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도 이 정도로 환대받진 않을 거 같은데.]
마영수라대가 내뿜는 형형한 기세에 한여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떤 면에선 대통령보다 더하지.]
어느 부분에서는 놀랍도록 미래지향적이면서도, 이런 부분에서는 또 신기할 정도로 보수적이다.
여러모로 독특한 집단이었다.
우리가 내린 곳은 일반인들이 이용할 수 없는, 한라산 인근에 있는 신교 전용 공항이었다. 단순 공항이라기보단, 주변을 둘러보니 거대한 군사기지에 가까웠다.
마치 주변을 보여주려는 듯, 리무진은 그리 빠르지 않은 속도로 공항 내부를 이동했다.
“대단하군요. 도저히 무림 집단 같지가 않습니다.”
나는 감탄을 내뱉으며 말했다. ‘무인’들만 있는 게 아니라 아예 총을 든 군인과 미래적인 외형의 탱크, 대형 수송기, 전투기를 비롯한 기갑 장비들까지 공항에 가득했다.
“허허... 천마신교는 단순한 무림 집단이 아니지요. 저희는 전 세계에 무력을 팝니다. 그리고 이곳은 지구에서 가장 거대하진 않지만, 가장 ‘강력한’ 군 시설이라 볼 수 있지요.”
단천상이 자랑스러운 듯 입가에 미소를 잔뜩 띠고 말했다.
“각국 정부와 다르게 천마신교는 무력을 투사하는 데 있어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빠르고, 효율적이며, 강력하지요. 전 세계의 안보에서 천마신교를 빼면 이제 말이 안 되는 수준까지 이르렀습니다.”
얘기만 들어봐도 이 세계가 일반적인 곳이었다면, 존재 자체가 절대 용납될 리 없는 극도로 위험한 집단이었다.
하지만 게이트 사태 이후 수많은 국가가 붕괴하며 악화일로를 거듭해간 인류로선 이제 ‘사소한’ 문제를 신경 쓸 때가 아니었고, 그 틈을 천마신교는 급속도로 파고들었다.
지식으로는 알고 있었으나, 실제로 지나가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그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SR-72?”
이글루 안쪽으로 칠흑으로 도색된 독특한 모양의 항공기가 시야에 들어왔다.
“오, 아십니까? 정확히는 SR-73 다크스타입니다.”
눈을 빛내며 단천상이 반색했다. 엄청난 경지의 무인인데도 의외로 이런 쪽에도 관심이 있는 게 확실해 보였다.
“무인無人 실험기 아닙니까?”
“원래는 그랬지요. 천마신교는 자체적인 서플라이 체인을 구축하고, R&D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폐기될뻔한 프로젝트를 여차여차 주워서 만들었지요. 참고로 유인기입니다.”
“...허. 대단하군요.”
“허허... 알아봐 주시니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이 노부가 주도한 작품이지요.”
단천상이 굉장히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어쩐지. 저거 얘기 꺼내자마자 얼굴이 반짝반짝 빛나더라. 태상호법쯤 되는 양반이랑 친분을 쌓아서 나쁠 건 없으니, 장단을 맞춰주는 게 낫겠지.
사실 나도 좀 흥미가 생기긴 했다.
“속도는 얼마나 됩니까?”
“스크램제트 엔진을 사용하여 최대 마하 11 정도까지 가능합니다. 전 세계 어디든 한두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지요. 애초에 그런 긴급지원 용도로 만든 물건입니다. 평범한 인간은 타기도 힘들지만, 무인이면 수십G의 중력가속도도 거뜬히 견디니 말입니다.”
“저런 걸 만들 생각을 하시고, 정말 대단하십니다.”
“허허, 역시 소교주님에 이어 친우분까지 이 노부의 얼굴에 금칠을 해주시는군요.”
“진심입니다.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엄청나군요.”
“본지는 얼마 안 됐지만, 김무공 생도님과 노부는 잘 맞을 거 같은 확신이 드는군요.”
“저도 그렇습니다.”
단천상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칭찬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 법이다.
[...둘이 뭐해?]
한여름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나와 단천상을 힐긋 쳐다봤다.
[어허, 사내의 대화에 어디 아녀자가.]
[어휴....]
두런두런 화기애애하게 남자의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기지를 벗어나 수많은 건물 사이를 지나고 있었다.
빼곡한 숲 사이로 거대한 빌딩이 군데군데 세워져 있는 걸 보니, 지독히도 현실감이 떨어졌다.
무공이 날뛰는 세계관에서 이곳만 SF처럼 느껴졌다.
정작 그러면서도 무공으로는 가장 강한 집단이라는 게 아이러니했지만.
마영수라대가 탑승한 차량의 호위를 받으며 굽이굽이 이어진 길을 따라 마침내 도착한 곳은, 바벨탑처럼 높이 솟아있는 건물이었다.
“도착했습니다.”
차 문이 열리고 공항과 달리 신교인들의 조용한 안내를 받아 우리는 ‘천마전天魔殿’이라 적혀있는 빌딩 내부로 들어갔다. 단천상은 내부로 들어가자마자 우리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 떠나갔다.
[...내가 생각했던 거랑은 너무 다른데.]
한여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화려한 건물 내부를 둘러봤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그랬다. 천마궁이라길래 동양풍의 전통적인 전각을 생각했던 나로서는, 이런 거대 빌딩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도착하고 나서부터는 아무리 봐도 파격의 연속이었다.
“집에 돌아온 기분이 어때?”
천하연을 보며 말했다. 아까부터 묘하게 말수가 적었다.
“...별 느낌은 없구나. 집은 집이니. 그보다.”
감흥 없다는 말투로 천하연이 나를 쳐다봤다.
“할 말 있어?”
“아버지... 교주님 앞에서는 조심해줬으면 하구나. 나로서도 예측이 불가능한 분이라 말이다.”
“그거야 당연하지.”
마도의 절대자 앞에서 함부로 입을 놀릴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이따 보도록 하지.”
“그래.”
소교주인 천하연은 아무래도 대기 장소부터 우리와 다른 모양이었다.
나와 한여름은 따로 빌딩 중간층에 있는 대기 방을 배정받았다.
“으아아...! 긴장돼서 미칠 거 같은데.”
한여름이 발을 동동 구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냥 천하연 아버지라 생각하면 되잖아. 오, 애플 망고. 먹을래?”
테이블 놓인 애플 망고 조각을 입에 넣었다. 혀가 녹아내릴 듯한 단맛이 입안 가득 퍼지며, 그 사이로 약간의 상큼한 향이 풍겼다. 귤은 모르겠지만 일단 이 세계의 제주도 애플 망고를 키우긴 하나 보다. 비싸서 그렇지, 맛은 확실히 압도적이다.
“난 됐어. 글고 그게 더 긴장 요인이야. 친구 아버지는 원래 엄청 어려운 존재거든?”
“듣고 보니 그렇네.”
똑똑.
얼마 기다리지도 않았는데, 차분한 인상의 여성이 우리를 마중 나왔다.
“교주님께서 부르십니다.”
“가자, 한여름.”
“...웅냐.”
한여름이 소심하게 내 뒤를 졸졸 따라왔다.
고층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상층까지 쭉쭉 올라갔다.
거대한 옥좌가 놓인 대전....
같은 건 역시나 없었다.
끼이익- 거대한 문이 열리고, 한 면이 전부 통유리도 된 방이 눈에 들어왔다. 아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창가 근처에, 무늬가 없는 흑색 장포를 입은 중년 사내가 뒷짐을 진 채 서 있었다.
나는 그 옆의 천하연과 눈빛을 한번 교환하고, 천천히 다가갔다.
신교의 교주가 묵는 방이라기보단, 꼭 어딘가의 대기업 회장실 같은 느낌이 강했다.
어떻게 보면 전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힘을 가진 회장님인 건 맞았으니까.
고풍스러운 책상 근처에 도착하자,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던 사내가 우리 쪽으로 몸을 돌렸다. 고작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잘생긴 남성이었다. 천하연이 남장한 상태로 한 10년 지나면 저런 모습일까.
천마 천위강.
신교의 주인이자 마도의 절대자이며 천하연의 아버지인 사내의 이름이었다.
“생도 김무공입니다. 마도의 지배자이신 천마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생도 한여름입니다. 마도의 지배자이신 천마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내가 포권을 하며 말하자 한여름도 다급하게 따라 했다.
“허례는 되었다.”
무감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천위강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하며, 숨이 막힐 것 같은 압박감이 일었다.
천마신공天馬神功의 기운이 폭발적으로 퍼져나가며 천위강의 기운에 대항했다. 마치 용납할 수 없다는 듯, 현경의 무인이 내뿜는 기세에도 거세게 반항했다.
“알 수 없군.”
천위강이 차갑게 내뱉으며 의자에 가 앉았다. 그리곤 무심한 눈빛으로 턱을 괸 채 말을 이었다.
“혈교에 대한 정보를 하연이에게 넘겼다고 들었다. 공을 세웠으면 마땅히 상을 받는 게 맞겠지.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 보거라.”
원하는 거. 있긴 했다.
“마의에게 진찰을 받았으면 합니다.”
“사소하군.”
화악- 천위강이 가하는 압박이 더 심해졌다.
이번 역시 천마신공의 기운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며, 천위강에게 대항했다. 주변이 아른거릴 정도로, 유형화된 진기가 넘실거렸다.
“교주님!”
천하연이 기함할 듯이 놀랐다. 천하의 천하연도 저런 표정을 지을 줄 아는군. 치열하게 저항하는 와중에도 실없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대체 뭘 익힌 것이더냐.”
천위강이 기세를 거두며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분기점이다.
아마, 여기서 비밀이라 해도 천위강은 그냥 넘어갈 거다.
그게 답일까?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찰나의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말을 내뱉었다.
“일각수신공一角獸神功입니다.”
천마신공天魔神功과 이름이 같은 천마신공天馬神功을 말하기엔 무언가가 꺼려졌다. 괜한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굳이 따지면 천마는 페가수스고 설명과 효과만 보면 유니콘이니까 일각수신공이 더 바른 표현 아닐까?
천위강의 미간이 잔뜩 찡그려졌다.
...설마 오답이었나? 별로 기분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들어본 적 없는 무공이군. 사문이 어디지?”
한동안 상념에 잠겨있던 천위강이 냉랭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사문은 없고... 기연을 얻었습니다.”
“그렇군.”
의외로 순순히 넘어갔다. 이윽고 천위강의 시선이 한여름에게 옮겨갔다.
한동안 빤히 한여름을 쳐다보던 천위강의 눈동자가 점점 커졌다. 그리곤 작게 뇌까렸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교주님...?”
천하연조차 천위강의 반응에서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갸웃했다.
“한여름 생도라 했나?”
“예.”
잔뜩 긴장한 자세로 한여름이 머리를 숙였다.
“익힌 심법. 이름을 말하거라. 당장.”
아까와 달리, 폭압적인 명령조였다.
거부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어조가 명백했다.
[말해?]
[말 안 하면 강제로라도 알아내려 할 거 같은데. 말하는 게 나을 듯.]
입술을 우물거리던 한여름이 결국 자신의 심법을 말했다.
“천산신녀공天山神女功입니다.”
쿵- 심법을 듣자마자 천위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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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보거라. 뭘 익혔다고?”
천위강이 경악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무런 감정이 담겨있지 않았던 아까와 달리, 명백한 동요가 느껴졌다.
“천산신녀공입니다만....”
내 일각수신공을 들었을 때와는 아예 달랐다. 있을 수 없는 일을 목격한 사람의 반응과 비슷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었으나, 상대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절대자인 천마 천위강이다.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는 건, 일반적인 일은 절대 아니었다.
[...나 실수했나?]
[긴장하지 말고, 일단 차분하게 답해봐. 심호흡하면서.]
[노력해볼게.]
한여름이 깊은숨을 내쉬었다. 잠시 주먹을 꽉 쥐었던 천위강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라... 대체 어디서 얻은 거지?”
고압적인 질문. 이젠 마냥 한여름에게만 맡길 수 없었다. 대답을 회피하냐 마냐의 기로에서, 이번에도 난 적당히 각색하는 편을 택했다.
“...무신의 비보를 얻었습니다.”
그렇게, 한여름 대신 내가 답했다.
“그 무신이 맞더냐?”
“예. 맞습니다. 아카데미를 세운 그 무신입니다. 무신이 남긴 최후의 유산 역시, 아카데미 인근 남한산에서 발견했습니다. 우연에 우연이 겹친, 기적이었습니다.”
이전부터 나와 한여름이 익힌 걸 들켰을 때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했던 내용이긴 했다. 다짜고짜 EX급 무공을 길 가다 주웠다곤 말할 수 없었으니까.
“그 말을 믿어야 하나?”
그래도, 역시나 의심의 눈초리가 쏘아졌다.
“비보가 있던 장소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조사해 보시면 확실해질 겁니다.”
난 당당하게 말했다. 이것 자체는 절대 거짓이 아니었으니까. 한동안 내 눈동자를 빤히 쳐다보던 천위강이 고개를 내저었다.
“거짓은 아닌 거 같군. 어쩐지 정보가 없더니. 무신의 안배였다면 그럴만하지. 허나, 무신이 대체 어떻게 천산신녀공을 얻었는지. 알 수가 없군.”
천위강이 턱을 괴고 상념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