 끌어올린 순간.
김무공의 기운과 천하연 자신의 기운이 공명했다.
‘...뭐?’
단 한 번도 이런 적은 없었다.
서로의 기운이 공명하는 건 보통 비슷한 계통의 무인들이 고도의 합격진을 익히고 쓸 때나 해당되는 얘기였다.
천하연 입장에서는 기운이 엄청나게 증폭된다든지 그런 건 아니었지만.
내기를 운용하는 데 있어 훨씬 편안해졌다.
그리고 그 차이는, 절대 작지만은 않았다.
‘정말 알 수 없구나.’
천마신공과 공명하는 무공이 있다는 얘기는, 신교의 오랜 역사에서도 단 한 번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런 정보를 어디선가 얻는 것도 그렇고, 김무공이란 사내의 정체가 천하연은 점점 더 궁금해졌다.
심지어 무흔마영이 ‘월권’을 하면서까지 김무공에 대해 파악한 정보는 ‘알 수 없음’이었다.
신교의 광대한 정보력으로도 파악할 수 없는 사내.
어디선가 의도를 가지고 키웠다기엔, 김무공의 무공과 성정에는 순수함이 가득했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가장 확률이 높은 건, 모종의 기연을 얻었다는 것일 텐데.
짧은 상념을 이어나가던 천하연의 귓가에 김무공의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