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한 번 짓밟은 적 있는 선을 또 밟는 것은 생각보다도 훨씬 더 간단한 일이었다.
처음엔 이렇게까지 하려 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카엔이 작가인지 아닌지 알아보기 위해 민감한 곳을 조심스레 건드려 보았을 뿐,
그녀가 몇 번이고 절정할 때까지 손가락을 움직일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품속에 안긴 카엔이 자꾸만 기분 좋은 숨소리를 뱉어낸 탓에.
양 손으로 칭칭 감고 있던 이성의 끈이 툭, 끊어지기 직전까지 얇아진 탓에.
카엔이 작가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머릿속에 똬리를 틀어버린 탓에.
나는 밟아버린 선 너머로 걸음을 옮기고 말았다.
"힉……? 아, 으……?"
살짝만 건드려 보기로 한 젖꼭지를 손가락으로 툭, 툭, 튕겨대기 시작했다.
제 입을 틀어막고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가는 카엔의 몸을 일부러 꽉 끌어안아 보기도 했다.
무심코 카엔의 새하얀 목덜미에다 이빨 자국을 남기려다가, 입안에 혈향이 퍼질 정도로 혀를 깨물어 견뎌냈다.
양 손으로 단단하게 감고 있던 이성의 끈이 순식간에 얇아졌다.
조금만 힘을 줘 꺾어버리면, 당장 끊을 수 있을 만큼.
아직 카엔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다.
지금까진 아닐 확률이 훨씬 더 높다.
일단은 이쯤에서 멈춰야 한다.
더 이상 했다가 최악의 상황으로 흘러가면 끝이다.
이성은 그렇게 외쳐댔으나.
이성의 끈을 있는 힘껏 쥐고 있는 팔뚝에서는.
이 정도면 증명이 끝났다고.
당장 카엔을 덮쳐야 한다고.
시끄럽게 아우성쳐댔다.
"기다, 기다려…주…. 읏…."
어설프게 틀어막은 손가락 사이로 카엔의 물기 가득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비록 끝까지 뱉지 못했더라도 저 말이 손가락을 멈춰달라는 이야기인 것쯤은 알 수 있다.
야설을 쓴 당사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하지만 나는 카엔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오히려, 카엔의 말캉말캉한 젖꼭지를 양 손가락으로 꽉 짓누르고 말았다.
"잠까……."
부드러운 연분홍색의 젖꼭지가 집요하게 훑어대는 내 손끝에서 이리저리 모습을 망가뜨렸다.
카엔이 한 번 허리를 튕겨댄 이후론, 엄지와 중지로 젖꼭지를 꾹 고정하곤 검지손가락으로 젖꼭지 끝을 마구 쳐올렸다.
점차 카엔의 머리가 옆으로 쓰러지려 하기에, 잠시나마 괴롭힘을 멈추고 부드럽게 손끝으로만 쓰다듬어주기도 했다.
이 모든 게 제정신일 때 한 짓이 아니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멍하니 저질러버린 일이었다.
"히으──? ──?!"
결국 제 손으로 입을 꽉 틀어막은 카엔이 내 품에 뒤통수를 비벼대며 절정 하고서야 흐릿하게나마 이성이 돌아왔다.
어디까지나, 흐릿하게.
"헥…. 헥……."
더 이상은 위험하다.
나는 여전히 카엔의 가슴을 붙잡은 채로 내 손목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아직은 두 개 다 제대로 붙어있었다.
하지만….
과연 카엔이 여기서 그만두자고 하면.
나는, 제대로 멈출 수 있을까?
"헤으……."
답은 '아니오' 였다.
명확한 이유는 모르겠다만 어쩐지 어제부터 충동을 참기 힘들어진 것이 사실이니 말이다.
문득, 아카데미에 입학한 후 한 달간 진행된 유즈의 실험이 떠올랐다.
다른 건 딱히 짚이는 게 없으나 그녀가 주기적으로 건네주었던 새빨간 알약이 의심스러웠다.
분명 저번에 실험 결과를 확실히 하기 위한 약이라고 들은 것 같긴 한데….
아무래도 오늘 유즈에게 실험 경과를 보고할 때, 내가 먹은 게 정확히 무슨 약인지 꼭 들어야 할 것 같다.
그 전엔 일단,
이것부터 어떻게든 잘 마무리하고.
"…카엔 님."
가쁘게 오르내리는 카엔의 가슴을 오랫동안 바라보던 나는 숨을 꾹 삼키고선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
"청소할 곳도 아직… 많이 남아있으니까."
이미 많은 실수를 저지른 건 사실이다만, 그래도 마지막엔 실수 없이 제대로 하고 싶은 말을 뱉어낼 수 있었다.
이제 당장 여기서 빠져나가자.
바지 속이 미칠 듯이 답답하긴 해도 카엔의 앞에서 자지를 훑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대충 어디 구석진 곳에 들어가 상상딸이라도 치면 해결될 것이다.
문제 해결.
그렇게 생각했으나.
"자, 잠깐만."
카엔의 대답은 허락이 아니었다.
그녀는 오히려 내 허리를 감고 있던 꼬리에 힘을 더하면서 맞은 편의 벽을 향해 질문을 내뱉었다.
"15분…. 남았었지?"
"…네. 카엔 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가 금세 병신같은 짓임을 깨닫고 목소리를 끄집어냈다.
어째 잠에 취한 듯 몽롱한 목소리였다.
"변태."
"네."
툭, 읊조리는 카엔.
"…변태."
"네. 카엔 님."
한 번 더.
"변태…."
"듣고 있습니다."
"변태."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같은 단어만 내뱉던 카엔은 쿡, 내 쇄골에다가 뒤통수를 부딪쳤다.
익숙한 통증이었다.
통증이라 부르기엔 자극에 가까운, 딱 그 정도의 통증.
카엔 본인이 더 아플 텐데 왜 자꾸 저러는 걸까.
쓸데없는 생각으로 성욕을 좀 떨쳐내니 한결 나았다.
"……아파?"
그러던 와중 우스운 질문이 귓가에 박힌다.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무슨 의도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럴땐 괜찮다는 대답으로 적당히 넘기는 것보단 맞장구를 치는 편이 좋겠지.
나는 손으로 짚고 있던 침대 시트를 구기며 답했다.
"조금은, 아프네요."
"……."
카엔은 잠깐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저 고개를 내 반대쪽으로 살풋 돌렸다가.
다시금 위로 휙, 젖히며 내 얼굴을 올려다보았다가.
제 가슴을 내려다보는 채로 잔뜩 흐트러진 셔츠를 이리저리 매만질 뿐이었다.
미안해서 저런 걸까?
아니면, 정작 평민에게 괴롭힘당한 건 난데 왜 사과를 해야 하느냐라는 모순에 빠져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기, 기다려 봐."
스르륵, 잿빛 털이 촘촘히 박힌 새카만 꼬리가 내 허리에서 풀려나 침대 시트를 훑었다.
드디어 자유를 되찾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카엔의 입에서 흘러나온 기다려보란 명령에 의문이 들었다.
어쩌면 약을 발라주겠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까지 할 필욘 없는데.
아니면 반창고 정도로 끝나려나.
아무튼 지금이라도 이 흉측한 걸 좀 가리는 편이 좋을 듯하다.
한참 동안 카엔의 엉덩이를 짓눌러댄 탓에 그녀가 눈치채지 못했을 린 없지만, 직접 눈으로 보는 건 또 다른 문제니까.
나는 카엔이 일어난 틈을 타 셔츠 밑단을 바지 밖으로 빼 바지 위를 덮으려 했다.
"……?"
덮으려, 했다.
아랫입술을 꾹 깨문 카엔이 내 앞에 다소곳이 무릎 꿇기 전까진.
그러려고 했다.
"카엔 님?"
"닥…. 조용히 해."
내 입에서 반사적인 질문이 튀어나왔다.
그런 나를 침묵시키며 바지를 꾹꾹 잡아당기는 카엔.
"그리고…. 조금만 이쪽으로 와 봐."
몇 가지 자질구레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쳤으나, 이미 내 엉덩이는 침대 끄트머리에 걸려 있었다.
아마 이래선 또 과격한 짓을 저지를지도 모른다는 걱정.
그리고 혹시나, 설마, 하는 그런 기대가 동시에 있었던 것 같다.
"변태."
"…네."
"한 번 싸면 안 아픈 거지?"
아마도 정황상 내 쇄골이 아니라 자지 이야기겠지.
바보같은 질문이었다.
잔뜩 발기하고 있다 해서 고통이라도 느끼는 줄 아는 모양이다.
방금 내게 젖꼭지를 만져지며 느낀 감각을 되새기면 금방 알아챌 수 있을 텐데.
야설 작가라 생각하기엔 지식이 너무나도 어설프다.
역시 카엔의 글은 아니었나 보구나.
이미 몇 번이나 뒤집혔던 결론과 함께 다리 사이를 내려다보았다.
어느새 피곤함이 완전히 사라진 연보랏빛의 아름다운 눈동자.
천천히 쓰다듬어지며 이곳저곳이 헝클어진 묵빛의 머리카락.
방금까지 침이라도 흘리고 있었던 건지, 입술 끝에서 밑으로 얇게 그려진 침 자국에 차례대로 시선이 닿는다.
"……혹시 두 번 싸야 해?"
이미 작가가 아닐 거란 쪽으로 생각이 기운 이상 '굳이 카엔 님께서 신경 쓰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라고 대답한다면 멋쩍은 분위기와 함께 아무 일도 없이 방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나중에 멋대로 젖꼭지를 희롱한 것에 책임을 물을지도 모르지만,
이 편이 리스크도 가장 적고 어찌 되었건 카엔의 젖가슴을 만져보았다는 리턴까지 있으니 가장 훌륭한 대답일 게 분명하다.
정답은 이토록 눈에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못 보고 놓친 것도 아니다.
이제 그대로 목소리만 내뱉으면 되는데.
"설마 세 번…?"
우습게도.
성욕에 뇌가 마비된 나는.
"…네."
순진무구한 카엔보다 훨씬 더 멍청했다.
*
카엔의 얼굴이 점차 아래로 사라져간다.
밑으로.
밑으로.
귀두 끝이 카엔의 머리카락보다 훨씬 더 높은 곳에 다다를 때까지.
"후우…."
살짝 옆으로 고개를 돌린 나는 열기가 가득 담긴 숨결을 허공에 흩뿌렸다.
기세 좋게 카엔에게 펠라치오를 부탁하긴 했는데, 이 상태로 평정심까지 유지하려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차라리 카엔이 작가란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으면 몰라, 작가가 아니란 쪽으로 천칭이 움직였는데도 왜 이런 짓을 벌인 걸까.
진짜 병신인가.
내가 나를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상황.
어떻게든 카엔을 강간하는 것만 막아보자고 결심한 나는 등 뒤를 짚은 손으로 침대 시트를 꽉 움켜쥐었다.
"헤읍…. 헤…."
천박한 물소리와 함께 축축한 자극이 자지 뿌리에서부터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의도적으로 저러는진 잘 모르겠으나, 힘을 뺀 채 핥짝이는 혀끝이 무척이나 부드러웠다.
마음같아선 카엔의 입속도 느껴보고 싶지만….
꿈 깨자.
그녀는 지금 내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저러고 있는 거니까.
"하아…. 이러면 돼……?"
붉은 혀를 쭉 내민 채 자지 밑에서 질문을 해오는 카엔.
"예. 맞습…니다."
"…알았어."
카엔은 꼴깍 침을 삼킨 뒤 자지를 핥아 올리는데 열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본 나는 침대 시트를 더욱더 힘껏 움켜쥘 수밖에 없었다.
결국 손끝에서 무언가 투둑, 찢어지는 감각이 선명하게 전해졌다.
분명히 비쌀 텐데.
카엔이 내 소행이라 눈치채지 못하길 바랄 뿐이다.
나는 계속해서 애꿎은 침대 시트만을 괴롭혔다.
그렇게 눈을 질끈 감고 이성, 본능, 사정, 3가닥의 피아노선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던 찰나.
문득, 자지에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
딱 30초만 더하면 이성의 끈을 어떻게든 붙든 채 사정 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힘들어서 그런가?
옆으로 돌린 채 감고 있던 눈을 슬며시 떠봤다.
그리고는 그대로 아래를 향해 내렸다.
"……."
그곳엔 내 자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카엔이 있었다.
제 입술을 혀로 훑었다가, 후우, 하고 작은 한숨을 내쉬는 카엔이.
왜 갑자기 그러고 있냐고 물으면 예의 없어 보일까.
잠깐의 고민 탓에, 나는 뒤이어 이어지는 행동까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웁……."
"윽…?"
뜨겁다.
혀가 닿을때 까지만 해도, 따뜻하긴 따뜻하되 금세 차가워진다고 생각했는데.
입 속은 전혀 달랐다.
따뜻함을 넘어서 뜨거움에 다다르고 있었다.
이건 위험하다.
진짜로, 말도 안 되게 위험하다.
본능이 제대로 된 계산도 없이 확신에 찬 결론을 내렸을 때.
"크윽…!"
"응웁?!"
─뷰르르륵! 뷰르륵!
허리가 고장 난 것처럼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참고, 참고, 또 참아서 내기 시작한 정액.
그 모든 성욕을 카엔의 입 안에 채워 넣으며, 이미 찢어진 침대 시트를 더욱더 강하게 움켜쥐었다.
큰일났다.
아니, 좆됐다.
그딴 걱정을 모두 때려 부수는, 압도적인 쾌감이 뇌를 마비시킨다.
내 손이 무심코라도 카엔의 머리를 잡아당기지 않도록, 다시금 침대 시트를 쥔 손에 온 힘을 가했다.
"웁? 웁?"
귀두만을 입에 담은 카엔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귀만 쫑긋거리며 내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 듯이.
삼켜야 하냐고, 뱉어야 하냐고, 이걸 입에서 뽑아내면, 얼굴에 뿌려지는 게 아니냐고 묻는 듯이.
당연하게도, 나는 그 수많은 질문에 하나하나 대답해줄 수 없었다.
일단은 뱉으라고 하는 게 좋겠지.
아마 얼굴에도 잔뜩 뿌려버릴 것 같으니 눈을 감으라고 덧붙이면서.
그렇게 탁한 한숨만을 내쉬던 입술에서 새어나온 대답은.
"…삼켜. 당장."
이상하게도.
무척이나 건방진 것이었다.
이런 말을 하려 했던게 아닌데.
내가 귀족이었다면 당장 뺨을 후려갈겼을 만큼.
건방지고도.
건방진.
"……."
─꼴깍
─꼴깍
─꼴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