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NO.2 소우림 가슴은 소를 우림
“우림아! 괜찮아?”
“아하하, 입원해버렸어.”
“금방 낫는거지? 응원할게!”
원래부터 친화력이 좋고 인싸였던 그녀답게, 그녀의 병실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온갖 친구들이 들렸다. 그러나 우림이는 알고 있었다.
그 중에서 그녀가 진정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으며, 그들도 우림이를 진짜 친구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놀러왔어.”
“정우야.”
오직 정우만이, 자신의 친구이자 사랑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입에 발린 소리를 하면서 그녀를 걱정했지만, 정우는 그녀가 당연히 나을 거라는 듯 웃으며 놀러왔다 말했다.
그 자신감에 그녀도 덩달아 힘을 얻었다.
“이미 네 수술이 성공하기를 빌었으니까, 실패는 안 할거야.”
상점에서 우림이의 수술 성공 이벤트를 구매한 정우는 담담하게 말했다. 시스템이 보장하는 한 그녀의 수술은 실패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게 기적이라 말하겠지. 시스템의 능력도 기적이라면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었으니,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 그럼 시간 보낼 일만 남았네.”
“……의심 안 해?”
“의심?”
정우의 말에, 오히려 우림이 그를 크게 뜬 눈으로 바라보았다. 의심이라, 그게 무슨 뜻이었더라.
“그런 걸 할 필요가 있나? 우리 사이에.”
“우리 사이라니, 친구인데.”
“가슴 보여주고 허벅지를 만지작거리는 친구 사이?”
“섹스 프렌드도 친구는 친구니까?”
죽음을 앞에 둬서 그런걸까, 우림이는 조금 더 초탈한 기분으로 그를 대할 수 있었다. 그래, 마치 둘도 없는 절친처럼.
“요즘 교실은 어때?”
“어떠냐니, 똑같지.”
“그래…… 역시 그렇구나.”
자신이 없는 교실도 평소와 똑같다는 말에 우림은 약간 실망했다. 그렇게 그녀를 위로하고, 응원한다던 친구들도 막 입원했을 당시 단체로 왔던 병문안을 제외하면 두 번 다시 들리지 않았다.
오직 정우만이 매일같이 들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눴다.
“나 없어서 심심하겠네.”
“글쎄, 네가 제일 심심할 걸?”
“아하하, 그러네.”
심심하다고 할까, 수술의 사전준비로 그녀의 몸은 천천히 망가지고 있었다. 독이나 다름 없는 약들과, 매일 같이 몸에 들어가는 수액. 맛도 없는 병원식을 먹다보면 이곳이 지옥이나 다름 없었다.
아무런 자극이 없는 지옥. 그래서 정우가 들고 오는 이야기들은 그녀에게 있어 이 시간을 버틸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있지. 나 정말 죽는 거 아니지?”
약물이 들어갈수록, 강철처럼 단단해보였던 그녀의 의지또한 조금씩 깎아 내려갔다. 그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믿던 그녀의 몸이 점점 의심으로 가득찬다.
매일 같이 몸에 독을 쑤셔 넣는다면 누구라도 그렇게 되리라. 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녀의 몸에선 약간의 시체 냄새가 풍겼다.
“죽더라도 살려줄테니까, 걱정하지마.”
“너만 믿는다? 죽으면 죽어서라도 너를 저주할테니까.”
두 사람이 가벼운 애정표현을 나누며 희기애애하게 시간을 보낼 때, 면회 시간이 끝나고 간호사가 들어와 정우를 퇴실시킨다.
우림이는 이 시간이 가장 싫었다. 가족도 친구도 없이 오직 병과 자신만이 맞싸우는 시간이.
두근!
“윽…….”
심장이 강하게 요동치며 그녀를 괴롭혔다. 그녀의 남은 수명까지 얌전히 기다리던 폭탄은 자신의 위기를 느끼고 미친듯이 발버둥치고 있다.
살고 싶은 건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질병또한, 생존 의지를 격렬히 보내고 있었다. 그게 그녀의 몸을 좀 먹어간다는 문제가 있었지만.
“괜찮아…… 괜찮을거야…….”
그녀는 자신의 팔뚝을 감싸 안으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수술을 일주일 남기고 면회마저 금지된 나머지 매일 매일이 살아 숨 쉬는 지옥과도 같던 그때.
고통스러운 시간을 흘러 넘기고, 수술날이 도래했다.
* * *
6월 말. 하복과 동복의 혼합기간이자, 날씨가 점점 더워지기 시작하는 초여름. 담임 선생인 신주희는 탁상에서 시험지를 걷으며 아이들을 둘러 보았다.
“자, 기말고사 수고했고. 재밌게 놀아라.”
“아싸아아아!”
“놀러갈 사람!”
“우효오오오! 기말고사 끝이다제!”
1학기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모두 끝내고 첫 여름방학만 남겨놓은 상황. 정우는 천천히 책가방을 정리했다.
“갈 거야?”
옆으로 다가온 은혜가 물었다. 정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휴대폰을 확인했다. 어제 10시에 수술을 모두 끝내고, 어젯밤 깨어났다는 문자를 받았다.
당연, 들려야하지 않겠는가.
“응.”
“……지극정성이네. 그 년은 네가 이렇게 마음고생하는 거 알까 몰라.”
“뭐야, 우리 은혜. 질투하는거야?”
“아, 아니거든?”
은혜의 질투를 받아 넘기고, 정우는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확실히 요 한달 간 다른 히로인들과의 사이는 그리 진척되지 않았다.
어째서일까, 그녀들은 그저 0과 1로 만들어졌던 컴퓨터 그래픽이며, 하는 말들은 모두 제작자가 미리 만들어놓은 대사에서 하나둘씩 꺼내 읊기만 하는 인형이었을텐데.
‘그렇구나.’
정우는 어느새 자신이 그녀들을 단순한 히로인, 캐릭터가 아닌 사람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세상으로 떨어진지 100일이 넘어서야 드디어. 어느 정도 이 세계에 동화된 것이다.
같은 사람이 목숨이 자신의 손에 걸려 있는데, 희희낙락 다른 히로인들을 공략하는 게 마음에 걸린 모양이다.
‘웃기지도 않는 소리지.’
자신이 그녀를 위해 뭘 했단 말인가, 그녀가 죽는 것도 사는 것도 모두 운명으로 정해진 일일뿐인데.
자책을 하며 병원 앞에 도착한 정우는 병실로 향했다. 이미 몇 번이고 병문안을 왔기에 몇 호인지는 묻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른 환자들의 눈초리를 받으며 병실로 향했다. 그 층에 있는 간호사들이 눈을 마주치고 가볍게 눈인사를 건네왔다.
‘너무 자주 왔나.’
정우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일인실이자 우림이 입원한 병실로 향했다. 문앞에 멈춰서 가볍게 노크를 하고 문을 열자, 안쪽에선 상의를 벗은 채 몸을 닦고 있던 우림이 보였다.
“아, 미안. 나갈게.”
“아니야, 들어와.”
우림이는 재빨리 가슴을 감추고 상의를 걸쳤다. 환자복은 셔츠 형식으로 되어 있는 옷이여서 금방 입을 수 있었다.
그녀가 상의를 걸치고 나서야, 정우는 안으로 들어와 침대 옆에 준비된 의자에 앉았다. 수술 준비로 삐쩍 마른 그녀가 정우를 내려다보았다.
“혼자야?”
“어, 싱글이야.”
“응?”
“아니, 혼자왔다고.”
그렇게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자 갑자기 우림이가 눈물을 흘렸다. 정우는 깜짝 놀라며 휴지를 찾았다.
“아니, 왜 울어?”
“흑, 아니. 그냥…… 살아있구나, 싶어서.”
수술이 성공하고 나서도, 그녀는 자신이 살아 있다는 실감을 받지 못 했다. 주위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그녀의 생존과 의사의 기술을 칭송했지만 아무래도 삶의 생동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살고 싶었던 이유이자 삶의 이유. 정우가 찾아온 순간부터 모든 게 달라졌다.
그녀는 살아남았다. 1%의 확률을 뚫고, 그녀를 죽이려는 세상의 악의를 이겨내고 살아남았다.
“흐아아앙!”
그 사실이 너무나 놀라워서, 너무나 감격스러워서, 수술이 끝나고서도 울지 않았던 그녀는 눈물을 터트렸다.
정우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품속에 끌어 안았다. 얇은 교복 셔츠가 눈물로 젖어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지금은 말이 필요 없었다.
살아있다. 누군가에겐 당연한 이 일이, 그녀에게는 기적이었기에.
기적이 일어난 지금. 그녀는 그저 그 기적에 젖어드는 일밖에 하지 못 했다.
* * *
“흑, 흐읏.”
“이제 괜찮아?”
“……크응! 흣. 응. 괜찮아.”
정우의 옷을 눈물로 가득 적신 우림이는 눈물과 콧물을 닦아내며 정우에게서 물러났다. 정우는 그런 그녀를 보면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머리, 길었네.”
“……자를까?”
“아니, 긴 게 예뻐서.”
그 말에 우림이는 두 번 다시 머리를 자르지 말자고 생각하며, 머리를 베베 꼬기 시작했다. 정우는 그런 그녀를 보면서 본론을 말하기 시작했다.
“퇴원은 언제쯤 한데?”
“으음…… 일주일 안에 하지 않을까.”
애초에 수술을 성공하냐 실패하냐의 문제가 있었기에, 언제 퇴원하냐는 그 누구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녀도 자신이 언제쯤 퇴원할 지 알지 못 했다.
수술에 성공했으니 금방 퇴원할 수 있지 않을까,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다른 건, 어디 아픈데는 없고?”
“있을리가…….”
“하긴.”
이제 막 수술에 성공했는데, 어디 아픈 곳이 있을 리 없다. 수술의 후유증을 제외하면 지나치게 튼튼한 게 정상이어야만 했다.
그렇다면, 이제 둘의 사이를 막는 모든 게 사라졌다는 걸 깨달은 정우는 천천히 그녀의 허벅지 위로 손을 올렸다.
독한 약물로 인해 살이 쭉 빠지긴 했지만, 워낙 튼실했던 몸이라 그런지 지금도 상당한 꿀벅지였다.
“으음…… 아직은 그런 생각이 안 드네.”
하지만 죽음의 공포를 눈앞에서 겪느라 성욕에서 초탈해진 우림이는 정우의 손을 밀어냈다. 정우는 알겠다며 손을 치워냈다.
“금방 재활해서 갈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렇게 말하며, 우림이는 정우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어깨를 부여 잡은 손은 투병 생활로 약해져 덜덜 떨리고 있었다.
정우는 그런 그녀의 손을 밀어내고, 자기가 직접 다가갔다. 입술과 입술이 맞닿았다. 죽음과 시체향을 풍기던 그녀는 싱그러운 초목의 향기를 내뱉었다.
아주 잠깐, 굉장히 짧은 순간이었지만. 우림이는 더할나위 없는 행복에 빠졌다.
“하아, 하아, 하아…… 자, 잠깐만. 나 심장이…….”
행복감에 심장은 미칠듯이 뛰어버렸고, 수술로 약해진 심장 덕분에 그녀는 가슴께를 부여잡으며 고통을 호소했다.
잠시 후 달려온 간호사에게 정우는 잔소리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