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8화 〉NO.2 소우림 가슴은 소를 우림 (38/218)



〈 38화 〉NO.2 소우림 가슴은 소를 우림

“……죽어, 달라고?”

“응.”

정우의 말에, 우림이 그의 두 눈동자를 바라봤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일까, 죽어달라니. 그런 듣도 보도 못한 부탁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막무가내로 화를 내기 보단, 어째서 그런 소리를 하는건지 들어보기로 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으음,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가장 쉬운 방법은, 이 세상은 게임이고, 그녀는 히로인, 자신은 주인공이라고 설명하는 게 빠르긴 했다. 하지만 그런 방법을 과연 제작자가 두고 볼 것인가.

“얼마  네가 가져갔던, 내 오나홀 있지.”

“───? 그게 뭔데?”

“왜, 네가 가져갔던 내 물건 있잖아.”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어. 정우야.”

역시나, 그녀는 정우의 말을 아예 알아듣지  했다. 정우는 시험삼아 캐릭터, 주인공, 시스템 상점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 모든 말들을, 그녀는 듣지  했다. 마치 무언가의 필터에 걸려 정보가 제한되는 것처럼.

‘망할 제작자가.’

그렇다면 직접적인 단어를 쓰지 않고 우회적으로 설명하면 된다. 정우는 어떻게 그녀를 설득하면 좋을  떠올렸다.

“나에게는 초능력 비스무리한 게 있어.”

“초능력……?”

“그래, 그때 그거처럼.”

우림이는 그제야 정우가 자신에게 사용했던 오나홀을 떠올렸다. 자신이 가져가 직접 몸으로 체험한 물건.

확실히 그건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마법같은 물건이긴 했다. 정우에게 그런 식으로 물리 법칙을 무시할 수 있는 초능력이 있다면.

어쩌면 자신의 병도 고칠 수 있는 게 아닐까.

“맞아.”

정우는 마치 그녀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먼저 입을 열었다.  말에 그녀의 가슴이 조금씩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네 병을 고칠 수 있어.”

기적이 일어났다.

* * *

“뭐든지 한 번 성공 시킬 수 있는 초능력?”

“대충 그런 느낌이라고 보면 돼.”

정확히는 우림이의 병만을 고칠 수 있는 능력이지만, 정우는 설득력을 조금  높이기 위해 약간의 거짓말을 섞었다.

그 어떤 일이든  한 번 성공 시킬 수 있는 초능력이라고. 일생에  한 번밖에  수 없지만 지금 너를 위해 쓰고 싶다고.

그 말을 들은 우림이는 감동이라는 듯 눈망울을 적셨다가, 무언가를 떠올린 듯 흠칫하고 정우를 바라보았다.

“뭐든지, 라면……. 로또같은것도?”

“으음, 글쎄. 해보진 않았지만 미국의 슈퍼볼 같은 것도 되지 않을까.”

수십 억에서 수천 억까지. 자신을 위해 그런 큰 돈을 포기하겠다는 정우를 보며 우림이는  감동을 먹었다.

자신도 그를 위해 모든 걸 내바칠 자신이 있지만, 실제로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를 위해 사용할 지 아닐 지, 확신할 자신이 없었다.

사람의 마음은 간사한 법이니까. 힘을 가지면 그를 위해 쓰겠다고 입으로는 약조할 수 있지만, 그저 입으로 하는 약속일 뿐이다.

그처럼 실제로 사용할 자신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게, 그녀에게 그 힘이 있다면 이뤄낼 수 있는 수많은 길들이 눈앞에 훤히 드러났으니까.

뭐든지 1번에 한해서 이뤄지는 능력? 그런 능력이 있다면 세계평화, 세계정복, 우주여행,  무엇이든 꿈이 아니다.

그런 커다란 가능성을, 그저 가슴 조금 클뿐인 여학생에게 투자한다는 건,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미련한 짓이었다.

그래,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정우야, 역시 너도.’


나를 좋아하는 구나. 우림이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만큼 그가 포기한 능력이 커다랗게 느껴졌고, 동시에 그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우림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런 능력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을 위해 움직였다.


그렇다면 목숨  개쯤이야, 언제든지 내버릴 수 있었다.


“알았어.”


부모님의 설득은 맡겨달라. 자신의 목숨, 언제든지 버릴 수 있다. 그치들은 그녀가 살기보다 죽기를 더 바라겠지만, 죽음으로 내달리는 모습을 내비친다면 체면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그녀를 살려 놓으리라.

“부모님은, 내가 설득해볼게.”

그녀의 첫 반항기가 시작되었다.


* * *

집으로 돌아간 우림이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집으로 올라갔다. 정우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 큰 감정을 지니지는 않지만, 부모였고 혈육이었다.

지금부터 하려는 짓은 어찌보면 패륜이라 말해도 좋을 짓이었다. 십수 년간 교육받고 세뇌되어온 그녀의 정신은 전력으로 거부 반응을 보이며 그녀의 앞길을 막았다.


팔다리가 후들 거리고, 폐는 쪼그라들고, 심장은 빠르게 뛰며 그녀의 수명을 깎아 먹는다. 좋다. 계속 이렇게 자신을 죽여라.


죽음에 한 발자국 다가갈수록, 그들을 설득할 가능성은 높아지니까.

“다녀왔습니다.”


“……앉아라.”

부모님은 이미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기 아이가 달리기를 하고 나서 기절한 것이다. 부모에게 연락이 가지 않을 리 없다.

그들은 이미 사전상황을 모두 알고 있었다. 우림이 먼저 나서서 달리기를 했다는 사실과, 그 반동으로 쓰러졌다는 사실을.

“일단 물으마. 왜 그랬지?”

단호한 말투의 아버지가 그녀에게 물었다. 차갑고 날카로운 목소리. 그녀의 몸은 절로 떨리며 겁을 집어 먹기 시작했다.

‘괜찮아.’


그와 동시에 머릿속에서 정우의 격려가 떠오른다. 괜찮다. 자신은 이겨낼 수 있다. 고작 이정도 두려움쯤이야.


‘괜찮아.’

“왜 그랬냐니까.”

“……목숨은 짧지만, 추억은 영원한 것.”

“뭐?”


“아버지. 어머니. 드릴 말씀이 있어요.”


우림이는 태어나서 처음, 부모님에게 부탁을 했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부탁이란 걸 해본 적 없는 그녀에게 있어서 이런 건 생소한 일이었지만,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는 법.


“저, 수술받게 해주세요.”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냐. 수술이라니, 성공률이 얼마나 낮은지 알기나 해?”

“살고 싶어요.”


살고 싶다. 살고 싶어졌다. 지금까지 그녀가 단 한번도 입에 담지 않았던 그 말. 죽을 예정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만이, 겨우내 입에 담는 그 말.

그녀는, 그녀의 부모도 고의적으로 집에서 그 말을 담지 않았다. 살고 싶어 할 수록 죽음에 더 가까워진다는 생각이 드니까.


그렇기에 지금에 와서야 일부러 입에 담았다. 살고 싶다. 다만 그것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다. 정우를 위해서.

내 사랑을 위해서.

“살고 싶어요.”

“……우리는 너를 잃을 수.”


“알아요. 실패할 수도 있다는 거.”


정확히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1%의 성공률은 세계 최고의 천재들이 세계 최첨단의 기술을 사용해 겨우내 얻어낸 기적 같은 확률.

성공하는 게 기적이라 말할 수 있는, 남겨질 가족들을 위한 위안.


“하지만, 저는 오늘 느꼈어요.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그렇다면 그 남은 세월이라도 소중히 해야지. 안 그러니?”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그녀를 설득하기 위한 부드러운 말투.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의 정신은 이미 확고히 의지를 굳혔고.


금강처럼 단단해진 그녀의 각오는 결코 깨지지 않는 불괴의 정신이었다.

“아뇨. 그걸로는 안 돼요.”


“그러니까…….”


“고작 1,2년으로는 안 된다고요!”


평생이다. 자신은 평생 그를 사랑하고 싶다. 1년 2년 같은 손으로 셀 수 있는 짧디 짧은 세월이 아니라.


평생.
100년.
인생의 전부를.

“고작 1년…… 1년을 살고 깔끔하게 죽을 바에, 100년을 살기 위해 추하게 발버둥 칠래요.”

어떻게든 수술을 받고 싶다는 그녀의 의지에 따라, 부모님은 일단 주치의와 이야기를 하고 결정하자는 의견을 내렸다.

성공이었다. 부모님의 완고한 의지를 뒤바꾼 것만으로 성공이었다. 이대로 주치의에게 간다면, 그녀의 지나치게 짧아진 수명을 알아차릴 것이고.


2년이니 3년이니 안심하고 있던 부모님도, 재빠르게 태도를 바꾸겠지.


“고마워요.”


우림은 처음으로 두 사람에게 감사인사를 보냈다. 대접받는 게 당연했고, 보살펴주는 게 당연했던 그녀의 입에서 처음으로 감사인사가 흘러 나오자, 두 사람은 눈물을 흘렸다.

겨우내 어른이 된 딸을 떠나 보내야할 시기가 왔다.


* * *

병원에  세 사람은 우림이의 정밀검사를 실시했다. 짧지만 기나긴 기다림끝에 모든 검사가 끝나고, 주치의가 일반인은 알아볼 수 없는 여러가지 차트를 보여주며 결과를 보고했다.


“우림 양. 운동도 흥분도 금지라고 했을텐데요.”

“네.”

“하아…… 농담이 아니라 진짜 목숨이 위험하다니까요?”


“알고 있어요.”

“……부모님. 따님분은 내보내 주시겠습니까?”


“아뇨, 오늘은 우림이도 같이 들을게요.”

평소대로 우림이를 밖으로 내보내려던 주치의는 우림이의 몸상태와 부모님의 바뀐 태도를 보고 그들이 마음을 다잡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죽음을 각오한 사람들 앞에서 무방비하게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주치의도 헛기침을 내뱉고 자세를 다잡았다.

“반년 남았습니다.”

“바, 반년!?”

“잠시만요 선생님! 얼마전에는 최소 3년은 버틸 수 있을거라고 하셨잖아요!”

“그거야, 그녀가 아무것도  했을때를 기준으로 잡은 평균 심박수를 보고 말씀드린거죠. 지금 그녀의 수명은 앞으로 길어봐야 반년입니다.”

예상보다 반의 반도 안 되는 짧은 수명을 통보받고, 그녀의 부모님은 우림이를 불쌍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이 창창한 생명이 앞으로 반년, 200일도 남지 않았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있는가.

“오, 하나님…….”

그녀의 부모님은 그저 신을 찾았다. 그러나 우림이는 인간을 향해 물었다.


“수술, 언제쯤 할 수 있나요?”


“……알다시피 성공률은.”

“알아요. 1%.”

주치의는 금방 병원의 남은 병실과 여러 의사들의 수술 일정표를 확인하곤 입을 열었다.

“한 달은 입원하셔야 합니다.”


“할게요.”

“잠깐만! 우림아!”


“어차피 반년 남았다면서요? 그럼 그냥 빨리 하는 게 나아요.”

정우를 믿고 있는 우림이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지만, 그녀의 부모님으로서는 탐탁치 않은 반응이었다.


반년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마저도 앗아가버린다면 어떻게 하겠다는건가.

“바, 반년만 더 살다가 결정하는 건 어떠니?”

“원래도 3년 남았다면서요? 그게 갑자기 반년이 된건데, 반년이 하루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요.”

정론이었다. 3년의 수명이 반년이 되버린 것처럼, 반년의 수명도 절대적인 건 아니었다. 그녀는 이제 정말로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시한부가 되버린 것이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치의가 물었다. 우림이는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어쩔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자기 손으로 자식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빠트리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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