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NO.3 그녀를 김말이라고 부르지 마요.
마리를 찾아낸 세 사람은 그녀와 같이 식당으로 향했다. 이런 곳에 있는 식당이라고 해봐야 단출한 백반집이나 횟집밖에 없었지만, 몇 시간이나 헤엄쳐 논 다음이라 그런지 그런 음식도 맛있게 들어갔다.
“그나저나, 여긴 왜 온거야?”
“응?”
“아니, 공부해야한다고 뭐라 할땐 언제고 이렇게 시간 낭비해도 되는거야?”
“이런 식으로 가스를 빼줘야 공부도 더 잘되는 법이야.”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실은 정우도 이 장소에 온 이유를 찾고 있었다. 여름방학하면 바다. 수영복. 이는 오랜 전통으로 내려온 클리셰중 하나였다.
게임 속에서도 여름방학에 바다로 가는 이벤트가 있었고, 수영복CG와 상당한 량의 포인트, 그리고 호감도를 얻을 수 있었지만.
‘그게 어떻게 얻는거더라.’
게임에서야 선택지 몇 개 띡띡 누르면 알아서 떡치고, 알아서 포인트를 벌어왔다만 현실이 된 지금은 정우가 스스로 생각해서 움직이야만 했다.
그리고 정우는 1학년 여름방학 때 바다로 가면 포인트와 호감도를 얻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어도, 그 상황에서 무슨 대사를 치고 무슨 상황을 이끌어나갔는지 까지는 몰랐다.
‘그런 걸 어떻게 외우고 다녀.’
자신은 평범한 게임 큐레이터다. 게임 대사 하나하나를 외울 재능이 있었으면 다른 길을 찾았겠지.
그러나.
‘나는 내 방식대로 간다.’
어느정도 감은 잡히고 있었다. 준비한 계획도 몇 가지 있다. 어차피 바다 하면 그런 거밖에 없지 않은가?
“오후에는 내가 준비한 게 있어.”
“준비? 뭐 준비했는데?”
“일단 수박깨기랑…….”
“엑, 수박을 깨? 왜? 아깝잖아.”
“어, 그러니까 깬 수박을 우리가 먹는─.”
“그냥 잘라 먹자. 내가 맛있게 잘라줄게.”
그러나 그 계획은 대부분 허사로 돌아갔다. 평소에도 그랬지만 레스토랑에서 일하면서 더더욱 음식을 아끼게 된 마리가 음식을 가지고 장난치는 걸 두고보지 못 했다든지.
잠수대회를 하려고 했더니 우림이의 가슴이 너무 커서 잠수가 불가능했다든지, 중간에 체력을 다한 은혜가 퍼져서 아무것도 못 했다든지.
등등. 현실에는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다. 물론 이정도로도 얻는 포인트와 호감도가 있었지만.
‘어쩔 수 없지.’
결국 날이 저물고, 밤이 될 때까지 기다린 정우는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둑어둑해진 하늘을 보고 입을 열었다.
“담력시험 가자.”
“……무슨 시험?”
“담력시험.”
“아니, 이 야밤에?”
“밤이니까 담력시험이지.”
갑작스런 그의 말에 세 사람 모두 우물쭈물하며 나서려하지 않았다. 낮에 진을 다 빼놓았기에 나가기 귀찮다는 점도 있고, 솔직히 야밤에 밖을 돌아다니는 게 두렵기도 했다.
타지에서 야밤에 돌아다니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고. 그러나 정우는 그런 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쫄?”
“간다.”
정우의 발언에 발끈한 마리는 곧장 일어나 정우를 따라 밖으로 나갈 채비를 갖췄다. 그러나 우림이와 은혜는 귀찮다며 밖으로 나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럼 우리 둘만 간다? 진짜 간다?”
“응…… 아, 올때 메로나.”
“나는 팥빙수로.”
두 사람은 정우에게 아이스크림을 부탁하곤 다시 침대에 드러누웠다. 이게 아닌데, 억지로 데리고 나갈 수도 없는 노릇.
결국 정우는 마리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민소매에 허벅지의 반도 가리지 못 하는 짧은 숏 팬츠를 입고 있었는데, 그녀는 밖으로 나오고 나서야 그런 복장이라는 걸 깨닫고는 밤공기에 살짝 떨기 시작했다.
“아, 큰일났네.”
“추워?”
“아니, 그게 아니라─ 모기 물리겠네.”
생각해보니 그랬다. 이 야밤에 담력 시험을 하겠다고 산속에 들어가면 귀신보다 벌레를 더 많이 만날 텐데, 저렇게 맨살을 다 드러내고 다녀오면 그녀는 내일 전신에 두드러기를 단 채로 돌아가게 되리라.
“약 뿌려.”
정우는 출발하기 전에 미리 사놓은 벌레 퇴치 약을 건넸다. 그걸 건네 받은 마리는 땀이 주로 나는 부위에 약을 뿌렸다.
그러니까, 뒷목과 겨드랑이, 오금과 허벅지 발바닥 사이사이까지 약을 뿌린 그녀는 앞장 서 산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근데 담력 시험이면 뭘 하는거야?”
“어…… 등산?”
“그게 전부?”
“그러네.”
생각해보니 이런 건 미리 무언가를 준비해놨어야 하는데, 급하게 준비하느라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다. 그렇게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던 두 사람은 헛웃음을 터트리곤 아이스크림이나 사가자고 말한 뒤 편의점으로 향했다.
이런 곳에도 편의점이 있구나 신기해하면서 안으로 들어간 정우는 메로나와 팥빙수, 비싸디 비싼 하겐다즈를 사고 밖으로 나왔다.
“아. 저기.”
온 길을 되돌아가는 중에, 마리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가리켰다. 그곳에는 올때는 절묘하게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폐가가 다 쓰러져가고 있었다.
“담력 시험이랬잖아. 저기 들어갔다 나오는 건 어때?”
“음, 더러워보이는데.”
“가서 씻으면 되지. 그냥 들어갈꺼야?”
맞는 말이었다. 정작 하자고 나온 정우보다 더 신난 마리는 금세 폐가 쪽으로 달려가 안쪽을 훑어 보았다.
기와고 뭐고 전부 다 무너져 거미줄이 눈에 훤하고 어두컴컴한 구석에 벌레가 기어다닐 것만 같은 폐가.
정우가 핸드폰을 열어 화면 후레시로 안쪽을 비추자 의외로 깨끗해 보이는 집안이 슬쩍 보였다.
‘뭐지……?’
그 사실에 정우는 약간의 소름을 느꼈다. 이런 다 무너진 폐가를 누가 관리하는 것도 아닐테고, 담벽이 무너진 형태를 보면 최소 수 년은 아무도 오지 않은 폐가일텐데.
“들어가자.”
“야, 잠깐!”
그러나 태어난 이후 무서운 거라곤 돈 밖에 없던 마리는 폐가라고 해서 딱히 겁내지 않고 안으로 잘만 들어갔다.
정우의 앞이라고 허세라도 잡고 싶었던 걸까, 떨떠름해하는 정우를 내버려두고 홀로 안으로 들어간 그녀는 의외로 깨끗한 집안을 보고 입을 열었다.
“의외로 안은 깨끗한데.”
“마리야. 나가자.”
“왜? 겁먹었어?”
밖으로 나가자고 하는 정우를 떨쳐내고, 마리는 좀 더 안쪽을 살폈다. 여기가 뭐 주변에 사람이 아무도 없는 숲 속에 홀로 떨어진 저택도 아니고.
애초에 문짝도 다 떨어져 나가기 일보 직전인 폐가다. 무슨 일이 있으면 다 때려 부수고 나가면 된다.
“그냥, 빨리 좀…….”
덜컹!
“악!”
“푸하하! 너 뭐하냐?”
안쪽에서 들린 큰 소리에 정우가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자, 마리가 그런 정우를 보며 크게 웃음 지으며 비웃는다.
“야, 이런데 뭐가 있겠냐?”
마리는 그렇게 말하며 소리가 들린 안쪽으로 향했다. 그래, 아무것도 없다. 그게 문제였다.
‘시발, 집안에서 갑자기 소리가 왜 나냐고.’
무언가가 있다. 그게 벌레든 짐승이든 사람이든, 하다못해 귀신이든.
“누구냐─.”
“집주인 아냐?”
“폐가에 집주인이 어디 있어?”
맞는 말이었다. 마리는 그렇게 막무가내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동시에 안에서 날아온 손아귀에 붙잡혀 안으로 끌려갔다.
“어, 어어?”
당황한 그녀가 재빨리 팔을 휘둘러 자신의 멱살을 잡은 손을 떨쳐내려 했지만 방안에서 빠져 나온 손은 마치 물리법칙에서 벗어나 있기라도 한 듯, 그녀의 손이 닿지 않았다.
“마리야!”
콰앙!
문이 닫혔다. 정우는 마리가 끌려 간 방문을 열려 했지만 격철이라도 달린 듯 문이 열리지 않았다.
“이런 미친!”
큰일이라도 생길까 반쯤 허물은 문을 전력으로 차봤지만, 오히려 문이 정우의 발을 튕겨냈다. 단단한 철문도 아닌 얇은 나무와 한지로 된 문틀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강도.
그 사실에 정우는 멈칫하고 상황을 정리했다.
‘여름방학…… 담력시험…….’
그리고 그 조건에 맞는 이벤트를 떠올렸다. 한여름밤의 꿈.
덜컥─!
“헤에에…… 나, 남자…….”
귀신에게 따먹히는, 귀접 이벤트가 그것이었다.
* * *
이 세상이든 저 세상이든 처녀귀신이란 불쌍한 취급을 받는다. 저쪽에서는 얼마나 못 생겼으면 처녀귀신이 되었을 까, 이쪽 세상에서는 얼마나 운이 없으면 처녀귀신이 되었을까.
남자보다 여성이 더 성적으로 개방된 세계이기에, 처녀귀신이 전생보다 더 많기는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설마 빙의한 건가? 정우는 살금살금 움직여 마리의 시선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그녀는 인간 같지 않은 움직임으로 고개를 꺾으며 정우에게 시선을 맞췄다.
“헤헤헤, 남자다아…….”
귀신이 빙의된 마리는 천천히, 천천히. 한 발자국씩 걸어갔다. 사람이 아닌듯한 관절의 구동.
“남자아아…….”
반쯤 헐거벗은 마리의 살결이 정우의 살에 닿았다. 차갑다. 사람이 아닌 것마냥 차갑다. 정우는 그제야 이 폐가에 벌레 하나 없는 지 깨닫게 되었다.
‘미친, 귀신이 있다고 다 도망간거였구만.’
사람은 있든 말든 잘만 공생하면서, 벌레도 귀신을 무서워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