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6화 〉NO.2 소우림 가슴은 소를 우림 (36/218)



〈 36화 〉NO.2 소우림 가슴은 소를 우림

겨우 조례 시간만에 단체복을 맞추는 시간이 끝나도, 월요일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수업은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진다.

학생들은 오전 수업을 점심 먹을 생각에 버티고, 그렇게 버텨낸 다음 가장 먼저 급식을 먹기 위해 달려 나간다.

빠르든 늦든 어차피 똑같이 맛없지만, 보상 심리라는  그렇다. 아무리 하찮은 물건이라도, 아니, 하찮은 물건일수록 자신이 이걸 얻기 위해 움직인  아닌 본인의 자유 의지로 움직였다 생각한다.

물론 정우네 하렘은 그렇지 않다. 그들에게 있어 정우의 도시락은 오전 수업을 버틸 버팀목이 되어줄 수준의 훌륭한 도시락이었으니까.

“그래서 있지─ 주말에 정우랑 같이 레스토랑에 갔는데, 정우가 거기 쉐프 언니를 요리 실력으로 혼쭐내준 거 있지.”

“……주말에, 같이?”

“응! 그리고…… 아, 우리 집에 놀러와서 부모님이랑 인사도 했고.”

“지, 집에 놀러와서, 인사를 해……?”

“또 뭐가 있더라…….”

우림이는 주말동안 있던 데이트를 은혜를 놀리는  써먹고 있었다. 은혜는 정우가 주말동안 우림이와 단 둘이 데이트를 즐기고, 심지어 집까지 들렸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우리 집에도 온  없는데……!’

아직 자기 집에도 온  없는 정우가, 우림이의 집에 놀러갔다. 첫 초대를 빼앗겨버리고 말았다.

사실 다른 친구 집에 놀러가는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우림이는 아니었다. 그녀는 고등학교에 들어와 처음 사귄 친구였으며, 그런 동등한 조건의 상대에게 처음을 빼앗긴 거니까!

‘하지만 정우의 동정은 내꺼지!’

그래, 그깟 첫 방문은 주마.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이 취했으니까. 그런 근거 있는 자신감에 도취된 은혜가 우림이에게 물었다.

“집에선  했는데?”

“응? 께임.”

“……게임?”

“응. 께임.”

은혜는 자신이 잘못 들은  알았으나, 우림은 일부러 강하게 발음하고 있었다. 그런 우림이를 향해 은혜가 지적했다.

“우림아, 께임이 아니라 게임.”

“께임 맞는데?”

“아니, 발음이 세잖아.”

“아니, 께임한  맞다고.”

“?!?!”

이때는 아직 ‘그’ 발언이 나오지 않았지만, 은혜는 어째서인지 우림이 말하는 걸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정우와 둘이 무언가 있었다고 어필한다는 걸……!

“저, 정우야?”

“응?”

정우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순수하게 도시락을 까먹고 있었다. 그 순수하기 짝이 없는 눈망울에 은혜도 의심을 녹여냈다.

그러나 물을 건 물었다.

“아무 일도 없었……지?”

“아무 일도…… 없었다!”

정우는 유명 만화 풍으로 그렇게 얘기했다. 다행히 그 만화는  세계에도 있고, 시대상 거기까지 스토리가 진행된 이후였기에 책이라면 만화든 소설이든 뭐든 잡식하는 오타쿠 은혜는 쉽게 알아먹을 수 있었다.

 좋은 쪽으로.

“아무 일도 없을  없잖아!”

그래, 그 대사는 무슨 일이 있었을 때 쓰는 대사였다. 정우처럼 드립을 치기 위해 써먹는 대사가 아니었다. 그게 재조명되어 드립용으로 쓰이는 건 지금은 먼 미래.

그렇기에 오히려 정우가 당황했다.

‘어째서 안 통하지?’

“그러─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우림이는 그렇게 말하며 일부러 정우 쪽으로 몸을 기댔다. 밥을 먹다 자신을 향해 몸을 기대는 우림을 보고, 정우는 인상을 찌푸리며 어깨를 밀어냈다.

“뭐해.”

“으응, 그냥.”

“…….”

은혜가 우림이를 죽일  노려봤지만, 우림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노려보면  어쩔건데, 라는 시선으로 반격하기도 했다.

“은혜는 말이야.”

“……뭐.”

“재밌네.”

“지금 시비거는거지? 그렇지? 맞지?”

“아닌데? 장난이야. 장난.”

우림이는 웃으며 장난이라고 밀어붙였다. 은혜는 탐탁치 않았지만, 장난이라는 데 화를 내면  좁은 사람으로 보일까 자리에 앉았다.

“아아, 그나저나 정우야. 운동회 대회 뭐 나갈거야?”

“응? 나가다니?”

“몰랐어? 모든 사람  종목씩 필수 참가야.”

“……필수라고?”

그 말에 정우와 은혜가 살짝 몸을 떨었다. 우림이를 운동시킬 계획만 짰지, 자신이 뛸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은혜는 그냥 운동을 싫어해서 그런거고.

‘잠깐만, 필참이라는 건.’

우림이도 무조건 참가한다는 뜻인가? 그걸 깨달은 정우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럼 너는  나갈건데?”

“나?  터트리기.”

모두가 참여하는 단체전인데다가, 크게 움직이지 않는 종류. 하지만 그녀의 병을 생각해보면 당연하다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학교정도 되면 그녀가  병을 앓고 있는 사실은 알고 있을테고, 그녀를 멋대로 굴렸다가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책임을  수 없으니까.

“달리기는, 안 나가?”

“달리기? 지금 달리기라고 그랬어?”

우림이는 질색하는 표정으로 정우를 바라봤다. 달리는 건 가장 빠르게 심장을 뛰게 하는 운동  하나였기에 추천한 건데, 왜 그러나 싶었지만.

그녀의 가슴을 한 번 쳐다보곤 금세 고개를 끄덕였다. 저 가슴을 가지고 뛰면 쿠퍼 인대가 늘어나는 게 아니라 끊어지겠지.


“달리기는  같은 사람은 안 되고…… 은혜처럼 작은 애들이 빠르지 않을까?”


“뭐!? 지금 작다고 그랬어!?”


“아니아니, 평균 크기라고 그랬는데?”

“그래! 가슴 커서 좋겠다! 하지만 여자는 가슴이 전부가 아니거든!”

그 말을 들은 정우는 슬쩍 눈을 돌렸다. 은혜의 가슴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평균이었다. 그에 비해 우림이는 위에서부터 한 손가락 안에 드는 압도적인 가슴의 소유자.

세계관 최강의 거유다.

“으음, 그래.”


그렇기에 여유가 넘친다. 원래 전문가가 하는 발언과 일반인이 하는 발언에는  차이가 있는 법. 하물며 빈유에 가까운 은혜가 하는 말은 거유인 우림의 콧바람만도  했다.

“근데 있지.”


“……설마.”

“나는 가슴만  게 아니라,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예쁘고, 집안도 좋은 아친딸인데?”

“아아아!”

그렇다. 가슴 큰 여자는 멍청해보인다는 속설이 있지만, 정작 그녀는 가슴도 크고 머리도 좋은데다가 히로인으로 만들어진 만큼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모든 부분에서 은혜의 상위호환. 은혜는 우림을 이길 수 없다!


“……그치,  같은 게 뭐, 이따위 존재지 뭐.”

은혜는 좌절하고, 절망에 빠졌다. 자기책망의 루프에 빠진 그녀를 보고 있다가 정우가 한 마디 거들었다.

“사람의 가치는 그런데 있는 게 아니야.”


“저, 정우야…….”


“은혜 네가 가슴이 좀 작을 수는 있어도, 사람은 착하잖아.”

“……정우야.”
은혜는 순식간에 천국과 지옥을 넘나들었다.

* * *

“자, 애들아. 단체복 왔다!”

시간이 흐르고, 얼마  겨우내 주문을 완료한 단체복이 도착했다. 남녀모두 허벅지에  달라붙는 반바지에, 스커트처럼 늘어지는 기다란 상의를 입었다. 마치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나 입을법한 복장.

‘고대 그리스는 개뿔이.’

아무리 반바지 위에 걸치는 식으로 입는다지만 상의가 치마처럼 늘어지니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그래서 지나가던 은혜에게 장난을 쳤다.

“에잇.”

“…? 뭐하는 거야?”

치마를 들추는 장난. 그러나 안에 반바지를 입고 있어서인지, 애초에 이쪽 여자애들은 수치심이라는  없는건지.

치마를 들춰도 그녀는  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은혜답지 않다. 그래서 재미 없다. 흥미를 잃은 정우는 장난 치는 방식을 바꿨다.

“야, 은혜야.”

“왜 부르는…… 뭐, 뭐해!”


“어때? 보고 싶어?”

자신의 치마를 반쯤 들어올리자, 그 아래는 바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은혜는 침을 꼴깍 삼켰다
.
“이 안이 그렇게 보고 싶어?”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에이 무슨. 꼴렸지?”

정우는 치마를 펄럭이면서 은혜를 가지고 놀다가 갑자기 찾아온 현자타임에 주눅 들었다. 자신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애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데 치마를 들락날락하며 이성을 괴롭히는 게, 상당히 자존감이 상하는 일이었다.


“됐다…… 은혜야. 이리온.”

“……또,  뭔데.”

은혜는 이름이 불리자 불안에 떠는 강아지처럼 살짝 불안해하면서도 천천히 다가왔다. 진짜 살아 숨쉬는 강아지 같은 그 모습에 치유됨을 느낀 정우는 그녀를 껴안고 의자에 앉았다.

“아아, 우리 은혜. 그래그래. 앞으로도 쭉 착하게 있어야한다?”


“뭐, 뭐야.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녀는 살짝 그르릉거리며 몸을 비틀어  더 안쪽으로 파고들며 자신이 편한 자세를 잡았다. 키 차이가 10cm쯤 나 안기 딱 좋은 크기였다.


‘흐아아…….’


은혜는 자신을 안은 정우에게서 슬며시 새어 나오는 냄새에 취했다. 마치 개처럼. 조심스레 킁킁대며 정우의 살내음을 맡았다.

그것만으로 아랫도리가 흥건히 젖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생리현상이니 어쩔  없다.


‘아아, 하고 싶다.’

그런 마음을 가득 담아, 은혜는 정우의 가랑이와 맞닿아 있는 엉덩이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흔들리는 게 꼬리 대신 엉덩이라는 게 문제였지만, 주인을 향해 애교 부리는 강아지와 다를 게 없었다.

“어허!”

“히잉…….”

그러나 정우는 그녀의 머리에 꿀밤을 먹여 헛된 짓을 못 하게 만들었다. 은혜는 풀이 죽어 고개를  집어 넣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연인마냥 꽁냥대고 있을 때, 담임 선생님이 들어와 애들을 호출했다.


“애들아, 가자.”
“1반, 가즈아아아!”
“가즈아아아!”


체육대회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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