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5화 〉NO.3 그녀를 김말이라고 부르지 마요. (55/218)



〈 55화 〉NO.3 그녀를 김말이라고 부르지 마요.

방학을 즐기던 어느 날, 은혜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갑작스레 걸려온 전화임에도 정우는 거리낌 없이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자마자 나온 첫 마디는 이러했다.

[나  하겠어.]

“응?”

[이 이상은 안 돼! 놀고 싶어!]

그녀에게는 2학기 중간고사 성적에 따라 놀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했었다. 처음엔 반드시 해내겠다며 열불을 피우던 그녀였지만 사람의 노력에는 한계가 있다.

그 한계가 드디어 당착한 것이다.

‘꽤 버텼네.’

사실 정우는 그녀가 포기하기까지 3일을 예상했지만,  예상을 뛰어 넘어 3주를 버텼다. 뭐, 333법칙에 따라 3주는 넘기지 못 했지만.

[정우 네가 뭐라고 해도 나는 오늘…….]

“좋아.”

[오늘만큼은…… 어?]

“나오라고.”

[저, 정말?]

그녀는 정우의 말에 화들짝 놀랐지만, 금세 정신을 차리고 약속을 잡았다. 장소와 시간을 정한 그녀는 곧장 전화를 끊었다.

아마 약속 장소에 나올 준비를 하는 거겠지. 정우도 욕실로 들어가 몸을 정갈하게 씻기 시작했다.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고, 약속장소에 도착한 정우는 은혜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서 은혜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열심히 달려오고 있었다.

“정우야아아! 미안! 진짜 미안!”

“아니, 왜?”

“느, 늦어서 미안…….”

“아직 약속시간 전인데?”

실제로 약속시간보다 10분 정도 빠른 시각이었다. 그저 자신도 그녀도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했을 뿐.

그러나 은혜는 자신이 언제 도착했느냐는 상관없이 정우보다 늦게 도착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정 미안하면 오늘은 네가 사.”

“응! 내가 살게!”

용돈이라도 두둑이 받은 건지 돈을 내라는 말에도 개의치 않는 그녀를 보며 정우는 노래방으로 향했다.

“영원히이이이─!!”

원래라면 노래방 같은  좋아하지 않는 그녀였지만 정우를 따라 몇 번 다니더니 늦바람이라도 들었다는  오히려 노래방에 가는 걸  좋아하게 되었다.

노래방에서 고음을 마구잡이로 지르고, 목이 쉬어 목소리가 쇳소리가 될때까지 소리를 지른 뒤, PC방으로 가서 가볍게 게임 한 판.

그리곤 서점에 들려 이번 달 베스트 셀러들을 탐색했다.

“정우야, 이거 어때?”

“음, 재밌겠네.”

판타지 장르부터 라노벨, 과학책이나 순문학 소설까지. 여러가지 책들을 훑어보며 서로 재밌어 보이는 듯한 책을 추천해주고, 추천받으며 시간을 보냈다.

“흐흥─.”

책을 둘러보는 은혜는 어느때보다 즐거워보였다. 책을 고른다는 사실만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그녀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정우도 덩달아 기뻐졌다.

“아, 오늘 저녁으론 뭐 먹을래?”

“저녁은 예약해둔 가게가 있어.”

“정말?”

책을 고르고 나서, 정우는 은혜를 데리고 장소를 이동했다. 오늘 하루동안 자신이 돈을 낸다고 했던 그녀는 점점 바뀌는 주변 배경을 보고 불안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불안은 딱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레스토랑 입구에서 터져 나왔다.

“저, 저기. 정우야? 여기 비싸보이는데…….”

“비싸. 가장 싼 메뉴가 12만원 정도 하던가?”

“시, 십이만 원!?”

학생은 커녕 성인도 쉽게 오기 힘든 가게. 물론 오려고 해도 완전예약제인 만큼 오기 힘든 가게이기도 했다.

정우는 지갑을 만지작거리는 그녀를 보고 살짝 웃어준 뒤 가게 안으로 발을 옮겼다. 이미 몇 번이나 들렸던 정우를 보고 가게 점원이 익숙하게 방으로 안내했다.

“뭐, 뭐야? 정우  여기 와봤어?”

“몇 번은?”

“며, 몇번이나?”

가족들과 기념삼아   왔다고 해도 믿기지 않을 수준의 가게에  번이나 들렸다는 사실에, 은혜가 약간의 벽을 느꼈다.

그건 타고난 재력의 벽. 그녀의 단출한 노력만으로는 결코 넘을  없는 자연스러운 벽. 정우는 그녀의 생각을 읽고는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그냥 여기 사장님이랑 친해서 자주 와.”

“아, 그렇구나…….”

하지만 은혜의 생각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인맥도 힘. 사람 사귀는  상당히 어려워 하는 그녀에게는 두터운 인맥도 넘을  없는 벽 중 하나였다.

똑똑─

그때,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온 요리사의 모습에 은혜는 살짝 놀라며 들어온 요리사를 향해 삿대질을 했다.

“너, 너어어…….”

“손님. 점원을 향한 삿대질은 금해주시겠습니까?”

“오랜만이야. 마리야.”

“응. 오랜만.”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마리였다. 유나의 수제자가  이후로 얼굴도 못 봤는데 지금 모습을 보니 상당히 사랑받는 모양이었다.

“어때, 요리는 재밌어?”

“아니, 개노잼인데.”


“아, 아하하. 유나 누나가 들으면 싫어하겠네.”


“당연하지. 그 꼰대같은 아줌마는 시시콜콜 시비를 건다니까?”

“지금 내 얘기 하냐?”


“……!!”


당당하게 뒷담을 까고 있던 마리는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떡하니 굳었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엔 웃음꽃이 활짝 핀 유나가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뒤질래?”


“아, 거. 없는 데서는 임금님도 욕한다는데, 욕  할 수 있지…….”

“그래, 그럼 나도 월급 좀 깎을 수도 있지.”

“죄송합니다. 스승님.”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하던 그녀도 돈 앞에선 굴복했다. 고개를 숙인 마리를 옆으로 치운 유나는 헛기침을 몇 번 하고서 정우의 앞에 나섰다.


“……이런 말괄량이를 소개시켜 주고, 재밌네.”

“어때요? 재능은 있죠?”

“어떠냐고? 최고지. 최고의 재료야.”

유나는 광기 서린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마리는 최고의 재료였다. 손질하면 손질하는대로 이끌  있는 재능.

“벌써 내 요리는 대부분 카피해갔어.”

“아, 그쪽이네요.”


“맞아. 이 녀석, 요리엔 재능이 없는데 요리 하는데는 재능이 넘친다니까?”

“그게 뭔 헛소리야…….”


마리는 투덜거리면서 요리를 세팅하기 시작했다. 은혜는 덩달아 일어나  준비를 도우려다 손님이라는 이유로 자리에 앉혀졌다.

“머리가 나빠서 스스로 요리를 만들어낼 상상력은 부족한데, 정작 뭘 보여주고 따라하는  완벽하게 잘 하지.”


“그렇군요.”

“심지어  번 먹은 음식은 웬만해선 재현 가능하니까. 요즘엔 전국 여행을 다니면서 각지의 음식점을 싹쓸이 하는 중이야.”


“아, 그럼 오늘 들린 것도 폐였나요?”


“아니, 얼마나 성장했는지 너한테는 보여주고 싶었으니까.”


유나는 그렇게 말하며 마리를 턱짓으로 다뤘다. 마리는 유나의 트레이드 마크이자 대표 요리를  위에 차례차례 차렸다.

상차림이 끝난 이후, 그녀는 가볍게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어…… 뭐더라. 무슨 쉬‘뛰우 샨베르? 아 모르겠다. 그냥 돼지고기가 무슨. 맛있게 먹어.”

“돼지 통구이(Maiale arrosto) 라고. 가게 메뉴는 외워라.”

자기 앞에 겹겹이 잘린 통구이를 내려다본 정우는 곧바로 구이를 식음했다. 예전에 우림이와 왔을 때랑 똑같은 맛의 재현.

“마리가 만든 거 에요?”

“그렇긴 한데, 이건 내 시그니처 메뉴라 만드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거든.”

오히려 자신있게 대접할 수 있는 건 다른 메뉴라며, 유나는 온갖 밑반찬들과 에피타이저로 나온 메뉴들을 가리켰다.

달라졌다라, 뭐가 그리 달라진 건지 확인해보기 위해 정우는 조심스레 음식을 떠먹어보았다. 은혜도 그 모습을 보며 조심스레 같이 음식을 퍼먹었다.

“와아─ 엄청 맛있어요.”


“그러네요. 저번 보다 맛있는데요.”

“후후, 숨길 것도 없지. 그건  이 녀석으로 만든거다!”


유나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만만하게 마리를 가리켰다. 마리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혀를 차고 시선을 피했다.

“마리가 만든거라고요? 이걸 다?”

“정확히는 이 메뉴들을 잘 하는 가게에 데려가서, 애한테 먹이고, 훔쳐왔지.”

“……그거 불법 아니에요?”

“요리에 저작권이 어딨냐? 지들이 레시피 못 숨긴 잘못이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절대미각을 가진 마리에게서 레시피를 숨긴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니. 그저 자랑질에 가까웠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번과는 다른 모습에 사뭇 그녀가 성장했나 싶었다.

‘내 레시피는 훔쳐가놓고 쪽팔려했으면서.’

“아,  경우랑은 다르니까.”

“!?”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곧바로 말을 거는 유나의 모습에 정우가 점짓 놀라고 있을 때, 그녀가 보충해 설명했다.

“네 경우는 네가 만들어서 알려준 걸 내가 멋대로 쓴 거고. 이건 내 실력으로 알아낸 거고. 엄연히 다르지.”

“그런……가요?”

“그럼! 꼬우면 지들도  식당에서 음식 먹고 훔쳐가라고 해.”


물론 다른 음식점에는 절대미각을 가진 알바생이 없으므로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마리는 무언가를 훔친다는 사실에 껄끄러워 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돈 앞에선 그 사실도 금세 고개를 감췄다.

“어때? 이번에도 무언가 부족한  있냐?”

유나는 자신만만하게 정우에게 물었다. 그렇게 물어봐도 이미 게임에서의 상황과는 180도 달라진 지금, 알 수 있을 리 없다.


그러나 마리에게 이만큼이나 지원을 해준 점, 지금 포인트가 넉넉하게 쌓여 여유로운 점등을 감안하여 정우는 힘을  쓰기로 결정했다.


“글쎄요…….”

정우의 손이 시스템에 올라갔다. 100포인트짜리 요리 기술이 구매되고 정우의 혀는 지금 먹는 음식에 대해 부족한 점을 찾아내었다.


“여기 맛이 좀─.”


훈수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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