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NO.1 이은혜를 잊지 않아
“우리반에서 글쓰기 대회 대상이 나왔다!”
담임선생님이 아침 조례에서 그렇게 외쳤다. 1학년, 그것도 아직 어색어색한 3월에 겨우 받아낸 글에서 대상이 나왔다는 사실에 반 아이들이 소란스러워졌다.
대체 누가 상을 탄 건지 고개를 돌리며 갸웃거리고 있을 때, 선생님이 대상자를 불렀다.
“정우야.”
“네.”
“네가 대상이다.”
그 말에 정우는 살짝 놀랐다. 자신이 봐도 잘 쓰긴 했는데, 설마 진짜로 대상을 받을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우수, 우수상도 우리 반이다! 너희들 그냥 다 해먹어라!”
최우수상은 우림이, 우수상은 은혜였다. 은혜는 우림이에게 패했다는 사실에 좌절했지만 그대로 입상은 입상.
정우에게 받을 상이 떠올랐는지 절로 미소를 짓게 되었다.
“세 사람은 바로 교무실로 따라오고, 다른 애들은 수업 준비해라.”
선생님의 말에 정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선생님의 뒤를 따랐다. 흔쾌히 발걸음을 옮기는 그녀의 모습은 상당히 기뻐 보였다.
“기분 좋으세요?”
“기분 좋냐고? 좋지. 좋고말고. 내 반에서 대상, 최우수상, 우수상이 다 나왔는데.”
그녀는 학생의 업적이 마치 자신의 업적이라도 되는 것 마냥 기뻐했다. 정우는 자신이 잘난거지 선생님은 아무것도 한 게 없지 않느냐라는 반골 특유의 발언을 꺼낼 뻔 했지만 참았다.
“상은 저희가 탄 거지 선생님은 아무것도 안 하셨잖아요?”
그러나 은혜는 눈치 없이 그 말을 진짜로 꺼냈다. 그 말을 들은 선생님은 살짝 굳은 표정으로 은혜를 뒤돌아보았다가 웃으며 말했다.
“하, 아하하. 학생이 잘 되면 선생님도 좋지 않겠니?”
“아, 그러네요.”
다행히 그녀도 완전한 눈새는 아니었다.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알고 곧바로 방향을 틀었다. 나쁘지 않은 태세전환이었다. 처음부터 그랬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 은혜가 뭘 알겠어.’
어린 아이가 범죄를 저질러도 촉법 소년이라는 이유로 죄를 면죄해주듯이, 이렇게 분위기를 싸하게 만든 은혜도 이 부분 한정해 촉법 소년과 동등한 지위를 지녔다.
촉법 은혜!
친구가 없었기에 교우 관계에 한해서 면죄부를 받는다!
“오, 신 선생. 개내들이?”
“네. 글쓰기 대회에 참가했던 아이들입니다.”
“신 선생은 초임부터 운이 좋아? 나때는 말이야…….”
학생 주임이 담임선생님을 향해 과거 팔이를 시작하자, 정우는 은혜에게 눈치를 주었다. 그러나 자신과 비슷한 위치의 존재에게는 한없이 강하지만, 조금이라도 위계가 틀어지면 초식 동물마냥 겁에 질려 아무 말도 못 하는 은혜는 조용히 학생 주임의 훈계를 들었다.
“그래서 그게 말이지…….”
“선생님. 저희 왜 부르셨어요?”
“어어? 아, 맞다! 주임 선생님. 죄송합니다. 애내들 상 받는 거 교육좀 시키고 오겠습니다.”
“흠흠, 그래요.”
결국 보다 못 한 정우가 나서서 담임선생님을 불러 낸 이후에야 무한라떼홀스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신주희 선생님은 정우에게 고마움의 눈빛을 보낸 뒤 세 사람에게 설명했다.
“금요일 날 강당에 올라가서 상 받을거야. 그거 준비랑…… 아, 상금도 있다.”
“얼마요!?”
상금이란 단어에 은혜가 크게 반응했다. 영화를 보거나 오락실에 놀러가거나 매점에 가는 등. 한 달 용돈 삼만 원인 그녀에게 고등학교 생활이란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대상은 십만 원.”
“시, 십만 원……!”
자신의 돈이 아님에도 대상을 받은 정우를 부럽게 바라보던 은혜는 우수상은 얼마나 받을 지 고대했다. 대상이 십만 원이면 우수상은 얼마쯤 할지 머릿속에서 열심이 짱구를 굴렸다.
“우수상은요?”
“우수상은 삼만 원.”
“삼뭔 원!”
그녀의 한 달 용돈에 준하는 금액을 받게 된 은혜는 크게 뛰며 기뻐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런 그녀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현금으로 주는 거 아니다. 문화상품권이야.”
“아─.”
문화상품권이라는 사실에 기가 죽었지만, 그게 어디인가. 삼만 원이면 현금으로 이만오천 원은 환금할 수 있다.
물론 발품을 조금 팔아야하긴 하겠지만, 그정도만 해도 그녀 한 달 용돈에서 아주 약간 모자라는 정도였다.
“은혜야─ 그렇게 갖고 싶으면 내 것도 줄까?”
그때, 그런 그녀를 보면서 최우수상을 받은 우림이 그녀에게 말했다. 최우수상은 오만 원. 그녀 용돈 두 달 치에 준했다.
그 사실에 부탁을 하려던 은혜는 우림이 어떤 존재인지 깨닫고 입을 꾹 닫았다. 그녀의 자존심이 라이벌에 가까운 그녀에게 허리를 숙이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정말 필요 없나보네. 그럼 반 애들한테 나눠 줘야…….”
“버리실 거면 저 주세요. 굽신굽신.”
그러나 그 알량한 자존심, 오만 원에 팔렸다. 우림이는 그런 그녀를 깔보며 웃었다. 정우는 두 사람을 한심하게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튼 그렇게 알고, 준비해두렴.”
“네!”
세 사람은 그렇게 교실을 나섰다. 교실을 나서면서 곧바로 다가온 학생 주임이 또 다시 말로 된 라떼를 담임선생님에게 들이 붓는 모습을 발견했다.
“정우야, 고마워.”
“응? 뭐가?”
교무실을 나오면서, 우림이 대뜸 정우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대체 뭐가 고맙다는 건지 눈치 백단(야겜 한정)인 정우도 곧바로 눈치 채지 못 했다.
우림이는 은혜의 앞에서 그녀가 알지 못 했던 일을 드러냈다.
“전에 우리 집까지 와서, 글 같이 써줬잖아? 아마 그거 덕분에 입상한 거 같아.”
“아, 그런가?”
“지, 집? 정우야, 너 애네 집 놀러갔었어?”
“응.”
“왜? 왜 놀러갔어!?”
“아니, 내가 놀러가겠다고 말했는데.”
그 말에 은혜는 충격을 받은 듯 입을 떡 벌리고 초첨을 흐리멍텅하게 만들었다. 우림이는 그런 그녀를 보면서 쿡쿡 웃었다.
“아아, 맞아. 나는 안 된다고 했는데 정우가 반드시 하고 싶다고─.”
“아니야!”
“응? 뭐가?”
“정우는 그런 애가 아니라고!”
“무슨 소리야? 글쓰기 얘기하는건데?”
“아…….”
끝까지 우림이에게 능욕 당하던 은혜는 화를 내며 정우에게 달라 붙었다.
“저, 정우야! 그, 그거 있잖아.”
“그거?”
“입상하면 해준다고 했던 거 있잖아…….”
“아, 그거.”
은혜는 조심스레 정우의 옷자락을 붙잡으며 말했다. 부끄러움에 고개가 숙여져 그녀의 정수리가 정우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래, 지금 해줄게.”
“지, 지금!?”
우림이의 앞에서 자신이 정우와 더 친하다는 어필을 하고 싶었던 은혜지만, 설마 이 자리에서 그걸 받을 거란 생각은 못 했던 은혜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정우가 다가오는 열기가 느껴지며, 온 신경이 곧 있을 키스에 집중된다. 그리고 고대하고 고대하면 입술이 닿는 순간.
쪽.
“……??”
“왜?”
정우는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맞췄다. 은혜는 자신의 이마를 몇 번 만져보고, 정우의 입술을 훔쳐보고, 그렇게 멍을 때리다 소리를 질렀다.
“이게 뭐야아아아!”
“뭐긴 뭐야, 그때 제대로 해준다고 말 했잖아.”
“말 했지! 말 했어! 제대로 해준다고…….”
“응. 그래서 이번엔 제대로 해줬잖아. 그때처럼 손가락이 아니라.”
그렇게 말하며 정우는 두 손가락을 딱딱 부딪혔다. 그 모습을 보며 은혜는 이해할 수 없는 절규를 내뱉었다. 항상 이런 식이지, 여자 마음이란 하나도 모르는 나쁜 놈.
“지, 진짜. 그렇게 여자 마음 갖고 노는 거 아니야…….”
“난 갖고 논 적 없는데.”
“이런 걸 보고 갖고 논다고 하는거야…… 나쁜놈아.”
은혜는 그렇게 말하며 마음을 담아 정우의 팔뚝을 툭툭 건드렸다. 여자가 남자를 때리는 건 죄악이었지만, 이정도 장난은 괜찮았다.
“아, 아파.”
“진짜, 진짜 나쁜 놈.”
아프다는 말에 치는 걸 그만둔 은혜는 힘없이 교실로 걸어갔다. 슬슬 장난치는 것도 그만둘까. 우림이가 보고 있었지만 모든 건 방법이 있는 법이다.
‘현실에서 이러면 미친 놈 소리를 들을 텐데.’
이 세계가 야겜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걸 다행이라 생각하자. 정우는 힘없이 걸어가는 은혜를 뒤쫓았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잡아 당겼다.
“어, 어어?”
갑자기 자신을 잡아당기는 생각 외로 강한 힘에 은혜는 당황하면서 질질 끌려갔다. 정우는 일부러 그녀의 몸에 걸려 넘어지는 척 뒤로 쓰러졌다.
“어어!”
뒤에서 두 사람을 따라가던 우림이 놀라 정우를 붙잡으려 했지만, 계산은 완벽했다. 정우는 최대한 다치지 않도록 등으로 낙법을 취하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쿵하고 떨어지는 순간 그 충격으로 은혜와 입을 맞추도록 노력한다. 등으로 떨어진 순간 커다란 충격이 정우를 덮치며 그런 생각은 하지 못 하게 만들었고, 뒤이어 따라온 은혜와 입술을 마주치는 순간 커다란 질량에 그대로 머리를 바닥에 부딪힌 정우는 그대로 기절했다.
‘아, 미친.’
이래서 만화는 따라하면 안 된다.
* * *
아프다. 어디가 아프냐고 물으면 전신이 다 아프다. 팔다리가 저리고 등허리는 부서진 거 같다. 머리는 지끈거리는 두통과 찢어진 듯 아려오는 뒷통수가 얼얼했다.
“으으…… 미친.”
만화나 게임에선 자주 나오는 부딪혀 넘어지면서 키스하는 씬. 이 세상이 야겜 배경이라면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 정우도 시도해보았다.
그리고 그 만용, 정우의 뒷통수로 계산됐다.
“일어났니?”
그때 양호실에서 책을 읽고 있던 양호 선생님이 정우에게 다가왔다. 바닥에 넘어져 머리를 다쳤으나 크게 다친 건 아닌 듯 했다.
정말 피가 철철 나고 크게 다쳤더라면 눈을 떴을 땐 양호실이 아니라 병원 응급실이었을테니까.
“자, 일어나지 말고. 말해보렴.”
“네?”
“말은 잘 하고. 이거 몇 개니?”
그녀는 손가락을 펼쳐 몇 개인지 물어보고 숫자를 세보라고 하거나 자기 집 주소를 말하게 하는 둥, 여러가지 테스트를 걸쳤다.
여러 개의 테스트를 끝으로, 그녀는 큰 이상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응. 큰 이상은 없네.”
그러나 혹시 모른다며 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남기고, 양호 선생님은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정우는 시간을 확인하고 양호 선생님의 양해를 구한 뒤 침대에서 조금 더 누워 있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정말 오랜만에, 정우는 수업 시간에 침대에 합법적으로 누워도 되는 권한을 받았다.
‘좋다.’
이 시간에 이렇게 누워 있는 게 얼마만인지, 옛날 생각이 다 난다.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며 백수처럼 뒹굴 거리던 때, 게임 리뷰란 그럴싸한 직업을 자칭했을 때.
그 때가 생각난 정우는 슬쩍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아, 맞다.’
머리를 부딪혀서 기절했으니, 좋은 장난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