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물에 젖어 속눈썹을 콕콕 찌르는 새카만 흑발.
그 밑의 맑게 빛나는 연보랏빛 눈동자엔 오직 내 모습만이 가득 담겨있다.
─쪽
나는 멍하니 날 올려다보는 카엔의 입술에 보이지 않는 자국을 남겼다.
흥분한 탓일까.
글쎄.
잘은 모르겠다만, 아마….
저 순수한 눈빛을 볼수록, 저번과 같은 위험하고도 몽롱한 감각이 온몸에 퍼져 나간 까닭이다.
카엔의 본성을 알기 전이라면 실수하지 않기 위해 이쯤에서 억지로 욕실을 빠져나갔을 텐데.
알게 된 지금은 더 이상 거리낄 게 없었으니까.
한 발자국 더 카엔에게 가까이 다가가도, 아무 상관 없다.
카엔의 부드러운 입술을 더럽혀도, 아무 상관 없다.
내뱉는 숨이 희미하게 떨린다.
지금껏 꼬집고 있던 카엔의 탱탱한 젖꼭지를 놓아준 나는, 그녀의 뒤통수를 붙잡고 입술을 꾹 짓눌렀다.
─츄읍
나는 입속에서 조그맣게 튀어나온 카엔의 혀를 내 마음대로 치덕치덕 얽어댔다.
입술 근처가 엉망진창이 되도록,
혀 끝이 얼얼하도록.
카엔의 똘망똘망 귀엽게 치뜬 시선이 게슴츠레하게 변할 때까지 타액을 뒤섞었다.
난 최대한 점잖게 카엔을 대하고 싶은데.
저 '난 아무것도 몰라!' 라고 말하는 듯한 순수한 시선만 보면,
자꾸만 내가 아는 나쁜 것들을 하나하나 모조리 새겨넣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았으니까.
카엔에게 첫 섹스의 쾌감을 알려준 것도 나.
잠을 잘 때나 쓰던 침대 위에서 남자에게 도구처럼 다루어지는 경험을 알려준 것도 나.
카엔이 나쁜 취향에 눈뜨게 만들어 준 것도 나.
아무것도 모르던 여자아이의 여러 가지를 더럽혔다는 정복감 때문에.
최대한 의식하지 않으려 했건만, 자지가 터질 것 같았으니까.
카엔의 몸을 짓누르는 힘이 점점 강해진다.
키스하며 열이 올랐는지 얼굴을 붉게 물들인 카엔.
그녀의 자꾸만 밑으로 내려가는 뒷목을 받치며, 쉬지 않고 입을 맞췄다.
─츕, 츄
귀가 아니라 뇌에 직접 소리가 전해지는 느낌.
이젠 아예 나를 향해 몸을 돌린 카엔을 욕조 반대편으로 밀치며 숨결을 나눈다.
물 속을 더듬더듬 기어서 앞으로.
계속 앞으로.
지금껏 욕조 구석에 찰싹 달라붙어 있던 등 뒤로 미지근한 물결이 스친다.
찰랑찰랑 움직이던 물이 여러 번 욕조 밖으로 밀려난다.
움직임이 거친 탓에 몇 번인가 카엔의 몸이 넘어질 뻔 하기도 했지만,
내가 뒷덜미를 받치고 있으니 물에 빠지는 일은 없었다.
계속 뒤로 미끄러지던 카엔의 몸이 어느 순간 우뚝 제자리에 굳는다.
이유야 뻔했다.
조금 큰 욕조긴 했지만 그래 봤자 카엔만한 여자아이 3명 정도면 꽉 찰 욕조였으니까.
욕조의 끄트머리.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어지자 내 가슴팍에 다소곳이 손을 가져다 댄 카엔.
허술하게 달라붙은 침투성이 입술에서 끈적한 침소리가 몇 번이고 새어나온다.
"헤읍…. 응……."
내 이마를 간질이는 카엔의 앞머리가 거슬린다.
호흡이 가빠진 탓에 내 뺨을 훅, 훅, 스치는 거친 콧김이 거슬린다.
귀두 끝에 꾹 닿아오는 카엔의 아랫배는, 말랑말랑해서 기분 좋다.
그 와중에 아직까지 내 몸을 은근슬쩍 음란하게 긁어내리는 꼬리 때문에, 머릿속에서 무언가 끊어질 것 같다.
난 최대한 맨정신으로 카엔을 상대하고 싶은데.
카엔이 협조적으로 나오기 전까진,
유즈의 수상한 약을 끊기 전까진,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후우…."
"츄읍…. 응…? 어, 어?"
"…가만히 있어."
"꺅…?!"
나는 아닌척하면서도 자꾸만 내게 달라붙는 입술을 밀어 넣고, 카엔의 몸을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자세는 공주님 안기.
아니, 지금은 공녀님 안기인가.
이어서 후두둑, 몸에 달라붙은 물방울이 욕조로 떨어지는 소리가 욕실 안에 울려 퍼졌다.
몽롱한 시선과 함께 내 타액을 꼴깍꼴깍 받아먹던 카엔의 눈이 다시금 큼지막하게 크기를 키운다.
"가, 갑자기 왜…."
살짝 뭉개진 발음으로 조심스레 물어오는 카엔.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은 나는 카엔과 함께 욕조에서 빠져나왔다.
뚝, 뚝, 물이 흐르는 상태 그대로.
"…….'
어느새 조용해진 카엔은 내 목덜미에 팔을 휘감은 채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
며칠 만에 다시 방문한 침실은 내 기억 속에 남은 모습보다 더 깨끗했다.
마지막으로 본 광경이 여기저기에 벗어 던진 옷가지가 굴러다니고, 침대 시트가 흠뻑 젖어있는 상태였어서 그런 걸까.
저번과 달리 뽀송뽀송한 상태로 놓인 침대 시트.
저번과 달리 한 곳에 가지런히 정리된 베개와 이불.
그랬던 침실이,
"루크, 윽……."
다시 엉망진창으로 어질러지는데에는.
20분이면 충분했다.
─찌걱! 찌걱! 찌걱!
"이제 그마…. 히익…?!"
"뭘? 뭘 그만해?"
"이거, 손가락으로, 아래쪽, 꾹… 으으읏?!"
내게 제압당한 채 열심히 몸부림을 치는 카엔.
그녀의 귀여운 항의가 귓가를 스친다.
그것이 진심이든, 날 자극하기 위한 거짓이든,
고작 그런 것 따위로 멈출 생각은 조금도 없는데 말이다.
"머… 멈춰…. 제발, 그만…."
멈추지 않았다.
되려 나는 안팎을 왕복하던 기계적인 움직임 대신 손가락을 끝까지 집어넣은 채 카엔의 아랫배를 꾹 짓눌러주었다.
어딘가 움푹 파인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다른 부위보다 부드럽고 탄력 있는 곳을 위주로.
"………?! ……?"
카엔이 허리를 튕겨대는 것과 동시에 손가락을 뽑아내자, 침대 위에 길쭉한 잿빛 자국이 또 한 번 생겨났다.
이걸로 5번째 절정이었다.
이미 침대 위엔 비슷한 자국이 4개씩이나 수놓아져 있었으니까.
어느 하나는 침대 끄트머리에 닿을 기세로 멀리,
어느 하나는 카엔의 가랑이 사이에서 오줌이라도 지린 것 마냥 커다랗게.
그런 식의 부끄러운 물 자국이 총 4개.
결국 방금 것으로 20분간 5개의 물 자국을 만든 카엔은, 옆으로 뉘인 내 가슴팍에 코를 박고 당장에라도 끊어질 듯한 숨소리를 내뱉었다.
"히으…. 히으…."
침대를 토닥토닥 두드리던 카엔의 꼬리가 빳빳하게 솟아오른다.
이제 대충 저게 무슨 뜻인지 알겠다.
카엔어(語)로 기분 좋다, 라는 뜻이 분명했다.
뭐…. 아니면 말고.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니까.
"힉…. 히…. 히으…."
"이거, 싫어?"
짖궂게도, 절정에 빠진 카엔을 보며 그런 질문을 꺼내보았다.
반응만 봐선 계속해달라는 것이나 다름없다만, 나는 지금 당장 카엔의 고장 난 목소리를 듣고 싶었으니까.
잠시 후 품속에 쏙 들어와 있던 조그마한 머리가 끄덕끄덕 움직였다.
"…이상해, 읏, 이상해질 것… 같아. 뭔가, 머리가 새하얗게…."
"그럼 이상해지기 싫어서 그래? 저번엔 이런 거 못 느껴봤어?"
잠시 뜸을 들이는 카엔.
이윽고 평소보다 훨씬 더 조그마한 목소리가 밑에서 들려왔다.
"그, 처음 강간… 당한 날에도 느꼈지만…."
"……."
"아직까진…. 조금, 무서워서…."
강간해달라는 말을 내뱉고선, 정작 오르가즘을 무섭다고 하는 게 꼭 카엔 답다고 해야 할지….
무심코 눈앞에 놓인 카엔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뻣뻣해져 있던 꼬리가 다시금 살랑살랑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보니 저것도 왠지 기분 좋다, 라는 반응 같은데.
…모르겠다.
"그럼 익숙해지면 되겠네."
"…아?"
"강간당하고 싶다며. 막, 억지로 당해보고 싶다고도 하고. 저번에 나한테 덮쳐졌던 것처럼."
"그, 그랬지마안…."
"여기까지 날 끌고 온 것도 그러고 싶어서 데려온 거 아냐?"
"우으…."
"섹스하고 싶어서. 강간당하고 싶어서."
"……."
"어제처럼 망가지고 싶어서."
"……."
기회를 봐서 살짝 몰아붙이자 제대로 된 반격조차 하지 못하고 백기를 들어버리는 카엔.
어떡하지.
너무 귀여운데.
내 품에 폭, 고개를 묻고 쫑긋쫑긋 귀를 움직이는 카엔을 보니까,
…더 괴롭혀주고 싶다.
여기서 더더욱 부끄러워하면,
도대체 어떤 귀여운 반응을 보일까.
"힉…."
나는 잠깐 멈추고 있던 손가락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깊숙한 곳을 마구 쑤신다기보다는, 침실에 도착한 후의 20분간 유독 카엔의 반응이 좋았던 곳 위주로.
"…그래서, 싫어?"
"응읏…. 가, 갑자기 싫… 냐니…?"
"내가 처음 물어본 건, 이게 마음에 안 드냐는 거였잖아."
클리토리스 살짝 안쪽이라든가.
내 중지 손가락의 두번째 마디까지 들어간 지점이라든가.
건드릴 때마다 자꾸 내 손 위에다가 끈적한 애액을 흩뿌리는 곳 위주로.
카엔의 것보다 조금 더 길고 두껍고 거친 손가락을 꾸욱 꾸욱 움직여댔다.
…이대로 내 손가락에 익숙해지면, 혼자 자위하는 것 따위론 절정 하기 힘들겠지… 라는.
쓰레기 같은 생각도 담아서.
"이상하다, 라는 생각은 별로 안 궁금해. 싫냐, 좋냐, 이게 궁금하지."
"……."
"이제 가버리기 싫어?"
쉴새없이 손을 움직이며 눈 앞에서 쫑긋거리는 카엔의 늑대 귀에다 속삭이듯 목소리를 내뱉는다.
그리고는 카엔의 대답을 기다린다.
싫다는 대답은 염두에 없다.
좋다고 대답하면 곧장 한 번 더 보내줄 작정이었다.
하지만.
"…? 가, 가버린다니…?"
찰나동안의 침묵 끝에 들려온 것은, 마찬가지로 염두에 없던 대답이었다.
"……?"
"…중간부터 말이 꼬였나 봐. 못 알아듣겠어…."
지금껏 몇 번이고 애액을 흩뿌렸던 여인이 가버린다, 라는 말의 뜻을 모를 확률이 얼마나 될까.
혹시 백야처럼 성교육을 받을 때 무언가 중요한 것 몇 가지를 빠뜨리고 배웠나?
생각해보니 절정이란 고상한 단어를 두고 가버린다, 라니 조금은 천박해 보이기도 하다.
일련의 생각이 물 흐르듯 지나고.
카엔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준 나는 조금 전처럼 속삭이듯 내뱉었다.
아니.
조금 전보다, 훨씬 더 조용하게.
"방금까지 네가 침대에다가 해버렸던 거."
"……."
천천히, 지금까지 외워온 카엔의 약점을 하나씩 짓눌러주며.
"그걸 '가버린다' …라고 하는 거야."
"……가버린다…."
"응. 가버린다."
"아읏…."
여태껏 설정할 때마다 내가 어떻게 해줬는지 가르쳐 주듯이.
천천히.
천천히.
음란한 물소리는 조금 전에 비해 작아질 수밖에 없지만.
대신 내 손가락을 머금은 카엔의 보지가 지금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온전하게 느낄 수 있도록.
천천히.
"이제 기억했어?"
"기, 기억했어…."
"그럼 이제 대답해야지."
"……."
욕실에서 카엔의 입속을 건드리던 손가락.
방금 카엔이 가버릴 때까지 그녀의 보지 속을 괴롭히던 손가락.
카엔의 애액이 새하얗게 엉겨붙은 애액투성이 손가락.
그것을 조금 더 빠르게 찰박이며 물었다.
"싫어?"
마침 가볍게 움찔거리는 속살.
다시 한 번 손바닥 위에 미끄러운 액체가 퓻, 퓻, 부끄럽게 쏟아진다.
"…싫냐고. 카엔."
하지만.
이런 것 따위로 대답을 대신하려 하면 곤란하다.
난 네가 도대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서 이러는 거니까.
아카데미에서의 한 달간 튼튼한 장난감 취급을 하며 괴롭힌 사람 앞에서.
이렇게 부끄러운 자세로 보지를 괴롭혀지며.
도대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서 이러는 거니까.
"……."
"……."
당장 들려오는 대답은 없다.
포기할 생각도 없다.
나는 남는 팔로 카엔의 몸을 바짝 끌어안았다.
이미 아플 정도로 발기한 자지가 카엔의 배, 그리고 옆구리에 닿아 뜨거움을 과시했다.
잠잠해졌던 늑대 귀가 다시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대답을 기다리던 입 속에 군침 덩어리가 배어 나온다.
결국, 내 품속에 조그마한 호흡을 뱉고 나서야 실낱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아."
쾌락에 패배했음을 인정하는 목소리.
…같은 건 아니었다.
내가 바라던 것은 그것이었는데.
어쩐지 지금 들려온 목소리는.
"좋아… 해."
어딘가 내 질문을 핑계 삼아 다른 대답을 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