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4화 (54/131)

무언가 알 수 없는 대화 내용이 귓가에 종종 들려왔지만, 천하연의 뇌리는 이미 생애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자극적인 내용으로 가득 찼다.

나름 친우라 불리는 상대끼리 서로 교분을 나누는 걸 보고 음심을 품다니.

이건 소천마 이전에 인간 실격이었다.

알고 있음에도, 결국 천하연은 조용히 숨죽이고 둘의 섹스를 지켜봤다.

둘의 움직임이 완전히 멎을 때까지 우두커니 앉아서.

***

짹-

아침을 알리는 새소리가 요란했다.

정신이 듦과 동시에, 강렬한 밤꽃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어제는 결국 한여름이 포기를 외칠 때까지 계속해서 섹스하다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몸을 포개고 잠들었다.

당연히 뒤처리는 할 생각도 못 했고, 허옇게 말라버린 정액이 사방에 눌러 붙어있었다.

몸을 살짝 움직이면서 눈을 가늘게 뜨자, 한여름의 눈꺼풀이 서서히 들렸다.

“...짐승.”

나를 보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미안.”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좀 심하긴 했었다.

강렬한 양기에 무공으로 인한 체력이 덧붙여지니 무슨 무한동력처럼 싸자마자 자지가 벌떡벌떡 섰다.

어느 순간부터는 박고 싸고만 반복했고.

자존심 부리면서 버티던 한여름도 끝끝내 울먹이며 그만하자고 외쳤다.

“얘 또 섰네.”

질린 표정으로 한여름이 내 자지를 툭 건드렸다.

기절하듯 잠든 탓에 우리 둘 다 여전히 알몸 상태였다.

“네 몸이 존나 꼴려서 그래.”

사실은 사실이니까.

“읏...!”

예상 못 한 내 공격에 한여름이 눈살을 찌푸렸다. 저 츤데레 같은 반응이 보면 볼수록 재밌다.

역시 놀리는 맛이 있다.

“모닝 섹스할래?”

“...난 괜찮아.”

잠시 고민하던 한여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얘도 체력이 좋아져서 그런지, 확실히 강하긴 강했다.

내가 좀 이레귤러라 그렇지.

다만 강철 같은 내 아랫도리와 달리 얘는 회복이 좀 필요해 보였다.

“뒷정리나 합시다.”

굳이 무리할 필요는 없겠지.

오늘만 날은 아니니까.

쪽.

한여름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하고 몸을 일으켰다.

“웅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곤 한여름이 옷을 걸쳤다.

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켜놓고, 개울가로 가서 사이좋게 샤워를 마쳤다.

“내가 자체 피임이 가능해서 다행이야.”

같이 집 정리를 하면서 한여름이 입을 열었다.

“그러게. 보급 콘돔으로는 택도 없었겠네.”

“나 허리 아파.”

“엎드려 봐.”

“이렇게?”

“오냐.”

추궁과혈 같은 걸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내 경지가 그렇게 높진 못했다.

엎드린 한여름의 허리를 부드럽게 주물렀다.

“하윽...!”

“무슨 섹스할 때처럼 신음을 내냐.”

고작 안마하는데 말이다.

“이건... 자연스러운 거거든.”

“농담임.”

“윽...! 이씨....”

곳곳을 꾹꾹 눌러가며 풀어줬다.

“이제 좀 괜찮냐?”

“오. 훨씬 낫다. 어디서 안마도 배웠어?”

한여름이 일어나서 허리를 쭉 펴면서 재잘거렸다.

“천하연이 알려주던데. 어디어디 자극하면 좋다고.”

“...응?”

“그, 서로 막 만지면서?”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한여름이 날 노려봤다.

“안마잖냐. 뭘 생각하는 거야.”

“...천하연 여자잖아.”

“질투하냐?”

“몰라. 네가 누구랑 뭘 하든 나랑은 상관없어.”

“존나 상관 있어 보이는데.”

퍽-

가볍게 휘두른 한여름의 주먹을 손바닥으로 포개 막았다.

“열 받네. 좀 맞아 주면 어디가 덧나냐. 나도 막 다른 남자랑 그렇고 그런다?”

“안 돼.”

“흐응...? 질투해?”

“어 질투함. 그랬다간 그 남자랑 사생결단 내러 간다. 누구 하나는 그날로 죽는 거야.”

“너 그거 내로남불이야.”

“아무튼 안 돼. 다른 남자 손이라도 잡아 봐라 확.”

“귀엽긴. 절대 안 그럴 거니까 안심해.”

배시시 웃으면서 입가를 올리는 걸 보고 있으니 상당히 얄밉다. 저 입술을 내 입술로 틀어막고 싶은 충동이 자꾸 들었다.

흐트러지고 당황하는 걸 보고 싶다.

“확 그냥.”

“덮치게?”

“...그러고 싶은데 일해야지. 섹스하다 굶어 죽을 수는 없잖냐. 다 에너지 소몬데.”

바람은 바람일 뿐이고, 밤에 열심히 풀어낸 덕에 현재는 나름 이성을 되찾은 상태였다.

“글킨 해. 오늘은 뭐 해?”

“일단 먹을 것 좀 찾고. 코코넛만 먹고 살 수는 없으니까. 집 확장도 좀 해야지.”

굳이 따지면 코코넛만 가지고도 21일 버티는 건 가능하겠지만, 내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많이 먹으면 뭐든 물리는 법이거든.

“난 뭐해?”

“이리 와봐.”

집을 짓다 남은 대나무를 마체테로 깎아 작살처럼 만들었다.

“물고기 잡게?”

“오냐. 낚시나 덫을 써도 되긴 하는데, 우린 걍 잡는 게 편할 거라.”

애초에 압도적인 신체 능력이 있는데 굳이 물고기가 다가오는 것만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그냥 보이는 족족 찔러서 잡으면 그만이지.

비슷한 작살을 몇 개 더 만들어서 바닥에 늘어놓았다.

“물고기는 내가 잡을게.”

한여름이 날카로운 대나무 작살을 들고 이리저리 휘둘렀다.

“잠시.”

근처 숲으로 가 대나무를 더 베어왔다.

“같이 가?”

“만들 게 있어서.”

대나무를 잔뜩 들고 해변으로 가 위치를 잡았다.

푹- 푹-

기다란 장대 같은 대나무를 바닷물이 들어오는 곳 근처에 열심히 꽂아 좀 더 빽빽한 덫처럼 만들었다.

“옹. 여기 넣으면 된다는 거지?”

“물고기 손질하는 방법은 알아?”

“대충 들은 거 같긴 한데.”

“기다려봐.”

작살을 들고 눈에 보이는 물고기 하나를 바로 찔러서 잡았다.

물고기의 몸통에서 작살을 빼내고 꼬리를 칼로 살짝 그어버린 뒤, 그대로 아까 만들어놨던 덫 안에 던졌다.

시뻘건 핏물이 서서히 빠져나갔다.

“뭔가 불쌍한데.”

한여름이 가라앉은 눈빛으로 파닥거리는 물고기를 쳐다봤다.

“...핏물 빼려면 어쩔 수 없다. 우리도 먹고 살아야지.”

“글킨 한데.”

한참을 바둥거리던 움직임이 멎고 더 이상 핏물이 나오지 않자 물속에서 물고기를 꺼냈다.

“이렇게 머리랑 내장 제거하고.”

“어떻게 해?”

“바닷물 얼려서 냉동보관 비슷하게 하면 돼. 생선가게처럼.”

소수마공이 있으니 이런 면에선 사기 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원래 이런 날씨라면 금방 썩어서 훈제나 염장이 필요했지만.

열심히 얼음 제조해서 안에 물고기 잡은 거 손질해서 보관하면 그만이니까.

한여름이 ‘조금’ 고생하겠지만 신선한 식량을 얻는 대가 치곤 충분히 남는 장사였다.

“완벽히 이해했어.”

“진짜지?”

“몸으로 하는 건 나 잘 하잖아. 믿어봐.”

“아니, 그것보다 못 먹는 거 구분할 줄은 알지? 복어 같은 거 잡으면 안 된다.”

아무리 무인이라도 복어 독은 좀 무섭다.

“날 무슨 바보로 알아. 위험한 건 죽어라 외웠거든.”

“고생했다. 그럼 믿는다.”

“웅냐. 걱정 마.”

“무리하진 말고.”

“야쓰. 넌 딴 거 하게?”

“집 보강이랑 확장 좀 하고... 지도 좀 만들어야지. 근처에 뭐가 있는지는 파악해야 할 듯. 여유 되면 타마토마도 잡게.”

좌표 정도만 나온 대략적인 지도로는 사실 길 찾기 말고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는 이제부터 파악해봐야 했다.

한여름이 식량을 책임져 준다면 일은 훨씬 편할 수밖에.

평가 규정에 협동하지 말란 법은 없었으니까.

상관없겠지.

***

나무를 베어 지지대를 좀 더 견고하게 세우고, 지붕도 보강해 비바람이 불더라도 충분히 견딜 수 있게 만들었다.

점토까지 발라서 질긴 끈과 함께 엮었으니 이 정도면 태풍이 아니고서야 충분히 버틸만했다.

혹시 비가 오더라도 샐 염려는 없어졌다.

열대 기후 특성상 언제 소낙비가 내릴지 모르니 이런 보강은 필수였다.

일종의 새로운 방을 만드는 느낌으로 조금씩 집을 확장했다.

확실히 한 번 해봤다고, 이전보다는 과정이 훨씬 쉬웠다.

중간에 코코넛 잎을 가지러 가면서 살짝 확인했더니, 한여름은 뚫어져라 바닷속을 쳐다보며 작살을 찔러댔다.

소수마공까지 써서 주변의 수온을 팍 낮춰버린 덕에, 찌르는 족족 물고기가 잡혀 나왔다.

저쪽은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다.

집 보강이 끝났으니 이젠 외부로 나갈 차례였다.

목표는 섬 중앙까지 가는 경로 확인.

당연히 제대로 된 길 같은 건 있지도 않았다.

우거진 정글을 베어가며 길을 낼 수밖에.

배낭에 적당히 도구를 담고, 마체테를 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