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화 〉NO.1 이은혜를 잊지 않아 (6/218)



〈 6화 〉NO.1 이은혜를 잊지 않아

“나 좋아해?“

언젠가 들을 줄 알았다. 그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을 뿐이지. 정우는 부들부들 떨리는 그녀의 눈을 마주보며 생각했다.

‘일주일도  됐는데.’


벌써 고백을 받았다. 그래 뭐,  세계에서 여자가 남자에게 고백하는 건 이상한 일도 아니고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다.

고백 하나  하는 여자는 겁쟁이 취급을 받는다.  년쯤 지나면  세상도 초식녀니 뭐니 하면서 좋아하는 쪽이 먼저 고백하는 추세가 되겠지만.


정우가 졸업할 때까지는 그런 일이 없으리라.

‘빠르네.’


이 세계의 여자들은 대부분이 원래 세상의 남자처럼 정조 관념이 허술하고, 연애에 미쳐 있었다.


속된 말로 게임 초반에 아무런 호감도 작업을 하지 않은 완전 초면인 상태에서도 ‘섹스’가 가능했으니, 얼마나 헐렁헐렁한 정조 관념인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렇게 몸의 관계도 쉽게 허락하는 만큼, 마음의 관계라고 할 수 있는 연애도 금방금방 진척되었다.


게임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히로인과 연인 관계가 되는 최단 시간은 게임 속 시간으로 3시간.

그에 비하면 굉장히 느리다고  수 있지만, 하렘 루트를 노리고 있으며, 또 현실 보정을 먹고 있는 지금. 일주일도 상당히 빠른 편이었다.

“넌 어떻게 생각하는데?”

하지만 여기서 받아주지 않는다. 정우는 현실 보정을 먹은  세계에서 연인 관계가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알고 있었다.


‘사귀면 하렘은 절대 못 한다.’

같이 도시락을 먹기만 했을 뿐인데 이미 어느 정도 둘 사이의 풍문이 생겼다. 즉, 연인 관계가 되면 다른 여자에게 손을 뻗는 건 상상도 하지 못 할 일이 된다.

정우는 어부가 되기로 했다. 수많은 여자를 낚는 어부가.

“나- 나는, 네가  좋아한다고 생각해.”

“왜?”

“……바, 밥도 같이 먹어주고, 친구도 되어주고, 도시락도 싸다 주고. 더 말해야 해?”

그것만으로 남들이 보기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으나, 동시에 연인이라 말하기엔 부족한 관계이기도 했다.


실질적으로 연인들 사이에서 하는 행위는 아무것도  했으니까.


‘아, 맞다. 먹여 주기 했지.’


그러나 그건 아무도 보지 못 했으니까, 원래 아무도 모르는 일은 없는 일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정우는 웃으면서 그녀의 논리를 따라했다.

“그렇게 치면 네가 날 좋아하는 거 아니야?”

“어?”

“내가 밥 먹자는데 좋다고 따라오고, 도시락 싸 오니까 급식도 바로 끊어버리고.”


“그, 그런가?”


흥분으로 인해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없는 그녀는 정우의 말을 듣고 혼란에 빠졌다. 자신이 정우를  좋아한다고?


그래, 그건 맞다. 자신은 정우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인과관계가 뒤바뀌어 버린다. 그녀는 자신을 좋아하는 정우를 좋아하는 거지, 정우를 좋아해서 좋아하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되면, 지금 이 모습은 그저 짝사랑에 빠져 상대방에게 사랑을 강요하는, 일종의 스토커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사실을 깨달은 그녀의 낯빛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이 한 말을 곱씹으며 현실을 되돌아보게 된다.

‘나, 나 같은  좋아할 리 없지…….’

그게 사실이었다. 바꿀  없는 현실. 진실. 그녀는 마지막 희망을 꾹꾹 눌러 담아 다시금 도전했다.


“그, 그럼! 나,  좋아해?”

“싫어하진 않지.”

“그럼…….”


“그렇지만 사귀기엔 조금 이르지 않을까?”


“아.”


여기서 완전히 끊어낼 수는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하렘 루트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 게임엔 수많은 히로인이 있지만, 은혜는 그 안에서 가장 필수적인 3대 히로인 중 하나였으니까.


‘엔딩을 보기 위한 열쇠.’


쳐낼  없다. 그렇다고 쥘 수도 없다. 이 세상은 프로그램처럼 짜여 있어서 하나를 손에 쥐면 다른 하나를 쥐기 어렵다.

그러니까 모두 한군데에 모아 놓는다. 자신 앞에 몰아넣고 때가 오면  번에 싹슬이 한다.

“미안, 은혜야.”


아직은 때가 아니다.

* *

‘거부당했어.’

정우에게 거부당했다. 그는 자신을 좋아하는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거절당했다. 그 우울감과 좌절감에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정우야…….”


 우울감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그녀는 서랍 속에 숨겨 놓았던 나무젓가락을 꺼내 들었다.


끝부분이 축축하게 젖어 반쯤 원래 기능을 상실한 물건이었지만, 그녀에게는 그보다 더한 가치가 있었다.


쮸으읍.

“흐으읍! 하아아…… 정우야…….”


그건 도시락을 먹을 때 정우가 쓰던 나무젓가락. 그녀는 자신이 버리겠다고 말하며 그걸 하나하나 챙겨 놓고 있었다.


정우의 입안에 들어갔던 젓가락이, 그의 타액이 잔뜩 묻은 젓가락이 이젠 자신의 입에 들어와 그녀의 입을 희롱했다.

공장에서 깎고 만든 싸구려 나무 향이 그녀의 코를 찔렀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젓가락을 빨고 씹고 핥았다.

“아흐윽! 어째서! 왜! 나한테는 너밖에 없는데!”

그녀의 손이 답답하게 자신을 옥죄이고 있는 속옷으로 향한다. 한 손으로는 젓가락을 잡고 빨며, 다른 한 손으로는 축축하게 젖은 비부를 어루만진다.


우울하다. 우울함을 달래기 위해 자위를 한다. 그러나 그녀도 알고 있다. 우울함을 떨쳐낼 수 있는  아주 잠시뿐이며, 그 뒤에는 몰려오는 탈력감에 더한 우울을 겪어야 한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순간에서 도망치기 위해, 죽음보다 더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위를 끊을 수 없다.

“흐아앙! 흐읏, 정우야……/”


그의 침이 자신의 안으로 들어온다. 그의 것이 자신의 안으로, 안으로. 안으로.

‘…….’


은혜는 입안에 넣고 물고 빨던 젓가락을 내려다본다. 까칠까칠하고 잔가시도 많은 위험한 물건이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코, 콘돔이…….’

최저한의 의식은 가지고 있던 그녀는 정우의 침이 묻은 젓가락에 콘돔을 씌었다. 정작 입에 들어간 부분을 고무로 감싸면 무슨 의미인가 싶었지만, 이런 일로 상처를 입어 산부인과에 들락날락하는 건 질색이었다.


찌걱─

“흐, 흐읏…….”


결국 젓가락에 고무를 씌운 그녀는 천천히 젓가락을 자신의 안에 집어넣었다. 평소 애용하는 손가락이나 다른 물건들과는 다른 얇고 길쭉한 모양새에, 가득 차오르면서도 부족한 쾌락이 그녀를 애태웠다.


“더, 더어어!”

오랜만에 느끼는 열락에 흥분을 참지 못한 그녀는 툭 튀어나온 젓가락의 손잡이 부분을 잡고 격하게 흔들었다. 아쉽게도 일회용 젓가락은 큰 충격을 받고도 버틸 정도로 튼튼하지 못했다.

뚝.

“……어?”


고무를 씌어 놓았기에 어찌어찌 빼낼 순 있었지만, 그녀는 부러진 나무젓가락 앞에서 절을 하고 나서야 겨우 쓰레기통에 그걸 집어넣을 수 있었다.

* * *

‘슬슬 진정했으려나.’


은혜가 집에서 울먹거리며 뛰쳐나갔을 때,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당황해서 그런 거다 생각하고 내버려 두었다.


아마 지금쯤이면 집에 돌아가 이불을 차며 자신이  그랬는지에 대한 후한에 빠져 있겠지.


‘지금이 적기다.’


오랜 야겜 경험으로 알 수 있다. 지금이 그녀의 마음을 채워줄 찬스라고. 그렇게 생각한 정우는 그녀에게 문자를 보내려고 했다.


‘아, 애 휴대폰 없지.’

그리고 곧바로 그녀에게 직통으로 연락할 수단이 없다는  깨달았다. 스마트폰 시대에 살던 정우에게 있어서 굉장히 생소한 일이었다.

‘애초에 폴더폰은 3,4년밖에 안 써봤는데. 스마트폰만 10년 넘게 써놓고 이제 와서 폴더폰이라니.’


정우는 연락처에 남아 있는 은혜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번의 착신음 이후 처음 듣는 남자 목소리가 들려 왔다.

[여보세요.]


“아, 저 은혜 친구인데요. 은혜 있나요?”


[은혜 친구? 잠시만 기다려라. 은혜야!  남자친구한테 전화 왔다!]


수화기 너머에서 ‘남자친구 아니라고!’ 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잠시 후, 후다닥 달려온 은혜가 전화를 바꿨다.

[……여보세요.]

“어, 은혜야.”

{……왜?]


방금 전 차이고 간 참이라 그런지 목소리가 퉁명스러웠다. 그만큼 자신이 증오스럽겠지. 서로 사랑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실제론 아니라는 답을 받았으니까.


‘여기서 뒤흔들어야지.’

“내일 시간 있어?”


[시가안……? 시간이야 있는데.]

“놀러 가자.”


[뭐!?]

방금 막 차이고 이런 소리를 들을 줄은 몰랐는지, 그녀는 통화를 하고 있다는 사실도 깜빡하고 벙쪘다. 그리고 수화기 발신 부분을 손으로 가리고 소리를 질렀다.


[아빠아! 나 용돈!]


지지직거리는 소리 너머로 대부분의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자신의 아빠와 몇 번의 말다툼을 한 뒤, 다시 수화기를 들었다.


[그, 그럼 어디서 만날까?]


“영화나 보자.”

이 세계의 영화는 어떤 느낌일지, 조금 궁금하기도 했고. 원래 데이트의 기본은 영화니까. 집으로 돌아갈 때만 하더라도 우울하기 짝이 없던 그녀의 기분이 단숨에 올라갔다.

[내일 보자!]

“응.”


그녀는 약속 시간도, 약속 장소도 묻지 않고 그저 영화관에서 보자는 정보만 얻은 채 전화를 끊었다. 항상 성급하게 일을 일단락 짓는 게 그녀의 문제점이었다.


‘뭐, 또 전화하겠지.’


그러나 은혜는 그 뒤로 전화를 걸지 않았다. 저녁 9시까지 전화를 기다리던 정우는 반쯤 어이없어하며 잠에 들었다.


‘10시쯤 나가면 되려나?’


어차피 이 근처에 영화관이라고 하면 한 군데밖에 없으니, 장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시간이었지.

일요일 아침.

정우는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밥을 먹고 목욕까지 하며 몸에 있는 때를  빼냈다. 자신의 방에 있던 향수까지 사용하고 나서 시간을 보았을 때, 시계는 10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슬슬 출발할까.’


버스를 타고 영화관으로 향하면 30분쯤 걸릴 테니, 영화를 보고 점심을 먹으면  시간이 맞으리라.


그렇게 영화관으로 향한 정우는 미리 기다리고 있는 은혜를 발견할  있었다. 아직은 꽤 쌀쌀한 날씨인지라 그녀는 벌벌 떨면서 정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를 본 정우는 표정을 굳힌 채 곧바로 그녀에게 달려갔다. 곱게 차려입은 그녀의 옷차림 같은 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은혜야.”

“아, 저, 정우야. 왔어?”

그녀는 애써 힘들지 않은 척, 반가운 척 인사를 건넸지만 정우는 그녀의 전신을 훑었다. 손끝이 파래지고 입술이 푸르딩딩하게 부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정우는 슬쩍 그녀에게 언제쯤 왔느냐고 물었다.


“……몇 시에 왔어?”

“어, 얼마 안 있었어.”


“몇 시?”

“……여, 여섯 시.”

“새벽?”


“어, 응.”

“미쳤구나. 왜 그때?”


“인터넷으로 조사해보니까 영화는 새벽 6시부터 있다고 해서…….”

영화가 6시에 있다고 해서 일요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영화를 보는 영화광은 얼마 되지 않으리라. 데이트 코스로 새벽 6시 영화를 선택하는 미친놈은 아예 없을 거고.


그러나 그녀는 그런  일절 생각하지 못했는지 멍청하게 이곳에서  정우를 기다렸다. 정우는 한숨을 내쉬며 그녀에게 물었다.

“나한테 전화할 생각은?”


“그, 그런 일로 전화하면 싫어할까 봐.”

“네가 이러는 게 더 싫은데?”

정우는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3월인  어떻게 보면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12월이나 1, 2월이었으면 그녀는 얼어 죽었으리라.


“어쩔  없지. 데이트는 취소.”


“아,  돼!”

그녀는 데이트를 취소한다는 말에 격렬하게 반대했다. 이 데이트를 얼마나 고대했는지 굳이 말이 필요한가?


손발이 꽁꽁 얼고 체온이 몇 도나 떨어질 정도로 무식하게 기다린 그녀를 보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심지어  세계엔 스마트폰도 없어서 유튜브나 웹툰을 보면서 시간을 보낼 수도 없다.

즉, 그녀는 오로지 그만을 생각하며 다섯 시간을 기다렸다.

“사우나로 가자.”

“으, 응?”

“일단 가서 몸좀 녹이고 생각하자.”

그렇게  사람의 첫 데이트는 사우나로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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