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7화 〉NO.2 소우림 가슴은 소를 우림 (37/218)



〈 37화 〉NO.2 소우림 가슴은 소를 우림

[선서자 본인을 포함한, 이상 1078명은 스포츠맨십을 가지고 정정당당히 승부할 것을, 선서합니다.]

학생회장이 운동장에서 대표로 선서를 마치고, 운동회가 시작했다. 1,2,3학년 전부 모이는 대 운동회. 평소 만날 일이 없는 2학년, 3학년들과 만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기회이기도 했다.

‘3학년엔 히로인이 없고.’

히로인을 만들기 귀찮아서 인지, 아니면 고3은 연애할 여유도 없다는 건지. 3학년에는 히로인이 없었다. 반대로 주인공이 3학년이 되었을 때 1학년에도 히로인이 없었고.

레스토랑의 쉐프 배유나같은 경우도, 게임 속에선 히로인이 아니었으니. 학생은 학생만 사귀라는 제작자의 미쳐버린 집착이 보이는 부분이었다.

‘2학년 히로인들은…… 말을 걸 명분이 없네.’

같은 1학년이라면 그나마 복도를 걸어가다 만날 가능성이라도 있지, 다른 학년이라면 아예 만날 일이 없다. 급식을 먹으면 그나마 가능성은 있었지만 정우는 그마저도 도시락으로 떼우고 있었고.

‘뭐, 됐어. 일단 지금은 같은  애들 꼬시기에도 바쁘니까.’

천천히 해야 한다. 문어발은 좋지만 동시에 컨트롤하기가 힘들다. 사람의 손발은 두 개라는 걸 떠올려야한다.

“1학년 1반, 파이팅!”
""파이팅!""

운동회가 시작하고, 아이들은 각자 나가는 종목으로 출전했다. 축구 예선과 농구 예선으로 출전하고, 계주 달리기도 준비를 시작하고.

정우는 얌전히 앉아 대기했다. 남자들은 여자에 비해 신체능력이 뒤떨어져 출전 항목도 적고, 애초에 그리 활동적이지 않다.

“은혜야, 화이팅!”

“응…… 열심히 하고 올게.”

운동이 특기가 아니지만, 아무 종목도 나가겠다는 말을 하지 않아 결국 가장 힘든 농구 종목에 참가하게 된 은혜는 힘없이 경기장으로 나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정우는 자기 옆에 앉은 우림이를 바라보았다.

“왜?”

평범한 무복의 앞섬이 쓸데없이 늘어나 가슴의 절반 이상을 노출하고 있으며, 너무나 앞으로 치우쳐진 옷 때문에 배꼽은 전부 가리지도 못  노출하고 있었다.

그녀가 평소 자기관리를 열심히 하지 않았더라면 틀림없이 뱃살이 툭 튀어나와 볼품없는 모습을 보였겠지.

“넌 뭐 안 나가?”

“말했잖아. 박 터트리기.”

“다른 건?”

“알면서 묻는거야?”

우림이가 정우를 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 말대로 정우는 그녀가 불치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병자인 걸 알면서도 격한 운동을 시킬거냐, 우림이는 그렇게 묻고 있었다.

하지만.

“만약, 내가 내일 죽는다면. 오늘 뛰지 못 했다는 사실이 억울할  같아.”

“응?”

“그러니까. 병이 있다고 몸을 사리는 것보다, 무언가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웃기는 소리네. 그런 소리 하는 사람들 중에서 진짜 불치병인 사람 한 사람도 못 봤어.”

그녀의   반응에, 정우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나마 호감도가 쌓여 있어서 이정도로 끝났지, 만약 그냥 반 친구인데 이런 소리를 했더라면 쌍욕에 뺨을 맞아도 무죄였다.

‘어떻게 하면.’

어떻게 하면 그녀를 뛰게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녀를 죽음으로 내몰 수 있을까. 가장 쉬운 방법은 섹스다. 그녀를 벗기고 박으면 된다. 다만 그건 그녀를 정말로 죽이는 방법이다.

한계가 찾아와 쓰러지면, 그녀는 죽는다. 한계가 오기 전 한계가 임박했다는 걸 알리고 수술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게  어려운 일이었다.

“우림아.”

“왜?”

“……사실대로 말할게.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


“뭔데?”

“나 실은, 거유가 흔들리는 걸 보면 흥분하는 변태야.”

결국 정우는 그녀가 뛰게 만들기 위해 말도 안 되는 무리수를 던졌다. 그녀가 정상인이라면 이런 말을 듣고 무언가  리가 없다.


“……어, 얼마나?”

그래, 정상인이라면. 그리고 게임 속 히로인들 중 정상인이 있을  만무했다. 애초에 평범은 특별하고 특이해야하는 히로인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속성이니까!


“으음, 보고만 있어도 가슴이 떨리고…….”

“……떨리고.”


“흥분해서 잠 못 이루는 정도.”


“잠깐만 기다려.”

 말을 들은 우림이는 곧장 계주로 나가기로 한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발이 느렸지만 뽑기로 뽑혀 어쩔 수 없이 계주로 참가한 아이였다.


그녀와 이것저것 말을 나누더니, 우림이는 곧장 돌아와 웃음을 지으며 엄지를 펼쳤다.


“이 누님이 곧 보여줄게.”


그래, 결국 그녀도 사랑에 맹목적인 소녀였을 뿐이다.


* * *


“괜찮겠니?”

“네. 괜찮아요.”

우림이는 선생님의 허락까지 받은 뒤, 계주로 출전했다. 아이들은 그녀의 커다란 가슴을 보고 걱정스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스포츠 브라로 단단하게 고정하고 달린다고 하더라도, 수 kg 짜리   개를 얹고 뛰는  상당히 불리한 경기였으니까.


“뭐야뭐야, 갑자기 뭔데?”


뒤늦게 농구 경기를 이기고 땀에 찌든 채 돌아온 은혜가 운동장에 서있는 우림이를 보고 물었다.

“우림이가 나가겠데.”

“아니, 저 몸으로?”

그 말대로, 주변에 있는 다른 아이들은 공기 저항에 유리한 판정을 받기 위해 가슴이 껌딱지 만한 아이들로 준비되어 있었다.


빈유들 사이에 낀 폭유는 그것만으로도 시선을 확 끌어 당겼으며, 동시에 주목받기 위해 수를 쓴다고 욕도 얻어먹었다.


정우를 바라보던 그녀는 다른 아이들과 시선을 마주치고 엄지를 피며 걱정 말라는 제스쳐를 보냈다.


잠시 후, 경기가 시작하고. 우림이는 전력으로 뛰었다. 그래, 전력으로.

출렁─!


스포츠 브라로 단단하게 고정됐음에도 불구하고 도합 10kg에 달하는 두 개의 가슴은 격렬하게  아래로 흔들렸다.

아이들은 그 장면을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만큼 보기 힘든 일이었다. 그녀만한 거유가 전력으로 달리는 모습은.

그리고 정우는, 자신이 했던 말 그대로 그녀의 흔들리는 두 가슴을 보면서 흥분하고 있었다.

‘잠만, 너무 꼴리는데.’


두 다리를 꼬면서 최대한 발기한 물건을 감추고, 멀리서도 눈에  띄는 거유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여성이 저렇게 전력으로 달리기에 열중하는 모습이, 그로 인해 흔들리는 중력이 아름다운 궤적을 그렸다.


“……정우야. 아니지?”


“으, 응? 뭐가?”


“저거, 저거 보려고 달리라고 한 거. 아니지?”

“아니지.”


보고 싶어서 뛰라고 한 게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어서 달리라고 한 거다. 그러니까 정우의 말 자체는 틀린 바 없다.


정우가 거짓말은 하고 있지 않다는 걸 알아차린 은혜는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달리고 있는 우림이를 바라봤다.


‘저 망할 년.’


지금 당장은 아이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지만, 그녀의 커다란 가슴은 모든 학생들의 뇌피질에 남아 평생을 살아가리라.

‘그 가슴으로 정우도 꼬신거지?’

은혜는 자신에게는 없는, 아니. 인류 대부분에게 존재하지 않는 폭유로 정우를 꼬신 망할 불여시 같은 우림을 노려보았다.


출렁!

하지만 우림이는 아랑곳 하지 않고 출렁였다.

* * *

달리기 예선이 끝나고, 땀 범벅이 되어 돌아온 우림이는 정우를 향해 달려 들었다. 땀에 흠뻑 젖었지만, 더러운 암내가 아닌 꽃 향기가 풍겨 왔다.

“어때, 흥분했어?”


첫 마디가 그렇다는 건 둘째치고, 정우는 땀으로 젖어 반쯤 비치는 그녀의 상의를 바라보고 있었다. 분홍색 레이스로 장식된 브라가 비치고 있었다.

야했다.


“응. 흥분했어.”

“아아, 정말?”

말만으로는 믿을  없다. 우림은 그렇게 말하며 정우의 옆자리에 슬며시 앉았다. 모두가 운동장에서 열리는 경기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


정우가 조심스레 우림의 손을 들어 자신의 허벅지쪽으로 가져온다. 반바지 위로 스커트가 달린 무복 특성상, 우림이의 손은 스커트에 가려졌다.


“어때, 보여?”


“……응.”


우림이는 반바지 속 우람차게 솟아 오른 정우의 물건을 확인하곤, 씨익 웃으며 손을 뻈다. 그리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그걸 왜 맡아.”

“아니, 뭔가 냄새가 중독성있어서.”


원래 세상에서도 꼬카인이라고 불리며 강한 중독성을 보이는 성분이었지만, 여성의 성욕이 더 그윽한  세계에선 더더욱 중독성이 강했다.

“하지마.”

“응. 알았어.”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땀으로 끈적끈적한 팔뚝을 정우의 몸에 비벼대기 시작했다. 정우는 끈적이는 피부에 질색하며 그녀를 밀어냈지만, 우림은 그럴수록 더욱 달라 붙었다.

“하아, 하아…….”


“우림아?”


“으, 응.”

“괜찮아?”

“아, 응. 오랜만에 뛰었더니 체력이…….”

“운동  해야겠다.”


“그러네.”


우림이는 미친 듯이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고, 물을 마시고 오겠다며 급수대로 향했다. 조금 비틀거리는 걸음에 정우가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놓지 않고 있었을 때.


털썩.

결국 우림이가 쓰러졌다.
계획대로다.


* * *


“……아아, 여긴?”

“양호실.”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 밖에선 노을이 천천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운동회 1일차가 끝났다. 그녀는 자신이 누워있는 침대 앞에서 앉아 있는 정우를 보고 웃음을 지었다.


“운동회는?”

“마리가 캐리해서 끝.”

“캐리……?”

“양학했다고.”

“그래.”


우림이 쓰러져 생긴 공백은 마리가 11인분을 해서  종목 4강 진출로 마무리되었다. 마리는 오랜만에 몸을 풀었다며 좋아했다.

아이들에게 피해를 덜 끼쳐서 다행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우림이는 고개를 들어 정우를 바라보았다.

“나, 5년이래.”


“……응?”


“남은 수명. 5년이랬어.”


정확한 수명은 알려주지 않았지만, 대략적인 수명은 알고 있었다. 부모님도 주치의도 직접 입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자기 일이다.

가끔 실수로 흘리는 말들이나, 간호사들이 중얼거리는 말을 귀동냥해 들으면 자신의 수명이 어느 정도 남았는지 알 수 있다.

“지금이 17살이니까, 22살. 뭐, 이것도 정확하진 않으니까. 20살이 되자마자 죽을 수도 있고.”


그녀의 생각대로, 그녀는 20살이 되는 순간 죽는다. 정확히는 20살이 되는 생일날 죽는다. 그녀의 생일은 따듯한 봄날. 5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런데, 그게 무조건 5년이라는  아니고…… 약을 먹고, 운동도 안 하고. 정양을 해야 5년이래.”

즉, 지금처럼 마구잡이로 뛰어다니고, 때떄로 키스를 하고, 섹스도 하는 지금의 그녀의 기대 수명은 5년은 커녕 3년도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3년. 20살. 성인이 되어 인생을 막 꽃피기 시작하는 시점에. 그녀의 꽃은 그대로 저물고 만다.


“그러니까, 나는 20살이 되면 죽어.”


그럼에도, 그녀는 포기할  없는 게 있다. 짧디 짧은 수명을 버려가면서라도 손에 쥐고 싶은 게 있다.

목숨보다 소중한  생기고야 말았다.

“이런 나라도, 좋아해줄거야?”

두 눈이 마주한다. 반짝이는 눈동자 속에 기대감과 불안감이 마구잡이 흔들리고 있었다.


“괜찮아.”

넌 죽지 않는다.
죽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한 번 죽어야 한다.
그러니까.

“나를 믿고, 한 번만 죽어줘.”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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