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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서 야설을 주웠다-57화 (5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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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이 하나도 없네요? 깎은 것 같지도 않고."

"읏… 루크, 기다려…! 거긴 아직…."

몸 아래에서부터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차갑고, 무뚝뚝한.

싸늘한. 조용한.

평소 유즈와 대화하며 느끼던 모든 것이 사라진,

다급한 목소리.

얼음이라기엔 무척이나 따스하다.

지금 손에 닿는 끈적한 살결처럼.

"…게다가… 생각보다 안 젖어있네요. 유즈 님."

"그거야 당연히…!"

"이상하네. 왜 이렇지…."

"읏…."

로브는 편하게 움직일 수 있을 뿐, 방어력이 높은 옷은 아니다.

유즈의 로브를 벗겨 내 바닥에 던져 놓았을 무렵부터, 그녀의 몸을 가리고 있는 것은 얇은 속옷이 전부.

이제는 그 속옷마저 완전히 의미를 잃어갔다.

하나는 내 손에 후크가 풀려서.

하나는 내 손에 옆으로 힘껏 젖혀져서.

보이지 않도록 지켜야 할 곳을 전부 내게 드러내 버려서.

내려간 손가락이 그 주위를 부드럽게 쓸어내려서.

"기… 다리라니까…."

가녀린 두 손으로 내 팔뚝을 붙잡는 유즈.

그리 말하면서도 날 힘껏 제지하진 않는다.

아. 그렇고 그런 컨셉으로 가자는 뜻일까?

나야 좋지. 가장 좋아하는 방식이니까.

"…힉…."

주위를 천천히 쓰다듬던 손가락이 조심스레 양옆으로 비부를 열어 보였다.

두 눈은 유즈의 달아오른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지만, 어째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지는 것은 아래쪽의 광경이다.

살짝 젖어있되, 흥건하지는 않은 비부.

그 양 옆에 내 손가락이 닿아 있고.

남자에게 함부로 보여선 안 될 속살이 천천히 드러나는 이 일련의 과정이.

꽤나 선명하게 그려진다.

카엔과의 경험이 있기 때문일까.

뭐, 이유는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읏… 읏…."

삽입하기 전, 어느 정도 몸을 풀어주기 위해 중앙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뿌리까지 거칠게 박히면서도 '더 해주세요.' 하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오는 누군가와 달리 허벅지를 따라 흐를 정도의 애액은 없었지만,

그래도 애액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톡, 톡, 구멍 근처에 가볍게 닿았다 떨어질 때마다 들려오는 미세한 물소리.

사과 잼이라도 두드리는 것마냥 손끝이 미끌미끌하다.

"…애초에 물이 좀 적으신 편인가?"

"바… 보야…. 부드럽게 만지면 모를까, 이빨로 깨물어대고 마구 쥐어짜서 아픈데, 어떻게 좋아, 해…!"

"…그래요? …그래도 아예 안 젖은 건 아닌데요. 봐요."

"……!"

찔리는 게 있는지 허벅지를 꼬옥 조여 내 손을 붙잡는 유즈.

이 또한 하지 말라는 명령이라 보기엔 무척이나 허술하다.

가벼운 저항 따윈 무시하고 손을 움직였다.

살짝 솟아오른 클리토리스를 스치고, 계속 밑으로.

곧 손가락 하나가 한계인 비좁은 구멍이 손끝에 걸린다.

이 주변만 만져보아도 살짝 젖어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하지만 아직 내 손을 꽉 붙잡은 허벅지가 무언가를 원하고 있는 것 같아서.

어떡해, 어떡해, 따위의 말을 작게 중얼거리고 있는 유즈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서.

끄트머리만, 천천히 속살 안으로 집어넣었다.

"너, 넣지 마…."

"고작 손가락일 뿐이잖아요."

나중엔 다른 걸 넣게 되겠지만.

유즈도, 나도.

굳이 뒷말을 입에 담지 않을 뿐.

눈치채고 있다.

"…어. 생각보다 안쪽은 꽤…."

"말하지도 마…!"

"저희 둘밖에 없잖아요. 부끄러워서 그래요?"

"……."

양손으로 가린 입.

그 위에 미처 가리지 못한 뺨이 붉다.

"괜찮아요. 순진무구한 여자든, 야한 걸 좋아하는 여자든, 둘 다 '좋아'하거든요."

"……."

새하얗게 불타오르는 눈이 힐끔, 내 시선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1초도 안 되어 시선을 피한다.

…유즈가 눈을 내리까는 걸 위에서 바라보는 날이 오다니.

물론 밑에서는 굉장히 많이 봤지만.

이렇게 보니 굉장히 어색하다.

"그나저나 되게 좁네요. …자위 같은 거 안 해보셨어요?"

"……해보긴 해봤어. 어릴 때. 뭐가 좋은지 잘 모르겠어서 금방 때려치웠지만…."

귀족에게 자위한 적 없냐고 묻는 평민.

그 질문에 사실대로 대답해주는 귀족.

"그래요? 그땐 방법이 잘못된 거 아닐까요? 지금은 이렇게 손가락만 가볍게 움직여도…."

"…응읏?! 으…?"

찰박, 찰박, 귀족의 질을 가볍게 휘저으며 자위하는 법을 알려주는 평민.

입을 틀어막고, 눈동자와 시선에 물음표를 가득 띄운 채, 내게 몸을 맡기는 귀족.

"…고작 한마디 들어갔을 뿐인데, 손가락에 애액이 잔뜩 들러붙잖아요."

"후으…? 후…."

질에서 손가락을 뽑아내 귀족의 얼굴 앞에 들이미는 평민.

그 손가락에서 천천히 미끄러지는 애액을 바라보며 숨을 삼키는 귀족.

이어지는 모든 광경이 어색하다.

서로 단어 하나씩만 바꾸면 꽤 잘 어울릴 것 같은데 말이다.

"아직도 좋은지 잘 모르시겠나요?"

"……."

묵묵부답.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대답이 된다.

"모르시겠으면, 제가 조금만 더 해볼까요?"

"……."

묵묵부답.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대답이 된다.

"어차피 자지까지 넣으려면 손가락 정도는 익숙해질 필요가 있으니까…."

"……."

움찔거리는 내 자지를 바라보다 황급히 시선을 피했지만,

그것만으로도 대답이 된다.

섹스는 도대체 어떤 기분일까.

지금 머릿속으로 그런 상상을 하고 있다고.

유즈의 상상 속 나는 어떤 느낌일까.

부드럽고 다정한 섹스를 하고 있을까…?

아니면, 유즈에게 덮쳐져 불알이 텅 비어버릴 때까지 착정당하고 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긴장 풀어요."

"……힉…."

언제나 나를 싸늘한 시선으로 내려다보던 유즈를,

침대 위에선 절대 나를 내려다볼 수 없도록 위에서 몇 번이고 교배하듯 찍어누르고,

베개에 얼굴을 깊숙이 묻게 한 채, 실신해서 힘이 빠질 때까지….

퍽, 퍽, 엉덩이가 찰랑거리는 것을 바라보며 자지 밑동까지 집어넣어 자궁을 두드리고 있을까.

"잠깐… 두 개, 두 개는 아직…?!"

천천히 흘러나오던 반발은, 뒤이은 달콤한 교성에 자취를 감췄다.

"…아직?"

"헥…? 헥…? 이게, 뭐…."

대충 알 것 같다.

그녀의 취향이 뭔지.

내게 가슴을 쥐어짜이고, 이빨에 씹힌 뒤엔, 퉤, 침을 뱉어 장난감처럼 다루어지면서도 결국은 보지를 이렇게 만들어놓은 여인이다.

이 쯤되면 뻔하지 않은가.

귀족으로 태어난 탓에 눈치채기 힘든.

어지간한 남자들은 절대 만족시켜줄 수 없는.

남에게 이야기하긴 많이 부끄러운 취향.

"…다리 오므리지 마."

"하… 아읏…. 안 돼…."

"안 돼?"

"히익…?!"

참을 필요는 없다.

애당초 꿈속이나 다름없는 상황에도 참고 있는 내가 이상했다.

평민의 피가 흐르는 탓에, 뭐라도 하나 내 등을 강하게 떠밀지 않으면 잘 안 되나 보다.

예를 들면 날 침실로 끌어들인 카엔의 뒤에서 꼭 껴안아달라는 '부탁' 이라든가.

자꾸만 소설 속 상황과 겹치던 백야의 '우연' 이라든가.

성녀가 자꾸 먹여온 '의문의 차' 라든가.

지금은 어느 정도 오해가 해소된 유즈의 '약물' 이라든가.

아. 그러고 보니 유즈가 건네준 약을 먹고 이렇게 되지 않았었나…?

…모르겠다.

그냥, 기분 좋아지고 싶다.

이성적인 생각은 다 때려치우고.

어떻게든.

기분 좋아지고 싶다.

"……?!?? 응, 으으…?"

유즈의 질 안에 들어간 손가락이 질벽을 벅벅 긁기 시작했다.

고작 한 마디만 들어갔던 조금 전 대신, 이번엔 뿌리까지. 전부 넣어서.

손톱을 세워 상처가 나도록 긁는 것은 아니다.

애당초 검을 휘둘러야 하기에 손톱도 짧을뿐더러, 그런 짓을 했다간 오히려 내 쪽이 곤란해지니까.

당장 써야 하는 구멍에 상처를 입힐 순 없었다.

최대한 끈적하게.

최대한 느슨하게.

최대한 먹음직스럽게 풀어놓아야,

조금 뒤 유즈가 제 취향을 눈치챘을 때, 원하는 대로 잔뜩 박아댈 수 있다.

"으극…. 으…. 그… 마안…."

"그만 하고 싶어?"

"그런 것 보다… 머리가, 머리가… 멍해서…?!?"

뷰걱, 뷰걱, 거칠게 질벽을 긁고 있던 손가락을 힘껏 빼어내자, 곧장 허리를 벌벌 떨기 시작하는 유즈.

고작 손가락 하나로 간을 보듯 움직일 땐 다소곳이 입을 가리고 있던 손이, 지금은 어딜 가려야 할지 몰라 아무렇게나 얼굴 위에 올라가 있다.

손 아래로 보이는 입매는 원형.

웃음기는 조금도 없다.

대신 가쁘게 내뿜어지는 축축한 한숨 밑으로, 아까 보았던 귀여운 혀끝이 빼꼼 아랫입술에 걸쳐져 있었다.

떨어뜨리는데까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유즈. 네가 원하면 언제든지 이렇게 멈춰줄게."

"…헤엑……. 헤에…."

"여기서 그만할까?"

"하아… 후…."

"아니면…."

"…뭐, 뭐하는……."

움찔, 조심스레 벌려지고 있던 허벅지를 움츠리는 유즈.

그녀의 몸을 들어, 의자보다 조금 더 높은 곳으로 향했다.

일곱 걸음. 더 이상은 필요하지 않았다.

빈 플라스크와 이런저런 종이가 흐트러진 책상 위. 대충 팔뚝으로 그것들을 걷어내며 유즈를 눕혔다.

바닥에 떨어지는 종이가 좌우로 나풀나풀 휘날린다.

플라스크는 그런 거 없이 쨍그랑, 소리를 내며 쓸모를 잃는다.

신발 주변에 위험한 유리 파편이 가득하다.

남자의 밑.

책상 위에 드러누워 비부를 드러낸 유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만하라는 거절도.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이냐는 타박도.

긍정의 단어는 없되.

부정의 단어도 없다.

"유즈."

"……."

"대답해."

"…그러고 보니, 너 말이 좀…."

"잔말 말고, 대답하라고."

"……."

반말… 멍하니 중얼거리다가 꾹 숨을 삼킨다.

존댓말…? 자그맣게 혼잣말하더니 꿀꺽, 침을 삼킨다.

"여기서… 그만할까?"

"……."

조금 더 가깝게.

유즈를 잡아먹을 듯이 몰아붙인 채로.

자연스레 서로의 숨결이 닿을 거리에서.

유즈의 가녀린 몸 전체를 내 단단한 그림자로 덮고서.

조용히, 물어보았다.

쿠션도, 매트리스도 없다 보니 조금 불편할지도 모른다.

이대로 과격한 섹스를 하게 되면 분명 다치고 말 것이다.

그런데 뭐….

이런 거 좋아할 거잖아?

유즈의 젖가슴 위에 남은 자그마한 이빨 자국.

부드러운 곡선 사이에 살짝 남은 붉은 자국.

이런 상황까지 왔는데도 날 태워버리지 않고 조용히 내 몸을 힐끔거리는 것까지.

지금껏 꼭꼭 숨기고 있던 취향이 꽤 거칠다.

이렇게 보니, 야설 노트 속에 쓰여있던 여주인공과 꽤 닮은 것 같기도 하다.

다행이다.

카엔이라는 사례가 없었더라면 또 보기 좋게 착각했을 텐데.

책상 위에 누워 얼굴을 가리고 있는 유즈는 내게 강간당하는 야설을 쓴 작가가 아니라,

그냥 신분따위 신경쓰지 않고 자신을 험하게 다루어줄 남자가 필요했을 뿐이니까.

"……."

…둘이 뭐가 다른 거지?

작은 의문이 떠올랐다가 성욕에 밀려 자취를 감췄다.

"손 치우고, 봐."

여전히 말은 잘 듣는다.

얼굴을 가리고 있던 두 조그마한 손이 천천히 밑으로 내려간다.

하얗게 타오르는 눈동자도, 천천히 밑으로 내려간다.

그 광경을 시선에 담고 있던 나는 침에 잔뜩 절여졌던 그것을 유즈의 몸 위에 올려놓았다.

침 투성이의 젖가슴.

식은땀이 잔뜩 배어나왔을 뿐, 비교적 멀쩡한 상태의 허리.

움푹 들어간 앙증맞은 배꼽.

거기서부터는 쭉.

새하얀 나체와 대비되는.

짙은 색의 자지뿐이다.

"아까 들어갔던 손가락은… 이 정도."

책상을 짚고 있던 손 하나를 옮겨 유즈의 가슴 사이에 집어넣었다.

무게 때문에 양 옆으로 살짝 벌어져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밑가슴을 꾹 짓누르는 약지.

그 옆으로 곧게 뻗은 중지가, 유즈의 젖가슴 절반 즈음을 겨우 넘어서고 있다는 것.

방금 전 의자에 눕혀 자지 뿌리까지 퍽, 퍽, 박아대고 있을 땐 아슬아슬하게 입술까지 닿았다.

손가락은 아무리 깊게 넣으려 해봤자 중간을 넘는 것이 한계다.

깜빡, 깜빡, 멍하니 제 가슴을 내려다보는 유즈.

유즈 자신의 몸이니까.

쉽게 계산할 수 있을 것이다.

저 자지가 들어오면 어디까지 꿰뚫릴지.

몇 번이고 짓이겨지는 자궁이 어떻게 되어버릴지.

이런 남자와 또 이렇게 뒹굴 수 있는 날이 찾아오기나 할런지.

"깨물고, 쥐어짜는 거, 아까까진 싫다고 했지만…."

"……."

"아직도 싫어?"

가슴 사이를 간질이던 손가락으로, 아직까지 탱탱한 젖꼭지를 꾸욱 쥐어보았다.

기분 좋아요.

당장 박아주세요.

그딴 헤프고 천박한 말은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유즈의 시선 끝엔 아랫배를 지그시 짓누르고 있는 내 자지가 놓여 있었다.

훌륭한 대답이었다.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고 애원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이제, 당장….

"…?"

허리춤에서 작은 저항감이 느껴졌다.

밑을 살펴보니 유즈의 허벅지가 나를 붙잡고 있었다.

"유즈. 귀찮게 하지 말고 다리 풀어."

"……저기…!"

몸 아래에서부터 조용한 외침이 들려왔다.

차갑고, 무뚝뚝한.

싸늘한. 조용한.

평소 유즈와 대화하며 느끼던 것 중.

오직 조용함만 남은 목소리.

평소의 여왕같은 목소리라기보다는, 어쩐지 풋풋한 연인 같은 목소리여서.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대답은… 해야 할 것 같아서…."

"무슨 대답?"

"아직도 싫어하냐고,물어봤었잖아. 깨물… 고 쥐어 짜는 거…."

하아, 천박한 말을 담았던 입술 사이로 향긋한 한숨이 새어나온다.

"생각을… 좀 해봤는데…."

"……."

"아픈 것들 모두, 아직 마음에 안 드는건 분명하지만…."

얼굴을 숨기듯 고개를 돌린 채 허벅지에서 천천히 힘을 빼는 유즈.

"……네가 좋아하면… 해도 상관 없어. 아니."

군청색의 머리카락.

그 사이로 삐죽 튀어나온 그녀의 귀는.

"나도, 좋아해볼게…."

붉게 물든 채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친구, 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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