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화 〉NO.1 이은혜를 잊지 않아 (1/218)



〈 1화 〉NO.1 이은혜를 잊지 않아

인생이 게임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 예를 들면 눈앞에 있는 야겜처럼 속 편한 게임이라면.


‘좋겠다.’

정우는 마우스를 딸칵 거리며 다음 화면으로 넘어갔다. 그가 플레이 하고 있는 게임은 흔히 누키게라고 불리는 자위용 야겜.

야한 씬과 수많은 히로인들을 쉽게 쉽게 공략하기 위해, 대충 발로 짠듯한 설정과 구매자를 꼴리게 만들기 위한 그림체들이 그윽한 게임.

정우가  게임을 하고 있는 이유는 물론, 돈 때문이었다.


‘이 일을 하고 난 이후론 야겜으로 딸도 못 친다니까.’

그의 직업은 큐레이터였다. 정확히는 게임 큐레이터. 그 와중에서도 야겜에 특화된 큐레이터.

사람들은 그를 야겜 감평사라고 부르곤 했다.

‘그냥 딸딸이에 특화된 게임이고…… 특별한  없나?’

그렇게 스토리를 대부분 스킵하고 엔딩까지  정우는 경악할만한 엔딩에 깜짝 놀랐다.

[그렇게 그녀는 광신도가 되어 대부분의 돈을 바쳤고, 교주가 여러 가지 혐의로 무기징역을 당했을 때. 우울감에 미쳐 주인공을 죽이고 자살했다.]
[NO.1 BAD END]

"갑자기 뭔…….“


스토리를 대충 휙휙 넘기긴 했지만, 이런 떡밥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아무리 스토리 짜는  귀찮고 힘들어도 이딴 엔딩을 내는 법이 어디 있나?

그러나 정우는 화를 내기 전에 엔딩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NO.1 배드엔딩. 다르게 말하자면 다른 엔딩도 있다는 뜻.

그는 곧바로 다른 캐릭터들과 관계를 맺으며 스토리를 이어 나갔다. 그렇게 두 번째 히로인의 엔딩을 보았을 때. 정우는 확신했다.

[그녀는 타고난 질병으로 인해 사망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녀를 잊지 못한 주인공은 평생 쓸쓸히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NO.2 BAD END]


“역시!”


이 게임은 야겜의 탈을  비주얼 노벨이다. 대작이다. 대작의 기준이 뭐냐고 묻는다면 정우는 일단 히로인이 죽으면 대작이라고 말하는 타입이었다.


그런 그에게 있어 사이좋게 떡 치고 잘 지내던 히로인들이 엔딩에 와서야 대거 죽어 나가는 건, 비극적인 대작이었다.

다른 캐릭터들의 엔딩도 수집한 뒤, 정우는 여전히 한 개의 엔딩CG가 열리지 않았다는  확인했다.


그리고 하렘루트가 남은  가지 CG, 진엔딩으로 가는 길이라는 걸 깨달았다.


‘치트 없냐…….’


이 게임은 딸딸이에 특화된 게임이면서도, 게임성 또한 출중한 게임. 한 여자와 사귀면 다른 여자의 호감도가 쉽게 올라가지 않는 등신같은 현실성 시스템을 채택했다.


그렇다고 히로인과 사귀지 않으면 호감도를 일정 수치 이상 올리는 게 불가능에 가까우니, 진퇴양난이다.

결국 히로인과 사귀지는 않으면서 호감도를 올리기 위해 게임 내에 준비된 아이템들을 날짜 단위로 맞춰 사용해야 하는 극한의 노가다가 지속 되었다.

그럼에도 결국, 하렘 엔딩을 보는 데 실패했다.

[양다리를 걸치다 못해, 문어 다리를 펼치던 당신은 결국 여자들의 질투심에 찔려 사망했습니다.]
[NO.103 BAD END]

‘미친.’


100개가 넘는 엔딩을 주파하고, 결국 이 게임 자체에 질려버린 정우는 게임 커뮤니티에  게임에 대한 악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보지 보여줌. 꼭지 보여줌. 스토리는 개떡같이  만들었음. 딸딸이용이나 게임을 극한까지 맛보는 하드코어 변태들에게 추천함]
─게임을 선물 받은 사람입니다.

의뢰를 받은 게임답게 리뷰를 달자마자 제작자의 메세지가 날아왔다.

[대체 뭐가 문제인가요?]


[이 너무 암울해요.]

[해피엔딩도 있습니다.]


[하렘엔딩이죠? 근데 그거 달성하는  불가능하던데요.]

정우는 성실하게 답했다. 이것도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작자의 대답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렇게 될 확률이 높지 않을까요?]

[게임에서 현실을 왜 찾으세요??]

제작자는 현실성 없는 설정을 지닌 게임에서, 현실성을 추구하니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하렘 엔딩이 그렇게나 불가능 한 건 이해할 수 없었다.


[제작자님이 연애 경험이 조금 적으신 거 같은데, 제가 주인공이었으면 여자 백 명 꼬시는 건 일도 아니거든요?]

실수했다. 너무 어처구니없는 대답을 나불거리기에 공격적으로 답하고 말았다. 정우는 곧장 사과문을 작성했지만, 제작자의 대답은 그보다 빨랐다.


[그럼 직접 해보시든가요.]

 순간 눈앞이 깜깜해지고, 정우는 정신을 잃었다.

* * *

[인스톨─ 로딩, 다운로드 완료.]
[새로운 세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게임 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이게 무슨…….’

꿈이라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현실성이 없어도 너무 없는 일이었으니까, 갑자기 눈앞에 정체불명의 창이 떠오르고 몸은 갑자기 어려졌다.

그러나 현실은 게임처럼 멍하니 서 있는 자신을 기다려 줄 시간이 없다는 듯 빠르게 지나갔다.


[튜토리얼을 스킵 하시겠습니까? 스킵  보상을 수령   없습니다.]

‘튜토리얼?’


정우는 고개를 저어 튜토리얼을 진행하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 상황을 설명할 유일한 단서가 튜토리얼이니 그를 따르기로 했다.


[자, 저기 가슴 큰 여자를 따라가 봅시다.]

‘따라가라고?’

시스템의 말에 정우는 주변을 훑어 가슴 큰 여자를 찾았다. 딱히 고생할 필요도 없이, 그녀의 머리 위에 커다란 화살표가 띄어져 있었으므로, 정우는 천천히 걸어 그녀에게 다가갔다.


정우가 다가오자, 얼굴을 알고 있던 사이인 듯, 그녀가 먼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아, 정우야. 너도 같이 사진 찍을래?”

“어? 그래.”


정우는 저도 모르게 그녀에게 딱 달라붙어 사진을 찍었다. 그녀의 부모가 다가와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준 뒤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그때, 시스템이 말했다.

[선택하십시오.]


1.  가슴, 한번 만져보고 싶었어. 만져 봐도 돼?
2. 애기 맘마통 한번 빨아보고 싶다. 빨아도 돼?
3.  정액 주유소에 내 정자 주유기를 삽입해도 될까?


완전 개떡 같은 선택지, 뭘 고르던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질 선택지였다. 게임 속 선택지와 다르다는 사실에 당황한 정우가 멈춰 서자, 그녀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 시스템이 카운트를 시작했다.


[10, 9, 8…….]

재빨리 선택하지 않으면 아무 선택지나 랜덤으로 선택된다는 협박과 함께.

1번이 선택되면 그나마 낫다, 그러나 2번이나 3번이 선택된다면? 그대로 감옥에 갈지도 몰랐다. 결국 정우는 스스로의 의지로 1번을 택했다.


“그,  가슴. 한번 만져보고 싶었어…… 만져 봐도 돼?”


그 말과 동시에 정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야겜 속에서야 흔쾌히 가슴을 내밀었다지만, 현실에선 여자가 역정을 내며 뺨을 때려도 이상하지 않은 질문이었으니까.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대답은 오지 않았다. 이상함을 느낀 정우가 살짝 눈을 뜨자, 눈앞의 여자애가 가슴을 내밀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해? 안 만지고.”

“지, 진짜 만져도 돼?”

여자애의 당당한 모습에, 정우가 되물었다. 그러자 여자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옆에 있던 부모님도 훈훈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건 여자의 가슴을 탐하는 변태를 노려보는 눈빛이 아니었다.


‘이게 무슨…….’


그러나 이런 기회를 놓칠 호구는 아니었다. 이게 게임이건 현실이건, 여자가 먼저 가슴을 만져보라고 내밀어주는데 만지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


심지어 그녀는 나이에 비해 발육이 잘 된 거유였다.


뭉클!

오랜만에 주무르는 가슴을 떡 주무르듯 주무르니, 저도 모르게 하물에 열이 불끈 올라온다. 정우가 아무 말 없이 가슴을 계속 주무르자, 여자애가 먼저 입을 연다.

“그, 그만. 그만 만져.”


“어? 미안.”

여자애의 말에 손을 뗀 정우는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그래, 이제 고소라도 할 생각인가? 삶에 미련은 없다. 이런 가슴을 만질 수 있다면 감옥에 가는 것 정도야…….

“그럼 잘 가. 같은 고등학교 갔으면 좋았을 텐데.”


“응?”


여자애는 그렇게 말하며 부모님과 함께 다른 친구들을 만나러 떠나 버렸다. 가슴을 만진 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정우가 훌륭하게 미션을 성공해내자, 시스템이 떠오르며 그를 칭찬했다.

[축하드립니다. 튜토리얼을 통과하셨습니다.]
[스킵하시겠습니까?]


스킵이라, 튜토리얼이 끝났는데도 강제로 스킵하지 않는다. 그렇다는  여전히 무언가가 남아 있다는 뜻. 게임적인 감각으로 생각해보면 그러했다.


‘그나저나 보상은?’

[여자애의 가슴을 만진 게 충분한 보상 아닐까요?]


‘이런 미친.’

낚였다. 하긴 어지간한 게임에서도 튜토리얼 보상은 없었지. 그러나 정우가 생각해도 이건 보상이긴 했다.  정도의 거유, 현실에선 단 한 번도 만져본  없는 물건이니까.

남자란 생물은, 고작 그 정도에 만족하는 생물이었다.

‘그래, 가슴 만져봤으면 됐지.’

그렇게 생각한 정우는 자신의 부모님을 찾았다. 게임 속에선 얼굴도 그려지지 않은 코난 범인 형상의 부모님이 찾아온다.

그렇게 생각하고 기다렸으나, 10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나고. 결국 1시간이 지나 대부분의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갔을 무렵까지 부모님은 찾아오지 않았다.

결국 정우는 스스로 걸어 집으로 향했다.

* *


‘……여기가  집이라고?’


정우는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집을 찾아왔다.


학교 근처, 가장 비싼 아파트. 방이 몇 개고, 집이 몇 평이고. 그런 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정우는 평생 발 한번 들여본 적 없는 집이었으니까.


‘넓다.’


그리고 어둡다. 집안은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아 굉장히 허했다. 사람이 살기는 하는 걸까 싶었다.

“엄마, 아빠?”


목 놓아 크게 두 사람을 불러 보았지만, 안에선 아무런 대답도 없다. 집에 있는 모든 방문을 열어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부엌 식탁 위에 쪽지가 올려져 있다는 걸 확인했다.


[졸업식 못 가서 미안, 이걸로 맛있는 거라도 사 먹어.]

쪽지 아래에는 검은색 카드 한 장이 끼워져 있었다. 블랙 카드라고 부르는 유명한  카드가.

카드를 들고  근처 치킨집 전단지를 찾은 정우는 그대로 전화기를 찾았다. 다행히 휴대폰이 있었다.


스마트폰이 아니라 폴더폰이라는 게 문제였지만, 정우는 전화로 치킨을 시켜 먹으며  세상에 대해 알아보았다.


‘미친…….’

 결과, 이 세상은 남녀의 정조, 그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뒤바뀐 남녀역전 세계라는 걸 알  있었다. 그건 게임과 똑같았지만 허술하기 짝이 없던 게임 속 배경에 어느 정도 살이 붙었다.

남자가 여자의 가슴을 만져도 화내지 않는 세계.
남녀관계에서부터 인생까지, 모든 걸  빨 수 있는 세계.


그게 바로 이 게임 속 세상이었다.


[당신은 이 세계의 비밀을 알아내었습니다.]
[훌륭합니다!]
[10 SP를 획득했습니다.]

“SP?"

분명 호감도를 올릴 때마다 주어지던 포인트. 시스템의 말을 들은 정우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눈앞에 네모난 창이 떠올랐다. 그 위에는 포인트 상점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상점을 이런 식으로 구현했네.’

포인트 상점에는 여러 가지 기능들이 존재했다. 정해진 시간에 깨워주는 알람부터, 미래 기술의 스마트폰, 컴퓨터까지.

그렇게 상점을 내려보던 정우는 맨 아래. 한 가지 항목을 보고 멈칫했다.

[모든 것을 끝내기(원래 세계로 돌아가기)─10000SP]


놀랍게도, 이 장난스러운 시스템은 자신의 동기부여를 위해 원래 세계로 돌아갈 방법까지 준비해놓고 있었다.

그러나 정우는 아직  세계를 빠져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정우는 이 세계에 대해 공부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고등학교 입학식이 되었다.


* * *


[아아, 우리 성실고등학교에 온 여러분을 모두 환영하며……]


고등학교 입학식. 교단 앞에서 반짝이는 머리가 특징적인 교장이 훈화를 읊고 있었다.


아이들은 모두 지루한 듯 하품을 하거나, 몰래몰래 옆 사람과 떠들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정우는 품속에서 폴더폰을 꺼내 어색한 손놀림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폴더폰이라는 게 이렇게 불편했을 줄이야.

‘벌써 한 달이 지났네.’

 달.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자신은 여전히 이곳에 있다. 정우는 주변을 둘러보며 같은 입학생들의 면면을 훑어보았다.


그러다 문득 어느 소녀와 눈을 마주쳤다.

휙!

그녀는 눈이 마주치자 금방 머리를 돌리며 시선을 피했다. 덕분에 그 특징적인 양갈래 머리가 이리저리 흔들리며 정우의 시선을 현혹했다.


‘히로인이다.’

 특이한 모양의 양갈래가 그의 머릿속에 각인되었고, 곧이어 게임 속 히로인과 매치 되었다.

[이상으로 입학식을 마치며, 학우 여러분들은 각자 선생님을 따라 교실로 돌아가 주시기 바랍니다. 선생님들, 인솔해주세요.]


 말에 천천히 학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선생님의 인솔을 따랐다. 담임 선생님의 인솔을 따라 정우는 반으로 돌아가 자신의 자리를 찾아 앉았다. 자리는 아침에 와서 앉은 선착순이었다.

자리에 앉은 정우는 자신의 짝궁이 여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도 히로인 중  명.


아까 전 눈을 마주쳤던 양갈래 머리의 히로인이었다.


“안녕?”


그녀가 히로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정우가 먼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나 그녀는 정우를 힐끔 바라보고 고개를 돌렸다.


‘뭐야, 창피한가?’


하지만 정우는 포기하지 않고 고개를 돌린 소녀에게 다시금 말했다.


“나는 정우라고해. 하정우.”

“……이은혜.”


“은혜? 예쁜 이름이네.”


정우는 자신이 알고 있는 최대한의 지식을 발휘해 그녀를 칭찬했다. 일단 사람은 칭찬에 약하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은혜의 얼굴이 뻣뻣하게 굳었다.


“……나 몰라?”


“알지. 이은혜잖아.”

“그게 아니라…… 응. 알았어.”


은혜는 우물쭈물하며 말을 끊었다. 정우는 그제야 이게 호감도를 올릴 기회라는 걸 깨달았다.

‘애가 분명 초등학생 때까지만 친했던 소꿉친구 설정이던가.’


고등학생이 되어 3년 만에 처음 만난 소꿉친구가 자신을 알아보았을 때, 얼마나  호감도가 올라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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