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7화 〉NO.3 그녀를 김말이라고 부르지 마요. (47/218)



〈 47화 〉NO.3 그녀를 김말이라고 부르지 마요.

월요일. 정우는 아침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준비하고 마리를 깨웠다. 일어날 시간이 되면 빠득빠득 일어나는 그녀였지만, 그래봐야 정우보다 일어나는 게 느렸다.

“야, 일어나서 씻어.”

“으으음─ 벌써 아침이야……?”

눈을 비비며 일어난 마리는 가볍게 하품을 하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정우는  동안 아침을 준비했다. 원래는 아침을 먹지 않았지만 마리가 하도 아침을 해달라 소리를 질러서 어쩔 수 없이 해주고 있었다.

“와우─ 아침부터 진수성찬이네.”

가볍게 세수만 하고 나온 그녀는 화장기 하나 없음에도 새하얗게 반짝이고 물을 튕겨내는 탱탱한 피부를 보이며 식탁에 앉았다.

정우도 그녀 앞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정우의 요리실력은 나날이 늘어나 최근엔 어지간한 전문 쉐프보다 잘 만든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빨리 먹고 설거지 해. 그동안 씻을테니까.”

“응.”

아침을 다 먹고 나면 7시 반. 마리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정우는 최대한 빠르게 양치와 샤워를 마친다. 밖으로 나와 시간을 확인하니 7시 40분. 마리가 남자답지 않게 너무 빨리 씻고 나온다고는 하지만 정우 입장에선 이게 정상이었다.

정우가 밖으로 나오면 마리가 화장실로 들어가 머리만 감고 나와 머리를 말린다. 이게  끝나면 8시.

교복을 입고 학교로 천천히 걸아가다보면, 15분에서 20분정도 걸린다. 그럼 10분을 남기고 학교에 도착.

“와, 진짜 가깝네.”

“그래? 원래 집은 어딘데?”

“존나 멀지. 그래서 내가 1등으로 오잖아. 그냥 빨리 와서 잠이나 자려고.”

확실히 마리는 평소 일찍 온다고 자랑하는 정우보다 항상 먼저 학교에 도착해 퍼질러 자고 있었다. 예전엔 왜 그런지 몰랐는데, 그냥 빨리 와서 자는거구나.

‘게으른건지, 성실한건지.’

아직 덜 말라 축축하게 젖어있는 마리의 머리카락을 베베 꼬아준 뒤 정우는 교실로 들어간다. 평소처럼 아무 생각 없이 자리로 돌아가 앉았지만 다른 아이들의 시선이 느껴져 이상함을 느끼고 있을 때 은혜가 먼저 그에게 말을 걸었다.

“너,  괜찮아……?”

“뭐가?”

“아니, ……마리랑 같이 들어왔잖아.”

“그게 뭐?”

“쟤가 늦는 건 처음이니까…….”

정우는 그제야 자신에게 시선이 몰린 이유를 깨달았다. 평소 가장 먼저 학교로 와 항상 엎드려있던 그녀가 오늘은 무슨 일인지 아슬아슬하게 학교에 도착했다.

살짝 젖어 찰랑이는 마리의 머리,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들어온 정우의 모습에 연관성은 없겠지만 사람의 뇌라는 게 그리 간단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평소 생기지 않던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든 주변 물건과 연관지어 생각하게 된다.

“설마, 재랑 뭔 일 있던 거 아니지?”

“무슨 일이 뭐가 있어?”

은혜는 그 말을 듣고 안심했다. 정우의 말에서 일말의 두려움이나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았으니, 설마 그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으리라곤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로 정우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설마 마리가 정우의 집에서 얹혀 살게 되었다고는 상상하지 못 하리라.

그렇게 시간이 흘러, 수업이 시작했다. 마리는 주말 내내 피로를 풀었기 때문일까, 웬 일로 잠을 자지 않았다.

“네가 웬 일이냐?”

“뭘요?”

“아니다, 방해나 하지 마라.”

선생님들의 걱정과는 달리, 마리는 성실하게 수업에 임했다. 다만 3월부터 7월까지, 100일 가까운 시간을 내리 잠만 잤으므로 기반 지식이 없어서 이해할 수 없을 뿐이지.

“야, 네가 일어난  처음본다. 기왕 일어났으니 이거나 풀어봐라.”

가끔 장난기 넘치는 선생이 당돌하게 질문을 건네도, 마리는 당당했다.

“모르겠는데요?”

“에휴. 그게 자랑이냐? 잠이나 자라.”

마리는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당당하게 밝혔다. 그러나 선생님을 포함한 아이들은 당당한 모습을 좋게 보지 않았다.

오히려 비웃었다.

“─?”

어째서 웃는건지는 이해할 수 없어도, 자신을 비웃는다는 건 이해할  있다. 마리는 자신을 비웃는 학생들의 면면을 훑어보았다.

순간, 분위기가 얼어붙고 아이들이 그녀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하지만 마리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선생님도, 순간 분위기가 안 좋아졌다는 사실을 캐치하고 곧바로 수업을 개시했다. 그러나 마리는 이 사실을 잊지 않고 계속해서 기억에 담아 두었다.

그리고.

“야─ 정우야.”


“응?”

“나, 공부 좀 가르쳐줘라.”

점심시간. 이젠 도시락도 점심에 같이 먹게 된 마리가 정우에게 말했다. 사실  말을 하는데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거절하면 어쩌지.’

그녀는 평생 무시당하며 살아왔다. 이름이 이상하다고 무시당해, 머리가 금발이라고 무시당해, 심지어 그녀가 공부를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을 땐, 부모에게까지 무시당하곤 했다.

‘너 같은 게 공부를? 집어치워.’

공부를 하고 싶지 않아서 안 한 게 아니다. 할 수 없으니까  한 거다. 매일 매일이 고된 업무. 생명을 깎아가며 일했다.


당연, 학교에선 잠을 잘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공부를 못 한다는 이유로 그녀를 무시했다.


더 이상 무시당할 수는 없다. 예전이라면, 그러니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바빴을 때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지금이라면.


“좋아.”

“……정말?”

“그럼, 네가 하고 싶다는 데.”


마리는 정우의 말을 듣고 감동이 샘솟았다. 자신을 가난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도 모자라, 잠도 재워주고 심지어 공부까지 가르쳐주겠다니.

“고맙다야.”

“하겠다고 했으니, 열심히 해.”

“응. 알았어.”


마리는 앞으로 수업 시간에 집중하겠다고 약속했다. 정우는 그녀에게 맞는 교육 방법을 생각하며 머리를 굴렸다.

“저기.”

그때, 우림이 머리를 들이밀며 마리의 셔츠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하복이라 얇은 와이셔츠 한 장.  보고 있으면 알록달록한 색상의 속옷이 눈에 들어왔다.

“있지, 마리야. 너 저번 주에도  속옷 아니었니?”

“응? 그랬나?”

마리는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오히려 여자가 무슨 그런  신경 쓰냐며 우림이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너는 모슨 다른 여자 속옷을 훔쳐보고 있냐?”


“아니, 그게 아니라…… 뭔가 이상해서.”

“어?”

그 말에 마리가 멈칫한다. 우림이의 말대로 마리는 주말 내내 편의점에서  싸구려 속옷을 입고 있다가 일요일 저녁에야 속옷이 말라 그걸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우림이는 특유의 짐승 같은 감으로, 그녀가 속옷을 갈아입지 않은 게 정우랑 관련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없지만, 몸은 그녀에게서 정우의 냄새가 슬금슬금 올라왔다.

“오늘 늦은 것도 그렇고, 정우랑 동시에 들어온 것도 그렇고…… 막 머리를 감은 것마냥 젖은 머리칼도 그렇고…….”


“그래서 뭐?”


“거기에─ 정우랑 같은 샴푸향까지.”


그 순간, 마리는 손에  젓가락을 꾹 쥐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조용해진 교실은 개미가 기어다니는 소리까지 들리기 시작했다.

“너, 정우 집에서 잤지?”

그리고 우림이 폭탄을 투하했다.

* * *

“무, 무, 무슨 소리야?”

“정말 잤구나. 섹스는? 했어?”

“아, 아무것도  했거든!”

마리는 얼굴을 붉힌 채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을 치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 모습이 부끄러움을 숨기는 모습이라는 걸 우림이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섹스는 안 한 모양이네.”

“무, 무슨 말을 하는거야!?”

붉어진 얼굴을 감추지 못 한채, 마리는 우림이의 절조없음에 깜짝 놀랐다. 게다가 이 자리엔 남자애까지 있는데, 어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그러나 그런 그녀가 진정하기도 전에, 우림이는 두 번째 폭탄을 투하했다.


“사실 나는 정우랑 섹스했거든.”


“……어?”


“얘도 했어.”

우림이는 은혜를 가리키며 그리 말했다. 마리는 우림이와 은혜, 그리고 정우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자신만 처녀라는 사실에 깜짝 놀라 그대로 주저앉았다.

“너, 너어…….”

자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남자아이가, 실은 걸레였다니. 이 여자  여자  뚫고 다니는 개걸레였다니!


‘……상관없나.’


생각해보니, 처음이 아니라도 상관은 없었다. 처음이 아니라고 그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헐렁헐렁해지거나 티가 나는것도 아니고.


애만 만들지 않으면야, 매일같이 해대는 남자든 아니든,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나랑도 해.”

“응?”

“나랑도, 하자고.”

마리는 남자를 꼬시는 방법을 알지  했다. 그녀가 알고 있는 건 진심을 담으면 전해진다는 것뿐. 그러니 그녀는 진심을 다해 고백했다.

원시시대에서나 쓸법한 고백 단어였기에, 정우는 당연하게 고개를 저었다.  사실에 마리는 기가 죽어 축 늘어졌다.

“아니, 오히려 그런 말로 할  있을거라고 생각했어?”

“어…….”


“바보구나. 너.”


원래 세상이었더라면, 흥에 겨워 받아들이는 것도 모자라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그녀를 덮쳤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이 세계에선 남자인 정우가 갑이었다.

성을 받아내는 입장이 아니라, 성을 바치는 입장. 그녀들은 어떻게든 정우와  번 하기 위해 발밑을 설설 길  밖에 없다.


그 사실을 눈치챈 정우는 이마저도 써먹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그럼 이렇게 하자.”


“응……?”

“2학기 중간고사, 잘 보면 하게 해줄게.”


“잠, 정우야!?”

정우의 제안에 우림과 은혜가 먹던 도시락을 토해내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들은 이미 정우와 애인 비스무리한 관계.

그렇기에 그가 함부로 몸을 굴리지 않도록 지켜볼 권리가 있었다.

“왜?”

“아니, 우리랑 상의도 없이 그렇게  정하는 건…….”

“너희들이 내 애인은 아니잖아?”


“그렇긴 한데…….”


“아아, 너희들도 하고 싶구나. 그렇지?”

공략하기전이라면, 정우는 이런 말을 꺼내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이젠 정우의 포로가 되어버린, 성욕의 늪에 빠져버린 가녀린 소녀들.


설령 정우가 3P를 하자고 해도, 고민 끝에 받아들일 성욕덩어리다.


“그래, 그럼 이렇게 하자.”

정우는 세 사람 모두 만족할 플랜을 내놓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