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화 〉NO.1 이은혜를 잊지 않아 (8/218)



〈 8화 〉NO.1 이은혜를 잊지 않아

“흐흥, 아이고 우리 예쁜 은혜가 이렇게 은혜를 갚네.”

정우는 옷차림에 신경 쓰면서 데이트를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데이트 준비였다. 누구랑 하는 데이트냐고?

바로 두 사람과 같이 하는 데이트였다.

‘세, 셋이 같이 데이트를 했으면 좋겠어.’

이번  월요일. 놀러 가자는 우림의 제안에 은혜가 한 말이었다. 슬슬 다른 애들도 공략을 시작해야 하는 시기였으니 딱 좋은 제안이었다.

은혜의 의견이라면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녀의 의견을 들어주는 듯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은연중에 정우가 그녀의 의견을 더 소중히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하면 우림은 은혜를 더 공격해 자신의 꼭두각시로 만들려  테고,  과정에서 큰 스트레스를 받은 그녀는 각성하거나, 망가지거나.   하나가 되리라.

‘물론 망가지게 내버려 두진 않겠지만.’


애초에 게임에서도 은혜는 어지간히 방치하지 않는 이상 쉽게 망가지지 않는, 망가져도 금세 회복하는 회복 탄력성이 강한 히로인이었으니까.

뭐랄까, 이미 많은 상처를 겪어 봐서 어지간한 상처로는 쉽게 다치지 않는 느낌이라고 할까.


“됐다.”

데이트에 나가는 남자친구 룩으로 갈아입은 정우는 마지막으로 향수를 뿌려 향을 묻히고 데이트 장소로 향했다.

이번 데이트 장소는 놀이공원이었다. 주말에 놀이공원을 간다니, 사람이 미어터져서 놀이기구 하나 타는 데 세 시간씩 기다리고, 아무것도  하고 돌아올  같지만.

여자들이랑 가는 놀이공원은 원래 그렇게 서서 기다리는 맛이 있다.


놀이공원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에서 모이기로 했기에, 정우는 버스를 타고 역으로 향했다. 약속시간보다 30분은 일찍 도착했음에도 이미  사람은 먼저 와 있었다.


“정우야!”


“왔어?”

자신의 귀여움을 특화하기 위해 무릎까지 오는 원피스 위로 반쯤 비치는 가디건을 걸친 은혜.

안 그래도 큰 가슴을 강조하기 위해 바지 안으로 넣은  티셔츠과 허벅지까지 자른 짧은 청바지. 마무리로 가슴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핸드백을 멘 우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옷 귀엽네. 응. 옷 잘 입는데?”


“고마워. 너도 섹시하네.”

“그 부분을 노렸지.”

우림이 큰 가슴을 부각하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자, 뾰로통해져 있던 은혜가 그녀를 살짝 밀치고 앞으로 나와 말했다.

“나는! 나는 어때?”


“귀여워.”


“정말? 고마워!”

“은혜야.”


“……!”

정우에게 칭찬받아 기뻐하던 은혜가 우림의 부름에 살짝 떨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우림이 입가에 미소를 띠운 채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사람을 쳤으면 사과를 해야지.”

“미, 미안.”

“그래! 사과했으면 됐지. 갈까?”


우림은 자연스럽게 정우의 옆에 달라붙었다. 팔짱을 끼거나 손을 잡지는 않았지만, 그 커다란 가슴은 자연스레 그의 팔뚝에 달라붙었으니 매한가지이리라.

그 모습을 뒤에서 구경하던 은혜도 곧장 위기를 감지하고 앞으로 달려와 정우의 옆에 달라붙었다. 원래 세계의 남자가 보면 양손의 꽃이라고 불렀겠지만, 이 세상에선 이게 그리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오히려 다른 여자들이 정우를 힐끔힐끔 훔쳐보며 옆에 달라붙은 두 사람을 부럽다는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이거지.’

양손의 꽃인 상황이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욕을 들어먹지 않는다. 물론 양다리를 피우는 건 이 세계에서도 금기시되는 행동이지만, 그마저도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든 할 수 있다.


그래, 어떻게든.

[지금, ──로 가는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열차가 들어오고, 흔들리는 열차 속에서 같이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시간을 보냈다. 스마트폰도 없는  세상에서 할 만한 거라곤 서로 떠드는 것밖에 없어서, 지하철 안은 이미 잡상인과 사람들의 통화소리, 소음으로 난잡해 있었다.


“놀이기구 뭐부터  거야?”

“으음, 글쎄.”

멀미가 심한 정우는 놀이기구 타는 걸 그리 즐기지는 않았지만, 기왕 이 세계에 왔으니 즐겨보자고 생각했다. 거기에 현실과 다르게  몸은 꽤 튼튼한 몸이니까 아마 멀미 같은 건 하지 않을지 모르지.

그리고 그런 안일한 생각은 놀이공원에 도착하는 순간 산산 조각나버렸다.

“……저거 뭐야?”


“어라? 몰라?”


우림은 정우가 가리 킨 놀이기구를 같이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 놀이공원의 명물! 높이 222m의 슈퍼코스터잖아!”

“아니, 이게 무슨…….”

원래 세계의 최대 높이를 한참 뛰어넘는 물리적으로 말도 안 되는 크기의 롤러코스터를 보고서 정우는 뻣뻣하게 굳었다.

한국에 있던 롤러코스터들이 높아야 50~60미터고,  길이도 그리 길지 않다는 걸 생각해보면 저건 거의 번지 점프 수준이다.


그것도 세계 최고 높이의 번지 점프. 온갖 부분에서 현실성을 찾아댄 주제에 정작 이런 부분에서 게임성을 넣어 놓다니, 정우는 오랜만에 제작자를 욕하며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갔다.

“왜? 무서워?”

“아니, 음…… 멀미하지 않을까?”


“죽는 사람도 있다는데.”


“주, 죽어?”

우림의 말에 겁을 집어먹은 은혜가 덜덜 떨기 시작했지만, 물러서지는 않았다. 만약 은혜를 제외한  사람이 사이좋게 옆자리에 앉아 저 세계 제일의 롤러코스터에 탑승한다면.

흔들다리 효과니 뭐니 해서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싹틀지도 모르니까. 목숨을 걸어서라도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괘, 괜찮겠지?”

“음, 아마?”


우림이가 그렇게 말하는 걸 들으며, 은혜는 점점 더 공포에 떨었다. 정우도 조금이지만 겁에 질렸다. 그만큼 크기에 압도당했다.

“저, 정우야…….”


“왜?”


“괘, 괜찮아? 혹시 무서우면…… 안 타도 되니까.”


은혜가 그렇게 말하며 정우를 올려다보는 데, 그 모습이 꼭 못 타겠다고 말해달라는 아기새 같아서, 정우는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가 꼭 이 롤러코스터를 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다고 말했고, 우림이는 그런 그녀를 보며 물었다.


“혹시 무섭니?”

“아, 아니! 안 무섭거든!”

“그럼 가자.”

세 사람은 롤러코스터 줄을 서기 시작했다.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찬 줄이었지만, 중간중간 포기자가 나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은혜는 그동안 한 마디도 꺼내지 못하고 땅만 쳐다보고 있었는데, 우림이  모습을 보고 키득거리며 그녀를 비웃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의 차례가 왔다. 정우가 먼저 안쪽에 앉자 우림이 자연스레 따라와 그 옆을 차지했다.

은혜는 정우의 옆자리에 앉지 못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겁에 질려 있었다. 타기는 타는 데, 이미 정신은 저세상에  있는 듯했다.


“안전바 내리겠습니다! 혹여나 문제 있으면 손들어서 알려주세요!”


알바생이  칸씩 안전장치를 체크 하고, 우림과 정우도 안전바를 내렸다. 우림은 숨을 크게 들이쉰 뒤 안전바를 내렸다.

“흐으읍!”


출렁─

그러나 안전바는 그녀의 가슴에 끼어 내려가지 못했다. 당황한 그녀가 배를 집어넣듯 가슴을 최대한 뒤로 빼보았지만, 뱃살도 아니고 가슴살이  좀 쉰다고 들어갈  만무.

결국 직원이 와서 몇 번 시도해본 뒤, 그녀에겐 탑승 불가 처분을 내렸다.

“그, 정말 죄송합니다. 손님 가슴이 너무 크셔서…….”


“아, 아뇨. 괜찮아요.”

가슴이 커서 놀이기구에 못 탄다는, 사상 초유의 일이 일어난 우림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는 방향으로 향했다. 먼저 내려가 기다리겠다고 말한 뒤 손을 흔들었다.


“그럼 내가 옆에 탈래!”

그때를 놓치지 않고 은혜가 재빨리 자리를 앞좌석으로 옮겼다. 알바생은 곧장 빈자리에 손님 한 명을 데려다 앉혔다.


좋아하는 은혜를 보며, 정우가 조심스레 물었다.

“안 무서워?”

“응? 어, 어어…….”


그제야 자신이 무엇에 탄 지 다시금 떠올린 은혜의 얼굴이 퍼렇게 질렸다. 바가 고정되고 레일이 움직인다.

덜컹, 하고 롤러코스터가 크게 한  진동한 뒤, 올라간다. 끝없이. 끝나지 않는 레일이 222m라는 높이를 실감하게 해준다.

 분이나 올라갔을까, 체감상 10분은 올라간 거 같은데. 그렇게나 올라가고도 끝이 나지 않았다. 은혜는 끝없이 올라가는 레일에 겁을 상실한 듯 허세 가득한 웃음을 내뱉었다.


“뭐야. 별거 없는데.”

그러나 그녀의 심장 소리가 옆자리에 앉은 정우에게까지 들려 왔다.  모습을 보고 있던 정우는 그녀의 손을 탁, 하고 붙잡았다.


“저, 정우야?”

손으로도 느껴지는 그녀의 심장 고동에 씨익 웃으며 그녀를 위로했다.

“이러면 안 무섭지?”


그리고 롤러코스터는 수직으로 땅을 향해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 * *

가슴이 커서 탑승을 거부당한다는, 그녀 인생에서도 처음 겪는 일에 우림은 터덜터덜 계단을 내려가 1층에 있는 기념 사진관으로 향했다.


그곳에선 세계 최고 높이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사람들을 찍고, 기념으로 그 사진을 팔아 재꼈다.

도촬에 그 사진까지 파는  몰카 범죄나 다름없었지만, 그걸 하는 주체가 놀이공원 측이라는 대기업이니 아무도 문제제기를 하지 못했다.

애초에 이 세상 사람들은 아직 그런 관념이 부족하다. 남을 찍는 게 범죄라는  크게 인지하고 있지 않다.


우림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타고 있는 사람들 사진  보여주세요.”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알바생은 자신의 뒤에 있는 커다란 모니터를 가리켰다. 아직 롤러코스터가 완주하지 않아 전부 나오지는 않았지만, 찍힌 사진들을 미리 받아볼 수는 있었다.


사진을 둘러보며 정우를 찾던 그녀는 어느 한 사진에서 멈칫했다. 그 사진은 정우와 은혜가 찍혀 있었는데  사람은 사이좋게 손을 잡고 있었다.

그 사진을 들여다보던 우림은 사진을 구매했고, 손안에 들어오는 작은 사진을 더 자세히 노려보았다.


그리고 헛웃음을 내뱉었다.


“하, 나랑은 못 사귄다고 한 주제에.”

왜 자신은  되고 이 땅꼬마는 되는가? 자신보다 머리도 나쁘고 몸매도 나쁘고 친구도 없는 그런 찐따 같은 년이랑.


왜.
어째서.
 나를 버리고 그런 년한테 간 거야, 내가 뭐가 모자라서, 뭐가 부족해서? 왜?왜?죽어죽어버려사라져이나쁜쓰레기개자식.


“우림아. 뭐해?”

“아! 정우야!”

두 사람이 내려오자 그녀는 곧장 사진을 뒤로 숨기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었다. 다른 남자들과 다르게 정우는 자신의 큰 가슴을 좋아해, 쉽게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다.

“여기 봐. 사진 팔고 있더라고.”

“아…… 그러네.”


정우는 추억이라는 듯 사진관을 바라보았다. 은혜는 혹여나 자신과 정우가 손을 잡은 사진이 있을까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몰래 두 사람이 찍힌 사진을 구매했다.


“손님도 이 사진을 사시는 건가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네! 아까  여성분도 이 사진을 구매하시던데…… 친구분 아니세요?”

“아, 맞아요! 친구!”

은혜는 사진을 구매하면서 알바생에게 우림이  사진을 구매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우림을 슬쩍 훔쳐보았다.

그녀는 사진을 샀다는 말은 하지도 않고 아무것도 모르는  정우와 단둘이 사이좋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왜 말을 안 했지?’


은혜는 그녀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지 못한  다음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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