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2화 〉NO.2 소우림 가슴은 소를 우림 (42/218)



〈 42화 〉NO.2 소우림 가슴은 소를 우림

“애들아! 오랜만!”

“우림아! 퇴원한거야?”

“응!  없는 동안 심심했지?”

그 뒤로 일주일. 재활훈련을 마친 우림이는 모두의 환영을 받으며 학교로 돌아왔다. 물론 한 달 이상 수업을 빠졌기에 따라가려면  힘들겠지만.

“와아─! 애들아, 오랜만에 축구나 하러 갈까?”

“그래! 우림이 돌아온 기념으로 축구나 하러 가자!”

정작 본인은 아무 걱정 없이 즐겁게 뛰어 놀고 있었다. 오랜만이고 자시고, 원래는 단 한번도 축구나 농구같은 격한 운동을 해본  없는 우림이지만.

수술 후 몸이 건강해지자 아무 걱정 없이 뛰어 놀 수 있게 되었다. 정우는 그녀가 뛰어놀기 좋아하는 성격이라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게임에서는 별로 안 좋아했는데.’

물론 게임에서는 그녀의 병을 고칠 수 있는 기회는 그녀가 죽기 일보 직전인 고등학교 3학년 말에나 주어지니, 큰 시간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내가 바꾼건가.’

게임에서는 불가능한, 현실에서만 가능한 방법으로 그녀를 설득하고 수술을 성공시켜 1학년 때부터 건강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낸 2년의 격차가 그녀의 성격을 뒤바꾸었다.

“운동 같은 게 뭐가 재밌다고…….”

은혜는 그런 우림이를 보며 미련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정우가 인생을 바꾼 히로인이 있다면 아예 바꾸지 못  히로인도 있었는데, 그게 바로 은혜였다.

“뛰어 놀면 재밌을걸? 같이 나가서 놀지 그래?”

“으으…… 땀 흘리는 거 싫어.”

“그래? 그럼 다음부터는 유의할게.”

“앗,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정우가 땀과 타액으로 흥건해지는 격렬 섹스를 떠올리며 말하자, 은혜도 금방 짐작하고는 손사래를 치기 시작했다.

“아, 은혜야! 너도 같이 나가서 놀자!”

우림이 그런 은혜를 발견하고 말을 걸자, 정우와 우림이를 번갈아 바라보던 은혜가 약간의 한숨을 내쉬고 천천히 일어났다.

“……다녀올게.”

“잘 놀다 와.”

견원지간이었던  사람의 사이도, 수술 이후 급격하게 좋아져 이젠 정말로 사이가 좋은 친구 사이라고 부를  있게 되었다.

‘진짜 친해졌네.’

* * *

우림이는 친구들을 먼저 보내고, 체육복으로 갈아입는 은혜를 기다렸다. 잠시 후, 옷을 갈아입은 은혜가 우림이를 따라 운동장으로 나갔다.

“으으, 내가 왜…….”

“정우가 시켜서 그런거잖아? 안 하면 정우한테 미움 받을걸?”

“그러니까…….”

은혜가 풀죽어 있을 때, 우림이는 후후 웃으며 그녀를 스쳐 지나가며 한 마디 중얼거렸다.

“나 어제 정우랑 잤다.”

“……!!”

우림이의 그 말에 은혜가 깜짝 놀라 그녀를 올려다본다. 그런 은혜의 얼굴을 살피던 우림이는 알았다는 듯 미소를 피우며 말했다.

“뭐야, 너도 정우랑 했구나?”

“아, 아니. 그게 뭔…….”

“정우가 너한테는 말하지 말라고 했나 보구나. 정우는 네가 쪽팔린 거 같은데?”


그 말에 은혜가 우림이의 멱살을 부여잡았다. 우림이는 순순히 끌려 그녀의 앞까지 다가갔다.

“왜? 치게? 쳐 봐. 과연 정우가 나를 걱정할지, 너를 걱정할지. 나도  궁금한데?”


“이, 이게 진짜……!”

그러나 그녀의 말대로, 은혜는 정우에게 미움 받을까 주먹질을 하지 못 했다. 그녀가 여전히 멱살을 쥐고 있자 우림이 가볍게 그 멱살을 풀어내면서 귓가에 속삭였다.

“아참, 그리고 나 어제 생으로 섹스했다.”


“!!”

“그 반응을 보니까 생으론 못 했나봐?”

이번에는 참지 못 했다. 은혜의 주먹이 우림이를 향해 날아갔다. 우림이도 웃으며 주먹을 얼굴로 받아내고, 가볍게 은혜를 넘어트렸다.

“아하하! 진짜, 이렇게 수준이 낮으니까 정우한테 사랑 못 받지.”


“아니야─.”


“아니긴, 정우가 정말 너를 사랑했으면, 나처럼 하게 해줬겠지. 나.처.럼.”


그리곤 우림이는 갑자기 자신의 볼을 한 손으로 쥐며 뒤로 물러섰다. 마치 그녀에게 맞은 피해자인 것 마냥.

“우림아, 왜 안…… 우림아?”

마치 노린듯이, 그 타이밍에 다른 아이들이 오지 않는 두 사람을 찾으러 올라왔다.


우림이는 씨익 웃는 모습을 보여준 뒤, 정색을 하고서 뒤를 돌아보았다.

* * *

“야, 우림이랑 이은혜랑 싸웠대!”


“정말? 근데 이은혜가 누구야?”

“그 왜, 조용한 애 있잖아!”

‘은혜랑 우림이가 싸웠다고?’

그 소문이 퍼지는 건 정말 순식간이었다. 정우가 교실에서 다음 히로인을 공략하기 위한 공략집을 만들고 있을 때.


소문은 순식간에 반을 휩쓸고, 학교를 휩쓸었다. 반뿐만 아니라 학교 전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유명한 우림이와, 완전히 반대라고 할  있는 은혜가 싸웠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그냥 시비가 붙었겠거니. 은혜가 잘못했거니 하겠지만 정우는 알  있었다. 은혜가 누군가에게 먼저 싸움을  성격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림이 녀석, 또 자극했겠네.’

정우가 두 사람을 찾기 위해 교무실로 향했을 때, 이미 학생들은 교무실에 몰려 있었다. 아이들은 드문 구경거리라는 듯 창문과 문틈에 붙어 안쪽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정우는 곧장 발을 돌려 교실로 돌아왔다. 생각해보니 자신이 들어가도 뭘 해결할 수 없었다.

차분히 교실에 앉아서, 두 사람이 오는 걸 기다리는  좋으리라. 실제로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림이와 은혜가 교실로 들어왔다.


은혜는 겉보기에는 멀쩡해보였지만, 굉장히 풀이 죽어 있었고 우림이는 얼굴을 맞기라도 한 듯 크게 붉어진 얼굴을 부여잡고 들어왔다.


“우림아!”
“괜찮아?”

반 아이들이 곧장 우림이에게 달려가 그녀를 걱정했다. 은혜에게는 아무도 다가가지 않았다. 은혜는 아무 말 없이 터벅터벅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정우는 자리로 앉는 그녀를 향해 한 마디 물었다.

“어디 안 다쳤어?”

“정…… 응. 안 다쳤어.”

그녀는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목에 턱 막힌  걸려 꺼내지  하고, 그대로 입을 닫았다. 그러나 정우는 그녀의 팔꿈치가 까진 걸 확인했다.

“다쳤잖아.”

바닥에 쓸린 듯, 그리 심하게 까진 건 아니었지만 살짝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정우는 가방에서 소독용 물티슈와 반창고를 꺼내 상처를 소독하고 반창고를 붙였다.


“야, 이은혜. 너 뭐냐?”

“……?”


그때, 반에서 단 한번도 얘기해본  없는. 그러나 우림이와는 꽤 친하게 지냈던 학생 중 한명이 그녀의 앞으로 다가와 입을 열었다.


“……뭐가?”


“아니, 우림이한테 사과 안 해?”

“뭐?”


“네가 먼저 우림이 때렸다며. 그럼 네 잘못 아니야?”

보아하니 그녀는 은혜에게 사과를 받으러  모양이었다. 우림이는 뒤에서 그러지 말라며 그녀를 말리곤 있었지만 말뿐이었다.


은혜는 살짝 당황하며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평소엔 인사도 하지 않으면서, 자기가 뭐라고.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면서.


‘내 잘못이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또 다시 그녀의 주먹이 흔들렸다. 그 주먹을 보고 말을 걸었던 여성이 비웃음을 날렸다.

“왜, 나도 치게?”

“잠깐.”


결국, 참다못한 정우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는 네가 뭔데 끼어드냐는 표정으로 정우를 바라봤지만, 정우는 일단 은혜를 보며 입을 열었다.

“진정해. 무시하고. 심호흡해.”


“후우, 하아아─ 흐읍.”

“넌 뭔데 끼어들어?”

“야, 잠깐 닥치고 있어봐.”


“……뭐?”


“닥치고 꺼지라고.”


여학생은 설마 정우가 자기한테 험한 말을 할 줄은 몰랐는지,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야, 남자라고 안 맞을줄 알아?”

“너야말로, 여자라고 안 맞을줄 알지?”


“하, 참나.”


그녀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대놓고 남자를 때릴 깡은 없었다. 정우는 그런 그녀를 무시하고 저 멀리서 눈을 돌리는 우림이를 불렀다.

“우림아. 이리콤.”


“어라, 정우야. 왜에?”

우림이는 시치미를 떼며 정우의 앞으로 다가왔다. 정우는 그런 그녀의 손을 잡아 은혜와 강제로 악수를 시켰다.

그리고 두 사람의 손을 위아래로 흔들며 얘기했다.

“자, 둘이 악수하고 화해했으니 끝. 문제 있어?”


“아, 음─ 문제 없네!”

“……나도, 문제 없어.”


두 사람을 화해 시키고, 정우는 따지러 왔던 여학생을 노려보았다.


“자, 둘은 화해했는데. 넌 뭐하냐?”

“어, 응?”

“본인이 문제 없다는데, 너는 여기서 뭐하냐고. 안 꺼져?”

정우가 그렇게 웃으며 말하자, 그녀는 재수  먹었다는 듯 혀를 차며 자기 자리로 돌아가 정우의 뒷담을 자글자글 씹기 시작했다.

정우는 그녀가 뒤에서 호박씨를 까든, 자기 욕을 하든 일절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앞에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왜 싸웠는지는, 묻지 않을게.”


어차피 어느 정도 예상이 가니까. 은혜가 먼저 주먹질을  정도라면 굉장히 심한 시비를 걸었다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림이라면, 아마 자신과 생으로 질싸를 했느니 뭐했느니 같은 일로 시비를 털었겠지. 은혜는 거기에 넘어간 것뿐이고.


하지만.

“다음부터 싸우면,  다  놀아줄 거야.”

“어?”
“응?”

그 말에 두 사람이 깜짝 놀라며 정우를 바라보았다.  놀아준다는건 단순히 말을 걸거나 하는 게 아니라 아예 연을 끊는다는 뜻에 가까웠다.

그런 정우의 속뜻을 읽은 걸까,  사람은 재빨리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금 서로에게 사과했다.

“우림아, 때려서 미안해.”
“아니야. 내가 먼저 그런 말을 해서 미안하지.”

이렇게, 단순하게 무력으로 사건을 종결시킨 정우는 웃으며 다음 수업을 준비했다.

* * *

‘무슨  있었나─.’

점심시간. 점심을 먹기 위해 일어난 마리는 반에서 풍기는 미묘한 분위기를 읽고 무슨 일이 있었다는  깨달았다.


‘뭐, 상관없나.’


하지만 곧바로 그 일에서 신경 껐다. 포식자의 위치를 가진 그녀는 그런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문제가 있다면 짓밟으면 될뿐. 다행히 아직까지 그녀에게 머리를 들이밀고 짓밟힌 멍청이들은 없었다.

“야.  줘.”

그녀는 자연스레 정우에게 다가가 그의 옆에 앉았다. 원래는 학교 점심을 먹고 그가 싸주는 도시락은 저녁으로 챙겨 먹었지만.

우림이 없는 동안 남은 도시락통  개를 놀리기 싫었던 정우가 그녀에게 점심까지 싸주게 되면서, 자연스레 그녀는 정우와 함께 밥을 먹게 되었다.

“아─ 맞다.”

그래, 우림이가 없는 동안. 오늘은 우림이가 오랜만에 등교했고, 정우는 우림이가 먹을 여분의 도시락을 준비하지 못 했다.

덕분에 마리가 먹을 도시락의 여분을 준비하지 못 했다.


“……오늘은 없다고?”


“응. 우림이가 오는 걸 깜빡했네.”


정우는 그녀가 혹여나 화를 낼까 싶었지만, 마리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어쩔 수 없다는 듯 학교 식당으로 향했다.


“아, 맞다. 야. 너무 미안해 하지마라. 저녁 챙겨주는 것도 엄청 고마우니까.”

마리는 그렇게 말을 남기고 떠났다. 너무나 쿨한 성격. 그게 마리라는 히로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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