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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화 (55/131)

낮인데도 우거진 밀림 탓에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정글은, 마치 범의 아가리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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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직-

내공까지 실어가며 한방에 뭉텅이로 주변을 베어버렸다.

차라리 검사였다면 훨씬 편했을 텐데.

집 짓는 건 양반이었다.

밀림이 우거진 곳에 길을 내는 게 쉽지 않다는 거야 머릿속으로 이해하고 있었지만, 이건 예상을 가볍게 초월했다.

무엇보다 지금 길을 내 봐야, 어차피 며칠 뒤면 풀숲이 우거질 게 확실했으니 묘한 허탈감이 느껴졌다.

하루종일 제초하는 군인들의 심정이 이러할까.

‘그냥 죄다 불태울까.’

습기를 머금은 나무줄기들이 잘 타지는 않겠지만, 혈수마공도 일반적인 불은 아니었다.

문제는 따로 있다. 지옥불처럼 번져나가는 혈수마공을 내가 통제할 수 없을 가능성이 존재했기에, 막상 실행에 옮기긴 좀 그랬다.

내부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내가 운이 좋았다는 게 느껴졌다.

물이란 물은 죄다 고인 물이나 흙탕물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뱀들까지 있었다.

독니만 제거하면 먹어도 되겠지만.

...굳이 그러진 않기로 했다.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데 비릿한 뱀고기를 먹을 이유는 없지.

꼼꼼하게 특정 포인트마다 지도에 체크하면서 나아갔다.

경공 없이 천천히 걸어서 대략 반나절 정도의 거리.

지금은 이 정도면 됐다.

지나온 길을 좀 더 넓히면서 피난처 쪽으로 돌아섰다.

열심히 무인도 도로정비사업을 하다 보니, 어느새 집 근처에 도착했다.

납색의 구름 사이로 붉게 타오르는 노을 아래, 한여름이 낑낑거리며 얼음덩이와 생선을 옮기고 있었다.

“적당히 잡지.”

“배고파....”

목소리에 힘이 전혀 없었다.

“많이 남았어?”

“아니. 이게 마지막이야.”

쿵. 한여름이 얼음 덩어리를 내려놓으며 손등으로 이마를 훔쳤다.

“먼저 씻어. 개울가 쪽에서 먹게.”

“웅냐.”

소수마공을 대체 얼마나 열심히 써댄 건지, 이 열기에도 얼음덩이들은 냉기를 발하고 있었다.

내 불이 일반적인 불이 아니듯이, 소수마공으로 생성한 얼음 역시 마찬가지였다.

바다를 그대로 얼린듯한 맑고 투명한 얼음이 묘하게 신비로웠다.

그건 그거고, 적당히 손질된 생선과 얼음을 들어 개울가 쪽으로 옮겼다.

타닥타닥-

주변의 나무를 모아 불부터 피웠다.

넓은 돌을 하나 주워 개울에 씻고, 열기로 소독해 말렸다.

간단한 작업 같지만, 생각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

습기에 젖은 돌을 급격하게 가열했다간 내부의 수분 때문에 폭발해버릴 위험성이 있었다.

계곡 같은 데서 돌판 구이 해 먹는다고 아무 돌이나 주워서 썼다가, 돌이 폭발하면서 대참사 나는 사례를 몇 본 적이 있거든.

심하면 크게 다칠 수도 있으니까.

물론 내 내구는 폭발하는 돌을 정면으로 맞아도 흠집도 안 나겠지만, 어디까지나 기분 문제였다.

마찬가지로 조리 도구도 한번 소독하고, 민물에 물고기를 씻어 깔끔하게 손질했다.

비늘을 제거하고, 간이 잘 배어들도록 칼집을 내어준 뒤.

마지막으로 바닷물을 증발시켜 만든 소금까지 뿌렸다.

정확한 이름은 모르겠지만, 생김새를 보아하니 돔과 물고기의 한 종류로 보였다.

한여름이 잡은 물고기 대부분이 이것이었다. 아마 이쪽 해변 근처에 대량으로 서식하는 모양이었다.

“으아아-”

한여름이 젖은 머리를 털면서 이쪽으로 다가왔다.

“앉아있어.”

“뭐 도울 건 없엉?”

“오냐. 그냥 쉬고 있음 돼.”

“헤헤... 따뜻하다.”

모닥불에 손을 대면서 한여름이 의자처럼 놓인 바위에 앉았다.

소수마공을 너무 과하게 써서 그런지, 입가에서는 연신 한기가 배어 나왔다.

해가 떨어졌음에도 여전히 바깥은 찜통이었지만, 한여름은 추위라도 느끼는듯했다.

한여름과 교대하면서 빠르게 나도 몸을 씻고 왔다.

모닥불 근처에 마른 돌을 쌓아 화덕처럼 만들고, 그 위에 조개를 올려 굽기 시작했다.

보글보글 끓는 소리와 진한 바다내음이 허기를 자극했다.

“빨리 먹고싶당.”

“좀만 기다려봐.”

미리 잘라 소독해놨던 얇은 대나무 꼬치를 물고기를 관통하듯 꽂아 모닥불 근처에 하나씩 배치했다.

불판 구이보단 역시 직화 구이지.

숯향의 유혹을 포기하긴 힘들었다.

몸에 안 좋든 말든, 어차피 위대한 내공의 힘이면 다 해결된다.

바닷고기 특유의 단단한 살점은 다행히 익으면서도 온전히 형체를 유지했다.

“여기도 대나무야?”

“생존술에 있어서 대나무는 무적이고 신이다. 잘 외워둬.”

물론 코코넛보단 못했지만, 대나무 역시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굳이 먹지 않아서 그렇지, 타이밍만 잘 노리면 죽순이라도 씹어먹을 수 있거든.

“그래 보이네.”

내가 조리하는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던 한여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

잘 익어서 벌어진 조개와 ‘대나무 젓가락’을 건넸다.

“후아....”

한여름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조개를 후후 불면서 먹고는 감탄성을 내뱉었다.

“먹을만해?”

“완전.”

“다행이네.”

나도 잘 익은 조개를 하나 들고 곧장 입에 집어넣었다.

부드러운 조갯살과 짭짤한 육즙이 입안에서 톡 터졌다.

“크흐... 술 땡기네.”

고요한 달빛이 넘실거리는 개울물에 비치고.

타닥타닥 모닥불 타는 소리와 풀벌레 우는 소리가 어우러지니 그것만으로도 감성을 자극하는 뭔가가 있다.

“이래서 캠핑을 가는 건가 봐.”

한여름도 비슷한 걸 느꼈는지 고개를 살짝 들어 별이 반짝이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다음 코스다.”

생선 살을 발라내 ‘대나무 그릇’에 담아 건넸다.

대나무를 적당히 분리해서 살짝 열기를 가하고, 씻어 말리면 훌륭한 그릇이 된다.

“...그놈의 대나무 집착.”

“감사하게 생각하도록.”

엄격하고 근엄, 진지한 말투로 말했다.

나무 깎아서 그릇 만드는 것보다 몇 배는 편리했다.

게다가 쑥쑥 자라는 대나무 특성상 근처에 군락지만 있다면 부담 없이 베어낼 수 있는 것도 장점이었다.

“하긴, 네가 좀 극한의 효율충이긴 했지.”

“게임에서만 그렇지 현실에선 안 그래.”

만약 내가 극한의 효율충이었다면, 아마 최악의 마두로 전직하지 않았을까.

별호도 무슨색마 이런 흉악한 게 붙었겠지.

“그른가?”

“오냐. 먹기나 해라.”

한여름에게 열심히 살을 발라주면서, 나도 뜨거운 생선살을 한 입씩 먹었다.

진한 불향과 짭짭하면서도 감칠맛이 느껴지는 게, 상당히 고급 어종에서 나는 맛이었다.

어느새 내 옆에 앉은 한여름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신없이 생선살을 입에 밀어 넣었다.

“맛있냐?”

“웅.”

손질한 건 충분히 많았기에, 계속해서 구웠다.

오래간만에 제대로 된 식사를 하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역시 탄수화물이 매우 당기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반나절 거리까지 나아갔음에도 탄수화물을 보충할만한 ‘맛있는’ 것을 찾진 못했다.

야생 고구마라도 있을법한데 말이다.

“컥컥...!”

열심히 먹던 한여름이 가슴을 쳐댔다. 정신없이 먹다 보니 사레들린 모양이었다.

“얌마, 천천히 먹어라.”

물을 건네자 급하게 꿀떡이며 마셨다.

“크흐, 이거지.”

입가를 닦으며 한여름이 미간을 찡그렸다.

“방금 존나 아재 같았음.”

“아재는 너고요.”

“그럼 애.”

“어리다는 뜻이지? 어린 건 좋은 거야. 우리 김무공 씨도 회춘해서 좋잖아?”

“맘대로 생각해라.”

나는 한숨을 푹 쉬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어느덧 우리 주변에는 분해된 생선 가시들만 사방에 널려있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충만한 포만감.

밀려드는 나른한 기분에, 몸을 옮겨 냇가의 동글동글한 자갈에 드러누웠다.

한여름도 나란히 내 옆에 와서 누웠다.

딱딱한 돌바닥이었지만 지압 되는 느낌도 들고, 나름 괜찮았다.

...벌레가 가끔 기어 다니는 것 빼곤 말이다.

“나 배 나온 듯.”

자신의 배 쪽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한여름이 말했다. 내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손을 옮기자 톡 하고 쳤다.

“어딜 숙녀의 배를 함부로 만지려고.”

“안 나온 거 같은데.”

“아냐, 나왔어.”

“1mm 나온 것도 나온 건 나온 거지.”

통통.

한여름이 자신의 배를 살짝 두드렸다.

“밥 먹고 바로 누우면 안 좋다던데.”

“뭐 어때. 맨날 누워있는 것도 아니잖냐.”

“고건 맞아.”

소복이 드리우는 별빛을 우리는 한동안 응시했다.

툭. 툭. 툭.

갑자기 얼굴로 물방울이 떨어지면서 구름이 하늘을 가리기 시작했다.

“비?”

“일어납시다.”

“읏차.”

한여름이 몸을 털면서 일어났다.

나 역시 자세를 바로 하고 주섬주섬 도구들을 챙겼다.

점점 강해지는 빗줄기가 아무래도 한바탕 거하게 쏟아지려는 듯했다.

“얼른 들어가자.”

“오냐.”

머리를 감싸고 후다닥 집 안으로 들어왔다.

이윽고 투둑투둑 쏟아지는 빗물이 지붕을 때렸다.

“보강해놓길 잘했네.”

“글게. 이거 무너지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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