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건을 알고 싶군요.”
나는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 그가 딱딱하게 굳은 낯빛으로 머리를 숙였다.
“도움을 청하고자 왔습니다.”
“제게?”
“예.”
나는 물끄러미 커피잔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계산한 겁니까?”
박수호 팀장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예. 그렇습니다.”
“약았군요.”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정보를 잘 이용하는 건 오히려 유능하다 봐야겠지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은 없습니다만....”
그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형식적인 얘기는 됐습니다. 팀장님 같은 위치에서는 무능한 게 죄이지, 유능한 게 죄는 아니죠. 무슨 일인지 들어나 봅시다.”
내 관심사, 성격, 무력 모든 걸 분석한 끝에 도움을 요청하면 거절하지 않을 거라는 걸 확신하고 온 듯했다.
“짐작하셨듯이, 당문제약 관련된 일입니다.”
“그렇겠지요.”
박수호 팀장이 태블릿을 켜서 내 쪽으로 밀었다. 나는 느긋하게 태블릿 화면을 넘기며 내용을 살폈다. 박수호 팀장이 앞에서 부연설명 했다.
“태백시 인근에 모종의 움직임이 여러 차례 감지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태백시는 꽤 위험한 침식 지대로 변한 지 오래지요.”
생각보다 잘 정리된 자료였다. 당문제약의 로고가 찍힌 화물차와 녹포 무인들이 드나드는 걸 찍은 사진도 꽤 많았다. 신교에서도 쉬이 구하기 힘든 내용이었다. 물론 신교 특성상 국내 정보에는 좀 관심이 덜한 것도 있지만.
“수상하군요. 이건 언제 파악한 겁니까?”
“최근입니다. 당문과 당문제약을 조사하다 보니 발견한 겁니다.”
“단순히 이것만 가지곤 들이치기 힘들 텐데요.”
“...좀 더 뒤쪽으로 넘겨보시면 됩니다.”
그의 말대로 태블릿을 한참 넘기던 내 손길이 어느 페이지에서 그대로 멈췄다. 나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이걸 보고도 정부, 국정원에서는 개입이 어렵다는 얘기겠지요?”
“...예. 현실적으로 힘이 없습니다. 만일 어쭙잖게 건드려서 당문이 한국을 아예 벗어나 버린다면. 그게 훨씬 거대한 타격이니까요. 대를 위한 소의 희생, 위에선 그리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내가 방금 봤던 자료에서는, 일종의 인신매매에 관련된 내용이 담겨 있었다. 게이트 사태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수도 없이 많았고, 그들을 관리하는 보육원 등지에서 아이들을 ‘공급’받아 당문제약의 시설로 옮긴다.
시설 내부에서 무슨 일이 있을지는, 온전히 상상의 영역이다. 허나, 지금까지 일로 보면 당문이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는 뻔했다. 멀쩡한 일을 벌일 생각이라면 굳이 침식지대 같이 위험한 지역에 터를 잡진 않았겠지.
“국정원에서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저도 이걸 조사하며 꽤 이곳저곳 들쑤시고 다닌 지라. 정보가 새어나갔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암살 안 당하신 게 용하군요.”
“...항상 주의하고 있습니다만. 어차피 저 같은 말단은 신경도 안 쓴다는 거겠지요.”
“신교에서 공식적으로 도움을 드리는 건 어렵습니다. 태백이면 경계지도 아니고, 침식지대라 하나 명백한 정파 영역이니.”
“역시 그렇습니까.”
박수호 팀장이 씁쓸한 표정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디까지나 ‘공식’적으로 그렇다는 얘깁니다.”
“그 말은...?”
“개인적으로는 몇 가지 방법이 생각나는군요. 따로 보고는 안 올렸겠지요?”
“예. 어차피 의미가 없을 테니까요. 게다가 괜한 경각심을 품고 숨어 버리면 말짱 도루묵이니 말입니다. 아마 겉으로 보기에 공자님을 병적으로 조사하는 거로밖에 안 보였을 겁니다.”
저런 말을 직접 들으니 역시 좀 미묘하긴 했다. 게임 핵심 인물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으니 좋다고 해야 할지.
“계획은 있습니까?”
“공자님이 제 계획이었습니다만.”
“....”
“농담입니다. 민초란. 하나하나는 나약하기 그지없는 풀뿌리들이지요. 하지만, 그들이 모이면 거대한 산사태도 막는 법입니다. 약자에게는 약자만의 방법이 있지요.”
“좋군요. 대신 계획 수정은 꽤 많이 필요할 겁니다.”
결정은 내렸다. 아예 안 봤으면 모를까, 저런 걸 보고 그냥 넘기기에는 내 기분이 찝찝했다.
심지어 상대는 당문. 명분까지 있으니 오히려 좋다. 저번과 달리 사전 증거도 훨씬 많았다.
남해에서처럼 유령단과 천비각까지 동원한 대규모 작전은 힘들겠지만, 지금은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다. 특히 상대가 당문인 이상, 나는 상성상 절대적인 우위를 지니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박수호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넉살 좋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예, 내일 당장 시작합시다.”
가볍게 악수하며 나는 말했다.
“네...?”
그가 멍하게 입을 벌렸지만, 이런 일 가지고 오래 끌 생각 따위는 없었다.
주말 내로 끝낸다.
그게 내 답이었다.
***
태백시.
한때 인구 10만이 넘었던 도시는 석탄 관련 광업이 저물면서 규모가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나날이 몰락해가던 도중 터진 게이트 사태는 태백시에게 사형선고를 내려버렸다. 대한민국 내인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수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진 지역.
그것이 태백시 인근이었다. 다음 날, 새벽 일찍부터 나는 박수호 팀장의 팀과 함께 거대한 화물차를 타고 이동했다.
외부에 에코그린 컴퍼니Ecogreen Company라 적힌 트레일러 내부.
흔한 외형과 달리 내부에는 온갖 전자기기로 가득했다. 에코그린 컴퍼니 자체가 국정원의 위장 회사 중 하나라던가.
대외적으로는 마물 사체 등의 처리를 위한 ‘청소 길드 연합’ 소속이었다. 청소 길드는 어딜 가나 보이는 편인 데다가, 침식지대 인근을 돌아다녀도 전혀 위화감이 없었으니.
나름 일거양득이라 볼 수 있었다.
“진짜 홀로 잠입하실 겁니까?”
박수호 팀장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예.”
“혹시라도 공자님이 관여된 게 밝혀진다면....”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나는 내공을 전신 혈도에 실어 구결에 따라 진기를 인도했다.
우드득- 우드득-
기괴한 소리가 울리며, 체형부터 시작해서 얼굴까지 전부 뒤바뀌었다.
“억?”
옆에 있던 박수호 팀장의 팀원이 기겁하며 나를 쳐다봤다.
천변만화술千變萬化術.
남장할 때 천하연이 쓰던, 역체변용술의 최고봉에 속하는 기예였다. 얼마 전에 천하연으로부터 제대로 전수받은 덕에, 이젠 외부에 비치는 모습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이런 게 있다고 듣기는 했지만... 마치 마법 같군요.”
박수호 팀장도 눈을 부릅뜨고 나를 여기저기 살폈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30대 남성. 그게 지금 내가 취한 형태였다.
당연히 이 외형에서 스무 살의 김무공을 발견하는 건 불가능했다.
“저도 처음 봤을 땐 그랬지요.”
“무인들이 전부 이런 걸 익힌다면....”
“신교의 비술은 아무에게나 전수하지 않을뿐더러, 초절정 아래면 입문조차 불가능하니 전부 익힐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만.”
그제야 박수호 팀장이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팀장님! 도착했습니다!”
의자에 앉아 헤드셋을 끼고 화면을 응시하던 팀원이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계획대로, 침식지대 외곽까지는 쉽게 들어왔다.
“근처에 적룡대가 대기 중입니다. 외곽이니 별문제는 없겠습니다만, 혹여나 마물 습격 등으로 위험한 상황이 있으면 연락 보내시면 됩니다.”
통신 기기를 한 번 더 점검하며 말했다.
“예. 무운을 빕니다.”
박수호 팀장이 팀원과 함께 정중하게 포권했다.
탁.
트레일러의 뒷문을 닫고 내려섰다.
탁한 공기가 채찍처럼 휘감겨 드는 대지.
잿빛 하늘 아래로 을씨년스러운 도심지의 폐허가 눈에 들어왔다. 온전한 형태는 찾아볼 수도 없는 건물과 사방에 쓰레기처럼 널브러져 있는 온갖 잔해들.
문명을 잃어버린 거리 너머로 투박한 살의들이 느껴지는 이곳이야말로.
전형적인 침식지대의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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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울한 음영이 도시 전체에 묻어있었다. 낮인데도 햇볕이 들지 않는 대지에는 음산함만 가득했다. 희미하게 끼어있는 안개 때문에 시계도 제약됐지만, 그건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고고도 무인 스텔스 정찰기 배치 끝났대. 지금부터 감시 들어간다니까, 특이사항 있으면 알려줄게.]
[감사. 적룡대 지휘는 맡길게.]
[응. 걱정 마.]
가볍게 몸을 풀고 출발하기 직전, 한여름으로부터 채팅이 왔다. 천비각으로부터 인력 지원을 받진 않았지만, 다른 쪽 지원은 충실히 받았다.
이를테면 위성 지원이나, 동해상에서 비행 중이던 신교 소속 정찰기 한 대를 이쪽으로 돌린다든지. 침식지대 내부까지는 힘들어도, 외곽 감시는 충분했다. 국정원만 믿을 수는 없었으니까.
나는 기감을 넓혀 주변을 살펴본 뒤, 곧장 내달렸다. 귓가에 박수호 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로는 계획대로 가시면 됩니다. C급 마수 병봉幷封이 다수 출현하는 지역이며, B급 마물 선달 블롱Sundel Bolong도 종종 확인되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확인.]
박수호의 원래 계획은 꽤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의 계획에서 이런 마물 출몰 지역은 돌아가는 게 기본 골자였으나, 내가 개입하면서 전부 뜯어고쳤다.
마물 출현 지역은 정면돌파.
당문 시설 역시 정면돌파.
원래 몸이 강하면 머리는 덜 고생해도 된다.
콰직-
폐허를 슥슥 지나던 도중, 주변에서 깨진 유리를 밟는 소리가 울렸다.
그르르릉-
자동차의 엔진음과 비슷한 소음. 마수학 수업에서 이미 들은 바 있던 괴물의 특성이었다.
쿵- 쿵-
지축이 울리면서, 원시적인 살의를 뿜어내는 놈들이 하나둘씩 건물 사이에서 나타났다.
병봉幷封.
기다란 뿔이 두 개 난 새까만 멧돼지와 비슷했지만, 크기는 곰과 같았고 결정적으로 머리가 앞뒤에 달려 있었다. 항문 자리에까지 머리가 있는 모양새니, 일반적인 생물의 범주는 명백히 벗어난 형태였다. 놈들의 붉은 눈동자 여러 개가 나를 응시했다.
기척을 죽이지 않긴 했어도, 생각보다 반응이 빨랐다. 정보를 토대로 판단해 보면 내가 지금 밟고 있는 장소는 놈들 영역의 초입 정도에 불과한데 말이다.
지금껏 내 적들은 대부분 인간이었기에, 마물들을 상대해본 적은 거의 없었다.
혈교가 인류의 이단아라면, 이들이야말로 인류의 진정한 적이었다. 대화나 타협의 여지도 없이, 오로지 상대의 절멸만을 노리는 것들.
‘업화.’
나는 온몸에 불길을 둘렀다. C급. 그리 높은 등급은 아니었다. 일류만 되어도 쉽게 잡는 녀석들. 굳이 번잡하게 손을 쓸 필요도 없었다.
쾅-
대지를 박차고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았던 놈들이, 천마신공의 기파를 뿜어내자 곧장 뒷걸음질 쳤다. 무인도에서 타마토마의 반응과 비슷했다.
그르르륵!
어찌어찌 다가오는 놈들은 업화의 불길에 닿자마자 타올라 새까만 숯덩이로 변해버렸다. 인간에 대한 강렬한 적의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달려드는 놈들은 없었다. 덕분에 별 방해 없이 병봉의 영역을 지났다.
그리고 당문제약 시설로 접근하는 도로 인근.
운무 속에서 희끄무레한 형상이 보였다. 하얀 옷과 기다란 흑발, 등판이 파여 붉은 속살이 드러난 여성의 모습.
남성에게 특히 위험하다 여겨지는 마물인 선달 블롱Sundel Bolong이었다.
마물의 새빨간 안광이 나를 응시했다. 공포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비주얼이다. 태백시 인근이 침식지대로 변한 이후 버려진 원인이 저것들 때문이었다.
마치 귀신처럼 운무 속에서부터 나타나 사람들을 노린다. 지역을 벗어나진 않는 대신, 일반적인 B급 마물 최상위권의 강함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저것들은 잡아도 허깨비처럼 사라질 뿐이다. 마석을 남기지도 않는다.
그 때문에 최악의 기피 대상이 되어 봉쇄만 한 채, 이 인근 자체가 버려졌다. 외형만 보면 처녀귀신과 비슷한 느낌이지만, 훨씬 위험한 것들이다.
- 끼아아아악!
괴기스러운 비명성과 함께 놈이 달려들었다. 어디선가 자라난 기다란 손톱, 쭉 찢어진 입안에는 상어를 연상케 하는 빼곡한 이빨이 가득했다.
비명 자체에 인간의 공포를 유발하는 어떤 효과가 있는듯했다. 물론 내게는 별 효과가 없었지만.
‘꿈에라도 나올 거 같군.’
헛웃음을 켜며 나는 장심에 불길을 모은 뒤, 그대로 발출했다.
- 끼아아악...!
소름 끼치는 귀곡성을 내뱉으며 놈이 불길에 휩싸여 바둥거렸다. 마를 제압하는 불길. 업화는 마물에게도 탁월한 공능을 자랑했다.
B급 마물을 파리처럼 때려잡을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하나둘씩 달려들던 선달 블롱을 순식간에 재로 만들어버렸다. 흩날리던 잿가루는 이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특이하네.’
게이트 사태 자체가 온갖 이변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지만, 실제로 보니 몹시도 기이했다. 들었던 대로, 절정 무인과 싸울 수 있을 만큼 강대한 마물이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박수호 팀장이 원래는 이 지역을 회피할 걸 권한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수비하는 입장에서 방심하기도 쉬운 경로라는 얘기였다.
[곧... 치직- 예정... 치직-]
박수호 팀장으로부터 무언가 통신이 왔지만, 제대로 들리진 않았다. 원래부터 침식지대 내부는 통신이 먹통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주변을 둘러싼 불길한 운무가 통신을 방해라도 하는지.
어차피 그것까지 전부 고려해서 계획을 짰다. 나는 운무를 헤치고 마침내 강철 장벽 앞에 도착했다. 모든 게 부서지고 삭아버린 세상에서, 이 강철 벽만은 말끔한 형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드높은 강철 벽을 여유롭게 올라가던 도중.
‘혈향.’
진한 피비린내가 느껴졌다. 강철 벽 인근을 감시하는 감시탑 인근에서였다. 조심히 기척을 죽이고, 감시탑 근처로 다가갔다.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