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화 〉NO.1 이은혜를 잊지 않아 (12/218)



〈 12화 〉NO.1 이은혜를 잊지 않아

“남자가 말이야, 조신해야지.”


“알았어…….”

“이게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알아들어?”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

“그만은 무슨! 아직도 이해 못 했네!”


정우가 옷자락으로 땀을 닦은 이후, 이유는 모르겠지만 열정적으로 화를 내는 은혜에게 된통 혼나고 있었다.


얼마  까지만 하더라도 은혜에게 마땅한 장점이 없다고 생각하던 정우였지만, 그녀에게 잔소리를 듣다보니 그녀에게도 한 가지 특기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개꼰대야.’

바로 엄청난 꼰대력! 남자는 조신해야 한다느니, 피부를 내놓고 다니면 안 된다느니, 만일 원래 세상의 할아버지가 들었더라면 옳다구니! 하면서 무덤을 박차고 나올 정도의 꼰대력이었다.

“은혜야…… 그만해.”

듣다 듣다 못한 우림이 먼저 말릴 정도의 꼰대력을 보여 주었던 은혜는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 했다는 걸 깨달았는지, 곧바로 정우에게 사과하기 시작했다.

“저, 정우야! 미안, 내가 머리가 어떻게 됐나 봐…….”


“아니야. 틀린 말도 아닌데 뭘.”


“미, 미안! 내가 매점 쏠 테니까 화 풀어, 응?”


화는 나지 않았지만, 은혜에게 얻어 먹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정우는 은혜와 같이 매점으로 향했다.


체육 시간이 끝나고 남의 돈으로 먹는 아이스크림은 정말이지 최고였다. 싸구려지만, 어린 입맛에는 이런 싸구려같은 맛이 제일이었다.


500원 짜리 바를 쪽쪽 빨아대면서 정우는 교실로 돌아왔고, 자리에 앉은 다음에야 자신의 체육복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뭐지?’

어디 두고 왔나 생각해봐도 그런 적 없다. 누가 빌려 간 건가 생각해봐도 정우에게 옷을 빌릴 친구는 없다.

‘그럼 뭐지?’

어디 두고 온 것도, 빌려준 것도 아니라면 남은 가능성은  하나. 도둑맞은 거였다. 고등학교에는 이런 일이 종종 있다.


자신의 물건이 아님에도 훔쳐가는 일들이. 지우개나 볼펜, 교과서나 공책, 하다 하다 팬티까지 도둑맞던 과거 고등학교를 떠올리며 정우는 순간 추억에 잠겼다.


그러나 그건 그거, 이건 이거. 추억 보정으로 감싸더라도 도둑맞는 건 기분 나쁜 일이다.


그렇기에 정우는 곧바로 담임선생님에게 보고했다. 보고하면서까지 정우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과거 담임도 체육복을 잃어버리면 하나 새로 사라고 하고 끝냈으니까. 정우가 끝까지 이해하지 못 했던 건, 수십 년간 뿌리박힌 상식이 아직 개변되지  했기에.


“오늘 정우 체육복이 도둑맞았다.”

정우가 생각하기에, 도둑은 남정네 땀이 덕지덕지 묻은 옷을 훔쳐가는 이상한 놈이었다.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도둑은 남고생 체액이 묻은 옷을 훔쳐가는 변태새끼였다.


이 차이가 얼마나 커다란 건지 정우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머리로는 이해하지 못해도 몸으로 이해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

이번 일처럼.


“와, 어느 미친년이…….”
“불쌍하다.”
“그걸로 뭘 하려고 훔쳐갔대?”

평소엔 반에서 있는 듯 없는 듯 하지만, 얼굴은 귀염상인 정우의 옷이 도둑 맞았다는 사실에 반 아이들은 분개했다.

“6교시 이후에 교실에 있던 사람?”


그러자 몇몇 학생들이 천천히 손을 들었다. 알리바이는 없지만 범행 동기 또한 가지지 못한 아이들이었다.

결국 선생님은 극단의 조치를 취했다.

“다들 가방이랑 사물함 까.”

 아이들 전체의 가방과 사물함을 뒤엎고, 체육복을 한 개씩 가지고 있는  확인하고 나서야 반 아이들 중 범인이 없다는 사실이 확정되었다.

“오늘은 그만 돌아가라.”

“선생님, 체육복은 안 찾아도 돼요?”


“경찰에 연락할 생각이다.”

경찰이라는 말이 나오자 정우는 이게 그렇게나 심각한 문제인가 싶었다. 실제로 어느정도 근속 연수가 있는 선생이라면 이렇게 까지 되지는 않았으리라.

다만 정우가 간과한 사실이 있다면, 주인공의 얼굴은 게임 설정상 그 어떤 여자와  수 있을 정도로 잘생기고 귀염상이라는 점.


그리고 담임선생님이 올해  임용한 신출내기라는 점. 이 두 가지 사실이 겹쳐 이번 일을 일으켰다.

정우는 본인이 경찰에 피해자로 신고할 생각을 하니, 뭔가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들이 왜 성희롱 당하고도 신고 안 하는지 알겠네.’

고작 이런 일로 신고하기엔  거 아닌 일이었기에. 신고하는 데 망설여지는 것이다. 정우도 그 의사를 표했다. 경찰을 부르는 건  아닌 것 같다고.

“……괜찮겠니?”

담임은 그런 정우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정우는 이미 성범죄에 노출된 가녀린 학생이었다.


“이런 일로 경찰을 부르는 건 조금…….”

“괜찮아. 어른들은 네 편이니까.”


“아뇨, 정말 괜찮아요.”

쓸데없이 경찰을 부르는 것보다야 나았다. 그렇게 학생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사건은 일단락 되었다.


“정우야, 정말 괜찮아?”

“응. 괜찮아.”


은혜가 와서 정우는 걱정했지만, 정우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체육복이야 하나 더 사면 되니까.


‘돈은 좀 아깝네.’

정우는 아무래도 걱정된다는 은혜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당연하게도 그를 뒤쫓는 스토커나 범죄자는 없었으며, 정우는 아무 일 없이 집에 돌아가 잠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등교한 정우는 자신의 책상 위에 올려진 체육복 주머니를 발견하고 다가가 주머니를 열었다. 그 안에는 도둑맞은 그의 체육복이 들어 있었다.

‘이게 왜?’


혹여나 싶어 옷을 뒤집어 안쪽을 확인하자, 정우가 샀을 때 박은 그의 이름이 자수로 박혀 있었다.


틀림없이 그의 체육복. 여기다가 무슨 짓을 했을까싶어 옷을 들고 탈탈 털어 보았다. 압정같은 게 들어 있나 싶어 해본 행동이었지만 옷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그럼 이걸로 뭘 한거지?’

자위라도 했나, 옷을 코에 갖다대고 킁킁 냄새를 맡은 정우는 옷에서 오히려 옷에서 섬유 유연제 냄새가 난따는 걸 확인했다.


‘가져다가 빨아 왔다고?’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가? 옷을 훔쳐다가 빨아올 이유가, 과연 뭐가 있겠는가. 적어도 정우의 머리로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반 아이들이 하나 둘씩 교실로 등교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정우의 책상 위에 올려진 체육복을 보고 말했다.


“어, 정우야. 도둑맞은 거 찾았어?”

“응.”

“어디 있었어?”

“그냥  책상위에 올려져 있던데.”

“그래?”

학생들은 그렇게 묻고 끝났지만, 그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져 나가는 소문은 그렇지 않았다. 정우의 책상 위에 올려져 있었단 소문은 어느새 정우가 올렸다는 소문으로, 그 소문은  다시 살점이 붙어 정우가 관심을 얻기 위해 자작극을 벌였다는 소문으로 확산 되었다.

‘이게 무슨…….’


반 내에 그런 소문이 퍼져 나갔다는 걸 깨달았을 땐, 이미 늦었다. 아이들은 정우를 관심종자로 몰고 가고 있었고, 정우는 자작극을 펼친 관심종자가 되어 있었으니까.

‘왜 이렇게 됐지?’

키득키득.


주변에서 그를 비웃는 소리가 들린다. 자기보다  살은 어리며 게임 속 인물들이라는  알고 있음에도, 비웃음 소리에는 마음을 깎아 먹는 힘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히로인을 구한다 하여 히어로라 하듯, 히어로를 구하는 것또한 히로인이었다.

“아 시발.”


반 구석에서 잠들어 있던 암사자가 깨어난다. 그녀가 부스스한 금발을 흩날리며 일어나자 순간 반 전체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모든 아이들이 한 사람의 눈치를 보며, 움직이는 자유조차 빼앗겼다.


“존나게 앵앵거리네. 애새끼들이냐?  이리 시끄러워.”


“저, 저기, 그게…….”

“뭐야, 벙어리야? 왜 말을  해?”


“그, 정우가…….”


“쟤가 뭐.”

그나마 마리와 이야기를 몇 번 나눠보았던 학생 중 한 명이 그녀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정우가 자작극을 벌여 어제 그런 민폐를 끼쳤다.


그러니 이렇게 그를 비웃는 건 정당하다. 자신들이 다수니까 자신들이 옳다.


그녀에게 말을  학생은 그런 논조로 말했다. 그러나 그건 실수였다. 그녀, 마리는 단순한 선입견으로 남을 평가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봤냐?”

“응?”

“봤냐고.”

“아, 아니. 근데 애들이…….”

“증거도 없으면서 사람을 몰아갔네? 뒤질래?”

그녀의 앞에서 거짓부렁이나 다른 생각을  수 있는 담력을 지닌 사람은 아쉽게도 이 반에 없었다. 평소 봐왔던 그녀의 폭력성과 외모, 그리고 은연중에 들려오는 소문으로 그녀는 살아 있는 짐승이 되었기에.

“야.”

“왜?”


“애들 말, 사실이야?”

마리는 남들과 달리 정우에게 직접 물었다. 당연하게도 그녀의 성격을  알고 있는 정우는 그녀 앞에서 당당히 말했다.


“아니.”

“아니라잖아. 둘 중 하나는 구라를 치는 거 같은데. 너일까 쟤일까?”

“하, 하지만…….”

“하지만이고 자시고 한 번 더 지랄하면 진짜 뒤진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금 자리에 엎드렸다. 그걸로 이 사건은 끝났다. 정우가 관심종자니 뭐니 하는 소문보다 훨씬 더 스릴 넘치는 일이 일어났으니, 학생들은 이제 정우의 뒷담화가 아닌 마리의 뒷담화를 시작했다.

─재가 정우를 좋아해서…….
─같이 잔적도 있다는데.
─하긴, 남자애가 배꼽을 까놓고 다닐때부터 알아봤지.

물론 그 사이엔 정우의 뒷담도 끼어 있었지만, 정우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의 인생에 일절 도움 안 되는 엑스트라들.

이미 이 반에서 호감도를 얻을 히로인들과는 모두 연을 이어 놓았다.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으리라.

‘좋아, 이걸 계기로…….’

정우는 이전에 그녀가 자신에게 도시락을 싸다 달라고 했던 일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이유로 상세하게 알고 있었다.


그녀의 집안은 급식비도 제대로 내지 못 할 정도로 가난한 저소득층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하루 종일 잠을 퍼질러 자고 있는 이유도, 방과 후 아르바이트로 고된 생활을 보내기 때문이고.

도시락을 바라는  지원받는 급식비라도 아낄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리라.

‘물론 그런  생각하고 도와준 건 아니겠지만.’

이게 바로 억지력이니 뭐니 하는걸까, 아예 이야기조차 하지 않았던 사이지만, 이렇게 연결고리가 생겨 버렸다.

“정우야, 나는 널 믿고 있었어!”


“알아.”

모든 사건이 끝나고, 은혜가 다가와 중얼거렸다. 애초에 그녀는 정우 곁에서 딱 달라붙어 있었으므로, 뒷담은 커녕 도둑질을  범인도 아니었겠지만.

‘그럼 누가 훔친거지?’


여전히 도둑은 정체를 숨긴 채 미지의 인물로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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