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NO.3 그녀를 김말이라고 부르지 마요.
결국 도시락을 챙겨 먹지 못 한 마리는 홀로 식당으로 향했다. 원래라면 종이 치자마자 곧바로 달려가 빨리 밥을 먹을 수 있었겠지만, 오늘은 도시락을 먹을거라 생각하고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다 와서 그런지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짜증나.’
그러나 그녀는 줄이 길다고 새치기를 하거나, 시비를 거는 유형의 양아치가 아니었으므로 순순히 줄을 기다려 식판에 밥을 받았다.
근 한 달만에 먹는 밥은 최악이었다. 그녀는 한입도 채 먹지 못 하고 밥을 뱉어버렸다.
“썅, 맛대가리 존나 없네.”
이런 걸 돈 주고 먹는 다른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한 그녀는 그냥 잔반통에 밥을 전부 부어 버리고 교실로 향했다.
빈속이 울려 짜증이 솟구쳤다. 그렇게 교실로 걸어가고 있을 때, 그녀는 누군가와 부딪혔다.
“아, 미안.”
“미안? 미이안? 이 새끼. 1학년이 혓바닥이 짧다?”
부딪힌 상대는 2학년 명찰을 달고 있었다. 그걸 확인한 마리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높였다.
“거, 미안하게 됐수다.”
“하이고─ 우리 후배님들. 개념을 비빔밥 비비듯 비벼 드셨나. 왤캐 개념들이 출타하셨지?”
“아, 짜증나 죽겠네.”
자꾸 말꼬리를 잡는 선배의 모습에 열이 받힌 마리가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려는 순간, 시비를 걸었던 사람 중 한 사람이 먼저 그녀의 뒷덜미를 잡았다.
“어디가냐? 말 안 끝났다.”
“그대로 잡고 있어라.”
“엉?”
마리는 자신의 목덜미를 잡은 선배의 팔을 그대로 꺾어 바닥에 엎어쳤다. 콘크리트로 매장된 바닥에 업어쳐진 선배는 그대로 꺽꺽대며 숨을 제대로 쉬지 못 했다.
“더 할거야?”
한 사람을 제압한 마리는 다른 두 사람을 보고 물었으나, 두 사람은 재빠르게 고개를 저어 저항할 의사가 없다는 걸 보여주었다.
그 모습을 본 마리는 치마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고 교실로 돌아갔다. 이놈의 외모랑 성격 때문에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물론 그녀는 본인의 잘못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머리색이 이런 건 타고난 거고, 성격이 이런 건 그런 타고난 외모를 가지고 그녀를 괴롭히던 온갖 아이들의 존재로 단련된거니까.
실제로 그녀는 먼저 시비를 걸지 않으면 상대가 누구든 예의를 갖췄다. 상대방이 자기보다 어린 유치원생이든, 나이 든 노인이든.
그저 사람들이 예의가 없을 뿐이다. 머나먼 과거에는 무례한 자들의 머리에 모조리 도끼가 꽂혀 무례한 사람들은 전부 죽었다는데.
그렇다면 대체 왜 여전히 무례한 사람들이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건지, 무례한 건 인간의 종특인지 가끔 의문이 들었다.
‘아, 배고프다.’
괜히 힘썼다고 자책하며, 그녀는 교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동시에 교실에서 나가려던 정우와 마주했다.
“……지나가.”
“아, 응.”
마리는 정우에게 길을 비켜주며 갈길을 가라 신호를 보냈다. 정우는 곧바로 그녀를 지나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개인적으로 정우가 마음에 들었다. 할 말은 하는 성격도 그렇고, 자신을 겁내지 않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맛있는 밥을 해준다.
‘어디가냐고 물어볼까.’
하지만 그녀는 그럴 명분이 없다 생각했다. 그에게서 도시락을 받기는 하지만, 그건 예전에 한 번 도와준 대가일뿐.
그마저도 차고 넘치게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와중에. 여기서 그와 무언가 더 하려는 생각은 과욕이었다.
그렇게 교실로 들어가려던 그녀를, 정우가 붙잡았다.
“─?”
“음, 저기. 나 지금부터 매점 갈 건데. 같이 가지 않을래?”
“……내가 왜?”
그녀는 그저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었다. 거절이나 그런 게 아니라, 정말 순수한 의문.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가 이렇게 말하면 손을 놓고 뒤로 물러났다.
정우는 달랐다.
“내가 쏠게.”
“뭐해? 안 가고?”
마리는 곧장 정우를 뒤따라 매점으로 향했다. 이유는 중요치 않았다. 먹을 걸 사준다는데.
* * *
‘먹을 걸 사준다니까 그냥 따라오네.’
정우는 어린아이를 사탕으로 꼬시는 감각으로 마리를 꼬셨다. 그리고 그건 성공했다. 그도 성공하리라곤 생각지 못 했던 일이지만.
마리는 그의 생각 이상으로 음식에 굶주려 있었다. 하긴, 타고난 신체능력을 뒷밤침하기 위해선 그만한 에너지가 필요할 테고, 그러기 위해선 많은 음식을 먹어야겠지.
‘그리고 우리 학교 급식은 똥이고.’
영양분은 둘째 치고, 맛이 너무 구렸다. 솔직히 먹다 보면 병 걸릴 맛이었다. 훈련소에서 먹었던 밥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될 정도.
먹고 또 먹어야 하는 10대 청소년들에게 그런 음식은 독이었다. 그래서 매점이 미어 터지는 거고, 도시락을 싸오는 그의 행각도 크게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 거겠지.
“근데, 갑자기 무슨 일이야?”
“그냥. 한 번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서.”
매점으로 향하는 길, 마리가 정우에게 어째서 쏘겠냐는 말을 했냐고 질문했다. 그녀가 히로인이기 때문에, 라는 말은 할 수 없으니 적당히 지어낸 말을 지껄였다.
“흐응─ 그래. 뭐, 고맙다. 덕분에 살았어.”
“응?”
“……학교 밥. 오랜만에 먹으니 맛없어서 못 먹겠더라고.”
“아아, 그 소리야?”
정우는 어째서 그녀가 한 번에 따라왔는지 그제야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하긴, 한 달 내내 정우의 도시락으로 입맛을 높였던 그녀다.
점심에 까먹는 도시락 맛을 몰랐다면 모를까 이제 와서 학교 급식으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질색을 하겠지.
“그럼, 앞으로 점심 도시락도 싸다 줄까?”
“정말? ……아니, 괜찮아.”
“왜?”
“왜냐니, 딱히 도움 받을 일도 안 했고.”
정우가 그녀에게 도시락을 싸다 주는 건, 그녀가 한 번 그를 도와주었기에. 그렇기에 그녀도 도시락을 받는 데 큰 죄책감이나 부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두 개나 싸다 준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하나는 어찌어찌 받을 수 있지만, 두 개나 되는 도시락은 마치. 마치…….
‘부부 같잖아.’
그녀는 본인에게 그런 흥복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태어난 것도, 이렇게 사는 것도. 모두 그녀가 선택한 일이니까.
“나는 괜찮은데.”
“그래도.”
“……그럼 부탁해도 돼?”
마리는 솔직하게 말했다. 앞으로 학교 급식을 먹을 자신이 없었다. 저 더럽게 맛이 없는 급식을 먹을 바엔, 그냥 굶는 게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리고 그녀는 굶는 걸 세상에서 가장 싫어한다. 속이 비어 있으면 짜증이 나고 괜히 신경질적으로 변한다.
“대신, 나도 밥 한 끼만 사줘.”
“어, 음…….”
정우가 평소 해주는 것에 비하면 별 거 아닌 일이지만, 그렇기에 그녀는 쉽게 수긍하지 못 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천원도 없어서 매점조차 가지 않는 구두쇠였으니까.
“네 가게에서 먹으면 되잖아.”
“……알고 있었구나.”
“응. 전에 지나가다가 봤어.”
마리는 말하지도 않은 아르바이트를 정우가 알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움찔했지만, 그가 학교에 그 사실을 일러바칠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안심했다.
그러나.
“내가 일하는 가게는 술집인데?”
“어, 그랬어?”
아쉽게도, 그녀가 일하는 장소는 술집이었다. 그 사실까진 몰랐던 정우가 깜짝 놀라 그녀를 바라본다. 그리고 금세 그녀가 말하는 술집이 정우가 생각하는 몸을 파는 술집이 아닌 포차 같은 곳이라는 걸 깨닫는다.
“근데 넌 미성년자잖아. 어떻게 일해?”
“아─.”
실수했다. 마리는 자신의 입을 꾹 닫으며 고개를 돌렸다. 정우가 자신이 일하는 모습을 봤다고 말하길래 방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추궁도 하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비밀이구나. 알았어.”
“……응. 고마워.”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자신을 이해해주는 그의 모습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조금씩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잠시 후 도착한 매점에서, 그녀는 빵 두 개와 음료수 하나를 얻어먹었다.
* * *
‘깜짝 놀랐네.’
마리가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불우가정이니까, 생활비 정도는 스스로 벌어서 쓴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고.
하지만 술집에서 일한다는 건 알지 못 했다. 그리고 술집이란 단어를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노래방 도우미 같은 성매매 업소였다.
‘생각해보니 여긴 남자가 몸을 파는 세계였지.’
그러나 이 세상에서 여자의 정조는 팔리지 않는다. 그녀도 천연 금발에 붉은 눈까지. 서양인 혼혈답게 꽤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지만.
아쉽게도 동양인 특유의 날카로운 눈매와 서양인의 오뚝한 코, 천연 금발이 시너지를 일으켜 누가 봐도 양아치로밖에 보이지 않는 외모가 탄생했다.
그렇게 반쯤 무서우면서 아름다운 그녀도 성을 팔 수는 없다. 언변이 부족하니까. 여자를 사는 남자들은 여자들에게서 위안을 얻으려 하겠지.
그녀는 특유의 성격상 그런 게 불가능했다.
‘그나마, 데이트 약속이라도 잡아서 다행이지.’
마리는 불우가정이라, 방과 후는 거의 새벽까지 아르바이트. 방학 때는 오전 오후 할 것 없이 일 삼매경에 빠져서 만날 시간이 매우 적다.
만날 수 있는 시간이라곤 그녀가 일하는 장소뿐. 그마저도 아주 짧은 시간밖에 만날 수 없다. 그래서 그녀는 시간 대비 호감도 작업이 쉬운 편에 속했다.
‘아예 대화할 시간도 없다는 게 문제지만.’
그래서, 정우는 아예 돈으로 해결할 생각을 했다. 그래, 아르바이트 하는 장소에서밖에 만날 수 없다면.
아르바이트 장소에서 독식하면 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돈이라면 넘쳐나니까.’
이 세계에선, 이유도 묻지 않고 무한정에 가깝게 용돈을 지원해주시는 부모님이 계시다. 그 두 사람의 카드를 떠올리며 정우는 마리네 가게로 향했다.
정작 본인이 미성년자라는 사실은 까먹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