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화 〉NO.1 이은혜를 잊지 않아 (5/218)



〈 5화 〉NO.1 이은혜를 잊지 않아

먹여주기 이벤트 이후, 정우는 얻은 포인트를 확인했다.

[연인 사이의 달콤한 애정 행각을 나누셨습니다.]
[10 SP를 획득합니다.]
[1 SP를 획득합니다.]


‘1 포인트는  주는 거야?’

호감도가 올라서 주는걸까, 게임에선 호감도가 오르는 선택지와 오르지 않는 선택지, 호감도가 내려가는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를  있었으니 어떤 선택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지만.


현실 보정이 섞인 지금은 자신의 선택이 옳은 선택이었는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모든 건 결과가 말해줄 뿐이다.

‘일단 11포인트라도 얻었으니, 됐다.’

이제 포인트는 15포인트. 도시락을 만들기 위해 쓴 포인트가 7포인트니 4포인트 이득이었다.


‘일만 포인트는 언제 모으냐.’


물론 지금 이건 아주 사소한 일이라 적은 포인트를 주는 거지, 첫 경험이나 결혼, 임신을 하게 되면 큰 포인트를 얻는다는  정우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큰 포인트를 얻는 행위는 다른 히로인들의 호감도를 대폭 깎아내린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고.


‘조심해야지.’


정우의 걱정 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이 교실에서 도시락을 먹는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나갔다.


“정우야, 둘이 사귀어?”

“아니?”

“근데 도시락은  같이 먹어?”


“소꿉친구라서.”


그러나 괜히 짝궁인 은혜부터 공략을 시작한 게 아니다. 소꿉친구라는 특성은 둘의 사이가 아무리 좋더라도 다른 히로인들의 호감도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 훌륭한 특성이었으니까.

‘가장 쉬운 캐릭터기도 하고.’


게임 속에서 은혜는 그 어떤 짓을 하더라도 호감도가 쉽게 떨어지지 않는 캐릭터 중 하나였다. 심지어 바람을 피우더라도 사랑을 속삭여주면 용서해주는 쉬운 히로인, 쉬로인이었다.

“진짜? 둘이 소꿉친구야?”

“응. 초등학생 때부터.”


 아이들도 초등학생 때부터 친한 사이라고 말하니, 두 사람의 사이가 얼마나 가까워도 연인이라고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빨리 사귀라고 응원해주었다. 물론 아직 사귈 생각이 없는 정우는 그저 허허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가 도시락을 싸 온다는 소문이 퍼지자  아이들   사람이 흥미를 보였다.


“야, 너 도시락 만들어온다며?”


자신을 마리라고 소개했던 금발 양아치 소녀. 흉악스러운 눈매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녀를 보며 살짝 겁먹을  했지만 그녀의 성격을 알고 있는 정우는 최대한 담담하게 대화했다.


“어, 왜?”


“나도 만들어줘.”

그녀의 용건은 간단했다. 자신도 도시락을 만들어달라고. 그리 친하지도 않은 반 친구에게 부탁할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용모를 보고도 거절할 용기를 지닌 사람은 얼마 없었다.

 얼마 되지 않는 사람이 바로 정우였다.


“안 돼.”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정우가 거절하자 그녀는 곧바로 수긍하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게임  설정을 믿기는 했지만, 혹여나 하는 마음이 없진 않았기에, 정우도 그제야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 정우야. ……괜찮겠어?”

“괜찮아.”


마리가 말을  땐 그의 뒤에서 고개를 숙이고 덜덜 떨고 있던 은혜가 그제야 정우의 안부를 물었다.


그녀가 그렇게 무서워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마리의 성격을 알고 있는 자신도 저도 모르게 겁을 집어먹었으니까.

하지만 정우는 게임 속 설정을 믿고 도박을 시도했고, 도박은 성공했다.


마리. 풀네임은 김마리. 사나운 외모와 성격, 거기에 더불어 한국인스럽지 않은 이름이 계기가 되어 초등학생 때부터 놀림 받아 왔다는 배경을 지닌 소녀.


이유 없는 폭력에 대항하다 보니, 폭력의 화신이 되어버린 소녀.

근본은 착한 아이다. 마리 루트를 타보면 알 수 있다. 그녀가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선량한 사람이라는 걸.


실제로 반 아이들은 모두 그녀를 멀리하지만, 의외로 그녀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가녀린 소녀였다. 잘 보면 먼저 나서서 애들한테 돈을 뜯는 것도 아니었고.

‘두 번째는 쟤로 할까?’

물론 지금 작업 중인 은혜를 먼저 자신에게 빠트려야겠지만.

정우는 멀지 않은 미래를 생각하며 그녀에게 손을 뻗을 날만을 기다렸다.


* *

“으으…… 왜 이렇게 피곤하냐.”

 세계로 떨어지고 나서 처음 겪는 주말. 정우는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물을 마시기 위해 부엌으로 향했다.


그리고 부엌에 준비된 2단 도시락을 보고 나서야 자신이 주말에도 설정을 꺼놓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러니까 피곤하지.’


주말 아침에도 몸은 알아서 일어나 도시락을 준비했으니, 머리는 잠들고 있어도 몸은 움직인다. 몸에 부담을 주는 행위. 정우는 주말에는 설정을 해제하고 공란으로 두었다.

‘운동을 해야겠네.’


체력은 국력이라고, 실제로 운동은 신체 능력 전반과 정력에 큰 영향을 끼쳤다. 사실 체력이랑 정력에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게임 속에서도 아침 운동을 꾸준히 하면 섹스 이벤트에서  번에 두 번 사정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귀찮아.’

귀찮음을 이기지 못한 정우는 그냥 스킬로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포인트 상점을 뒤적거린 정우는 결국 자신이 원하던 스킬을 찾아내었다.


[강함의 비결]
[매일 달리기 10KM! 팔굽혀펴기 100회! 윗몸 일으키기 100회! 스쿼트 100회!]
[5 포인트]


매일 아침 행동을 1턴 소모해야 할 수 있는 운동을, 했다고 쳐주는 스킬. 그러니까 현실 보정을 먹이자면 운동을 안 했는데 한 효과를 주는 스킬이었다.

자기 의지로는 헬스장 3일도 못 가는 의지박약 현대인들을 위한 스킬이기도 했다.

마침 며칠 전에 도시락 먹여주기 이벤트로 번 11포인트가 있었기에 정우는 고민 없이 스킬을 구매했다.

그리고 동시에 전신에 격통이 찾아왔다.

“윽! 뭐야, 갑자기 무슨…….”

전신이 저려오는 걸 확인한 정우는 그게 근육통이라는 사실을 금세 깨달았다.


게임 속에서는 플레이어 캐릭터가 근육통을 느낀다는 대사 같은 건 넣지 않았지만, 현실 보정이 된 이 세상에선 그놈의 현실성이 정우의 발목을 잡았다.

“아, 썅…… 오늘은 좀 놀려고 했는데…… 그냥 자야겠네.”

그러나 정우는 본능적으로 이 격통이 일주일은 자신을 괴롭힐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침대에 누워 진통제를 찾다가 이 정도 고통도 못 참는 남자가 어딨냐는 생각에 고통을 참으며 잠에 들었다.

─전화 와쏘용!

그때, 정우의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 들어오고 나서 처음으로 울리는 휴대전화에 정우는 전화를 받았다.


[아, 정우야! 지금  해?]


전화를  상대는 은혜였다. 그러고 보니 전화번호를 교환했던 게 떠올랐다. 그녀에게는 휴대폰이 없었지만 집에는 유선 전화기가 있으니까.

아마 그쪽으로 전화했으리라. 상대를 확인한 정우는 힘없이 대답했다.


“몸이 좀  좋아서 쉬려고.”


[어, 어디 아파? 감기?]


“아니, 그냥 좀…… 피곤하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응. 잘 쉬어!]


뚝─ 삐이이이─

“……응?”


정우는 순간 당황하여 끊어진 전화기를 내려다보았다. 어느 정도 호감도가 쌓였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럼 보통 걱정하면서 약이나 죽이라도 사다 줄까 하는 흐름대로 가는 게 정석 아닌가?

‘이러니까 친구가 없지…….’

내심 그녀를 무시하면서 정우는 다시 잠에 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또다시 전화기가 울렸다.


[저, 정우야! 생각해보니 죽이나 약 같은 걸 사가는 게 좋을  같은데…… 혹시 집이 어디야?]


기다렸던 반응. 하지만 이미 토라졌던 정우는 곧이곧대로 그녀에게 말해줄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렇기에 한 번 튕겨 주었다.


“……괜찮아.”


전화가 끊어지고 10분. 슬슬 그녀가 낙담하고 있을 때쯤 정우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주소를 알려 주었다.


‘씻어야겠네.’


주말이라고 아직 씻지 않았으니, 약간이지만 땀 냄새가 나고 있었다. 물론 이 세계 여자들은 남자의 땀 냄새도 좋아라 하겠지만, 아무래도  냄새보단 바디워시 향기가 더 좋은 법이다.


‘이게 무슨 꼴이람.’


정우는 되도록 빨리 씻고, 양치하고, 집안을 정리한 뒤 실내복을 꺼내 입었다.


집안에 풍기는 큼큼한 냄새는 어쩔 수 없어 페브리즈를 뿌려 잡았다.

* * *

딩동─


“계, 계신가요!”

꿀꺽하고 목울대가 움직일 정도로 큼지막하게 침을 삼킨 은혜는 한 손에 들린 죽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괘, 괜찮겠지?’


재빨리 엘레베이터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머리와 옷매무새를 정리한 그녀는 다시 한번 벨을 눌렀다.

잠시 후, 안쪽에서 가벼운 옷차림의 정우가 문을 열고 나왔다.

화악─!


“읏!”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달달한 향기가 그녀의 코를 찌르고 들어왔다. 그 순간 그녀는 숨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안에 들어온 향기가 조금이라도 빠져나가지 않게. 그러나 평소 운동도 하지 않는 그녀가 참을 수 있는 건 1분 정도가 한계였다.

“들어와.”


“어, 으, 응. 실례하겠습니다.”


“집에 아무도 없어.”

“아, 아무도 없다고?”

설마 정우와 단둘이 있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않았던 은혜는 더욱 떨리는 마음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정우의 집은 넓었고, 동시에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은혜에게서 죽을 받아간 뒤 웃으며 부엌으로 향했다.

“밥 먹었어?”


“응. 먹긴 먹었는데…….”

“더 먹을 수 있지?”


“죽? 괜찮아! 너 먹으라고  온 건데…….”


“많아서 혼자서는 다 못 먹어.”

물론 그녀의 돈으로 사 온  아니었다. 정우가 아프다고 말을 했더니 이럴 때 보답하라며 부모님이 쥐여준 용돈으로  온 물건이었다.

그녀는 주머니를 뒤져 주섬주섬 죽을 사고 남은 돈을 꺼냈다. 4만원. 5만원을 받고 죽을 사고 남은 돈이 그랬다.

“이거. 부모님이 드리래.”


“왜?”


“도시락, 내 몫까지 싸주잖아. 그 돈이라고…….”

“괜찮아. 어차피 2인분 만드는 게 더 쉽기도 하고.”

정우가 돈을 받지 않으려고 하자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양심이 뜨겁게 타들어 갔다. 돈도 안 받아, 그런데 도시락은 매일 싸다 줘.

미안했다. 너무 미안해서 이런 부채감을 계속 가지고 있다간 양심이 터져 버릴지도 모르겠다.


“자, 먹자.”

“……응.”


그러나 정우가 계속해서 거절하는  억지로 쥐여줄 수도 없는 노릇.  돈은 정우를 위해 쓰자고 생각하며 은혜는 자신의 주머니 속으로 돈을 집어넣었다.


식탁에 앉아 정우가 다시금 뎁혀 온 죽을 떠먹으니, 이전에 있었던 일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화끈해진다.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누가 올지도 모르는 교실에서 남자가 주는 음식을 먹고, 떠 먹여주고  건.


“정우야.”

“왜?”

“그, 있잖아.”

은혜는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느꼈다. 자신을 좋아하냐고,   마디 묻는  이리도 힘들단 말인가.

자동차 엔진보다 급격하게 뛰는 심장이 혈액을 전신에 운반하기 위해 더 많은 산소를 원하게 되고. 그건 결국 급격한 호흡으로 이어졌다.

그녀는 말을 꺼내놓고 일 분 정도 심호흡을 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 좋아해?”

 말을 들은 정우는 천천히 표정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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