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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서 야설을 주웠다-39화 (3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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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보다 조금 더 높아진 시야.

평소보다 조금 더 따스하게 달아오른 물 온도.

평소보다 조금 더 비좁은 욕조.

평소보다 조금 더 기분 좋은 시간.

"…."

카엔은 제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당긴 채, 검지 손가락을 쭉 뻗어 목덜미 한구석을 살금살금 어루만졌다.

지금은 매끄러운 감촉이 전부였다만, 당장 어제까지만 해도 교미의 흔적이 오돌토돌하게 남아있던 부위였다.

…조금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패배의 흔적이라고 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그야 그럴게….

침으로 젖은 베개에 얼굴을 꽉 짓눌린 상태로.

변변찮은 저항 하나 하지 못하고.

매 한 번 맞아본 적 없던 엉덩이에 짜악, 짜악, 잔뜩 손찌검을 당하며.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쾌락에 푹 빠져버린 나머지.

침대 위에 엎드려 실신한 채.

그러니까… 패배… 한 채.

꽉 끌어안은 베개 안에 당장에라도 끊어질 듯한 신음 소리만 헐떡이던 몸에,

욕망을 해소한 루크가 제멋대로 남기고 간 정복의 표시였으니까.

"…."

…나쁜 놈.

진짜 나쁜 놈.

그냥 '너' 라는 사람을 조금 더 알고 싶었을 뿐인데.

네가 좋아하는 음식.

네가 좋아하는 계절.

네가 좋아하는 별자리.

네가 좋아하는 책.

마침 나무 그늘에서 졸고 있을 때 네 옆에 책이 떨어져 있기에 한 번 몰래 읽어보려 했을 뿐인데.

난폭한 취향에 엄청나게 당황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네가 좋아하는 취향에 맞춰보려고 노력했을 뿐인데.

네가 흥분해서 저지른 실수를 빌미로, 남들보다 훨씬 더 가까운 사이가 되어보고 싶었을 뿐인데.

그렇게 너를 침실로 들이고.

나름 평범하다 생각했던 취향이,

너를 따라 이렇게나 변태같아질줄은.

생각도 않았는데.

…나쁜 놈.

"……아…."

그렇게 '내가 이렇게 된 건 모두 네 탓이야!' 라고 합리화 중이던 카엔의 입에서 나지막한 탄식이 새어나왔다.

살짝 메마른 윗입술.

침으로 축축이 젖은 아랫입술이 차례대로 그녀의 목덜미에 닿은 까닭이다.

강간당한다.

잡아먹힌다.

…괜스레 피하고 있던 노트 속 천박한 말을 빌리자면.

따… 먹힌다….

"힉…."

침에 젖어 미끄러운 이빨이 쿡, 카엔의 목덜미를 짓눌렀다.

그러나 아직까진 깨물려는 움직임은 아니었다.

터를 고른다고 해야 하나.

혹은 입맛을 다시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 몸뚱이를 최대한 맛있게 먹기 위해서.

남에게 몸 어딘가를 깨물린다니, 분명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닐 텐데.

왜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리는지 모르겠다.

루크의 마킹이 끝나면 분명 옷으로는 다 가릴 수 없는 커다란 자국이 남을 것이다.

누가 봐도 이빨 자국이라 생각할 만큼 음란한 자국이.

밤새 누군가와 거칠게 뒹굴었구나, 그런 생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격렬한 자국이.

카엔은 자연스레 '연적' 한 명을 떠올렸다.

지금까지 은근슬쩍 루크에게 추파를 날리던 그 여인.

'…이 이빨 자국을 '성녀'에게 은근슬쩍 보여주면…….'

그녀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평소의 그 여유로운 척 짓던 미소가 전부 무너지지 않을까?

짖궂은 상상.

카엔은 엉덩이 밑에서 느껴지는 딱딱한 물건을 느끼며 루크를 기다렸다.

제 손으로 직접 목덜미를 가리고 있던 머리카락을 치워준 채.

부디 맛있게 드셔 주세요, 하고.

자신을 강간했던 수컷에게 애교를 부린다.

"흐읏…!"

이윽고 꽈악, 뾰족한 송곳니가 자비 없이 카엔의 목덜미를 짓눌렀다.

어깨라 부르기는 애매한 목덜미의 끄트머리.

그곳에 다시 한 번 부끄러운 자국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루크에게 정복당한 암컷이라는,

부끄럽고도 묘하게 들뜨는 자국이.

"하으으…."

고통.

그것에 스스로 강간당하고 싶다 밝히고 몸을 내어주고 있다는 수치심과 뒤섞여,

흥분.

그것에 툭, 툭, 조심스레 쓰다듬어주다가, 인정사정없이 루크가 제멋대로 가지고 노는 젖꼭지에서 전해지는 성욕과 뒤섞여,

쾌락.

"으햣…?"

목덜미에서부터 퍼져 나가는 뜨거운 쾌락에 헤실헤실 미소를 짓고 있던 카엔은, 갑작스레 돌아간 턱 때문에 이상한 소리를 내뱉었다.

방금까지만해도 젖꼭지를 조심스레 쓸어내리던 루크의 오른손이 카엔의 뺨을 붙잡은 탓이다.

왜 이러는 걸까.

그리고 손가락은 왜 입에 집어넣으려 하는 걸까.

…지금 분명 부끄러운 표정 짓고 있을 텐데.

루크에게 보여주기 싫은 탓에 억지로 고개를 돌리려는 카엔.

─쪽

꼬물꼬물 솟아나오던 소녀 같은 감상은 이어지는 가벼운 입맞춤에 다 타버린 폭죽처럼 사그라들었다.

"……."

사그라들었지만,

여전히 뜨거움은 남아 있듯이.

잔불이 남은 시선으로 루크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아, 으, 어…."

저번처럼 혓바닥 사이에 침이 끈적하게 늘어지는 키스는 아니었다.

말 그대로 가벼운 입맞춤이다.

입술과 입술이 맞닿았다가 잠시 멀어졌을 뿐.

하지만 멍하니 입술을 벌린 카엔은 제대로 된 단어조차 뱉지 못하고 루크와 시선을 맞췄다.

새카만 눈빛.

저번처럼, 망가져 있었으니까.

이대로라면.

분명히 곧.

저번처럼….

"…잠까…."

"닥쳐."

거칠고 차가운 답변.

그 직후 카엔은 루크에게 붙잡힌 채 입술을 겹쳤다.

─츕, 츄

아까보다 조금 더 진하게.

강압적으로.

뒤로 도망갈 수 없도록 짓누르며.

키스라는 달콤한 단어보다는 타액교환이란 딱딱한 단어가 어울리는 행위가,

이번이 고작 3번째 경험인 카엔을 집어삼켰다.

─츄릅, 츕

목덜미를 드러내기 위해 머리카락을 쥐고 있던 조그마한 손이 조용히 떨어진다.

이젠 굳이 이러고 있을 필요 없을 것 같으니까.

천천히 갈 곳을 헤매던 손은, 곧이어 카엔의 뺨을 쥔 루크의 팔뚝을 붙잡았다.

단단하면서도 근육이 예쁘게 잘 잡힌 팔뚝.

그것을 무슨 이유로 잡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일단 멈춰달라고 붙잡은 건 아닌데.

혹시 착각하고 입을 떼어내는 건 아닐까.

그런건… 싫은데.

'…몰라…….'

다행히 루크는 그 어떤 착각도 하지 않은 모양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입안을 핥던 루크의 혀가 더욱 끈적하게 얽혀들기 시작했으니까.

아무래도 좋았다.

"헤읍…. 웁……."

카엔은 넘겨져 오는 군침을 꼴깍, 꼴깍 모조리 삼켰다.

중간에 한 번씩 호흡이 버거울 정도였지만, 이상하게도 그 답답함이 묘하게 기분 좋았다.

계속 목구멍이 침으로 가득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이 답답함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이 어느 봄날의 꿈으로 잊혀지지 않도록.

두 사람의 몸으로 가득한 욕조 안에서, 바깥도, 안도, 따뜻한 액체로 채워나갔다.

"…푸하아…. 헥…. 헤읍……. 읏…."

이제 굳이 고개를 붙잡고 있을 필요 없다고 느낀 걸까.

카엔의 뺨을 꽉 붙잡고 있던 루크의 손.

그 끝의 이리저리 엉겨붙은 침이 뺨을 스치고 밑으로 떨어졌다.

이미 머리카락이 몇 가닥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던 얼굴에 불쾌하고도 투명한 자국이 남는다.

루크의 침이면 모를까, 제 침을 얼굴에 묻히고 있자니 아무래도 불쾌했다.

무심코 손등으로 그것을 닦으려던 카엔은.

"……응, 으?"

곧바로 이어진 찌릿찌릿한 자극에 얼굴 대신 다급히 루크의 팔뚝을 붙잡았다.

잠시 키스에 빠져 있느라 물속에서 세상모르고 편안히 데워지고 있던 가슴 끝에, 굵은 루크의 손가락이 닿아왔기 때문이다.

…만약 고작 그뿐이었으면, 이런 예민한 반응을 보이진 않았을 텐데.

"읍, 므긋…!"

마치 전기가 통한 것만 같은 짜릿함.

시간이 지나며 게슴츠레하게 감기고 있던 카엔의 눈이 털실 뭉치를 발견한 새끼 고양이처럼 말똥말똥 커진다.

무언가 이상했다.

분명 조금 전만 해도 루크가 이리저리 가지고 놀던 젖꼭지였건만,

목덜미를 잘근잘근 깨물리고,

오랫동안 키스하다 보니 아까보다 훨씬 더 민감해져 있다고 해야하나.

아무튼간 확실한 것은,

지금 만졌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

─툭

"……푸하아, 루크, 읍…."

─툭

"우읍…!? 읏……!"

─툭

"……."

─꽈악…!

"……?!!? ……!"

꼬집고,

비틀고,

튕겨댄 뒤에,

다시 꼬집는다.

예쁜 물방울 모양이 자랑이던 젖가슴이 욕조 물 속에서 음란하게 일그러졌다.

첨단에 돋아난 탱탱한 벚꽃색이 도도한 품위를 잃고 한계까지 짓눌린 까닭이다.

중간중간 쉬는 시간을 주듯 부드럽게 움직이던 조금 전은 도대체 뭐였는지,

이젠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카엔의 몸을 장난감처럼 다루는 루크.

이상하다.

이렇게 꽉 쥐어짠다고 해서 기분 좋아진 적은 없었는데.

혹시 이러다가 키스랑 가슴으로만 가버리는 게 아닐까.

…변태처럼. 부끄럽게.

카엔은 루크의 팔뚝을 쥔 손에 더욱더 힘을 실었다.

잠시만 쉬자는 뜻으로.

하지만 루크는 조금 다르게 받아들인 모양이다.

"흡?! 읍, 읏……!"

꾸욱.

꾸욱.

방금까지의 모습마저 어느 정도 봐주고 있었다는 듯, 젖꼭지를 쥔 그의 양 손이 더욱 바빠졌다.

"푸하, 쟘까… 으읍…. 츕……."

그만.

그마안….

이대로는,

정말.

"으극── ───."

결국 움찔움찔 달라붙던 허벅지가 있는 힘껏 서로의 몸을 기댄다.

펴졌다가 움츠러들며 쥐 날것 같이 움직이던 발가락은 움츠러든 채 펴지질 않았다.

가벼운 절정.

꼴깍, 꼴깍, 루크의 군침을 받아마시는 목구멍 밑에서 심장 소리가 크게 들려오는 것만 같은 감각 속.

카엔은 쉬지 않고 계속 루크의 팔뚝을 긁었다.

검을 다루며 바짝 깎은 손톱으로 잠깐만 멈춰달라고, 쉬게 해달라고 부지런히 긁어댔다.

어쩌면 다쳤을지도 모른다.

손 끝에 스치는 액체가 물이 아니라, 루크의 피부가 까져 나오는 진물일 수도, 심지어는 혈액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루크는 아릴 정도로 발기한 유두에서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래.

마치 강간하듯이.

"……!!? ……?"

고통.

흥분.

쾌락.

고통.

흥분.

그리고, 쾌락.

고통은, 쾌락?

"……읍…. 으브읍…."

호흡이 부족한 까닭일까.

아니면 욕조에 오랫동안 들어가 있었기 때문일까.

어느덧 흐리멍텅하게 변해가는 머릿속.

억지로 루크에게서 입술을 떼어낸 카엔은, 목구멍에 채워진 침을 꼴깍 삼키곤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헤엑…. 헤…. 헤…."

…어…?

루크의 얼굴이 왜 위에 있지….

분명 아까 욕조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루크의 입술이 어깨 즈음에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왜 저렇게 위에서 여길 내려다보고 있는 걸까…?

그제서야 엉덩이가 아니라 등에서 느껴지는 뜨겁고도 딱딱한 물체.

밑으로 주르륵 미끄러진 카엔은 루크의 어깨에 새카만 머리카락을 마구 흩뜨려 놓은 채 바보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총명함이 사라진 채 멍하니 마주쳐오는 연보랏빛 눈동자.

주인을 바라보는 듯 귀엽게 쫑긋거리는 늑대 귀.

서로의 타액으로 끈적끈적하게 젖은 입술.

전혀 숨기지 못하고 붉게 물들인 코끝과 뺨.

비록 카엔 자기 자신은 짐짓 엄한 표정을 짓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루크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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