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쏴아아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억수같이 내리는 빗소리.
─절그럭
그런 와중에도 등 뒤에서 똑똑히 들려오는 가벼운 금속음에, 팔뚝으로 벽을 짚고 엉덩이를 쭉 내뺀 카엔은 저도 모르게 군침을 삼켰다.
이미 속마음을 어느 정도 밝힌 이상, 제대로 된 강간보다는 플레이에 훨씬 가깝다.
남자는 대충 강간하는 척 허리를 흔들고, 여자는 대충 싫어하는 비명을 지르면, 퀄리티와는 별개로 그 또한 강간플레이의 일종일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진짜 강간'이었던 처음보다는 만족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라고.
조금 전까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쏴아아
다른 모든 소리가 절제된 축축하고도 스산한 분위기.
카엔은 조심스럽게 눈을 깜빡였다.
작은 숨소리를 내뱉는 것조차 루크에게 허락을 맡아야 하나 싶을 지경이었으니까.
사람이, 바뀌었다.
친절하고 근면성실했던 평민인 루크는 어디 가고,
침대 위에서 마음대로 여체를 찍어눌렀던 수컷이 등 뒤에서 천천히 벨트를 풀어내고 있었다.
심지어 카엔의 머리를 벽에다 짓누른 채.
정확히는, 벽을 짚은 카엔의 팔뚝에다가 이마를 꽉 짓눌러버린 채.
우습게도, 카엔은 그런 루크의 손길에 얌전히 꼬리만 살랑거리며 순응한 채.
오직 제 애액으로 축축이 젖어버린 팬티를 무릎에 걸쳤다.
"……."
공기와 맞닿은 살결에 오소소 돋아나는 소름.
1초가 1분처럼 흐르게 된 지는 이미 10초가량이 흘렀다.
단추도 거의 떨어져 나갔겠다, 돌아갈 땐 차라리 비를 다 맞으며 우산을 앞으로 드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카엔.
사실상 야외나 다름없는 불안감에 곁눈질로 도장 입구를 살피던 그녀는 자신의 다리 사이로 시선을 옮겼다.
보이는 것은 루크의 발이다.
카엔의 보폭보다 조금 더 넓게 벌려진 그것은, 엉덩이 뒤에서 비킬 생각이 조금도 없어 보였다.
카엔은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며 때를 기다렸다.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린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곧 있으면 저 바지가 밑으로 스르륵 내려올 것이라고.
그리 생각한 카엔은 숨소리를 지운 뒤 조용히 두 눈만을 깜빡였다.
─스륵
내려간다.
루크의 바지가.
대충 풀어낸 벨트가 바닥에 닿아 묵직한 소리를 내고,
차갑게 식은 카엔의 엉덩이에 그보다 훨씬 더 뜨거운 손길 하나가 닿았다.
손가락 사이로 살결이 솜털처럼 몽글하게 튀어 나갈 정도로 꽉 쥐었다가,
그 상태 그대로 부끄러운 구멍 두 개가 끈적하게 벌어질 정도로 옆으로 당겨도 보았다가,
아끼는 애완동물을 어루만지듯,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쓸어주기까지 했다.
부끄럽고,
치욕스럽고,
두근거리며,
감질나는.
복잡하고도 야릇한 감정.
루크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조용히 군침 덩어리를 삼키던 카엔은 아랫도리에서 느껴지는 위험한 감각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무언가 따뜻하고 축축한 것이 클리 끝에 맺혔다.
그걸로도 모자라 곡선을 따라 밑으로 주르륵 흘러내리곤,
차갑게 변해선 아랫배 근처에 자리를 잡고 밑으로 끈적하게 늘어지기 시작한….
적어도 누군가에게 강간당할 때 보여선 안 될, 최악의 반응이 속살에서 새어나온 까닭이다.
그나마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을 루크에겐 이 광경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카엔은 그걸 위로 삼아 살풋 눈을 떴다가 그대로 눈꺼풀을 닫았다.
이미 바닥엔 빗방울이라도 떨어진 듯 동전만 한 자국이 생겨 있었으니까.
부끄러워서.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으극……?"
갑자기 더 힘껏 카엔의 뒤통수를 짓누르기 시작한 루크.
제 팔뚝 하나에 의지해 버티던 카엔은 무심코 이상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가랑이 사이에 꾹, 닿아오는 뜨거운 체온에 그녀는 꿀꺽 환희를 삼켰다.
"……."
열린다.
억지로.
술에 취한 상태로 문에 맞지 않는 열쇠를 구겨 넣듯이.
애액만 가득한 채로 꽉 다물려 있던 질육이, 엉망진창으로 넓어지기 시작한다.
"아, 쟈…. 쟘까……."
이번엔 우는 연기를 해서 루크의 가학심을 높여보려 했는데.
5분 만에 뚝딱 만들어낸 귀여운 계획 따윈, 손가락으론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두툼한 귀두가 들어오자마자 완전히 박살 나고 말았다.
대신 입에서 튀어나오는 건, 신기하게도 첫 경험 때와 비슷한 단어였다.
기다려달라고.
익숙해질 시간을 달라고.
그 뒤엔 네 마음대로 부술 듯이 박아대도 된다…는 말은 일단 삼키고.
카엔은 헥, 헥, 한심한 소리만 뱉는 목구멍 뒤에서 하고 싶은 말을 꺼내려 애썼다.
"히…. 히이……?"
루크가 아무렇지 않게 절반 넘는 양의 자지를 처박아버리기 전까진,
분명 그러려고 했었다.
"으헤…? 아…?"
그래도 이번엔 곧장 실신하지 않았다는 다행스러움이 한 번.
자궁구를 귀두로 눌러주는 건 이렇게나 기분 좋구나, 라는 깨달음이 한 번.
하지만 아직도 자지가 전부 들어온 게 아니라는 긴장감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카엔의 머릿속에서 새빨간 비상등을 울려댔다.
"후…."
왠지 모르게 멀찍이서 들려오는 듯한 루크의 한숨.
벽면에 튕겨 귓속을 파고드는 자신의 음란한 숨소리.
벌써부터 고장 난 것처럼 휘청거리기 시작한 무릎.
퓻, 무언가 부끄러운 액체를 루크에게 내어버린 것 같지만, 거기까진 생각이 닿지 않았다.
당장 카엔의 머리를 흠뻑 적신 것은 생리적인 호기심이다.
카엔은 루크가 골반을 꽉 쥐고 자지를 뽑아내기 직전, 저도 모르게 남는 손으로 아랫배를 꾹, 꾹, 눌러보았다.
잘은 모르겠는데.
방금… 배꼽 밑이, 그러니까, 배꼽 안쪽…? 이 살짝 튀어나온 것 같았으니까.
"어…?"
더듬더듬 배꼽 밑을 훑는 카엔은 손끝에 느껴지는 생소한 감각에 무심코 의문 가득한 목소리를 뱉고 말았다.
…착각이 아니… 었으니까.
루크가 허리를 뒤로 살짝 물리니까… 뭔가 단단해졌던 게 조금 부드럽──
─퍽!!
갑작스레 툭, 아랫배에서 밀려나는 손끝.
의식이 상황을 따라가지 못한 카엔은,
바보처럼,
멍하니,
손 끝을 토닥토닥 움직이며, '아. 생각보다 많이 튀어나오네' 따위의 감상을 내뱉다가,
자궁을 몸속 깊숙이 처박듯 들어갔던 자지가 뿌리까지 축축하게 물든 채 뽑혀나갈 때가 되어서야,
"……읏?!?"
뒤늦게 몰려온 위험한 쾌감에, 새카만 꼬리를 바짝 세웠다.
"…어? 어……?"
뭐였, 지?
방금 엉덩이에 딱딱한 게 닿았던 것 같은데.
그리고, 아랫배가 완전히 가득 찼던 것 같은데.
벽면을 마주 본 상태 그대로 두 눈을 떙그랗게 뜬 카엔.
그녀의 머릿속에 '생각보다 많이 튀어나오네' 대신 쾌감 가득한 물음표로 가득 덧씌워질 무렵.
─퍽!!
다시 한 번 아랫배에 닿아있던 손끝이, 작은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바깥으로 밀려 나갔다.
방해되니까, 비키라는 것처럼.
"……!!!?…??!"
쿵.
쿵!
쿵!!
처음엔 자궁구를 꾹 짓눌렀을 뿐인 귀두가, 이제는 형태를 부숴버리겠다는 기세로 자궁 입구를 거칠게 때려 박는다.
다정함.
따뜻함.
암컷의 상태따윈 전혀 안중에도 없는, 오직 수컷만이 기분 좋아지기 위한 섹스.
섹스라기보단,
그래.
교미.
─퍽! 퍽! 퍽! 퍽!
귀두가 자궁을 짓누르는 소린지,
마음껏 움직이기 시작한 루크의 아랫배가 카엔의 엉덩이를 두들기는 소린지,
서로의 살이 거칠게 맞닿는 소리가 넓은 도장 가득 울려 퍼지고,
바라던대로 루크에게 잡아먹히기 시작한 카엔은,
질 안 가장 비밀스러운 곳을 거근으로 꿰뚫릴 때마다,
쾌락으로 가득 찬 목소리가 새어나오는 것을 억누를 수 없었다.
카엔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끊임없이 벽에다가 신음 소리를 질러대는 것뿐.
"하아, 하악……."
고장날거야.
계속 이런 식으로 짐승처럼 따먹히다간, 분명 순식간에 고장 나고 말 거야.
망가질 거라고.
조금만 천천히, 얕게 해달라고.
그렇게 루크에게 부탁해야 하는데.
"히읏?!!"
결심과 달리, 카엔의 입술 사이에선 여전히 단어가 되지 못한 목소리만이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자, 쟘까……. 힉…?!"
문장은커녕, 고작 두 글자 단어를 내뱉는 것조차 이토록 어렵다.
이래서야 루크와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
손.
손을 뻗을까?
지금껏 자기도 모르게 계속 튀어나온 아랫배를 꾹, 꾹, 만지작거리고 있었던 카엔은, 곧장 등 뒤에서 마구 처박아대고 있는 루크의 허벅지를 힘껏 밀어보았다.
"으그읏……."
하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다.
착각일지도 모르겠다만,
오히려 자지가 조금 더 크게….
부푼 것 같기도 하다.
"으으……."
왕변태.
라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아무리 자신에게 관대해지더라도, 지금은 평민에게 강간해달라 부탁한 자신이 훨씬 더 변태였으니까.
'분명 저항하는 걸 무시하고 강제로 해도 된다고 허락한 건 나지만….'
기분은 좋았다만, 계속 이대로 박아댔다간 또 실신한 채 바닥에 고꾸라져 그간의 기억들은 드문드문 조각나 있을 게 뻔했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부탁했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루크에게 따먹힐지만 생각한 탓에, 다른 건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자신의 실수를 후회하는 카엔.
결국 그녀는 다음 방법을 꺼냈다.
꼬리.
꼬리로 얼굴이나 몸을 두드리면, 짜증 나서라도 왜 그러는지 이야기를 들어보려 하지 않을까.
라는 카엔다운 1차원적인 단순한 생각.
"……?! 꺅…?"
그딴게 먹힐 리가 없었다.
빳빳하게 세운 꼬리가 루크의 몸을 토닥토닥 두드리자, 그는 방해된다는 듯 손에 꼬리를 꽉 붙잡곤 손잡이 대용으로 쓰기 시작했다.
최대한 빠르게.
최대한 깊게.
어떻게든 카엔을 망가뜨릴 작정으로.
카엔은 무언가 콱 깨물어 버티고 싶었지만 그런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루크가 나머지 한 손으론 뒤에서 머리를 꽉 짓누르고 있으니까.
끝나고 나면 이마에 빨간 자국이 남고 말겠지.
"읏……."
그런 패배감에 왠지 모를 달큰한 쾌감을 느끼기 시작한 카엔은, 몸이 점점 밑으로 내려가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신음 소리를 내질렀다.
"학! 아, 읏…! 으읏…!"
하필이면 루크에게 꼬리를 꽉 붙잡힌 탓이었다.
그 때문에 다리가 풀리고 몸이 휘청거리더라도, 허리만큼은 계속 제대로 된 위치에 떠있을 수 있었으니까.
꾸욱 루크에게 짓눌린 머리가 점점 팔뚝을 벗어나고.
결국 팔뚝 대신 벽에 뺨을 붙이게 된 카엔이 절정에 빠져 도장 바닥에 애액을 잔뜩 뿌려댈 때까지도.
제 몸이 내려가고 있단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카엔은,
"후아아…."
손에 꼬리를 감고 있던 루크가 툭, 붙잡힌 꼬리를 풀어주자마자 천천히 바닥으로 쓰러졌다.
새하얀 애액이 구석구석 꼼꼼히 들러붙은 자지를, 뿌리부터 귀두까지 속살로 끈적하게 훑어내고 나서야 말이다.
"헤엑…. 헤엑……."
…이래서였구나.
안 그래도 어제부터 왜 이렇게 꼬리가 욱신거리나 했더니.
저번에도 이렇게 꼬리를 다뤘나 보구나.
엉덩이를 마음대로 때려대고.
꼬리를 마음대로 잡아당기며.
남이 미쳐가는 소리를 내뱉는 것 따윈 신경 쓰지 않은 채.
모조리 쑤셔 박은 탓에 그렇게 되었던 거구나.
─뷰르르륵! 븃!!
엉덩이만 볼록 치켜들고 엎드린 채 꼬리를 부들대는 카엔.
그녀의 몸 위로 우윳빛의 액체가 끼얹어지기 시작했다.
등.
엉덩이.
허벅지.
가끔은, 꼬리.
카엔은 그 데일듯한 뜨거움에 흠칫 거리며, 순순히 루크의 휴지 역할이 되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