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3화 (83/131)

그것을 한 번에 다루는 무공이 청운적하검이었고, 엄청난 난도를 자랑했다.

대신.

대성한다면 능히 천하제일을 다툴 수 있는 잠재력이 존재했다.

적하가 쌍검을 뽑고 청운적하검의 기수식을 취했다.

쿵- 예서나가 몸에 뇌기를 두른 채, 곧바로 쇄도했다. 눈부신 광채가 연무장을 가득 메웠다.

예서나의 손바닥에 실린 뇌기가 살벌했다. 이대로라면 적하의 패배가 확실해 보였다.

찰나의 순간, 적하는 부드럽게 검을 앞으로 뻗었다.

오른손의 청운검에 푸른 구름이 실리고.

왼손의 적하검에 붉은 노을이 실렸다.

그것이 이내 뒤섞이며 푸르면서도 붉고, 붉으면서도 푸른 오묘한 색을 자아냈다.

화악-

적하의 움직임은 마치 아름다운 검무와도 같았다.

태극권보다 부드럽진 않으나, 태극권보단 강맹했고.

사일검법보다 빠르진 않으나, 사일검법보다는 무거웠다.

복마검법보다 무겁진 않으나, 복마검법보다는 현란했다.

그것이 청성의 검이었고, 청운적하검에 담긴 묘리였다.

다른 구파의 무공에 비해 청성의 무공은 특색이 옅었다.

허나, 특색이 옅다고 해서 약한 건 아니다.

청성의 검은 천하 어느 검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으니.

푸른 구름이 노란 뇌기를 고요히 뒤덮고, 붉은 노을이 푸른 구름을 서서히 물들였다.

이윽고 정심한 기파가 번지며, 붉은 꽃비가 사방에 내렸다.

“졌습니다.”

예서나가 담담하게 손을 내렸다.

기파의 충돌이 멎은 자리. 적하의 적하검은 정확히 예서나 목 언저리에 닿아있었다.

주변에 가득했던 뇌기는 청적의 힘을 이겨내지 못했다. 첫 번째 비무는, 적하의 승리였다.

“...저런 기재가 지금까지 무명이었다니.”

흑풍단주가 의자 손잡이를 꽉 쥐었다. 어찌나 힘을 강하게 줬는지, 쥔 모양대로 의자가 그대로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워낙 특이한 아이라 지금까지 부각이 안 되었을 뿐입니다. 실력은 확실합니다.”

“허어... 그렇군요. 저 예서나라는 아이도 보통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앞으로는 모르는 일이지요. 그리고 적하가 강하긴 해도, 대주까지는 힘들 겁니다.”

“확실히. 그래 보이긴 합니다.”

흑풍단주가 고갯짓으로 동의를 표했다.

적하가 강하긴 했으나, 아직은 너무 어렸다.

조금은 시간이 더 필요했다.

청운적하검을 한 번 시전했을 뿐인데도, 적하의 얼굴에선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

최종 비무 결과.

초마신공을 익힌 홍은주가 팔황난검을 익힌 위지연을 꺾고 대주 자리를 쟁취해냈다.

이번 비무로 어느 정도 서열도 잡혔다.

아쉽게도 적하는 홍은주, 위지연, 공손린이 속한 3강에는 들지 못했다. 딱 4-5위권. 그게 현재 적하의 위치였다.

‘만만치 않네.’

적하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솔직히 말하면, 비무로 갔을 때는 자신이 전부 이길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적하만큼 뛰어난 기재가 청운적하검 수준의 무공을 익히고 더 오랜 시간 수련했으니.

당연히 예상과는 다를 수밖에.

적하는 뾰로통하게 입을 내밀었다.

“고생했다.”

단상으로 올라가며 김무공이 넌지시 말을 건넸다.

‘위험한데.’

본인은 실권이 없다 말했지만, 김무공은 천마의 두 번째 제자였다.

실권이 없다는 것도 어디까지나 ‘소교주’에 비해 없다는 얘기지.

일반적인 신교 무인들이 보기엔 둘째 제자 역시 까마득한 위치였다.

남자답게 잘생긴 외모도 그렇고, 묵직한 언행도 그렇고.

적하는 심장이 조금 빨라지려는 걸 애써 진정시켰다.

다들 김무공을 힐긋힐긋 쳐다보는 걸 보아하니.

아마 적룡대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거다.

“적룡대 대주는 오늘부로 홍은주다. 서로 정당한 비무로 얻은 결과이므로 불만은 받지 않겠다.”

적하가 홍은주를 슬쩍 훔쳐봤다. 도도한 외모와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긴 흑발.

처녀 귀신을 연상케 하는 머리 길이였지만, 이유가 있었다.

홍은주가 익힌 초마신공은 극양의 내공을 다루는 무공이었다.

신기하게도 진기를 끌어 올리면 검은 머리가 붉게 변했다.

그리고, 홍은주는 그런 붉은 머리칼에 진기를 실어 무기처럼 사용했다.

암기와도 같은 뾰족한 머리칼은 근접을 허용하는 순간 일일이 막기가 힘들었기에.

알고도 제대로 막지 못하여 타격을 입고 패배한 자들이 속출했다.

‘뭐 어때.’

대주가 되진 못했지만, 애초에 적하는 그런 번잡한 자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대주 선출도 그저 강함을 증명하려고 나섰을 뿐이었다.

“다음으로. 대주가 뽑혔으니 적룡대는 합격진인 십마광무진을 익히기 위한 훈련에 들어간다. 흑풍단주님.”

흑풍단주가 김무공의 옆에 나란히 섰다.

“반갑다. 교주님을 모시고 있는 흑풍단주다. 오늘부터 너희는 흑풍단 주도로 하나가 되는 훈련을 받게 될 것이다. 열이 하나처럼 될 때까지 굴릴 예정이니, 다들 각오 똑똑히 하도록.”

“그럼, 앞으로 부탁드립니다.”

“맡겨주시지요, 공자님.”

흑풍단주가 검을 쥐고 포권했다. 김무공이 마찬가지로 포권으로 답한 뒤, 망설임 없이 돌아서서 연무장을 떠났다.

잠시 후. 고함과 비명이 뒤섞인 훈련 소음이 김무공의 귓전을 때렸다. 아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김무공은 홀가분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

바쁘면 시간이 빨리 흘러간다 했던가.

지금 내 상황이 딱 그랬다.

사부에게는 봉마검형을 비롯한 무공을 배웠고.

적룡대의 훈련도 어느 정도 끝이 보였다. 흑풍단주가 얼마나 굴렸는지, 볼 때마다 다들 눈에 독기가 가득했다. 그런데도 이를 악물고 버티는 걸 보면, 내가 사람을 잘 뽑긴 잘 뽑았나 보다.

천하연이랑은 그 이후 조금 데면데면한 사이가 됐지만, 어차피 나도 정신이 없었다.

천하연은 천하연 나름대로 벽을 뚫기 위해 아예 폐관 수련에 들어가 버려서 얘기하기도 힘들었다.

한여름이랑은 매일 톡이야 하는데, 저쪽도 저쪽 나름대로 바빠서 만날 여유까지는 나지 않았다.

‘어디가 좋으려나.’

나는 신교에서 받은 정보를 한참 뒤적였다.

적룡대의 첫 실전 장소를 어디로 하면 좋을지.

단순히 적룡대 뿐만 아니라, 나로서도 무뎌지기 시작한 감각을 되살릴 필요가 있었다.

너무 어려운 상대는 안 된다.

그렇다고 너무 만만해서도 안 된다.

은근 까다로운 조건이었다.

‘어...?’

나는 태블릿을 열심히 넘기던 손가락을 멈췄다.

‘남해에 있는 섬 중 하나에 수상한 움직임이 감지됐다.’

거대한 화물선과 복잡한 시설이 들어차 있는 사진도 첨부되어 있었다.

‘화물선 선주. 혁리세가로 추정.’

여기다.

보자마자 무언가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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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겟을 정하고, 차근차근 준비를 마쳤다.

간단한 일 같지만, 막상 또 그렇진 않았다. 신교로서 국내 작전은 아무래도 부담이 컸다. 한국 본토는 명백한 무림맹의 영역이었으니까.

신교가 세계 각지에서 영향력을 펼치고 있다는 걸 바꿔 말하면, 한국 내에서만큼은 그리 힘을 쓰지 못한다는 얘기도 됐다.

영지나 다름없는 제주도를 제외하면.

정보를 파악했음에도 타격이 미뤄진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타겟 위치는 경상남도와 전라도의 경계에 있는 섬.

어둑어둑한 브리핑룸에 적룡대가 착석하고, 다른 남성들이 앞에서 분주히 브리핑을 준비했다.

“공자님, 시작하겠습니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가 나를 보며 정중히 몸을 숙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사내가 화면에 내용을 띄우면서, 브리핑을 시작했다.

소규모인 적룡대가 모든 걸 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신교라는 확실한 뒷배가 있는데 굳이 그럴 이유도 없고.

내 앞에서 차분하게 작전 내용에 관한 설명을 하는 자 역시, 흑룡각 소속이 아니라 외당의 천비각天祕閣 소속이었다.

비각이라는 이름처럼, 그들은 신교 외당에서 정보와 첩보를 담당하는 부서였다.

타겟을 정한 후, 나는 천비각에 요청하여 작전을 위해 2개 조를 지원받았다.

전 세계에 퍼진 신교의 무력 조직과 기업을 관할하는 외당답게, 천비각도 덩치만 놓고 보면 어마어마했다. 당장 자체적인 정찰위성 ‘천리안’을 다수 궤도상에 뿌려놨을 정도니까.

“천리안으로 찍은 위성 사진입니다. 몇 번의 세탁을 거쳤지만, 선박의 이동 경로를 보면 혁리세가와 관련이 있음은 틀림없습니다. 선주가 페이퍼 컴퍼니인 걸로 보아, 실제 주인도 혁리세가로 추정 중입니다.”

화면에 위성으로 추적한 선박의 이동 경로가 찍혔다. 꽤 어지럽게 돌아다닌 모양이다.

“섬 내부 파악은 힘든가?”

“예. 외부에 드러난 부분은 거의 위장입니다. 대부분의 시설이 아마 지하에 있을 겁니다. 들어간 인원과 물자의 양을 토대로 파악해 보면, 꽤 대규모 시설로 예측됩니다.”

“위험인물은 파악했나?”

띡. 사내가 화면을 다음으로 넘겼다. 화물선에서 찍힌듯한 인물 둘의 얼굴이 확대됐다.

“이들은 무림맹 1급 수배자, 흑백쌍귀黑白雙鬼입니다. 일본 아오모리현 일대에서 악명을 떨치는 고수들로 선박을 보호하려고 고용된 것으로 짐작됩니다.”

“경지는?”

“절정 상급 정도로 추측되나, 더 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초절정까진 아닙니다. 무림맹에서 1급을 건 것으로 보아, 저희랑 비슷하게 판단한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초절정의 고수였으면 비교적 한갓진 아오모리현 일대가 아니라 훨씬 넓게 영향력을 끼쳤을 테니까.

신교에서 화경이 흔하다 해서, 실제로도 화경이 흔한 건 아니었다. 초절정 수준으로도 이미 평범한 인간은 범접할 수 없는 초인에 가까웠다. 그만큼 드물기도 했고.

사내가 화면을 다음으로 넘겼다.

여섯 명의 인물이 화면을 분할하면서 떴다.

“섬에 모습을 드러낸 자들을 파악한 겁니다. 전부 무림맹 1급 수배자들입니다. 일류에서 절정 하급 사이입니다.”

“살려둘 가치가 없는 쓰레기라는 말이군.”

무림맹에서 1급 수배를 거는 경우가 흔하진 않았다. 강한 무력을 지니고 민간인에게 확실한 강력 범죄를 저지르는 걸 확인한 자들에게만 내려지는 게 1급 수배였다.

“그렇습니다. 다만. 이들은 드러난 전력입니다. 혁리세가가 관여된 것으로 보아, 비밀리에 숨어있는 고수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초절정 이상 고수가 있을 가능성은?”

“초절정은 1할 미만, 화경 이상 고수는 가능성 없습니다.”

“그거면 됐다. 다음 진행해라.”

“예.”

류은채의 교육 아닌 교육 때문인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나도 어느새 하대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현대에 살던 때는 예의 바른 청년의 표상이었는데 말이지.

이래서 가스라이팅이 무서운 거다.

“침투 경로입니다. 무소음 스텔스 헬기, RAH-70 나이트메어를 이용하여 정박한 화물선부터 제압 후, 섬을 점령할 예정입니다. 작전 기간 내내 비가 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천과 야음이 원래도 작은 헬기 소리를 아예 묻어버릴 겁니다. 무인武人이라 해도 코앞까지 다가가기 전까진 인지하지 못할 겁니다.”

하여간. 기괴한 신교 기술력은 알아줘야 한다. 사내가 좀 더 자세히 화물선과 섬 구조를 화면에 띄우며 설명했다. 특별한 건 없었다.

“섬 주변은 내당 유령단幽靈團에 요청해 통제할 계획입니다만, 유령단의 작전 개입에는 공자님의 최종 허가가 필요합니다.”

“허가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력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상황이 안 좋아지면 도망가려는 놈들은 필연적으로 생길 거다. 소수인 적룡대로는 튀는 것들까지 다 막기 힘들었다.

한참을 이어진 브리핑 끝에, 사내가 절도있게 포권했다.

“마지막으로, 정파 영역에서 수행하는 작전이니만큼 보안에 각별히 유념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럼, 무운을 빕니다.”

사내가 물러나고, 나는 앞쪽 연단에 나가 적룡대를 훑으며 말했다.

“질문 있는 사람?”

다들 입을 꾹 닫고 내 쪽만 쳐다봤다.

“없으면 이만 마치겠다. 작전 개시 전까지 몸 관리 잘 하도록.”

적룡대가 겪을 첫 실전이라 그런지, 브리핑룸 내부에는 긴장이 가득했다. 이전에 내가 말한 덕에 적룡대는 혁리세가가 혈교의 본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우리 막내 긴장했니?”

그러던 와중, 위지연이 적하의 목에 팔을 두르고 장난을 쳤다. 적하는 누가 봐도 가장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안 했거든요.”

적하가 입을 삐쭉 내밀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흑풍단주에게 워낙 험하게 훈련받아서 그런지, 그사이에 꽤 친해진 듯했다.

원래 훈련소 때는 다들 둘도 없는 친구 같고 그런 거거든.

신기하게 그때는 분명 자대 가서도 연락해야지 하고 서로 연락처 나누고 오두방정을 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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